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잠자는 숲 속의 왕자들 -->
옛날 옛적, 악마의 저주로 인해 사라져버린 왕국이 저 머나먼 가시나무 숲 속에 아직도 잠들어 있다는 이야기는 시아 역시 어린 시절 들은 적 있다. 하지만 전설은 전설일 뿐이라고 생각한 시아는 회색의 끝없는 가시나무 너머에 있는 성을 찾아보고자 하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산딸기를 따러 집 근처의 숲으로 간 시아가 요정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요정의 존재에 회의적인 아랫 마을 사람들과 다르게 시아는 자기 자신이 정령이었기에 요정이란 것이 아주 없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도 산딸기의 정령에게서 잘 익은 산딸기를 선물받은 그녀는 다시 숲 속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 순간 한 남자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시아의 귀에 들려왔다.
"거기, 예쁜 아가씨."
"응?"
예쁜 아가씨란 말에 당연하다는 듯 뒤를 돌아본 시아의 앞에 선 것은 하얀 긴 머리카락을 가진 키 큰 미남자였다. 연한 녹색 빛 눈동자의 남자는 시아의 앞에서 정중하게 인사했다.
"저는 숲의 요정 실피드랍니다."
분명 눈앞의 그 남자는 바람의 정령 실피드였다. 무슨 얘기냐는 듯 시아가 그를 쳐다보았지만 실피드는 능청스럽게 끝까지 숲의 요정이라고 우겼다.
"아가씨와 같은 분이 이 곳을 지나다니기를 계속 기다려 왔습니다."
"난 매일 여기에 산딸기를 따러 오는데……?"
"바로 당신만이 잠들어버린 고대의 성의 왕자님들을 깨울 수 있어요! 자, 이것을 받으세요."
"……무시하냐?"
바람의 정령, 아니, 숲의 요정 실피드가 건네준 것은 작은 비닐봉투에 담긴 사탕 같은 물건이었다. 그것을 받아든 시아가 이게 뭔지 고민하는 사이 실피드는 바로 그 무기 겸 방어구로 고대에 잠들어버린 성에서 왕자를 깨워야 한다고 그녀를 세뇌시켰다.
"근데 이거 어떻게 쓰는 거야?"
시아는 말랑말랑한 고무 링 같은 게 들어있는 작은 봉투를 보며 물었다.
"그런 건 왕자님께서 직접 몸으로 가르쳐주실거에요."
왕자님은 방금 니 입으로 자고 있다고 그랬잖아.
"자, 그럼 이제 저 가시덤불 속에서 백년 전의 성을 찾으세요! 그리고 왕자님을 깨우는 겁니다."
자기 할 말만 하고 실피드는 곧장 사라졌다. 시아는 망설이다가 실피드가 가리킨 회색의 가시덤불 숲으로 다가갔다. 가시덤불도 식물은 식물, 시아의 명령에 가시덤불은 날카로운 가시를 감추고 시아가 지나갈 길을 만들어주었다.
"뭐야, 악마의 저주가 걸린 숲이라더니 말만 잘 듣네 뭐."
사박사박 걷는 그녀의 앞에 방해물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한편, 백년 전 시간이 멈추게 된 왕국의 성에서 왕자님들은 유리구슬을 통해 시아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릴 구하러 올 아가씨란 게 이런 연약해보이는 소녀란 말이야?"
여섯 쌍둥이 중 막내인 미르는 약간 미심쩍다는 듯 말했다. 백년 전, 왕국에 태어난 여섯 왕자들은 성 밖의 백성들과 성 안의 모든 사람들처럼 악마의 저주에 걸려 시간이 멎어버린 성에서 백년동안 잠들어 있어야 했다. 그러나 항마의 주술이 걸린 이 방 안의 세르와 미르, 그리고 아젤과 엘릭, 유렌, 슈는 다행히 방 밖의 모든 이들처럼 잠들지 않았고, 대신 깨어서 백년간 기다림을 반복하고 있었다. 요정의 말만 믿고 자신들을 구하러 올 여성만 고대하던 그는 자신을 위해 악마와 맞서 싸울 용사가 너무나도 약해 보이자 실망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미르의 둘째 형, 마법 구슬로 시아의 모습을 투영해 바라보고 있는 세르는 반대 의견이었다.
"실피드도 보는 눈이 있는 녀석이야. 아마 저래보여도 굉장한 힘이 있을지 몰라."
맏이인 아젤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 분은 실피드가 선택한 운명의 용사님이시잖아요. 아마도 우리를 구해주실 거에요."
"그 실피드 녀석이 선택했다는 게 불안하다구."
미르의 반박에 유렌과 엘릭은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슈는 영 다른 곳에 포커스를 두고 있었다.
"시아라고 했었나? 저 분……, 완전 예쁘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미르의 핀잔에도 슈는 상관없다는 듯 뺨을 발그레 붉히며 부산을 떨었다.
"저 분께 잘 보이려면 지금부터 샤워하고 머리도 빗어야 하는데. 음, 어쩌죠? 나 지금 당장 씻고 속옷 갈아입고 올게요!"
"속옷은 왜……?"
미르는 그런 슈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지만, 맏이인 아젤과 그 아래의 유렌 역시 아까의 슈처럼 세르의 구슬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손님이신데 속옷……, 정도는 우리도 갈아입는 게 좋겠지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글쎄, 왜 하필 속옷이냐고!"
답답함에 미르가 버럭 외치다가 다시 구슬 속으로 눈길을 주었다. 정말이지, 고작해야 실피드가 고른 여자가 거기서 거기일텐데 뭘 그렇게 신경을 쓰는지…….
"……."
꿀꺽. 미르는 입에 고인 침을 삼키며 수정구슬을 가까이서 들여다보았다. 복숭아같은 뽀얀 뺨과 꿀이 발라진 듯한 소녀의 도톰한 입술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출렁거리는 과감한 가슴과 한 손에 가볍게 쥐일 듯한 잘록한 허리도…….
미르는 소녀의 장밋빛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정면의 만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쿵 멎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참을 벌렁거리는 가슴을 붙들고 서 있던 그는 바로 옷을 벗어젖히고 슈가 있는 욕실로 뛰어들어갔다.
"이봐, 슈! 목욕탕 같이 좀 쓰자!"
그리고 나 오늘 무슨 무늬 입었더라? 당장 갈아입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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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퀄 아닌 동화를 어떻게 써야 하나 여전히 고민했지만 잠숲공의 어떤 이야기에서 왕자 시점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걸 보고 과감히 앞부분을 잘랐습니다.
잉잉 죄송합니다. 좀 짧지여, 대신 다음편 오랜만에 노블ㅜ
그리고 저 귀뚫음 허흐헣허허헣휴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