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잠자는 숲 속의 왕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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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덤불이 만들어주는 길을 그대로 따라간 시아는 어느 시점부터 가시덤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눈치챘다. 제대로 닦인 길이다. 어느덧 거리로 들어온 것이다.
"여긴 어디지?"
가시덤불을 빠져나왔나 하는 생각이 무색하도록 똑같은 회색빛을 띠고 있는 이 마을은 인기척이 조금도 없었다. 분명 해는 떠 있었지만 마치 한밤중인 것처럼, 설마 모두 자고 있는 걸까? 시아는 아무도 없는 큰길을 걸으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칙칙한 풍경의 건물들 너머로 높은 성곽이 보였다. 실피드는 성의 왕자님을 이 무기로 깨우라고 했다. 덧붙여 무기의 사용법은 왕자님이 알려주실거라고. 시아는 왠지 미끌미끌한 느낌이 드는 봉투 속 고무링을 만지작거렸다. 한번 뜯어보고싶은 충동이 생겨나는 포장이었지만 화약이나 마법스크롤처럼 두번 다시 돌이킬수 없는 무기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일단은 뜯지 않기로 했다.
해가 저물기 전에 성으로 가기 위해 그녀는 발길을 빨리했다.
이윽고 성 앞에 다다른 시아는 두 개의 풀 플레이트가 성문 앞에 쓰러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갑옷의 경비병 둘이 잠들어 있는 것이다. 그녀는 호기심을 갖고 오른쪽의 경비병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삭 하며 투구를 벗겨냈다. 묵직한 투구를 힘겹게 벗어 한쪽에 내려놓은 뒤 사라락 하며 흩어지는 청보랏빛의 머리카락을 바라보았다.
"와……. 잘생겼다!!"
시아는 누가 보는 사람 없나 주변을 휙휙 둘러보다가 이 나라 백성들은 모두 잠에 빠졌다는 것을 깨닫고는 안심하고 그 남자의 앞머리를 걷어냈다. 코코아 빛의 피부를 가진 그 경비병은 입은 옷을 보아 병사나 기사로 보였는데 남자답고 훤칠한 외모를 갖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그 옆의 경비병의 투구를 벗겨보니 화사한 금발의 꽃미남이 나왔다. 병사의 몸을 뒤져 이름패를 보니 라르슈라고 적혀 있었다. 처음 본 청보라색 머리의 남자 이름은 카딘이었다. 이, 이 나라 사람들은 전부 잘생긴 건가!!! 시아는 두근두근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둘의 이름을 기억해두었다. 나중에 깨어나면 꼭 먹어봐야지!
둘을 구하기 위해선 일단 왕자님들부터 깨우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시아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성 안으로 향했다. 일개 기사의 외모가 저러하니 왕자들은 또 어떻겠는가! 잔뜩 기대를 한 시아는 넓은 왕성 안으로 들어와서야 딱 걸음을 멈추었다.
이 넓은 곳에서 왕자를 어떻게 찾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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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들은 방 안에 갇혀 구슬 하나만 보고 애를 잔뜩 태우고 있었다. 시아라는 이름의 미소녀가 궁 안으로 들어온 것까지는 좋은데 넓은 궁에 익숙하지 못해 그런지 왕족들의 거처를 금방 찾아내지 못하고 계속 헤매고 있는 것이다. 미르는 빽 소리를 질렀다.
"아우! 답답해!! 거기가 아니래도! 잠깐, 자는 시종의 얼굴은 왜 그렇게 주의깊게 보는거야!? 그런 놈보다 내가 훨씬 잘생겼다구! 이 방에만 오면 내가 기절하도록 귀여워해준다니까!!!"
가장 격한 미르의 반응에 세르가 가만히 말했다.
"……너 관심없어하더니 제일 애달아하는구나."
미르는 세르의 놀림 가까운 말이 귓바퀴에도 와닿지 않는 상태였다. 슈는 방 한구석에서 휴대용 버너로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있었다. 시아가 오면 먼저 예의바르게 차와 다과를 대접하고 나서, 그 후에 야수화가 되어 침대로 끌어들일 작정이었다. 이 방 안의 누구도 남자로서 음흉한 생각을 품고 있지 않는 자는 없었다. 아니, 있다면 생 동정인 엘릭 정도일까.
"정말이지 시끄럽군. 여자를 끌어들여서 놀고 싶으면 너네들 전부 밖에서 해. 난 흥미 없으니까."
멀찍이 떨어져 벽에 비스듬히 기대선 엘릭의 거만한 말투에 칫, 하며 미르가 대꾸했다. 저 놈은 남자도 아냐! 시아의 매력을 직접 접하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보자.
"안 그래도 시아가 여기 들어오면 방의 저주가 풀릴 테니 밖으로 나갈거거든! 이 지긋지긋한 곳 말고 좀 신선한 데서 시아랑 데이트할거야!!"
"앗, 말도 안 돼요! 첫 데이트는 당연히 푹신하고 하얀 침대시트가 깔린 이런 방에서 해야 한다구요! 그건 남자의 의무에요."
슈의 자그마한 항의를 무시한 채 미르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엘릭에게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이래서 모태동정이란 어쩔 수 없다니까. 너, 여자를 그렇게 무서워하다간 첫키스도 못한 채로 무덤까지 간다?"
미르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이야 없지만 엘릭은 그의 발언 중 유독 한 가지만이 신경쓰여서 버럭 소리쳤다. 진정 모태동정의 반응이다.
"무서워하는 거 아니거든!! ……게다가 내가 알기로 여기 동정은 나 뿐만이 아닐 텐데?!"
엘릭이 무심코 흘린 뒷말에 아젤이 흠칫했다. 하지만 슈는 오히려 자랑이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당당히 대답했다.
"전 거기서 빼주실래요? 이제 곧 시아님께 내 동정을 바칠 테니까♥"
시아의 의견 따위는 조금도 고려되지 않은 발언이었다. 그 순간 세르가 나직한 신음을 내뱉었다. 모두가 구슬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세르는 놀라움과 불쾌함이 섞인 말투로 시아가 있는 복도를 비춘 마법 구슬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 자가 왜 여기에?"
세르가 칭한 것은 시아의 앞에 선 선명한 은발의 남자였다.
***
시아는 이 성의 거주인 거의 모두가 남자, 그것도 매우 잘생긴 남자라는 사실에 행복해했다. 먹을 게 잔뜩 있네. 나중에 전부 깨어나면 문 앞을 지키고 있었던 그 맛있어 보이는 병사 둘부터 차례로 맛봐주겠어. 우후후. 시아는 입맛을 다시며 다음 복도로 향했다. 삼층의 그 복도는 아랫층보다 더 고급스러운 장식과 양탄자가 깔려있었다. 시아는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걸어갔다. 하지만 곧 시아는 발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창백한 은빛의 금속성 머리칼을 거의 발목까지 길게 늘어뜨린 한 남자가 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잠든 적막의 성에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지 않은 그녀는 깜짝 놀랐다. 게다가 그의 행색 또한 특이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상대 남자는 시아를 발견하고 조금도 놀라지 않은 표정이었다. 오히려 일부러 시아가 이 곳에 있는 것을 알고 찾아왔다는 듯 느긋하고 여유로운 태도. 다만, 표정만큼은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왔군."
그는 무척이나 서늘해 보이는 외관의 미남이었는데 한순간 누구라도 시선을 빼앗길 정도로 아름다운 금빛과 마노 빛의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 밖에서 매우 보기 드문 타입에다가 엄청 눈에 띄는 까만 복장을 한 그 수상한 남자를 본 시아는 경계적인 태도를 취했다. 얼굴은 엄청 잘생겼지만 왠지 위험해 보이는 분위기다.
"어? 응? 뭐? 당신 누구야?"
"백 년간 이곳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던……. 악마다."
"악마?"
"그래, 악마."
시아는 악마의 저주로 인해 이 왕국이 백년 전부터 잠들어 있었다는 소문을 떠올렸다. 그래, 그 악마. 하지만 악마가 정말로 존재했단 말인가? 물론 정령과 요정이 있으니 악마도 없을 리는 없지만…….
"정말로 악마야?"
"맞아. 백년 전 이 성에 저주를 건 악마 레일라가 바로 나다."
레일라라고 스스로의 이름을 밝힌 그 악마는 음울하게 웃어보였다. 꽃의 정령의 본능으로 섬찟한 느낌을 받은 시아는 뒷걸음질쳤지만 발이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아직 저주는 구백 년이 더 이어져야만 해. 하지만 요정 실피드가 예언을 했다. 백년 째 되는 해에 저주를 깰 여자가 이곳에 나타날 거라고 말이다."
실피드 녀석, 언제 예언도 하기 시작했지? 시아는 작은 의문을 가졌으나 천년이나 왕국을 봉인시킬 생각이었던 그 악마의 잔인함에 더욱 치를 떨었다. 그럼 왕자는 천년 간이나 잠들어 있어야 한단 거야? 이 성의 맛있는 남자들도? 말도 안 돼!!
구백 년이야 정령왕인 시아에게는 금방 지나가는 날짜겠지만 지금의 시아는 배가 고팠다. 이 성까지 오느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것이다. 할 수 없지. 너라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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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까지 쓰려고 했는데 반밖에 못썼……ㅠㅠㅈㅅ
빨리 연재페이스를 되찾아야 할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