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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여왕-137화 (137/226)

<-- 7. 어른이 되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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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날, 나는 비실거리며 한동안 침대에서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제인이 의원이나 힐러를 부르겠냐고 물었지만 딱히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거절했다. 하지만 그 다음 날도 더더욱 증세는 심해지기만 했고, 건강한 얼굴로 꾀병을 부린다는 제인의 따가운 눈초리를 견디지 못하고 서류책상에 앉았으나 바로 쓰러졌다.

"정말로 아파……."

나는 책상에 엎드려 축 늘어졌다. 이대로 죽는 거 아닐까? 처음에는 죽을 병까진 아닐 거라고 낙천적으로 생각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증세가 점차 심해지자 씨앗을 뚫고 나오지 못해 죽어버리는 식물이 되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나도 그런 걸까? 아니야, 정말 그럴 리가 없어! 나는 그라면 해답을 줄 거라고 생각해서, 마음을 다잡고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를 불렀다.

"실피드, 살려줘어어!"

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부르고 그대로 정신을 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부드러운 손길이 바로 내 어깨를 잡고 나를 일으켜 세웠다. 언제나처럼 살랑거리는 긴 백색 머리를 휘날리며 나타난 실피드는 오랜만에 보는 나를 향해 당황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렇게 간절히 안 불러도 다 듣고 나오니까 평범하게 부르도록 해. 그나저나 왜 그러는 거야, 플로라? 내 앞에선 꾀병 같은 거 안 부려도 돼."

꾀병 아니라니까! 너까지 그러기냐?

"뭐야, ……당신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는 거야? 나 정말로 원인불명의 병에 걸렸나 봐! 으으, 난 이제 죽는 건가. 피어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리는 거야!?"

내 울먹이는 호소에 실피드는 놀라서 내 어깨를 놓고 몸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먼저 손으로 정수리와 미간, 목, 가슴, 명치까지 훑어보았다. 그 손길의 감각은 바람이 부드럽게 몸 위를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동안 실리고 있던 느낌은 어느덧 바람처럼 사라졌다. 손을 뗀 실피드는 고개를 갸웃하며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정령력은 멀쩡한 것 같은데……. 문제가 있다면 아마 육체에 있을 거야."

"그치만 미르랑 세르는 몸엔 문제가 없다고 했는걸."

"유전병이거나 바이러스 같은 것에 감염되었을지도 모르지. 그거라면 드래곤이라고 해도 증세를 간단히 알아채기 어렵거든. 어쨌든 정령인 본체는 멀쩡해서 다행이야. 육체가 문제인 것 같으니 트레이드하자."

"트레이드?"

"갈아타자구. 다른 생물의 육체에."

잠깐, 다른 생물이라면…….

나는 실피드가 처음에 말했던 그 다리 많은 친구들의 이름을 다시 한번 말할까 조마조마하며 강하게 거부했다. 아냐, 나 좀더 참아 볼래. 아직 그 정도까진 아프지 않아! 게다가 그렇게 종족이 바뀌면 유렌과도 당분간 못 보고, 세르와 미르와 다른 남자들도 내가 성체가 될 때까지 헤어져 있어야 하잖아. 게다가 내가 곤충이 되면……, 곤충 수컷들과…….

주인공의 이름을 걸고 이 소설을 결코 그런 종류로 만들 수는 없다. 그 이전에 내가 절대 못 한다.

"플로라 마음대로 정해. 어차피 육체가 죽으면 트레이드하게 될 테니까."

나는 쿨한 실피드의 말에 무조건 이 육체를 살려내고 말 거라고 다짐했다. 육체에 대한 집착이 생긴 나는 오늘부터 온갖 귀한 약재를 다 갖다바치라고 말해 몸에 좋다는 식물 뿌리와 열매와 약재를 한 사발씩 들이켰다. 그리고 그 다음날 완전히 병석에 드러누웠다.

나는 침대에 누워 유렌에게 징징댔다. 왜 안 낫는 거야. 대체 뭐가 문제길래? 혹시 우리 가문 대대로 유전병이 있는지 물어봐야 하나? 정말로 의원을 불러야 하나? 아니면 내가 최초로 이상한 병에 걸린 첫 정령인건가?누가 답을 좀 알려줘!

유렌은 내 이마에 손을 대고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역시 유렌은 언제 봐도 마음에 위안이 된다. 나는 유렌의 낮고 다정한 목소리를 들으며 그의 실크같은 손의 감촉에 몸을 맡겼다.

"시아, 괜찮아요? 아, 일어나지 말아요. 세리안에게 말해서 드래곤 로드에게 도움을 구해보기로 했으니까."

정말로 드래곤 로드라는 사람을 부르러 가려고? 하지만 로드나 세르나 동갑인데다 딱히 로드라고 뭔가를 더 많이 알지는 않는다며……. 그 정도로 급한 상황이라는 걸까. 나는 어질어질한 머리로 흐릿하게 눈을 떴다. 무척이나 걱정스러운 표정의 유렌이 보였다.

"하지만 드래곤보다 엘프가 좀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아아, 역시 정령에 대해 잘 아는 의사가 있다면 가장 좋을 텐데. ……전 결국 당신께 도움이 되지 않는군요."

유렌은 작게 자책했다.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유렌이 그저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약이 되는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거의 나오질 않았다.

지금은 유렌만이 특별히 도움이 되지 않는 게 아니고,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정령에 대해 연구하는 전문의사 같은 게 있을 리 없잖아. 보통 정령 한 가지만 연구하거나 생물의학 과목 한 가지만 연구를 해도 부족할 텐데…….

…….

……응?

나는 유렌의 옷깃을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쥐고 당겼다. 유렌은 놀라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무슨 일인가요, 시아. 네?"

"왜 그러는 거야, 어디 더 아파? 뭐 불편한 거 있어?"

유렌과 미르가 동시에 내게 물어왔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전 일을 그들에게 말해보았다.

"나 정령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한 명 알고 있어."

정령도 드래곤도 엘프도 아니지만, 한 사람을 알고 있다. 현자를 제외하고 인간 중에서 누구보다도 정령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 단순히 지식과 마나를 다루는 능력만으로 내가 정령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본 사람.

"이트리샤 대공 말야."

내 말에 미르는 납득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이트리샤 대공이라면……."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라고 말할 듯 한 예상반응과 달리 미르는 미심쩍은 듯 중얼거렸다. 하긴, 대륙에서 그 자를 모르면 외계 첩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니까 케르타의 왕으로서 알고 있었겠지?

"레인 이트리샤를 말하는 거야?"

미르의 왜인지 짧은 말에 나는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레인……. 이랄까, 레이니안 이트리샤, 흑의 대공 말이야. 친구도 아니면서 그런 식으로 부르면 실례일걸."

"아니, 2대 흑의 대공의 이름이라면 레인 이트리샤가 맞아. 그 쪽이 본명이고, 레이니안 쪽이 후에 지어진 이름이니까. 대륙 최강의 검성이라고 불리는 인간 말하는 것 맞지? 만나본 적은 없지만 이야기는 들어서 알아."

미르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얘기했다. 레이니안 이트리샤는 공식적으로도 본명이 레이니안 이트리샤로 알려져 있다. 그게 틀림없는 진명일 줄 알았었다. 하지만, 오히려 별명 같은 이름이 진짜 본명이라니……. 충격적인 역사적 사실이네. 그렇다면 레인이라고 부르는 게 옳다는 의미인가.

뜻밖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미르가 어떻게 그런 걸 그렇게나 자세히 알고 있는 거야?

"자세히 아는 건 아니야. 단지……, 아는 녀석이 이트리샤 가문과 인연이 좀 있었으니까. 일족 모임에서 직접 만난 적 있거든. 뭐 그건 그렇다쳐도, 네 말은 레인 이트리샤가 정령에 대해 그렇게나 잘 안다는 거야?"

나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미르에게, 전에 대공이 단순히 마력의 외적 흐름으로서 내가 정령이라는 사실을 한 번에 맞춘 적 있다는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미르는 정말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즉, 그 대공이라면 네 몸의 이상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네? 하긴, 레인 이트리샤의 스승인 엘리아스 이트리샤는 드래곤 일족보다도 이론적으로는 더 우수한 대마법사였으니, 엘리아스의 제자인 레인 이트리샤도 도움이 될 지도 몰라."

드래곤의 마법은 언령의 마법. 세계 안의 법칙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마법이다. 하지만 인간의 마법은 지식의 마법. 세계 밖의 규칙을 알아내는 마법이다. 아무리 드래곤이 머리가 좋고 강하다고는 하지만 내 치료는 드래곤종족보다 드래곤만큼의 실력을 가진 인간종족이 더 유리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런 인간이 있냐는 것이겠지만.

그리고 지금처럼 그런 희귀한 천재가 같은 시대에 존재하고 있다고 해도 상대 쪽에서 도와줄 마음이 없다면 해결되지 않는다. 대공과 나는 기브 앤 테이크의 관계. 이번에 내가 도움을 청하면 어떤 대가를 갖다바쳐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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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지 편집 작업&삽화작업에 집중하기 위해 약 일주일간 연재가 늦을 것 같아요 ㅠ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습니다!

견적 내기까지는 빠르면 5일, 늦으면 일주일간 걸릴거에요! 책 신청하신 분들께는 그 때 다시 한번 쪽지를 보내드리고, 소설 본편과 제 블로그에 본격 공지를 띄우겠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 신청받는 게 아니기 때문에...

책신청 '버튼'을 누르지 않으신 분께는 쪽지가 가지 않을 텐데요, 그런 분들께서는 책 신청 '버튼'을 클릭해주시거나, 블로그나 소설의 새 글을 바로 확인해주셔야 구매시기를 맞출 수 있으실 거에요ㅠ

그리고 책 배송비는 제가 우체국에 문의를 했더니 4000원이라고 합니다.

책 2권에 2킬로가 넘을 리 없을테니 4000원으로 거의 확정되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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