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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여왕-141화 (141/226)

<-- 6. 어른이 되는 법 -->

최강의……, 육체?

나는 방금 엘이 한 말에 그저 눈을 깜박거릴 수밖에 없었다.

남의 육체를 개조하는 권한이 내게 있었던가? 아니지, 나는 식물만을 관장하는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그런 것 못 한다. 방법도 모른다. 최강의 육체라니, 그렇게 만드는 방법을 알면 일단 나부터 최강의 육체로 개조했지.

옆에 있던 대공을 바라보니 대공은 내 눈을 빤히 내려다본다. 당연히 알지 않느냐는 표정이다.

"그거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것 확실해요?"

내 질문에 엘은 당연하다는 듯 부드럽지만 단호히 즉답했다.

"물론이지! 자연의 생명을 관장하는 그대가 아니면 대체 누가 가능하단 말인가?"

그리고는 나와 내 뒤의 일행들의 표정을 보더니 자신의 설명이 부족했다는 것을 알았는지 침착하게 말을 덧붙였다.

"지금의 내 육체는 열 다섯 살에서 성장이 멈춰 있어. 열 다섯 살에 금지된 술법을 이용해서 불사의 육체를 얻었지만 이 이상 성장할 수 없는 한계를 페널티로 받았지."

엘이 사용한 그 술법은 대자연의 힘을 유한한 육체에 근원으로 사용함으로서 비록 육체가 데미지를 입으면 보통의 인간처럼 부서질지언정 영원히 소멸하지는 않고 무한정 재생하게 되는, 천계에서 사용하는 불사의 주문을 개량한 것이었다. 즉 인간의 육체라서 다치지만 죽지 않는 것이랄까. 다치지 않고 죽지 않지만 인간의 육체를 포기해야 하는, 마계에서 사용하는 주문을 마법으로 개량한 언데드의 주문과 비슷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라고 말해도, 나는 마법에 대해서는 모르는걸.

"나의 근원은 바로 그대가 존재하는 데 필요한 것과 같은 자연력이다. 만일 그대가 나를 성장시켜 준다면 나는 이 유약한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카덴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본체인 드래곤과도 완력으로 단신으로 붙을 수 있을 만한!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아니, 아무리 그 쪽을 개조해도 드래곤과 맞짱 뜰 만큼 거대하게는 못 만드는데. 그건 나 뿐만이 아니고 신이라도 못 만들 거야.

하지만 이미 엘은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엘은 이미 몇십 톤이 넘는 근육질의 육체를 상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뇌까지 근육일 것 같은 마초남의 초상화까지 모델로 가지고 왔다. 글쎄, 그렇게는 안 된다니까. 일단 당신, 여자아이잖아.

"이런 나약한 육체를 데리고 수련한 지 백 년이 넘었다. 그 동안 몸은 전혀 크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자연과 생명체를 관장하는 그대라면 나를 내가 원하는 만큼 거대하고 강인한 몸으로 최대한 성장시켜 줄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않은가? 그것을 위해서라면 그대의 치료 뿐 아니라 무엇이든 해주겠어."

"백 년?"

"응, 나는 그렇게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백 스물은 넘었어. 딱히 경험이랄 것도 없지만 전쟁 두어 번 정도 참가해 본 적도 있고. 그대가 의심할 만한 실력은 아닐 거야."

나, 나, 나이가 120살!? 말도 안 돼. 겨우 몇 달 정도 태권도학원 같은 데서 수련한 줄 알았는데 백 년이라고? 겉보기로는 전혀 단련되지 않은 단순한 가녀린 미소녀일 뿐인데? 나는 놀라서 눈만 깜박였다. 세르는 내 곁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그건 아무래도……, 무리라고 생각하는데요, 엘리아스."

"무리라니?"

"당신은 여……, 아니, 시아는 아직 자연력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유생체니까요."

여자라고 말하려고 했던 세르는 이해를 못하겠다는 엘의 표정과, 말하지 말라는 대공의 눈빛으로 화제를 자연스레 다른 쪽으로 돌렸다. 뭐야, 엘이 여자아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고 있는 거야, 저 둘은?! 엘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기다릴 수 있어. 나의 오랜 염원이 이루어지는데 수십 년 정도쯤이야."

엘은 내색하진 않았지만 묘하게 들떠 보였다. 전혀 나이에 어울리지는 않지만 마치 선물을 받을 날을 세고 있는 어린아이같았다. 엘은 빙긋 웃으며 즉시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잠시 기다리고 있어 주지 않겠나? 바로 옷을 갈아입고 그대를 자택까지 데려다 줄 테니."

"에, 데려다 줄 필요까진……."

어차피 세르랑 유렌이랑 미르랑 함께 돌아가고, 마차를 타고 갈 텐데.

"그대를 만지거나 부축할 수 있는 것도 나 뿐이니 내가 데려다 줘야지. 사양하지 말도록 해. 불편하게 하진 않을 테니까."

그거야 날 만질 수 있는 게 엘 뿐이긴 하지만……. 치료받았으니 일단은 혼자서 설 수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나보다도 어린 소녀한테 도움을 받기는 좀 그런데. 하지만 데려다 주겠다고 한 거, 거절하지도 못하고 그냥 얌전히 앉아있었다. 한참을 식어버린 찻잔에 담긴 찻물 표면을 바라보던 나는 옆에서 가지런한 자세로 앉아 있는 대공에게 물었다.

"저기, 대공 전하도 귀찮으실 텐데 굳이 데려다 주지 않아도……."

"제가 엘 님의 명을 받들어 그대를 배웅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엘 님께서 직접 데려다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엘 님의 순수한 호의는 그리 흔하지 않은 것이니 부디 받아주십사 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엥? 뭐야, 댁도 함께 가는 것 아니었어? 당신은 엘 씨의 껌딱지인 걸로 알고 있었는데?

나는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기 위해 입을 뗐다. 그 순간 생각보다 빨리 엘이 문을 열고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엘은 여자아이인데도 파티에서와 달리 집에서는 마치 남아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지. 그래서 옷을 갈아입는 것이 빨리 끝난 듯 싶었다. 나는 이왕 바래다 준다는 것, 호의는 감사히 받고 세르를 시켜서 다시 엘을 집까지 안전하게 돌려보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

그 곳에는 엘이 아니라 부드럽고 눈부신 천연 금발을 가진 옅은 색소의 한 미남자가 반경장을 한 채로 서 있었다. 처음 보지만 어딘가 낯익어 보이는 인상이다. 어딘가에서 분명 본 적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보다 누구지?

갓 미성년자 티를 벗은 것처럼 앳되어 보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 성숙해져서 나이가 생각보다 들어 보이기도 하는 분위기의 금발 미남은 복숭아빛의 정말 부드러워 보이는 피부에 깊은 호수 빛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 조금 마른 듯한 몸매였지만 다리가 길어서 그런지 슬림한 라인의 셔츠와 바지가 무척 잘 어울렸다.

……근데.

"당신 누구?"

"응? 아아, 옷을 갈아입고 왔더니 못 알아보는구나."

그 남자는 매끈한 뺨을 살며시 부풀리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묘하게 어른스러우면서도 뽀얀 피부 덕에 색기가 물들어 보이는 웃음……. 확실히 엘과 닮았다. 엘의 오빠……, 정도일까? 게다가 침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역시 닮아 있다. 그런데 못 알아본다니? 초면인데 옷을 갈아입고 왔는지 어떤지 어떻게 알아?

남자라 그런지 미르는 내게 접근하는 그를 우선 경계부터 하고 들었다. 하지만 세르는 딱히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미르만큼은 아니라도 세르 역시 독점욕이라는 것이 꽤 있는 편이라 내게 접근하는 남자들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뭐, 뭐야, 너! 시아한테 접근하지 마!!"

"하지만 접근하지 않으면 내가 데려다 줄 수 없게 되는데? 그대는 플로라의 몸에 손을 댈 수 없잖아."

그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미르를 지나쳐서 갑자기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움찔했지만, 남자의 접근이라 얌전히 있었다. 보통의 인간 남자라면 나를 해칠 수 없으니까. 그는 가볍게 내 손을 쥐고 손등에 살며시 입맞춤을 했다. 뭔가 간지러운 느낌에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나는 전혀 흡수할 수 없었다. 마치, 엘 같이.

기사의 손등 키스는 세르에게서 몇 번 받아봤지만 언제나 다정하고 끈적한 느낌이라 절도 있는 동작의 아련함은 느낄 수 없었다. 미르나 유렌도 손등에 키스는 해 줄 수 있지만 기사가 아니니까 대체로 애무 같은 짙은 키스가 되었고. 이런 건 처음이었다.

"기사 시절의 버릇이 남아서 말이지……. 잠시 실례, 아름다운 레이디."

내 손등을 예절바르게 놓고 나서 그는 단숨에 나를 안아들었다. 우와앗! 170을 겨우 넘는 작은 키-세르와 미르와 유렌, 게다가 상당한 장신의 대공까지 있다 보니 나보다 훨씬 큰 키였지만 작게 느껴졌다-인데다가 체격도 무척 여린 편이라 전혀 힘을 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나 나를 가볍게 안아들었기에 나는 상당히 놀랐다. 아무리 내가 꽃 한 포기 무게라고 하지만. 뭐랄까……, 이런 느낌. 압도적인 힘이라고 해야 할까, 미르와 닮아 있다. 세르는 근육 탓에 몸이 부드러운 데다가 힘 조절을 하고 있으니 그렇다쳐도 미르는 마른 체격이라 뼈가 바로 딱딱하게 닿는데다 몸에 직접 느껴지는 힘이 절제가 없어 무척 강하니까.

"자, 그럼 갈까."

"자, 잠깐!"

나는 모습이 너무 달라서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정령의 감각으로서 그 남자가 진짜 엘이라는 것을 느낄 수는 있었다. 그래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옷 갈아입고 온다더니 무슨 몸을 갈아입고 오는 거야!?

"어떻게 된 거에요, 그 모습! 게다가 태도도 묘하게 바뀌었고!"

"아아, 이것 말인가? 말했잖는가, 기사 시절의 버릇이라고. 불쾌했다면 사과하도록 할게. 나보다 몸집이 큰 자들에게는 친절하게 대하지 못하지만 나보다 작은 레이디들에게는 늘 친절했으니까."

아까의 모습이랑 지금이랑 뭐가 진짜야?!

"나는 가면의 대공. 오늘 밤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나의 진실된 모습."

엘은 입술에 손가락을 살풋 대고 그렇게 말했다. 뭐, 뭐야, 이 사람! 눈웃음 위험해!!

"……뭐, 그런 식으로 예전에는 말하고 다녔지만 말이지, 아까의 모습이 본체야. 이 모습은 활동체. 이 쪽이 움직이기 편하니까 평소에는 이 모습으로 다니고 있다네. 하지만 한창 때는 거의 언제나 이 모습이었으니까 이 쪽의 행동이 더 익숙해. 여자아이 행세를 하는 건 굉장히 피곤하니 말일세."

아, 그러세요? 나는 기운이 쭉 빠졌다. 이상한 사람이다. 역시 깊게 얽히지 않는 편이 좋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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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ㅠㅠㅠ

자꾸 늦네요 ㅠ 죄송합니다.

겨우 개인지 배송을 완료했습니다. 이제 파본교환과 재고처리만 하면 당분간은 우체국과 볼일이 없겠죠.

엘은 그냥 도우미 캐릭터에요. 자꾸 남자로 써와선지 여자로 쓰는 게 더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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