<-- 7. 사신 파티 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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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사신 파티가 결성되고 얼마 후, 건국 축제 파티에 참석하라는 황실 초대장이 내 앞으로 날아왔다. 나는 지난번에 케르타로 장기 출장을 떠난 지 일 년도 되지 않아 다시 출장을 간다며 귀족들 사이에서 지지율을 얻는 것도 좋지만 이래서야 집안이 제대로 굴러가겠느냐며 핀잔하는 제인의 말을 한 귀로 흘려버린 채 종이에 메모를 하고 있었다. 내가 리더인 만큼 일행들의 조율과 계획표 작성도 전부 스스로 해야 했다. 리더란 정말 귀찮구나.
"잔소리 그만 해, 내가 가고 싶은 것도 아니고 여제 폐하가 시킨 건데 뭐."
"핑계대지 마세요. 충분히 거절할 수 있었다는 것 압니다."
괜히 대꾸했나, 제인은 날카롭게 반론했다. 예리한 녀석 같으니라고.
"공작님, 설마 또 저 붉은 머리 남자 같은 걸 데려오는 것은 아니겠죠? 외지에 나갈 때마다 남자를 하나씩 늘리면 주위에서 좋게 보지 않습니다. 자제하시고, 그냥 거기 버리고 오십시오. 공작님은 여자라서 귀찮은 일도 안 생기고 얼마나 좋습니까? 그냥 금화 몇개 쥐여 주고 나서 꼭 좀 버리고 오세요!"
물론 마법으로 하는 피임은 거의 확실하니 이런 상황에 버리고 온 여자의 임신이니 어쩌니 귀찮은 일로 요란 떨지 않아도 되는 여자는 훨씬 유리하다. 그, 그치만 난 아직 미르밖에 사고친 적 없다구? 게다가 벌꿀의 맛을 본 남자들이 금화 따위로 떨어질 리가 없잖아.
"괜찮습니다. 집안의 일은 제게 맡기십시오. 이런 건 남편이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시아 님께서는 마음 놓고 다녀오세요."
유렌이 제인의 잔소리를 실드쳐주며 내게 다가왔다. 우와, 역시 우리 유렌밖에 없어!! 그리고 그는 한 마디 더 강조하듯 덧붙였다.
"단, 미르 같은 걸 또 가지고 와선 안됩니다. 절대!"
에……, 노력해 볼게. 나는 땀을 삐질 흘렸다. 제인은 내 표정을 보더니 중얼거리며 말했다.
"대신, 카딘이라고 했던가. 그 하인, 일은 잘 하더군요. 충성심도 괜찮고……. 그런 자라면 괜찮습니다. 안 그래도 제국은 인력난인데, 이번에 젤타에 간다면 젊고 쓸만한 하인이나 좀 사오세요."
……미르는 카딘보다도 낮게 취급받고 있는 건가?
초대 황제인 데이시 하르아이나-크라이덴이 황실을 세우고 깃발을 꽂은 날은 건국 기념일로서 제국의 3대 국가적 행사 중 하나로 지정되어 있다. 국가적 행사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축제와 파티. 그리고 파티라 하면 비싼 과일을 맘껏 먹을 수 있는 날.
황실에서 주최하는 파티는 건국 기념일 전날 이틀과 당일 하루, 이렇게 사흘간 이어진다. 나는 이브와 당일만 참석할 예정이다. 마지막 파티 당일 밤은 어차피 다른 모든 파티들이 그렇듯 막장일테니 나는 살그머니 빠져나와 집에서 오빠랑 유렌이랑 미르를 데리고 놀기로 정했다. 건국 축제는 연인의 축제라고도 부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맺어지는 연인이 많기 때문일까. 겨울 날씨가 풀리고 봄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마저도 녹아내리기 때문일까?
오래간만에 손님을 초대한 티타임, 밀크티를 호록이며 내가 의문을 제시하자 간단히 유렌이 답을 내주었다.
"건국 초기 몇 년간은 이 날 황제가 축제를 열어 제국의 젊은 남녀들을 불러모아 서로에게 소개시켜 주는 날로 삼았다고 하는군요. 아마 제국민 유치와 백성의 안정을 위한 일이었겠지만, 황제 자신도 즐기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전대 황제는 제국을 세우고 국가의 기반을 다잡은 위인이지만 방탕한 성향을 다분히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걸 내가 쥐어패가며 바로잡았지."
부드럽게 턱을 괴고 약간 작은 몸을 탁자에 기대며, 흰색 드레스 차림의 엘리아스 씨가 끼어들었다. 손님으로서 대공과 동행한 그녀는 평상시의 노인 말투와는 다르게 다시 처음 만났을 때처럼 평범한 소년같은 말투가 되어 있었다. 귀족들의 눈에 초대 이트리샤 대공의 모습이 보였다간 큰일나니까 어쩔 수 없이 드레스를 입은 것 치고는 그 예법이 능숙하다. 역시 귀족은 귀족이랄까. 명목상 동행이지만 실제로 내가 초대한 것은 엘리아스 씨로서 그 옆의 이트리샤 대공은 그저 딸려온 것 뿐이다. 아마 타인의 눈에는 대공과 대공의 (가짜) 약혼녀가 시렌느 공작의 저택에 방문한 것으로 보이겠지. 아직 사람의 눈에 띄는 곳이기에 말씨가 사뭇 조심스럽다.
엘리아스 씨는 씁쓸한 레몬차를 호쾌하게 꼴깍 넘기며 미소지었다.
"나는 올곧고 성실한 사람이었거든."
"올곧고 성실하신 분이 황도 술집 투어를 매년 가십니까?"
대공 전하의 한숨 섞인 탄식에 엘리아스 씨는 살짝 뜨끔한 듯 눈길을 피했다. 대공은 하고 싶었던 잔소리를 이번 기회에 쏟아내려는 듯 했다.
"부탁인데 제발 분위기 타고 2차는 가지 마세요. 서지도 않는 분께서 2차를 가서 뭐 합니까?"
"윽! 불구 취급 하지 마! 나, 나도 플로라처럼 괜찮은 여자가 상대라면 선다구!!"
대공은 엘리아스 씨의 말에 미간을 살풋 찌푸렸다.
"가짜 육체가 생식능력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군요. 게다가 엄연히 성숙한 여자아이 모습을 하고서 언제까지 남자같은 음담패설이나 하려는 겁니까. 정령왕께서 몸을 바꿔줬다면 그걸 사용하십시오. 여자는 '선다'가 아니고……."
이 사람들이 엄연히 오후의 티 타임에 무슨 얘길 하는 거야? 나는 탁자를 치며 둘의 주의를 끌었다. 엘리아스 씨는 핫, 하고 사과했다.
"아아, 이거 미안하게 됐네. 티 타임에서 할 얘기는 아니지? 남자들 뿐인 기사단에서는 늘 이런 얘기 뿐이었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났다. 나는 엘리아스씨의 말 중에서 신경쓰이는 부분을 집어내었다.
"기사단에서는 늘 그런 얘기 뿐이라고요?"
"음, 그런 편이지. 아닌 녀석들도 있겠지만, 남자란 게 생긴 건 달라도 속은 다들 똑같거든."
엘리아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 말꼬리를 놓칠세라 대공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저는 빼주십시오."
어쨌든 기사단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 음담패설을 한다는 거지? 그럼 엘릭에게도 가볍게 농담을 해서 친해지면 되려나? 좋은 거 알았다.
"엘리아스 씨가 계셨던 기사단은 역시 황실 기사단이었죠?"
"응. 당시 최전방이었던 흑의 기사단이었지. 지금 흑의 기사단은 찌질이 집단이 되어버린 모양이지만."
"그, 기사단에서……, 동료들과 놀 때는 보통 뭘 하나요?"
엘리아스 씨는 내 진지한 질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해주었다.
"2차를 가."
"……."
진짜?
"내가 가끔씩 2차 쏜다고 하면 다들 좋아했거든. 아,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려나?"
나는 예상치 못했던 개방적인 기사단의 풍조에 당황했다. 정말일까? 그렇지만 기사단의 원조라고 불리웠던 분이 하는 말이니 대체로 맞을 거라고 나는 철썩같이 믿고 말았던 것이다.
이트리샤 대공과 엘리아스 씨가 돌아간 후 유렌은 문득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니 그 때 전시의 최전방 흑의 기사단은 기사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미개국의 기사나 고급 용병들로 이루어진 첫 번째 황제의 방어막이었다고 했지. 그래서 기사라 치기엔 거칠고 방탕한 자들로 만들어졌고. 현재의 기사들과는 아마 판이하게 달랐을 것이다. 지금의 기사도에 따르면 기사의 덕목 일 순위는 절제와 금욕. 아마 전과 같은 음담패설이나 매춘업은 기사들 사이에서 금지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대놓고 하지 않을 뿐 몇몇은 세리안처럼 뒤에서 몰래 하고 다닐지도 모르지만, 결코 앞에서 말하며 자랑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이다.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는 점을 알긴 했지만, 유렌은 기사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는 성격이기에 금세 까먹었다. 시아가 그것을 누구에게 이용할지 전혀 알지 못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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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국경일 중 하나인 신년 축제가 하얀 색, 추수절이 갈색과 붉은 색이라면 건국 기념일을 상징하는 색은 무엇일까? 답은 핑크색이다. 그 정도로 사람 염장을 지르는 날이라는 의미이다. 나는 끼리끼리 모여다니는 커플들을 냉랭하게 쳐다보며 드레스 샵으로 향했다. 칫, 축제 분위기구만. 누구는 일 때문에 남편이랑 옵빠 얼굴도 못 보고 있는데 말야.
세리안은 부단장으로 은퇴한 이후 드물게 큰 일을 맡아 바쁜 상태고 유렌은 정계에 그다지 나서지 않고 있지만 일단 능력이 출중한 검사다 보니 이번 사건에서 큰 도움이 될 만한 인물 중 하나로 꼽혀 기사단이나 제국 방위대에서 수많은 콜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잘한 것은 전부 거절하고, 황실 기사단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청의 기사단의 부름 역시 거부하고서 황제의 호출에만 응했다. 여제가 그에게 무엇을 시킬 건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유렌이 위험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유렌은 짱 세니까!! 뭐든 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 나도 열심히 해야겠지……. 나는 딸랑 소리가 나는 샵의 문을 열어주는 카딘의 앞으로 걸어갔다. 이번 파티에서는 기선제압이 중요하다. 평소보다 좀 기운차게 차려입어 볼까?
이루는 옆의 금발 미녀와 가벼운 담소를 나누며 스크류 드라이버를 반쯤 비웠다. 어느 정도 기분이 올라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물론 술은 강하다. 단지 취한 것처럼 머릿속을 비운 것 뿐이다. 아직 파티는 시작이지만, 술에 취한 흉내를 내는 것은 무척이나 유용하기 때문이다.
미녀의 이름은 모른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도 관심 없다. 대충 말 끝을 잡아 되물어 주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러던 와중 이루의 눈에 요주의 인물 하나가 들어왔다.
세리안 시렌느와 유렌 위스피닌. 세리안은 이루의 지인이기도 하지만 의외로 보수적인 성향이 강해서 원조 귀족들과 흔히 어울려 다닌다. 사실 이루는 세리안이 어째서 자신 같은 것과 놀아주는지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단지 여성 취향이 같아서? 그것은 아니다.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세리안이 어울려주는 젊은 층 중에서 이루 같은 개혁주의자는 없다는 것이다.
이루는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세리안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세리안과 유렌 위스피닌 백작의 뒤에 꼭 딸려오는, 아니, 세리안과 위스피닌 백작을 거느리고 다니는 시렌느 공작 때문이다.
시렌느 공작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원로 중 하나인 이트리샤 대공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처음 세이시아 시렌느를 보았을 때, 이루는 결코 그녀는 정치적 색을 띨 만한 인물이 아니라 판단하고 그녀에게 편하게 접근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시아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듯 하면서도 어느샌가 최고 지위의 흑의 대공 아래에 붙어 그 능력을 마음껏 이용하고 있었다. 그로서는 상상치 못했던 전개였다.
하지만 이루가 변함없이 시아의 곁을 심심풀이 땅콩으로 삼고 있는 이유는, 그럼에도 세이시아 시렌느는 그 권력을 과일 사먹는 용도로밖에 쓰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녀는 그 순수함이 사람을 믿게 한다, 고 그는 생각했다.
"하이, 시아양. 오늘은 평소보다 정열적인 입술이군."
나는 이루가 내 새빨간 드레스와 조금 섹시한 화장을 보고 이러니 저러니 하는 것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나저나 이 녀석, 대공가 잠입하러 가자고 뒷북 치러 온 것은 아니겠지?
"물론 아니지. 형님께서 내가 계획을 실행하기도 전에 약혼자에 대한 공식 발표를 하셨거든!"
이루는 그렇게 말하며 상큼하게 대공을 바라보았다. 나와 아까까지 홍차에 들어가는 설탕의 갯수에 관한 실랑이를 하고 있던 대공은 이루에게 짧게 대답했다.
"……나는 그런 발표를 한 기억 없다만."
ㅋㅋㅋ, 이루의 정보통도 이젠 한물 갔군. 이루는 충격적인 표정으로 되물었다. 말도 안 된다는 듯한 어조였다.
"네? 정말? 금발에 벽안, 라콘 왕국의 재산 많은 고위 귀족의 외동딸이고 나이는 열 네살이라고 들었는데? 취미는 구두 모으기라고 하던데?"
"전혀 아니라 유감이군. 애초에 나는 약혼녀가 있다는 소리조차 한 적이 없어."
대공은 조금도 흔들림 없이 부정했다. 하지만, 정작 이루는 별로 놀랍다는 내색도 하지 않고 표정만 충격적이라는 듯이 바꾼 후 대공의 곁에 쪼르르 달라붙었다.
"그럼 귀족이 아니라는 뜻인가요? 스펙은? 연령은? 사실 남자라는 소문도 진짠가요?"
"미안하지만, 꼬마. 그런 간단한 낚시에 나는 걸려들지 않는단다."
대공은 드물게 싱긋 웃으며 이루에게 딱 잘라 말했다. 이루는 쳇, 하며 그에게서 떨어졌다. 뭐야, 일부러 틀린 정보를 흘려서 진짜 정보를 얻어내려는 수작이었어? 얍삽한 자식!!
"아, 하지만 이런 흥밋거리 없이는 일상이 재미가 없는걸. 너도 그렇지, 시아? 그래서 이번 출장을 수락한 거잖아?"
이루는 툴툴거리며 이번에는 내게 들러붙어 보챘다. 나는 훗 하며 허리까지 오는 머리칼을 뒤로 쓸어넘겼다.
"아냐, 나는 너처럼 흥미 위주로 인생을 살지 않는다구. 너랑은 달리."
"거짓말."
이루는 절대 신뢰하지 않는 자의 눈을 하고 있었다. 뭐야, 아무리 그래도 난 언제나 사랑하는 남자를 대할 땐 진심이라구! 하지만 세간은 이미 나와 이루를 한등급으로 묶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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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넷북 샀어요!!
타자 치기 최적화된 녀석으로 샀... 는데 미묘하게 익숙해지지 않네요. 저번건 타자 사이의 거리가 꽤 되어있는건데 이번건 딱 달라붙어 있어서 글씨를 완전 잘못치기 쉬운 ㅠㅜ
이거 은근 인터넷도 빨라서 딴데로 새면 어떡하지 ㄷㄷㄷ
일단 반정돈 소설을 위해 산거니 좀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소설 텀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죠??
아 그리고 엘릭은 아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