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의여왕-126화 (126/226)

<-- 6. 공작님, 제발! -->

***

"사실 공작님에 대해서는 루크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마란 후작이 잠시 대화를 청해서 미르와 유렌을 놔두고 혼자 그의 응접실로 향했다. 후작은 이것저것 얘기하다가 자연스레 나에 대해 언급했다. 나는 갑작스런 그의 말에 의아해졌다.

"루크……, 라니요?"

"아아, 제 친구입니다. 루크가 아니라 프쉘드리만 후작이라고 하면 아시겠습니까? 그 녀석도 당신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으니까요."

프쉘드리만이라면 그 푸른 머리에 눈매 사납게 생긴 남자? 귀족 회의때 한번 직접적으로 부딪친 적 있었다. 내 첫 번째 귀족회의. 그때 내가 하마터면 벌레나라에 파견될 뻔 했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그 후로 왜인지 그는 나에게 호감을 보이고 있다. ……어째서일까. 종종 눈을 마주치면 얼굴을 붉히기도 하는데, 조금 무서운 인상이라 나는 가까이는 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 남자는 아예 처음부터 나에게 접근할 생각이 없는 듯 기둥 뒤에만 숨어서 나를 훔쳐보고 있고.

"그 분과 친구였어요?"

"네, 두살때부터 21년간이나 함께 지낸 동갑내기 친구지요. 저는 이렇게 상단을 물려받았고 그는 가문을 이어받아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저와 루크는 친한 사이입니다."

그럼 둘 다 스물세살이구나. 얼핏 보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둘이다. 마란 후작은 깔끔한 인상에 부드러운 모카색 블론드의 머리를 살며시 풀어 늘어뜨려 목 위까지 닿게 잘랐으며 친절하고 신사적이지만 자칫 계산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차가운 청색 계열 눈동자를 하고 있다. 반면 프쉘드리만 후작은 진한 푸른색의 뻣뻣해 보이는 사자 갈기같은 머리카락을 막 길러 억지로 하나로 묶고 있었으며 얼굴은 사실 잘생긴 편이었지만 눈매라던가 남을 대하는 인상이 쌀쌀하고 무표정했다. 게다가 키도 컸고 눈꼬리가 치켜올라가고 눈썹이 짙은게 꽤 강렬하고 무서워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상당히 다혈질에 기분이 수시로 변하는 감정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정의 색이 자주 바뀌었다.

둘 다 잘생겼으니 나란히 서 있으면 꽤나 그림이 될 것 같은데, 내가 관심이 없어선지 마란 후작이 무도회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던 탓인지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은 본 적이 없네.

"루크에 대해서 기억하십니까?"

물론 기억이야 하지만 정확히는 모른다. 그의 나이도 방금 마란 후작과 동갑이란 얘기를 듣고 알았으니까. 따로 대화도 해본 적 없고 말이다. 그렇게 말하자 후작은 예상했던 일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 웃었다.

그는 내게 루크 프쉘드리만 후작이 자신과 같은 플로렌스 아카데미 출신이라고 말했다. 마란 후작과 프쉘드리만 후작은 상업과였다. 마란 후작 역시 상업과를 나온 루크가 무관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중얼거렸다.

"보기엔 사나워 보여도 나쁜 녀석이 아니니 제 친구를 좋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그렇지. 공작께선 저희 마사지크림을 애용하신다고 하셨죠? 언제 한번 제가 수도의 좋은 마사지 살롱에 초대해드리겠습니다. 아무나 초대하는 것이 아니니 사양하지 말고 와주세요. 그 후에는 홍차를 함께 마실까요? 새로 들어온 남부산의 좋은 찻잎을 입수했거든요. 저도 이번 일만 마치면 수도로 돌아가서 당분간 머무를 예정이랍니다. 루크도 함께 부를까요? 당신과 루크가 친해진다면 저도 기쁠 겁니다."

지나치게 친근하게 구는 마란 후작이었지만 그 유려한 화술 덕분에 전혀 어색함이나 껄끄러움을 느낄 수 없었던 나는 그냥 그렇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얘기를 하던 마란 후작이 문득 정신을 차리곤 시계를 보았다.

"공작님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된 줄도 몰랐네요. 저녁식사 역시 제가 대접하고 싶은데 괜찮으시다면 동행 두 분과 함께 나와주시겠어요? 오늘 저녁은 호크 구이 어떠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란 후작에게 약간의 흥미가 생긴 것이다.

***

방으로 돌아가서 나는 미르와 유렌에게 마란 후작이 저녁 만찬에 초대했다는 말을 전했다. 미르는 유렌에게 설명을 듣다가 내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나와 이 녀석도 함께? 그런데 그 마란 후작이란 녀석, 너한테 접근하려는 거 아니었어? 너만 초대해야 하는 거 아냐?"

유렌이 뭐라고 설명을 했길래?

"'마란 후작이란 남자는 돈 많은 상인인데 시아에게 흑심을 품고 접근하기 위해 작업을 거는 중입니다', 라고."

유렌의 말투를 따라한 미르의 대답에 나는 움찔했다. 유렌도 참, 뭘 그런 식으로 설명을 하는 거야? 나는 가방에서 옷을 골라 갈아입었다. 미르가 내가 옷을 갈아입는 침실까지 따라들어오려다가 내 거부에 막혔다.

"서로 그렇고 그런 곳까지 다 보인 사이에 뭘 부끄러워하고 그래, 흐흐흐흐. 같이 옷 갈아입자. 그리고 옷 갈아입으면서……."

"시, 싫어! 나가!"

미르의 음흉한 말투에 나는 기겁해서 그를 문밖으로 꾹꾹 밀어냈다. 옷 갈아입는 모습을 안 보이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잖아! 정 내가 옷갈아입는 거 보고싶으면 문틈으로 몰래 훔쳐봐!

"……훔쳐보는 건 괜찮은건가?"

게다가 아침에는 옷을 입혀주기까지 하는데 왜 지금은 안 되는 거지? 미르는 어리둥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지만 곧 닫힌 문을 바라보며 밖에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아무리 짧은 여행이라지만 일단 귀족이니, 게다가 비록 많이는 안 들어가지만 마법이 걸린 주머니도 있으니 기본적인 예복은 챙겨왔다. 일단 평소에 입는 옷부터가 여행복이라기보단 화려한 승마복이나 귀족의 평상복이었으니까. 나는 달라붙는 검은 드레스를 꺼내 입고 얇은 비단 구두를 신었다. 겨울 옷이라서 벨벳 재질이 부드럽다. 유렌은 주름이 지지 않는 실크 재질의 블라우스에 은사가 섞인 베스트를 걸쳤다. 나는 곧장 유렌의 보드라운 실크 블라우스로 감싸인 팔에 달려가 안기며 응석부렸다.

"유레엔~! 아잉 보들보들!"

유렌은 빙긋 웃으며 나를 마주 꼭 껴안아주었다.

"시아도 보들보들하니 예뻐요. 옷보다 시아 맨살이 더 부드럽네요."

나는 그가 이런 얇은 실크옷을 입는 걸 너무너무 좋아해서 이런 옷을 입은 걸 보면 꼭 곧장 달려들어 안기곤 했다. 감촉이 좋으니까. 하지만 유렌은 이런 흐물흐물한 실크 재질의 헐렁한 옷보다 딱 맞아서 몸의 라인이 드러나는 빳빳한 하얀 셔츠를 더 즐겨 입었다. 잠옷같은 실크 옷의 무방비한 모습보다 빈틈없는 모습으로 타인을 상대해야만 안심이 되는 유렌의 성격 탓이다. 그래서 이런 옷을 입은 유렌은 드물었다.

미르는 내가 유렌에게 제일 먼저 안긴 걸 보고 뚱하니 볼을 부풀리며 중얼거렸다.

"나도 그런 옷 있다 뭐! 지금 갈아입을까?"

하지만 미르의 느슨한 옷차림은 너무 자주 봐서 희귀함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남자답고 어깨 라인이 살아나는 빳빳한 복장을 입은 모습이 더 멋졌다. 처음 나를 만나러 제국으로 왔을 때 입은 옷처럼.

미르는 선명한 적색의 긴 머리카락을 까만 색 가죽 끈으로 묶고 있었다. 나는 미르에게도 다가가서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미르는 와락 내 허리를 안고 진하게 입술을 빨아먹었다.

오늘 저녁은 마란 후작이 말했던 대로 호크 구이가 메인 코스였다. 후추를 뿌려 구운 새고기의 일종인데 꽤 고급 요리 중 하나였다. 식사를 하는 내내 마란 후작은 나와 유렌과 미르를 빼놓지 않고 대화에 끌어들였다. 자연스럽고 편안한 대화를 유도하는 말투에 평소 무뚝뚝한 유렌이나 타인의 대화에 전혀 흥미가 없는 미르조차도 입을 열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식사를 마친 미르는 마란 후작에 대해 애매한 평가를 내렸다.

"그 녀석……. 혹시 변태냐?"

"변태는 미르잖아."

"아니, 그런 의미의 변태가 아니고. 정신적인 의미에서 취향이 특이하냐는 말이야."

내 반박에 미르는 말을 정정했지만, 그가 변태라는 발언을 번복하진 않았다. 나는 모르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저어보였다. 유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딱히 마란 후작이 어떻든 관심이 없는 모양인지 눈을 빛내며 화제를 돌렸다.

"그것보다 시아. 오늘 밤은 누구를 선택하실 건가요? 저? 아니면 미르헬? 아니면……, 둘다?"

웅, 글쎄. 뭘 고를까?

***

야시장이 열리는 날, 나는 보라색의 실크 원피스를 입고 치마를 팔랑거리며 하늘 아래 거리를 둘러보았다.

상업 도시인만큼 정기 겨울 야시장은 무척 화려했다. 온갖 색상의 등불이 거리에 걸리며 동그란 풍선 같은 밝은 마법등도 나무 위에 걸쳐올려져 검은 하늘이 아니라면 낮으로 착각할 정도로 거리는 밝았다.

"우와……."

멍하니 서서 알록달록한 불빛을 바라보자 유렌은 내 옆에 서서 내 어깨를 감싸쥐었다.

"귀족들은 야시장 구경을 그다지 즐기지 않을뿐더러 구경한다 해도 넓고 화려한 큰 길로만 다니지요. 하지만 진짜 좋은 곳은 골목 안쪽에 많이 있습니다."

"골목에?"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유렌은 웃으며 긍정했다. 미르는 골목길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닌 듯 했다. 하긴 저런 예쁜 남자가 골목길로 다니면 여자로 착각해서 불량배가 말을 걸어온다던가 하는 이벤트가 발생할지도 모르겠다.

그 때, 나와 유렌의 사이를 미르가 덥석 갈라내자마자 곁에서 마란 후작이 말했다.

"하지만 큰 거리에도 재미있는 곳이 많아요. 그 쪽은 제가 안내해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미르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마란 후작도 유렌도 그다지 꺼리는 반응은 아니었다. 둘이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남자 세 명과 거리로 나서서 야시장을 구경했다.

===

과연 마란 후작의 속셈은!?

무림○래곤(총 7권) 읽다가 티탄돌고 무림드래곤 읽고 티탄돌고 하다가 며칠이 다 갔네요ㅠㅠ 소설은 바빠야 잘 써지나 봅니다ㄷㄷㅜ

무림드○곤은 읽다보면 오오 얘가 남주구나! 멋진데? 하다가 오옷 얘도 남주? 괜춘한데? 그러다가 어라? 얘도 남주인가? 하다가, 앗, 이 남주 마음에 드네! 하다가 어느새 첫번째 나왔던 남주는 잊혀지고……. 대체 남주가 몇명이나 나오는 거야! 라는 느낌?

음 그리고 비축분은……. 오히려 그간 비축분보다 수정작업에 더 치중했습니다. 앞부분을 다시 읽어보니 OTL.

초반 설정의 미흡함 ㄷㄷ;; 중후반에 고생합니다 ㅠㅠ

글을 읽으시다가 '어? 여기는 -라고 적혀있는데 뒤엔 다르게 써있네?'라고 느끼신 부분도 나중에 고쳐집니다. 지금 열심히 수정작업 중입니다! 소설 쓰다가 '읭? 이건 전에 내가 설정해놓은 적 있는 내용인데 뭐였더라?'하고 찾아보다가 못 찾아서 그냥 즉석 설정 만들어낸 것도 많아요!ㅜㅜ

일단 전체적인 스토리라인 등을 다듬고 눈에 띄는 오타도 고쳐 1차 수정을 한 후에 조아라에 새로 고쳐 올리면 여러분들이 그 소설을 검사(라고 써놓고 재주행?!)해주시면 2차로 고쳐 그걸 개인지로 재편집하겠습니다. 그때 부디 시간 많으신 분 계시면 도와주세여 엉엉 ㅠ ←비루한 대인관계를 가진 작가 1人. 1차 수정은 12월 내로 들어가고, 2차 수정은 1월초쯤 마감에 쫓겨 하게 되고 여기에 삽화크리 같은 걸 끼얹나?

15분 17센티ㅋㅋㅋㅋ

당연히 애프터가 17센티인걸 말합니다. 비포가 몇센티냐 하는건 사실상 말할 필요가 없지요. 비포가 아무리 커봤자 쓸모없어!!! 애프터 17센티면 카덴에서는 평균입니다. 카덴 중부인 남자의 평균 신장이 180이상이니까요. 실제 여기서도 서양 쪽 평균이 15-17정도 합니다.

15분이라면 일반적인 시간보다 약간 긴 편입니다. 보통 범주에서 벗어나는 편은 아니고 그냥 그쪽 평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나저나 제 선작수를 보시고 저보다도 독자분들이 더 기뻐하시네요 ㅋㅋㅋ 저는 선작과 추천과 조회수에는 비교적 초연한 편이지만 덧글에 엄청 연연합니다 ㄷㄷ;; 언제 선작 3000을 돌파했는지 기억도 나질 않아여! 선작수 4000 축하 기념……은 없다긔. 4000은 좀 미묘한 숫자니까요! 1000때도 3000때도 하지 않았던 이벤트!! 대신 5000이 되면 해보지요. 5000 기념 연참!?

쨌든 선작 4000 감사합니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선작이기에 더 가치있는 듯.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