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의여왕-157화 (157/226)

<-- 7. 사신 파티 결성 -->

그리고 엘리아스는 이어 말한다. 그 시선의 끝이 내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언제나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눈이었다.

"내가 육체의 변화를 원한 것은 강함의 추구이기도 하지만, 끝없이 반복되는 동일한 영원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해서이기도 하네. 나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엘리아스는 말 끝을 흐리다가 침묵했다. 그는 강하지만, 또한 연약한 인간이기도 했다. 나는 그의 바람을 거절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약속이었기도 하니까.

"저는 아직 갓 어른이 된 정령이지만, 그래도 엘리아스 씨의 육체를 크게 만드는 방법은 대충 알 것 같아요. 이것으로 당신의 앞길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어른이 된 직후긴 해도 가능한 건 가능하다.

"약속대로 몸을 크게 해 줄게요."

눈을 감고 서서히 자연력을 다루는 법을 익힌다. 멈춰 있는 고정된 육체에 생명력을 퍼부어서 열리게 했다. 자연력은 흐르는 그대로 두어도 충분하지만 생명은 단지 흐르는 대로의 물결 안에서 생겨나진 않는다. 마침내 처음으로 자연의 능력을 역행시키는 법을 터득한 것 같다. 멀리서지만 가만히 이 쪽을 지켜보고만 있던 대공도 뚫어져라 나를 바라보았다. 엘리아스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성인 남성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나로는 결코 바꿀 수 없었던 육체의 그릇이다. 성인으로의 의태가 저절로 풀리고 유아의 몸이 된 엘리아스 씨는 아주 조금씩 커지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이, 이거 변화가 없는데."

"아직 시작이란 말예요. 조금씩 커질 거에요!"

엘리아스 씨는 멀뚱멀뚱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가장 먼저 반응이 온 쪽은 손보다는 발이었다. 신발이 꽉 조이자 엘리아스는 구두를 벗고 양말차림으로 섰다. 멀리 입구쪽에서 바라보던 대공이 놀란 듯 이 쪽으로 걸어왔다. 자신의 육체 변화에 엘리아스는 흥분해서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가 원하는 대로 몸은 부풀어올랐다.

"……."

"……."

아아, 옷이 찢어질 정도로 단숨에 생명을 성장하게 만들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그 옷은 꼭 조일 뿐 찢어지지는 않았다. 덧붙여말하면 엘리아스가 원했던 그런 강인한 육체가 되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다만…….

"10센티미터 컸잖나!! 고작?! 이러려고 그렇게 집중한 거야?"

아니, 그게 처음이라…….

내 예상보다 결과는 미미한 수준이었을 뿐이다. 랄까 그렇게 집중해서 생명력을 돌려댔는데 어째서 조금밖에 안 큰 거지? 게다가 더 시도해 보았지만 이 이상의 변화는 없었다.

엘리아스 씨는 답답한지 작아진 옷의 단추를 두어 개 풀었다. 유아의 모습이었던 예전과 다르게 지금은 조금쯤 성별이 티가 나는 듯 했다. 이트리샤 대공은 스승의 불편함에 다급히 더 큰 신을 가져오겠다며 뒤돌아 나섰다.

"아니, 분명 커진 건 커진 거지만 말일세, 이거 조금, 아주 조오금만 더……."

나는 엘리아스 씨의 중얼중얼하는 노인네같은 소리를 뒤로 하고 몸을 돌려 뒤의 잔디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미 봄이라 어느정도 자라 있는 잔디에게 생명력을 부어 보았다. 잔디의 성장속도는 아주 조금씩 달랐지만 멈추는 시점은 그것과 무관하게 웬만한 잔디가 다 비슷했다. 한동안 관찰하던 나는 잔디를 원래대로 돌려놓고 일어섰다.

아무리 생명력을 돌리고 자극하며 마나를 뿌려도 잔디는 눈에 띌 정도로 쑥쑥 자랐지만 네 배 정도 큰 후에는 아무리 해도 더 자라지 않았다. 나는 엘리아스 씨에게 말해 보았다.

"아무래도 그 시점이 육체의 마지막 성장점같아요. 자연적으로 놔 둬도 그 이상은 크지 않고 마지막 성장점이 지나면 시들거나 노화하는 것처럼."

"그럼 근육은?"

"그건 물리학적으로도 생물학적으로도 불가능하거든요!"

다시 말해 더 이상은 클 수 없다는 소리에 엘리아스 씨는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어지간히도 키가 작은 유전자에 동안인가 보다. 하긴 그러니 생전에도 나이에 비해 어려보였을 테고, 글자나 겨우 뗄 법한 나이의 외모라도 실제로는 금단의 마법을 쓸 만큼 어느정도 필요한 나이를 먹은 상태였겠지. 실제로 고작 일고여덟살의 육체는 큰 마법을 받아들일 만큼 기관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

"그러고 보니 역사서에 전혀 나와 있지 않던데, 엘리아스 씨는 죽기 전에 나이가 몇이셨어요?"

"열 다섯."

그 얼굴이 15라고? 아니, 지금의 얼굴은 충분히 열 다섯이라고 주장해도 무난하지만, 성장 전의 모습은 절대 열다섯이 아니었다. 엘리아스 이트리샤는 어릴 적 험하게 자랐다던데, 얼마나 못 먹고 컸으면 저 모습이 열 다섯이람? 고아였나? 역사서에는 엘리아스 이트리샤의 조부가 대마도사 이트리샤라고 나와 있다. 대마도사쯤 되면 손녀에게 고기쯤은 먹일 수 있었을 것 아닌가?

"그렇게 따지면 역시 이 모습이 다 큰 모습이네요."

더 이상의 성형은 의사를 찾아가봐야 한다. 노화를 바란다면 생명력을 빼앗아서 늙게 해 주겠지만 아마 마나로 육체를 유지하는 엘리아스 씨의 몸에서 생명력을 계속 빼앗아봐야 소멸하기밖에 더하겠는가. 그리고 인간 최강인 엘리아스 씨가 순순히 소멸당해줄 것으로 보이지도 않고, 나도 그러고 싶지 않다. 엘리아스 씨는 내 대답에 실망한 듯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곧, 빙그레 웃으며 다시 허리를 폈다.

"그래도 명색이 이것은 성인의 육체라는 말이지 않나? 좋네, 한번 시험해봐야겠어. 고맙군, 식물의 주인이여."

"감사의 말로 전하자면 내 쪽이 더……."

일단 내 생명의 은인과도 다름없는 사람이 아닌가. 게다가 다그친 덕분에-라기보다 미묘한 압박과 부탁이었지만- 나도 좀더 빨리 자연을 다루는 법 중 하나를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이거 미르의 버섯에 써 봐야지.

목소리가 조금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옹알이같은 아기 목소리였다면 이제는 조금 더 안정된 목소리였다. 바뀐 건 목소리뿐 아니다. 시선의 높이 또한 달라졌다. 땅에 붙어있던 이전과 달리 지금은 웬만한 아이들과는 눈을 마주칠 수 있는 높이다.

말은 그렇게 해도 이것저것 중얼거리던 엘리아스 씨는 조금이라도 커진 육체가 기쁜지 몇 번 제자리에서 뜀박질을 가볍게 했다.

"좀 더 무거워진 느낌이야."

"시험해 보는 게 어때요? 나 샌드백 갖고 있는데."

엘라임이라면 당장이라도 불러 줄 수 있다. 내 힘으론 제어가 불가능하지만. 그러나 엘리아스 씨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살아 움직이는 표적이 필요해."

그 때 마침 신발을 찾아온 대공이 정원을 가로질러 오고 있었다. 엘리아스 씨는 몸을 풀며 대공에게 손짓했다. 그가 이 쪽으로 와서 신을 바닥에 내려놓는 순간 엘리아스 씨가 말했다.

"자, 신이 조금 클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 구할 수 있는 건 예전 여자용 실내화……."

"테스트 해 볼까? 도와주겠나?"

"예?"

순간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나며 엘리아스의 발이 대공의 머리에 명중할 뻔 했다. 본능적으로 뒤로 몸을 뺀 그는 당황해하며 손을 휘저었다. 혀도 안 깨물고 침착하게 잘도 말하네. 역시 초인답다.

"갑자기 몸을 쓰지 말고 일단 옷과 신발부터 갈아입은 후 앉아서 신체 각 부분을 점검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내게는 이게 가장 효율적인 점검일세, 알잖는가?"

엘리아스씨는 빙긋 웃었다. 그러고 보니 발차기 하나가 명중했다. 힘은 잘 모르겠지만 저만한 속도면 보통 파괴력이 아닐 텐데 대공은 아프다는 내색을 하는 대신 허리를 숙이며 우선 몸을 뒤로 뺐다. 아래에 깔린 잔디는 아파보인다. 나같은 다년초와 달리 원래 늘 밟히며 강해지는 잔디이지만 말이다. 게다가 나도 지금 잔디를 밟고 있고. 우선 나는 전투를 즐기지 않는 식물이므로 눈을 가리고 둘에게 인사했다.

"저, 저는 이만 가 볼게요."

엘리아스 씨의 5분이면 끝나니 기다렸다가 차와 과자라도 하고 가지 않겠느냐는 말에 잠깐 솔깃했지만 유렌을 오래 놔둘 수 없어서 오늘은 그냥 가겠다고 했다. 그보다 뭐가 5분이면 끝난다는 거지? 제자 요리??

***

오늘의 회의는 웬일로 식물의 기분을 들뜨게 했다. 평소라면 달갑지 않을 아침 회의였지만 오늘만큼은 별다른 불만 없이 후다닥 차려입고 회의실로 향했다. 중요한 발표가 있는 날이기에 이미 회의석은 만원이었다. 서론이 발표되고 이번에는 신인들에게 제국의 미래를 맡겨보겠느니 하는 여제의 말이 이어졌다. 엘프 리스피아는 쭉 제국에 머물기 때문에 내가 이번에 출장을 간다면 만날 수 없으니 그건 조금 아쉬웠다. 나는 내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엘프의 시선에 두근거림을 억누르며, 내 지정석에 앉아 황제의 알림을 기다렸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역시 이번 일의 리더는 당연히……!

"짐은 젤타의 왕국에 시렌느 공작을 사신으로 보내고 싶소. 케르타와의 협상에서 큰 공을 세운 만큼 이번 일도 기대하고 있겠소. 리더는 시렌느 공작, 그리고 보조로는 마란 후작과 라키아네 백작, 프쉘드리만 후작, 줄루인 남작을 보내도록 하지."

역시 갈 수 있어!! 사실 처음에는 그저 나랏돈 써서 외국 관광을 갈 수 있다는 단순 흥미에서, 이제는 순수한 기쁨으로 이번 임무가 내게 다가왔다. 엘프를 만날 수 있다. 이제 젤타 왕국의 엘프란 엘프는 전부 맛볼 수 있어!!!!

정말 순수하게 기뻐하는 내게 여제는 자비로운 얼굴로 찬물을 끼얹었다.

"아아, 그리고 만약을 위해 레이몬드 자작도 함께 가 주게. 위급시에 도움을 줄 자가 하나 정도 필요하니까."

레이몬드? 레이몬드라면 칼릭 레이몬드 자작? ……일 리가 없지. 나는 여제가 명백히 엘릭 레이몬드 쪽을 바라보는 것을 보고 기운이 쪼옥 빠졌다. 쟤랑 어딜 같이 가라구?

"젤타의 왕실에는 미리 전갈을 보내 두겠소."

이, 이건 말도 안 돼!!

나는 회의 내용이 머릿속을 가물가물 스쳐 지나가는 상태로 회의용 테이블에 얼굴을 묻었다. 망했다. 내게 주어진 임무는 젤타 왕국에 머물며 왕국 쪽에 적당한 압력을 넣어 가면서 제국으로 사건 보고를 하는 것이다. 일종의 파견 근무랄까. 외교관계를 매끄럽게 처리하는 것은 아무나 못 하는 일이지만, 어느 정도의 경험과 처세술만 받쳐주면 쉽고 간단한 일이다. 더군다나 사람의 기분을 읽을 수 있는 내게는.

전체적으로 분명 중요한 일은 아닌데 그럭저럭 중책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나는 그저 힘 닿는 데까지만 돕고, 일이 끝났을 때 흥청망청 열심히 노닥거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게 내 유희의 목적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엘릭이 있으면 함부로 못 놀잖아!!? 아니, 오히려 기운에 눌려서 제대로 말도 못 할 거야.

귀족 회의는 케르타에 갈 사신들을 뽑는 쪽으로 다시 흘러갔다. 그 와중에 나는 쫄아서 눈을 가린 채 손가락 사이로 살짝 엘릭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엘릭은 내 시선을 느낀 건지 나를 빤히 쳐다보며 한쪽 뺨을 올렸다.

저, 저, 저거 비웃는 거야? 아니면 화난 거야? 전혀 모르겠어!! 마족이란 너무 어려워.

그 임무, 갑자기 자신이 확 없어졌다.

========== 작품 후기 ==========

괜찮나요?

후기란 새로 생겼네요 ㄷㄷㄷ;;

점점 스토리가 산으로 가는듯하기도 한데 뭔가 이상한것 같은데 괜춘?

이 부분은 상세설정을 안해놨더니 제대로 잡기 힘드네요 ㅠㅠ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