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의여왕-156화 (156/226)

<-- 7. 사신 파티 결성 -->

"처음부터 이런 북쪽 땅이라면 색다른 식물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이 곳에 가 달라는 사이엘의 부탁을 들어 준 거였어요. 당신을 만나다니, 정말 운이 좋았지만요. 저 계속 관찰해도 됩니까? 거처는 당신의 근처로 정할게요."

그거야 상관없지만 관찰이라……, 난 관찰대상인거야??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냥 바라보는 거에요. 식물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마음이 편해지니까요."

리스피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뿌리를 감싸는 물처럼. 엘프의 매력이란 이런 것일까? 나는 그의 동의를 얻기 위해 유렌을 힐끔 바라보았다. 유렌은 한참 엘프를 노려보더니 당연한 말을 했다.

"전 싫습니다."

리스피아는 바짝 경계하고 있는 유렌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부드러운 어조였지만 내게 한 것처럼 웃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리스피아는 엘프로서 유렌을 싫어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너무 경계하지는 말아요, 거기 당신도 엘프의 피가 섞여 있으니 알고 있잖아요? 엘프는 소유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요. 저 역시 플로라 님을 어딘가로 빼앗아가지는 않아요. 안심하세요."

하지만 유렌은 믿지 않는 건지 아무런 답을 해 주지 않았다. 대신 내 잎을 꼭 잡고 있을 뿐. 리스피아는 마차 앞에 갈 때까지 정말로 나를 한참 바라보기만 했다. 마차 앞에서 나는 조금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설마 집까지 따라올 셈인가? 그냥 무시할 수도 없고, 엘프에게 끌리는 식물의 본능을 부정할 수도 없었던 나는 리스피아에게 먼저 권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집에서 차나 한 잔 하지 않을래? 그리고……."

하지만 리스피아의 대답은 정말 의외였다. 리스피아는 은은하게 짓던 미소를 지우고 아까처럼 약간은 차가워 보이는 얼굴로 돌아가서 내게 말했다. 하지만 그런 표정인데도 어조만큼은 여린 식물에게 속삭이듯 무척이나 조근조근하고 부드러웠기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저는 단지 식물을 바라보는 게 좋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플로라님께서 제가 그렇게 신경쓰인다면 멀리서 관찰할게요."

"어어?"

내가 뭐라 대답하려고 하기도 전에 리스피아는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빠, 빠르다. 엘프란 원래 저렇게 빠른 걸까? 그보다 대체 어디로 간 걸까. 그저 친해지고 싶었던 것 뿐인데 내가 잘못한 건가?

괜히 묘한 감정에 한참 그가 사라진 곳을 응시하며 멍하니 서 있는데, 내 앞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다시 꼬마의 모습으로 돌아온 엘리아스씨와 검은 머리의 이트리샤 대공이었다. 나는 나보다 아래에 있는 엘리아스 씨의 밝은 금발을 쳐다보았다.

"아직 안 갔어? 마침 잘 됐구나, 우리 집에 오지 않겠어?"

엘리아스씨는 웃으며 그렇게 권했다.

***

"그래, 아직 이 곳의 뒷뜰을 본 적 없지? 보여줄까?"

타인의 이목이 없는 실내가 되자 순식간에 저번처럼 성인 남성의 모습으로 변한 엘리아스 씨는 정원을 보여주겠다며 내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식물의 정원이라면 다 좋아하므로 사실 조금 기대하고 있었다. 높은 담 밖에서 넘겨다 본 이트리샤 가의 정원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이트리샤 대공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엘리아스 씨의 팔을 조금 잡아끌었다.

"그 장소는……."

"?"

내가 빤히 대공을 쳐다보자 엘리아스씨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레인의 허리를 탁탁 두드렸다. 달래는 것 같기도 하고 보채는 것 같기도 했다.

"뭐, 그 곳은 레인의 개인적인 장소이기도 하니까 말일세. 대신 플로라는 인간이 아니니까 정원을 출입하지 않더라도 성목을 보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은가?"

"……."

대공은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암묵적인 동의같기도 했다. 그나저나 성목이라니? 순간 이질적인 분위기가 돌고 있음을 알아챈 유렌은 입구에서 기다리겠다며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어쩔 줄 몰라 가만히 있었지만, 엘리아스씨는 당당히 내 잎을 이끌고 저택 내부의 출입구로 향했다. 화려한 팔각기둥 아래로 싱그러운 햇살이 느껴졌다. 아아, 진짜 넓은 정원이다.

나는 그냥 멍하니 엘리아스 씨에게 이끌려 간 것 뿐이지만 어쩐지 그 날 그 곳에서 처음으로 본 풍경은 오래 전의 어떤 만남을 떠올리게 했다. 이건 내가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햇볕 아래에 두 발로 섰을 때의 감각이다. 나는 한동안 의아했었던 그 '성목'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역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본능이란 것은 이런 것일까. 분수 같은 생명력이 얽힌 뿌리 속으로 스며나오고 있었다. 마치 연록의 축복이라도 받은 듯한 새하얀 나무였다. 성목은 남자 서넛이 둘러싸도 다 재지 못할 정도로 굵은 줄기와 무성한 잎을 가지고 있었다. 약간 황금빛을 띤 연갈색 나무 껍질의 속은 새하얀 우윳빛일 것이다. 연록색의 잎새는 햇빛에 비춰진 곳과 아닌 곳의 차이가 확연하다. 반들반들한 잎 윗부분은 마치 천사의 날개 같은 새하얀 은빛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알고 있는 나무다.

하지만 그 샤리 나무는 우리 집 정원의 자그마한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보통 잘 크지 않는다고 알려진 나무가 웬만한 나무보다도 더 거대하게 자라는 데 몇 년이 걸릴까.

밖에서부터 느꼈지만 이 넘쳐나는 자연력은 진정 신의 축복, 성목이라 불릴 만 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런 것이 여기에 있을 줄이야……. 보기만 해도 몇백 년 이상은 묵은 나무 같았다. 제국의 짧은 역사는 고작해야 백 년이다. 어떻게 이 나무가 이런 곳에 있는 걸까?

"성목은 응당 그대의 권속일 터. 원한다면 더 가까이 가도 좋네."

엘리아스 씨는 그렇게 말했다.

"이 나무는……, 원래 이 곳에 있었던 나무인가요?"

"그래. 샤리 나무는 엘프들 사이에서는 수호목이라고 불리고 있지. 그 중에서도 특히 이천 년 이상 묵어 큰 나무는 성목이라는 이름으로 엘프 마을의 중심이 되거나 그린 드래곤의 레어 터가 되기도 한다네. 성목은 지키려는 힘이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나는 처음 이 나무를 발견하고 성목의 수호력으로 조금이라도 몸의 회복에 효과가 있을까 싶어 성목을 감싸는 형태로 집을 지었어. 지금 보면 그다지 큰 효과는 없었지만 말일세."

이천 년이라……. 그 정도로 오래된 나무인걸까. 나는 그 나무를 바라보았다. 순백색 머리칼을 허리 아래까지 늘인 연록빛 복장의 흰 사내는 나를 바라본 채 가만히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나는 성목의 정령의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그 정령의 수천 년 묵은 팔-나무껍질을 쓰다듬어 보았다.

〈숲에서 떠나 외롭지 않은 거야?〉

그의 반응은 무척이나 담담했다.

〈……저는 숲의 나무지만, 숲을 떠나 제가 벌판에서 홀로 이만큼 자라게 된 것도 전부 자연의 운명.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나는 멍해진 채 무심코 샤리 나무의 흰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제 옆의 정원 주인에게, 제게서 조금 떨어진 근처에 다른 나무를 좀 심어 달라고 전해 주시지 않겠어요? 가끔 말상대가 필요할 때도 있거든요.〉

샤리 나무의 정령은 평온한 모습으로 웃어보였다. 수천 년을 산 정령의 모습이란 이런 것일까. 외형은 순수한 젊은이 그대로이지만 눈빛은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자연의 모체다. 그 정도는 알고 있다.

기껏해야 이 샤리 나무는 내 아들뻘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정신과 그의 정신은 살아온 세월의 차가 너무나도 컸다. 나는 그 샤리 나무와 눈을 맞추었다.

〈여기 삶은 어때? 좋아?〉

〈견딜 만 합니다. 제 근처에 담이 생긴 이후로 바람도 줄어서 좋고.〉

이 저택이 지어진 지 백년 내외였던가. 제국이 세워지기도 전에 이 땅에 버티고 있던 그에게는 짧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지만, 나는 역사 시간에 배웠던 제국의 과거에 대해 떠올렸다. 엘리아스 씨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젊은 외모(어찌 보면 어린 외모)를 갖고 있지만 엄연히 제국의 개국 공신이다. 믿기 힘든 일이다. 백년 전 이 곳에서 싸워 수많은 적을 베고, 샤리 나무를 발견해 저택을 짓고, 공국을 통치하다가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지. 좀더 강해지기 위해서라는 말을 남긴 채. 지금의 엘리아스 씨는 얼마나 강해졌을까. 나는 정령이기에 인간의 강함의 척도에는 관심이 없지만.

"엘리아스 씨."

"으음?"

"당신은 더 크고 강한 육체를 원한다고 하셨죠?"

엘리아스 씨는 맑은 은하늘빛 눈동자로 나를 말없이 응시했다. 나는 처음부터 이해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질문했다.

"당신은 이미 인간 중에서는 가장 강하잖아요?"

그런데도 엘리아스 씨는 모든 것을 버리고 지금도 여전히 강함만을 추구하려 한다. 대공에게 들은 적 있다. 30년 전 명예와 부와 인간관계와 안전과 양자와 기사마저 버리고 떠난 초대 대공에 대해서.

그리고 엘리아스는 대답했다.

"단지 지금보다 더 강하길 원할 뿐이야."

"더 강해져서……, 무엇을 원하는가요?"

"……?"

"뭔가 하고 싶은 게 있으니까 강해지려는 것 아닌가요?"

나는 엘리아스 씨의 눈에 언제나 머무르던 그 공허함을 보았다. 비어 있다고 느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인형과 차이 없는 시선을.

"……나는……."

남성의 의태를 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지금은 약해보였다. 내게서 엘리아스 씨가 찾으려는 것은 더 강한 육체, 그리고…….

"생의 의미를 찾고 싶어. 그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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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살걀 좋아하세요?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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