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공작님, 제발! -->
오래 앉아 있을 수도 있는 구석의 편한 의자에 앉아 유렌이 가져다 준 사과 음료를 홀짝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결혼하고 처음 참석하는 공식 파티였으니 세르는 몰라도 유렌하고는 꼭 붙어있을 거다. 꼬오오옥!
황궁 내 온도조절기 성능을 자랑하듯이 한겨울에 종아리 위로 올라간 경쾌해 보이는 메이드 복을 입은 황궁 시녀들의 하얀 스타킹에 감싸인 다리를 시도때도 없이 힐끗거리던 40대 늙은 남작은 눈치도 없이 내게 접근하려다가 내 남편의 사나운 눈길에 그만 주춤했다. 우후후후, 어때, 내 남편이지롱! 이제 유렌은 공식적으로 내 꺼지롱! 남편이라고 대놓고 부를 수도 있지롱! 나는 유렌의 굵은 근육질 팔뚝을 양손으로 꽉 껴안고 헤실 웃었다. 그러니까 난 유렌에게 이런 것도 해줄 수 있어! 나는 괜히 단정한 유렌의 타이를 만지작거리다가 그만 매듭을 흐트러뜨렸다. 쩔쩔매며 다시 제대로 매 주려고 했는데 옆에 앉은 자세가 불편해선지, 아니면 워낙 처음에 반듯하게 매여 있었던 건지 미묘하게 원래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내 행동이 마음에 드는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내가 계속 자신의 타이를 만지도록 해 주었다. 으응, 잘 안 되는데. 하지만 유렌은 최종적으로 내가 만지작거리는 바람에 약간 기울어져 대충 매여진 듯한 타이가 좋은지 만족스럽다는 듯 눈을 가만히 내리깔았다. 유렌은 멋있으니까 타이가 엉망이라도 잘 어울려! 게다가 가까이서 안 보면 보이지도 않는걸. 그렇게 자기위안삼으며 내가 사과 주스를 반 정도 비우는 동안 사람들이 꽤나 들어찼다. 그리고 여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끼리 모여서, 소년들은 소년끼리 모여서, 젊은 남자와 사교계의 주축인 미혼 여성들도 따로 모여 얘기를 하거나, 작업을 걸거나 했다.
소년소녀라고 해도 갓 성인이 되거나 성인에 근접한 풋내기들 뿐, 아젤 님만큼 어린 남자들은 없었고, 가장 수다떠는 활동이 활발한 남녀들은 결혼 적령기 직전의, 많게는 20대 초중반에서부터 적게는 10대 후반까지의 나이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어려 보이더라도 결혼한 남녀들은 그들끼리만 어울리고 있었다. 작위가 없는 유부녀들은 따로 모여서 보석과 재산, 남편이나 아기 얘기로 시간을 때웠고, 작위가 있는 유부녀들은 사업 얘기, 남편들은 승마나 재정 얘기 혹은 자식을 결혼시키는 얘기들 중이었다. 음, 꼭 전부가 그렇지는 않고 거의 친분 있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경우가 반 정도였다. 나머지는 다른 파트너를 찾아다니거나 친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내게도 말을 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잠깐이지만 이전까지의 공작 대우에 익숙해 있던 나는 갑자기 나를 그냥 거리의 예쁜 아가씨 취급하며 작업을 걸려는 젊은 남자들의 태도에 내심 당황했다. 뭐야, 오빠는 시렌느 자작이고 난 왜 아름다운 레이디야? 이 건방진 수캐들 같으니라고, 시아 여왕님이라고 불러!! ……아니, 공작 각하라고 불러주었으면 좋겠다. 기껏 지금까지 사교계에 어느정도 내 얼굴을 어필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대부분의 남들이 나를 급 못 알아본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아무래도 나는 태생적으로 상위자 체질인 것 같다. 처음 드리어드들이 여왕님이라고 부른 것도 아주 익숙하게 느껴졌으니까.
"제 아내에게 무슨 볼일이십니까?"
옆에 있던 유렌을 무시하고 벌어진 일에 유렌은 내 어깨를 과시하듯 감싸안고 그들에게 경고조로 말했다. 말을 건 금발의 귀공자와 붉은 갈색 머리의 남자도 상당히 잘생긴 외모에 기사인지 비교적 우월한 몸의 소유자들이었지만 유렌에 미치지는 못했다. 내, 내내, 내가 저 금발 남자의 딱 벌어진 어깨라던가 적갈색 머리 남자의 굵은 팔뚝을 힐끔거리는 건 여자의 본능이라구! 어쩔 수 없어! 그리고 나는 우리 유렌만 좋아하니까! 유렌이 훨씬 멋지니까!!
그들은 유렌의 보기 드문 외모에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이윽고 떠올랐는지 정중히 인사해 왔다.
"최근 작위를 얻었다던 위스피닌 백작……, 이시군요?"
"흐음, 백작의 아내라면, 그녀겠군요. 역시 인세에 과하게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몰라뵙고 초면에 무례를 저지른 점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시렌느 공작 각하."
분명 유렌이 백작임을 알았음에도 그냥 그러려니 넘긴 그들은 남편이라고 밝힌 유렌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오히려 마치 기회라도 잡은 듯 내게 깍듯하고 정중히 인사해왔다. 아니 왜? 게다가 그들은 남편을 옆에 두고 있는 내게 대화나 춤까지 청했다. 내가 거절하자 그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물러섰지만 유렌이 내게서 떨어져나가면 또 접근할 것이다. 그 둘의 이상한 태도에 내가 의아해하자 유렌이 한숨과 함께 내게 말했다.
"애초부터 시아가 목적이었군요. 시렌느 여공작은 첩이 저 말고도 많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제가 당신의 유일한 첩이 아니라, 그저 첩중 하나였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같은 남자를 당신이 그,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그, 그그그런 건가? 하긴 18살에 첩이라니, 사람들은 전부 내가 그전부터 꽤 놀았다고 생각했겠지.
"이런 공개된 연회에서 하급 귀족들 중에서 외모에 자신있는 남자들은 당신의 첩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당신은 지금 대공가의 권세를 업고 여제의 신뢰를 받고 있는 가장 잘 나가는 공작인데다가 예쁘기까지 하니까, 일단 당신의 첩이 되어서 사교계에 진출해 연줄을 쌓고 다시 첩을 그만둔 후 그 연줄을 통해 정계로 나설 생각을 하는 남자가 많습니다. ……어쩌면 단순히 시아의 애인이 되어 용돈이나 받으며 사는 것이 목적인 능력없는 남자들이 있을 지도 모르고, 저와 경쟁해서 남편 자리를 빼앗으려는 고위 귀족 남자들도 있겠지요."
뭐야, 유부녀면 그런 거에서 제외되는거 아니었어? 나와 유렌의 지위차가 꽤 되긴 하나보다. 지위 두 단계 이상이 차이가 나는 결혼이라면, 어느 한쪽을 밀어내고 다시 결혼할 수도 있을 테니까.
유렌은 백작이 된지 겨우 3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기사 경력도 없고, 능력도 아직 인정받지 못할 정도로 지금까지 일을 안 하고 나랑만 놀았었다(…). 반면 세리안은 겨우 자작인데도 공작가 출신 장남이라는 혈통과 전 기사단장이라는 경력, 충분한 사교계 데뷔 경력과 믿음직스러운 나이, 사교성에 연줄이 대단하고 기사 출신이라 그의 실력을 모든 기사들이 다 인정할 정도다. 자작이지만 눈빛 하나만으로 내 주변에 접근하는 남자들을 다 쫓아낼 수 있는 것이다. 새삼 겨우 자작이면서 공작과도 대등한 카리스마를 지닌 세리안이 좀 두려워졌다. 역시 드래곤의 능력이라는 건가?
그나저나 유렌은 세리안보다 높은, 자그마치 백작인데 말야. 다들 무시나 하고 말야. 유렌도 능력이 세리안 만큼이나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으음……. 세르는 나이가 많으니 알아서 잘 하겠지만 유렌은 엘프 치고 굉장히 어린 편이라서 왠지 내가 일일이 간섭해줘야 할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치만 유렌도 생각 없이 백작 작위를 받고 가만있지는 않는 것 같다. 그 특유의 도도한 태도로 보는 사람들마다 죄다 한번씩 유렌이라는 존재를 각인시키고 있으니까. 그리고 설마 설마 했는데, 기사들 사이에서는 유렌이 소드 마스터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더라. 읭? 어떻게 된 거지?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다들 한번씩 말만 꺼내고 믿진 않지만, 마법사들 사이에서 나온 소문이다 보니 아주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닐 거라는 설도 있었다. 마법사들의 마탑 길드에서는 전 카덴의 비밀스런 진짜 정보들이 전부 휘돌고 있다고 하니까.
그 탓인지 일반 귀족 말고 기사들은 전부 유렌에 관해 한 마디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전혀 말을 걸진 않지만 말이다. 그의 실력을 믿을 수 없다는, 정 반대되는 소문도 있는데다가 준남작 이하의 평기사들이라면 백작인 유렌에게 말을 걸기 위해서 한참을 숙이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는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고, 오히려 다른 무언가가 목적인 듯 보였다. 유렌과만 쭉 앉아있던 내게 춤을 신청하는 남자들이 끊이질 않자 나는 전부 거절하기에도 꺼려져서 유렌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는 내 시선에 마주보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내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아름다운 공작님, 부디 제게 당신의 허리를 안을 영광을 주시겠습니까?"
응, 응응! 허리 말고 딴 곳 안아도 좋아!! 나는 생긋 웃으며 수줍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내 손을 쥐고는 키스를 하고, 음악이 연주되는 파티 플로어로 나를 이끌었다.
유렌과 댄스를 추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님은 너무 똑똑해서 아젤 님과 세르에게 사교춤 추는 몇 가지 기본적인 방법과 약간의 응용까지 익혔기 때문에 몇번 해보지 않았지만 능숙하게 춤을 출 수 있었다. 예전 황실 무도회에서 세르와 처음 추었던 격렬한 댄스를 기억해보았다. 분명 예전 내 첫 춤상대였던 세르는 나를 조금의 틈도 없이 꽈악 휘어감고 곡의 선율에 따라 완벽하게 리드해주었다. 아잉, 그땐 엄청 좋았는데. 이번 댄스곡은 부드러운 클래식이었다. 유렌도 약속대로 따뜻한 손으로 내 허리를 쥐듯이 부드럽게 움켜잡고는 한 손을 쥐고 강하게 나를 리드했…….
"……."
유렌 춤 못추는구나.
"죄송합니다. ……실전은 해본 적이 없어서요. 조금 실수를……, 윽!"
조금이 아니잖아! 또 한번 더 넘어질 뻔 했다. 자세만 그럴듯하지, 스텝은 엉망이었다. 내가 풍성한 치마의 아랫단으로 그의 발을 가리지 않았더라면 시작하고 빙글 돈 처음부터 완전 망신을 당할 뻔 했다. 나는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첫 회전을 간신히 수습하고 덜컥해서는 오히려 내가 그의 소매를 꽉 쥐고 리드했다.
그 동안 내 쪽에서 발을 밟힐 뻔 하거나, 갑자기 내 걸음 아래로 들어온 유렌의 구두를 힐로 밟아버린 적이 세 번이나 되었다. 꺄악, 어떡해!
겨우 반 곡이 끝나고, 유렌의 부드러운 팔이나 가슴을 느낄 새도 없이 진땀뺀 나는 다시 구석에서 의자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 진짜 춤추는 게 처음인 거야?? 내가 놀란 듯 그를 바라보자 그는 쩔쩔매며 내게 사과했다.
"저기, 남들이 하는 걸 보니까 나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아……."
보는 것 만으로는 따라할 수 없는 게 바로 춤이다. 아무리 그가 운동신경과 동체시력이 좋아도 남들 춤추는 걸 보고 그대로 따라한다고 하면 어색했겠지. 대충 회전수나 스텝은 비슷한 것 같아도 동작이 뻣뻣했다. 몸치……, 는 아니겠지. 그래도 소드 마스터인데. 그리고 전에 보았던 유렌의 검무는 마치 춤추는 것 같은 부드러운 동작이었다. 그래서 나도 유렌은 틀림없이 댄스에 매우 능숙할거라고 착각했다.
"유렌 춤추는 거 처음이야?"
갑작스런 내 물음에 그는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빙긋 웃으며 유렌의 어깨를 꼬옥 안았다.
"그럼 용서해 줄게. 내가 유렌의 첫 번째 댄스상대였다는 거잖아. 다른여자랑은 이런거 해본 적 없지? 응응? 그나저나 밟힌 거 아프지 않아?"
"괜찮……습니다. 전혀 아프지 않아요."
유렌은 오랜만에 뺨이 붉어져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격정적으로 나를 껴안고 내 뺨과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괜찮으시면 나중에 댄스를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까?"
나는 그의 어깨에 붉어진 몸을 기대며 승낙했다.
***
유렌과의 첫 번째 춤은 어설프게 한 곡도 못 채우고 끝났지만, 휘청휘청 위태로운 우리 모습을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었다면 단번에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봤을 거다. 괘, 괜찮아! 다음 파티 때는 유렌도 춤을 확실히 배워서 완벽하게 해낼 테니까!
그리고 원래 자리로 돌아온 순간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세르와 눈이 마주쳤다.
"공작의 남편이 사교 댄스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는 남자였던가."
"……."
그 말을 한 것은 세르가 아니라, 그 옆에 있던 검은 머리와 검은 정장을 한 남자, 엘릭 레이몬드 백작이었다. 유렌과 결혼하고 처음 보는 거다. 아마도 결혼소식을 들었겠지. 그런데 나한테 시비거는 게 아니고 유렌이 싫은 건가? 대체 왜? 그러고 보니 엘릭과 유렌, 같이 루페닌 쪽에서 활약했었지. 유렌도 엘릭이 껄끄럽다는 얘기를 내게 한 적 있었는데 엘릭이라고 다를까. 뭔가가 못마땅한 듯한 엘릭의 뜻 모를 시비에 세르는 어깨를 으쓱하며 작게 나한테 말했다.
"괜찮아, 별로 티는 안 났어."
다, 다행이다! 그런데 엘릭은 여기 왜……? 그냥 유렌이 거슬려서 온 거야? 덤으로 나도 처리하러??
그는 여전한 검은 색의 짧은 머리를 편리하게 자른 채였다. 기사라고 해도 대체로 조금은 길러서 땋거나 묶는 경우가 많지만 그는 조금이라도 길어졌다 싶으면 주기적으로 가장 편한 길이로 잘라버리나 보다. 으응, 유렌은 요즘에 기르고 있는데 잘 길지 않아서 아쉽다. 엘프는 머리가 빨리 길지 않는다고 하니까 뭐…….
엘릭은 무늬 없는 검은 안대에다가 검은 색에 가까운 코트 차림이었지만 코트 장식이 비교적 화려해서 옷 자체는 검게 보이진 않았다. 화려한 소매단이 달린 옷을 입은 엘릭은 처음 본다. 하긴, 지금까지 본 것이라고 해야 기사 제복을 입은 모습, 그것도 딱 두번이었는걸.
코트 안에 입은 붉은 스트라이프의 셔츠 때문에 드물게 그는 확 튀어보였다. 엘릭은 왜인지 튀는 걸 싫어할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단정한 기사제복보다 이 복장이 훨씬 섹시해보였다. 마치 일부러 어필하는 것처럼. 그 덕에 다른 소녀들도 이 쪽을 계속 멀리서 보고 있었다. 엘릭은 아마 인기가 많았지. 엘릭의 두려움도 잊고 넋 놓은 채 그의 살짝 풀려진 셔츠 앞부분을 보는 나를 유렌이 꽉 안았다. 그러자 엘릭이 이 쪽을 힐끗 보더니, 마지못해 온다는 듯 내 앞으로 다가왔다.
"저 녀석 보다는 능숙해."
"……응?"
"그러니까."
그의 시선을 받으면 사나운 듯한 푸른 색 눈동자와, 안대 속에 있는 뜨거운 황금빛 눈동자가 기억나서 저절로 몸이 바싹 굳어져버린다. 엘릭이 불쑥 꺼낸 말에 당황해서 제대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되물었다. 얼굴은 황홀할 정도로 잘생겼지만 태도나 그 이면에 숨겨진 감정을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더없이 꺼림칙했다ㄷㄷ.
"내 댄스 상대가 되어 주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아이같은 말투에 순간 아연해졌다. 그리고 그 의미에 경악했다. 나를 가까이에서 내려다보는 엘릭을 밀치지도 못하고 쩔쩔매고 있는 내게 그는 빨리 대답하라는 듯 시선으로 말했다. 더불어 댄스라는 말을 들은 다른 소녀들도 전부 놀란 듯이 서로 속삭였다. 세르의 미간이 잠시 찌푸려졌다.
자, 잠깐만! 나는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젖혀내고 고개를 힘껏 저었다.
"시, 싫어!"
"뭐?"
"싫다니까!"
춤추는 건 좋지만 추다가 내가 실수로 발을 잘못 밟으면 그 즉시 날 죽일 거잖아! 그런 눈빛이잖아! 내가 단순히 춤만 추자는 말을 믿을 줄 알아? 흥! 너랑 댄스 안 춰!!
순간 내 싫다는 말에 잔뜩 굳은 표정을 지었던 엘릭이, 갑자기 살벌하게 나를 노려보았다. 그 덕분에 나는 흠칫해서 유렌의 등 뒤에 숨고 싶어졌다.
"싫어도 나와 해야 돼."
아니 어째서?
너무도 당당한 엘릭의 말에 내가 의아해하자, 세르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백작께서는 사교계 데뷔 후 첫 댄스 신청을 네게 하고 있는 거야."
……읭?
백작이라 하면, 엘릭 레이몬드 백작. 유렌과 같이 백작위를 받았으니 기억 못할 리가 없다. 세르도 공식적인 자리다 보니 엘릭에게 존댓말을 쓰는 모양이다. 그런데 데뷔 후 첫 댄스 신청이라니?
남녀 17세에 첫 사교계 데뷔를 하고 처음으로 이성에게 신청하는 댄스는 타당한 이유가 없는 이상 당연히 받아줘야 하는 게 예의였다. 그리고 그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그에게 관심이 있냐 없냐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첫 댄스신청은 일종의 사귀자는 메시지와 비슷하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이 때는 신분격차도, 지위도, 혹은 이미 파트너가 있더라도,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라도 무조건 받아주어야 한다. 이걸 이용해서 한 커플을 깨뜨리거나, 지금껏 좋아하던 이성에게 대쉬하는 경우도 있지만 뭐 특별히 그런 사람이 없다면 대체로 가족인 아버지나 오빠와 첫 댄스를 추는 편이다. 나 역시 첫 댄스상대는 세르였고 말이지. 그나저나 첫 댄스를 살인용으로 이용하다니, 역시 엘릭 잔인해! 아니면 대놓고 넘어져서 나를 망신줄 생각? 그건 엘릭도 같이 개쪽당할 테니 아닐 것 같고. 핫, 역시 춤신청 해놓고 일부러 내 발을 밟으려는 거구나!! 아프겠다ㅠㅠ.
거절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자신 뿐 아니라 상대방도 사교계의 첫 댄스인 경우. 이 경우에는 쌤쌤이라 거절해도 폐가 되지 않는다. 자기도 처음이겠지만, 상대의 첫 댄스를 싫은 사람과 억지로 시켜서 망칠 수는 없지 않은가. 혹은 그 상대가 파트너와 아직 춤을 추지 않은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나는 파트너이자 남편인 유렌과 방금 춤을 췄으니 거절 못 한다.
"……어?"
그런데, 그 말은 엘릭이 17살에 데뷔해서 거의 19살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 한번도 여자랑 춤을 안 춰봤다는 말이야?
===
숫총각님 댄스 신청 하나 하는데 박력이 장난아님...;
유렌은 의외로 춤 경험 없음, 엘릭은 의외로 패션 센스가 눈물남. 이라는 설정……?
전에도 나왔지만 유렌은 남자인데도 쇼핑을 즐기는 편입니다. 스타일 코디네이션도 잘하는 편이지요. 둘다 최근 생긴 취미지만ㅇㅇ, 시아 눈이 괜히 높아진 게 아님ㅇㅇ.
하지만 엘릭은 파티인데 평범하게 입는답시고 고른 게 빨간 셔츠와 화려한 코트. 님은 그냥 제복이나 입으라능;
땅의 정령왕 오타 수정했습니다!
그리고 노블란 말고 여기서 얘기해도 되나 모르겠는데……. 송이송이는 오○온 제과에서 나오는 초○송이의 옛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코송이란 말이지요. 맛은 무관하고 단지 초코○이의 그 형상 자체만 의미합니다.
일단 아직은 바나○킥(일반형의 범주)만 여러개 있고 초코송○(변종)는 출연예정입니다. 레어템으로 치○스도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치토○는 좀 무서울 것 같으니까 출연을 미룰래요…….
스틱 얘기입니다.
바나나맛 일반형 과자로도 만족하지만 역시 과자는 안 질리게 여러 맛이 있어야 하잖아요.
혹시 다른 과자 맛있겠다 싶으신 거 아시면 제보 좀 해주세요. 충분히 간식 종류를 늘릴 의향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