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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여왕-127화 (127/226)

<-- 6. 공작님, 제발! -->

"와아, 유렌유렌유렌! 저거 뽑아줘뽑아줘뽑아줘뽑아줘!!!"

나는 입을 헤 하고 벌리며 늘어진 가판대의 경품 뽑기 게임판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유렌에게 보챘다. 유렌은 와글와글하게 늘어져 앉은 인형과 온갖 경품들을 보고 풋 하고 웃엇다.

"좋습니다. 뭘 뽑아드릴까요?"

"응, 뭐냐면……."

내가 뭘 뽑아달라고 하면 좋을까 하며 주륵 늘어선 경품들을 이리저리 훑어보고 고민중인데, 미르는 그런 나의 등을 큰 손으로 덥석 끌어안고는 마구 문질러대며 졸랐다.

"앗, 뭐야! 시아시아시아! 나한테도 저거 뽑아달라고 말해줘말해줘말해줘말해줘말해줘!!!"

나는 미르의 팔을 밀어내며 말했다.

"아, 알았어. 미르도 저거 뽑아줄수 있어?"

처음 보는 형식으로 고무줄 새총을 써서 멀리 있는 표적을 맞춰 경품을 뽑는 방식도 있었고, 작은 고리를 던져 목표물에 들어간 수로 경품을 지급하는 방식도 있었다. 나는 한참 고민하다가 예쁜 목도리를 한 곰인형과 꽃이 달린 머리장식을 골랐다.

잠시 후, 내가 보라색 목도리를 두른 연한 갈색의 부드러운 털 곰인형을 껴안고 머리에 꽃 핀을 꽃고 헤실 웃고있자 마란 후작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는지 자신도 해보겠다고 나섰다.

간단한 운동신경만 있으면 가능한 것이라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후작은 작은 하트가 그려진 토끼를 한번에 뽑아 나에게 안겨주었다.

"고마워요, 후작님."

내가 토끼인형을 받아들며 방긋이 웃자 마란 후작은 마주 미소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 단번에 뽑다니 운이 좋았군요. 오늘 공작님을 위해서 제 지갑을 털 생각도 하고 도전했는데 말이지요."

"그렇게까지 무리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하지만 무언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요. 게다가……."

그는 들릴 듯 말듯 작게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우리는 이제 친구잖아요. ……그렇죠?"

나는 친근한 마란 후작의 말에 볼을 연분홍빛으로 물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르는 화들짝 놀라 단호하게 나에게서 후작을 떼어냈다. 그리고 아까처럼 나를 곰인형과 같이 꾸욱 양손으로 껴안았다.

"잠깐, 뭐 하는 거야! 시아는 내꺼거든!! 당당히 내 눈앞에서 작업 걸지 마!"

"……제 겁니다만."

뒤에서 조용히 말하는 유렌의 말은 들은 척도 않고 미르는 후작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후작은 오히려 단 둘이 얘기할 때의 담백한 태도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더더욱 끈적하게 내게 시선을 보냈다.

"이익!! 너 뭐야, 짜증나!"

미르는 그렇게 투덜거리며 마란 후작에게 소리쳤다. 마란 후작은 묘하게 들떠 보였다. 아니, 희열감이 아니라 그 이상의 쾌감마저 느끼는 듯 했다. 표정은 잘생기고 번듯한 그대로였지만 분명 그렇게 보였다.

우후후, 이거 뭔가 색다른 맛인데? 나도 후작에게 동조해서 미르를 놀리기 위해 후작의 팔에 손을 얹었다.

"마란 후작님, 저 쪽의 가판대에 가볼래요? 나 저거 사고싶어."

"기꺼이 모셔다드리지요, 아름다운 레이디."

미르는 뒤에서 질투심에 가득 찬 붉은 눈으로 이익, 하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오늘은 미르를 안고 마음껏 부비부비해버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건 나중에 자기 전에 하고, 나는 한쪽에 온갖 잡다한 물건들을 늘어놓고 파는 상인에게 다가갔다.

"저기, 이건 뭔가요?"

내가 드레스가 땅에 닿지 않게 무릎을 굽히고 앉으며 색색의 예쁜 리본이 달린 빗을 가리키며 묻자 그 상인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아이고, 어서오십시오. 이건 애완동물을 키우는 아가씨 같은 분이 고양이의 털을 빗어줄 때 쓰는 빗이랍니다. 저쪽 루페닌에서 수입해온 고급 사과나무를 써서 만들었지요."

그는 내가 부유한 집안의 딸이라고 생각했는지 손을 비비며 굽신거렸다. 애완동물 물건들이구나. 나는 값비싼 애완동물용으로 쓰일 듯한 고양이 빗을 한참 바라보다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옆에 놓인 것은 자그마한 강아지용의 목줄이었다. 튼튼하지만 부드러운 연한 분홍색의 목줄에는 은사와 면사를 꼬아 만든 끈과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애완견을 산책시킬 때 쓰는 목걸이였다. 디자인이 귀여워 보였다. 음……. 하지만 너무 작은데.

"우리 집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애완동물인 커~다란 강아지한테 쓸 만한 목걸이는 없나요?."

"아 물론입죠, 대형견용은 저 쪽에 있습니다."

나는 그 중에서 두꺼운 가죽과 쇠사슬로 만들어진 목줄을 살펴보았다. 이건 무척 튼튼해 보이네. 잘 무두질된 검은 두 겹짜리 가죽에 납작하고 둥근 징이 박힌 목걸이는 본래가 아껴 키우는 대형 사냥개용으로서 끝에 고리와 연결된 얇은 쇠사슬도 달려 있어 매우 견고하고 질겨 보였다.

"좋아, 이거 괜찮은데? 이걸로 주세요."

나는 대금을 지불하고 목걸이 두 개를 잘 포장해서 챙겼다. 그 옆에 있던 마란 후작이 웬일이냐며 물었다.

"공작님께서 집에 애완견을 키우고 계셨습니까?"

"네, 귀여운 강아지 두 마리에요."

우후후후후후. 이걸로 나중에 둘을 어떻게 놀려먹을까? 나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목걸이를 잎 뒤로 갈무리했다. 그 밖에도 길거리에는 구경거리나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이리저리 밟힐 뻔한 적이 많지만 혼자 다니지 않고 유렌과 미르와 마란 후작의 사이에 잘 자리잡고 있으니 안전했다.

미르는 길거리에서 늘어놓고 설탕을 묻혀서 파는 별별 과일과 사탕과 솜사탕들을 죄다 내 입에 물려주었고 유렌 역시 미르가 내 곁에 항시 붙어있다보니 간만에 반쯤 경계를 풀고 느긋하게 시장을 둘러보았다. 으으, 온갖 맛이 섞여서 난다. 사과맛과 딸기맛과 포도알 맛과 시나몬 맛과 솜 맛.

맛있긴 한데 미처 다 먹기도 전에 금세 다른 포장마차에서 종류별로 사서 또 하나를 쥐어주곤 했기에 나는 먹지 못한 솜사탕 하나를 미르의 입에도 물려주었다. 솜사탕이 다 같은 솜 맛이지 뭐 다르겠어?

"이 분홍솜사탕은 아까 먹었잖아."

내 말에도 미르는 기어코 솜사탕의 반을 뜯어서 내 입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당당히 주장했다.

"포장마차마다 파는 솜사탕 맛이 다 다르단 말야! 길거리음식 맛의 차이를 알아보는 게 얼마나 즐거운데!!"

……미르는 설마 늘 이러고 축제를 돌아다니는건가? 한 나라의 왕까지도 역임했던 주제에 엄청 서민적이고 빈티나는 취미다.

"랄까 솜사탕은 다 같은 맛이라니까."

"아냐아냐, 잘 먹어보면 달라. 그러니까 시아도 먹어봐. 아~."

뭔가 다른 맛의 재료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다 똑같은 설탕으로 만드는데 그게 구분 가능하단 말야? 나는 미르가 먹여주는 솜사탕을 종류별로 전부 먹어보았다.

"하하하, 공작님께선 단걸 무척 좋아하시나 봐요? 귀엽군요."

마란 후작은 내가 양손 가득 사탕을 들고 있는 걸 보고는 커다란 유리병에 담긴 색색의 별사탕을 선물해주었다. 윽, 사탕은 이제 그만……. 그 순간 광장 쪽에서 부드러운 음악소리가 들렸다. 바드(음유시인)의 노래였다.

우아한 선율의 바드의 음악까지 다 듣고 나니 어느덧 시간이 꽤 늦었다. 야시장을 뼛속까지 실컷 즐긴 나는 별로 피곤하진 않았지만 괜히 유렌의 등에 업혀서 넓은 그의 등에 마음껏 응석부렸다.

"재미있었어! 축제라는 것도 이런 느낌일까?"

처음으로 서민 문화를 접한 나에게 유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이다보니 사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쓸데없는 것도 왠지 잔뜩 산 것 같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축제는 야시장보다 더 볼거리가 많지만 다른 분위기에요. 좀더 소란스러울겁니다."

미르도 덧붙였다.

"응응, 시아 우리 나중에 축제도 구경하러 갈래? 나 축제도 엄청 좋아해."

"일단 가장 가까운 것은 수도에서 조만간 매년 봄에 열리는 제국의 건국기념일 축제일 겁니다. 연인들의 날이라고도 하지요."

건국기념일 축제에 대해선 전에 들어본 일이 있다. 대놓고 솔로 염장지르는 날이라고 말이다. 감히 신성한 건국 기념일에 쌍쌍으로 다니다니 뭐 하는 짓이냐며 당시에 유렌과 만나기 전의 나는 생각했었지……. 그치만 지금은 연인이 많으니까♡

***

마란 후작은 침실로 들어가려는 내게 잠시 좀 보지 않겠느냐고 청해왔다. 나는 개목줄을 가방에 쑤셔넣고 잠옷 위에 두꺼운 겉옷을 입고 그의 방으로 갔다.

"이거 주무시려는데 괜히 불러낸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피곤하실텐데."

"아니에요. 바로 자는 것도 아니고 잠시 후작님과 얘기를 나누는 것도 괜찮아요."

나는 공작이고 그도 후작이었기 때문에 우리들의 대화는 언제나 선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 선에서 아슬아슬하게 넘나들 듯 말듯 한 단어를 채택하는 것을 나도, 마란 후작도 즐기는 듯 했다. 그 말 안에는 이미 많은 암시가 들어가 있었다.

후작은 내가 무방비한 잠옷 차림 그대로가 아닌 긴 치마와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윗옷을 입은 것에 실망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런 점이 더 마음에 드는 듯 내 드러난 발목에 한번 시선을 주었다. 하지만 그 시선은 눈치채기도 어려울 정도로 아주 잠시였고, 그는 곧 하얀 테이블보가 깔린 탁자 앞의 의자로 자리를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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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렌유렌유렌!

요새는 각기 다른 맛의 붕어빵을 먹어보는 재미로 산다능.

앜ㄷㄷㄷ; 다시 읽어보니 후작이 게이인걸 암시하는 내용같네요.

게이는 아닙니다. 단지 후작은 좀 특이한 취향입니다. 주인 있는 여자한테 접근하는 걸 더 좋아하는 타입? 그리고 '꽃의 여왕'에서 잘생긴 남자는 모두 악역이 아닙니다! 악역이 있다면 아마 시아의 기준 미달인 남자일거에요! 먹을수 있는건 다 시아의 노예!!

그리고 여기선 게이가 절대 안 나와요. 하렘물에서 레즈가 나오면 눈요기이지만 역하렘물에서 호모가 나오면…….

……ㄷㄷ결말이 끔찍해집니다. 그러므로 '꽃의 여왕' 내에서 게이는 절대 안 나옵니다. 게다가 마란 후작은 아직 안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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