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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여왕-152화 (152/226)

<-- 6. 어른이 되는 법 -->

***

아침부터 씻기도 전에 침대에서 알몸으로 뒹굴던 미르가 내 등짝에 엉겨붙었다.

"으응~, 시아아……. 한 입만 더~~♥♥"

"나중에 해 줄게. 지금은 세르 마중가야지."

나는 벌써 카딘과 라르슈의 시중으로 목욕을 완료한 후 옷까지 차려입은 상태였다. 빨리 보고 싶으니까 세르 마중가야지. 미르는 투덜거리며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더니 간단하게 마법으로 씻고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어버렸다. 편리해 보이지만 단점도 있다. 몸에 수분이 섭취되지 않는 점과 화려하고 예쁜 옷을 못 입는다는 점.

"미르는 그냥 방에서 기다리고 있어도 되는데."

"……아냐, 같이 갈게. 시아가 유희를 계속한다고 한 이상 나 역시 시아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시아의 남편이 될 거야!"

남편……. 이미 나는 유렌과 결혼한데다가 내가 왕이 되지 않는 이상 나는 일처 일부제의 법에서 벗어날 수 없다. 허황된 꿈을 꾸는 미르의 빨간 눈동자가 꿈의 보석 루비만큼이나 반짝거렸다.

"우리 나라는 일부일처제라고 말했는데……. 다른 나라로 이주라도 하자는 거야?"

"아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잖아? 나한테 맡기라구!"

……설마 유렌에게 무슨 짓을 할 생각은 아니겠지. 하긴, 유렌이 쉽게 당할리도 없을 뿐더러 미르 역시 그런 이유로 유렌을 끌어내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끌어내리고 올라간 자리는 언제든 또 끌려내려올 수 있다는 얘기 역시 미르가 자신의 입으로 한 적 있다. 그는 필요에 따라 그런 스릴을 즐기기도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에 도박을 하는 성격은 결코 아니었다.

"후후후……."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웃고 있는 미르의 어깨를 짚고 그의 귀에 가볍게 입을 댔다. 미르는 살랑살랑한 꽃잎의 스침에 기분이 들뜨는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눈을 감았다.

"가자."

"좋아."

바로 옆 방에서 씻고 깔끔하게 준비를 끝낸 유렌이 짧고 빳빳빳한 검정 재킷을 걸치며 나왔다. 그리고 허리를 숙이며 장갑 낀 손을 내게 내밀었다.

"차를 대기시켜 두었습니다, 시아 님."

나는 빙긋 웃으며 미르의 팔짱을 낀 채 그 손을 잡았다.

왕궁으로 들어가는 절차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세르가 있다는 동쪽 관으로 향했다. 이 곳에는 네 가지 색의 제복을 반듯하게 차려 입은 기사들이 절도 있는 동작으로 걸어가거나 대화를 하거나, 검을 차고 어딘가로 향하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전에 왔을 때는 모두 나란히 서 있었는데."

지금은 다들 할 일이 있다는 듯이 단정하지만 규칙적이고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보니 다들 활기차면서도 무척이나 바빠보였다.

"그 때는 대열식 중이었으니까요, 공작님. 언제나 줄 맞춰 행동하는 것은 아니에요. 기사도 사람이랍니다."

하얀 제복을 입은 금발의 남자가 나를 발견하고 웃으며 대답한다.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본 적 있는 남자다. 평기사들과 달리 무릎 길이까지 오는 긴 재킷을 입고 있다. 하얀 색에 긴 제복. 황실 기사단의 주요직을 맡고 있다는 의미이다.

"반갑습니다. 백의 기사단 단장인 아이서스라고 합니다."

단장? 그러고 보니 그 때 세리안 옆에 서 있던 남자였다. 백의 기사단 단장이라면 아이서스 후작이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인사했다. 그나저나 기사가 가득한 곳이라니, 여긴 천국이다……! 무도회 때 단정하고 반듯한 제복을 입은 기사들을 보고 두근두근하며 언젠가 나도 멋진 기사에게 레이디 서약을 받게 되지 않을까 잔뜩 기대했는데, 현실은 그런 거 없었다. 미르도 유렌도 기사가 아니다. 세르는 가끔 기사 제복을 입고 있긴 했지만 왜인지 기사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내 앞에서 너무 풀어진 모습을 보이는 탓일까. 가끔은 기사가 있는 귀족들이 부럽다.

물론 라이언 경 휘하의 내 직속 기사가 있긴 하지만 레이디의 맹세가 아닌 주군의 맹세로 이어진 단순주종관계일 뿐이었고 급하게 처리한 즉위식에 딸려 있는 약식 절차이기에 기사를 맞을 때의 감동 같은 것은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여기엔 시렌느 경을 만나러 오신 겁니까? 마침 시간이 있으니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아이서스 후작님."

인사를 나누는 도중 복도 뒤쪽에서 푸른 색의 제복을 입은 한 흑발의 기사가 나를 빠르게 휙 스쳐지나갔다. 나는 아이서스 후작을 쳐다보다가 놀라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 역시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일순간 나와 정확히 눈이 맞았다. 나는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짧은 흑발머리가 휘날릴 만큼이나 빠른 걸음으로 즉시 고개를 돌리고 내 앞을 지나쳤다.

"……엘릭?"

그래, 엘릭도 기사였지. 더욱이 기사단 내에서 순위권인 엘릭 정도의 실력주라면 거의 매일 황궁으로 출근하는 것이 당연하다. 아이서스 경은 인사도 없이 스쳐지나가는 엘릭의 행동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언제나 있는 일이라는 듯 그를 쳐다보던 아이서스 경은 내 표정을 보고 질문했다.

"레이몬드 경과 친분이 있는 사이입니까?"

방금 그 모습을 보면 절대 친분이 있다고는 말 못할 텐데……? 걘 나를 싫어하잖아? 내가 그의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있자 아이서스 경은 설명을 덧붙였다.

"레이몬드 경은……, 뭐랄까 조금 무심한 면이 있어서요. 다른 사람에게 쉽게 눈길을 주지도 않고 그만큼 타인 때문에 괜히 빨리 걷거나 고개를 돌리지도 않아요. 방금처럼 그렇게나 남에게 관심을 보인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시렌느 경과 레이몬드 경은 사이가 좋지 않은 걸로 압니다. 하지만 동생분께서는 레이몬드 경과 어릴 때 친분이 있었다고 하니, 둘의 사이는 사실……?"

"그……."

"아무 사이도 아니거든요!"

뾰루퉁한 표정의 미르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쏘아붙이듯이 대신 대꾸했다. 미르는 어지간히도 아까 그 엘릭이 신경쓰였는지, 아이서스 경의 말에 침묵하다 못해 끓는 한마디를 내뱉은 듯 했다. 그의 화난 듯한 반응에 아이서스 경은 어리둥절했지만, 곧이어 내게 첩이 있다는 소문을 기억해냈는지 안색이 변했다. 붉은 머리에 새하얀 피부의 남자, 미르가 소문의 내 첩이라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다.

"저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타입입니다만, 신원이 불분명한 첩실을 데리고 황궁을 드나드는 것은 자칫 심한 추문에 휩싸이게 될 우려가 있으니 자제하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아이서스 경은 내 뒤의 유렌의 표정을 힐끗 바라보았다. 유렌은 고개를 까닥이며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위스피닌 백작께서 그렇게 말하신다면야 상관없겠지만……."

실상은 전혀 아니지만, 밖에서만큼은 유렌이 명목상 미르를 아래에 두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만난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걸까. 그건 기강이 확실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있지~, 시아~♥ 아까 그 마족은 뭐야? 진짜 아무 사이 아닌 거지? 그치??〉

아이서스 경의 안내를 받는 동안 미르가 불안한지 몰래 내게 속삭였다. 나는 순간 스쳐지나갔던 엘릭의 표정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으응…….

〈그러고 보니 미르는 모르겠구나. 엘릭 레이몬드는 내 소꿉친구야. 물론 진짜 내 소꿉친구는 아니지만……. 그래서 부모의 교류도 있고, 아예 모르는 사이는 아냐.〉

〈…….〉

〈그, 그런 표정 짓지 마. 정말 별 사이 아닌 건 맞으니까. 게다가 엘릭은 나를 싫어하는걸.〉

〈싫어하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내 말에 미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뭐라 반박하려 했지만, 잠시 생각하더니 유렌과 한 번 눈빛을 교환하고 표정을 싹 바꾸며 내게 말했다.

〈……으, 응! 맞아맞아, 하긴 싫어하는 것 같더라. 그 녀석은 시아를 싫어해. 그러니까 절대 저런 녀석하고 단둘이 있거나 하지 마. 걘 시아를 싫어하니……, 잠깐, 생각해 보니 이것도 열 받네? 자기가 뭔데 우리 이쁜 시아를 싫어해!!? 그 건방진 표정도 맘에 안 들어!!! 마족 주제에!!〉

혼자 속으로 길길이 날뛰는 미르를 지금 어찌할 수 없어 나는 대답을 회피하며 급히 아이서스 후작의 뒤를 따랐다.

"이 쪽입니다."

아이서스 후작은 넓은 홀을 거쳐 복도 가운데의 응접실로 들어가서 그 안의 어느 방문 앞에 멈춰섰다. 엔트런스에서는 기사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아니, 기사라기보다는 제복 차림의 문관들 같다. 코트까지 완벽한 정식 제복인 기사와는 다르게 실내에서 조끼 차림으로 움직이는 그들의 양 손에는 서류가 가득했다. 아이서스 경은 그 중에서 한 방에 들어가서 집무실로 보이는 곳의 문을 두드렸다.

"세리안, 자네의 소중한 손님이 왔네. 난 일이 있어서 바로 가봐야 하니 나와 나와보는 게 좋을 걸세."

안쪽에서 뭐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서스 경은 문을 열어주며 빙긋 웃고는 볼일 잘 보라고 속삭이며 홀을 나갔다. 문 안에서는 의아한 듯한 세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중한 손님이라고? 그렇게 말할 정도의 손님이, 아……설마……, 시아?"

나는 환하게 웃으며 방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햇살이 비춰져 오는 채광 좋은 방 안에는 그 좋은 경치에 어울리지 않게 하얀 서류들로 가득했다. 나는 마호가니 원목 책상 위에 넘치도록 쌓여 있는 서류들에 파묻힌 은발머리를 보고 바로 그에게 안겨들었다.

"오빠,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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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 빨리 전개를... 늦어서 죄송합니다!$%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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