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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여왕-94화 (94/226)

<-- 6. 공작님, 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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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덴 최연소 현자, 열 세살의 아젤 칸스티어는 정신연령이 도무지 맞지 않은 어린 소년소녀들 사이에 껴서는 혼자만 구석 탁자에 앉아 있었다. 공식 연회였지만 아직 어린 황녀를 위해 미성년인 아이들도 참석할 수 있었는데, 적게는 열 한두살에서 많게는 열 대여섯상 정도의 아이들 사이에서 아젤 혼자만 겉돌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도 어린 나이에 귀족 작위를 얻어 어른취급을 받는데다 태생이 평민인 그와 진심으로 어울리고 싶어하는 아이도 없다.

얼마 전부터 시작한 검술훈련 때문인지 팔다리가 쑤셔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정신적 수준차 때문에 말을 섞는데 아무런 흥미도 느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예의상 걸어오는 말들을 기본방어 수준으로 받아주고 혼자서 의자에 앉아 어른들의 파티장을 바라보았다.

파티장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카덴에서 제 이미라 하면 플라니아 자크루 공작 영애와 세이시아 시렌느 여공작이라고 하지만 아젤의 시선은 플라니아 영애보다는 시아에게 머물러 있었다. 시아는 레이몬드 백작의 차남인 엘릭 레이몬드와 다정하게 토닥거리고 있었다. 실제로야 시아가 레이몬드 백작부부를 방패삼아 간접적으로 엘릭이 거슬릴 만한 말을 하자 엘릭이 어느정도 거리를 둔 채 시아를 무섭게 노려보고 또 시아가 그에 대한 변명을 어설프게 중얼거리는 장면이었지만, 누가 보나 그 모습은 다정한 소꿉친구의 대화로 보였다. 직접적인 대화는 한번도 오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시아가 레이몬드 백작부부와의 대화를 끝맺고 유렌의 곁으로 가서 그의 몸에 기댔다. 아젤은 깊은 푸른 색의 눈동자를 조금 가라앉히며 그 모습을 보았다. 눈부시게 어울리는 한 쌍이다. 유렌은 누가 봐도 단정하고 매력적인 외모와 남자로서의 강함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몸이 크게 약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강하지도 않은 아젤로서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고 강하 유렌을 동경하게 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이건 뭐지? 어째서 그가 세이시아 님에게 손을 댈 때는 기분이 좋지 않아지는 걸까?

세리안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그가 세이시아 님을 가지겠다고 선언했을 때는 의외라고 느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가짜 여동생에게 하는 농도 짙은 스킨십을 눈앞에서 보는 것이 싫어졌다. 세리안은 그저 유희중인 드래곤이고 단순히 자신과는 친분이 있을 뿐인데 질투까지 하게 되다니. 아젤은 이렇게까지 심각해진 게 언제부터인가 되짚어보았다.

"저기, 현자님. 현자님은 몇 살이에요?"

호기심에 한 자주색 드레스를 입은 어린 소녀가 말을 걸어왔다. 금발머리를 땋아 올린 그 소녀는 열두어살 정도로 아젤보다 한두살밖에 어려보이지 않았다. 쭈뼛쭈뼛거리며 아젤에게 말을 건 그녀를 아젤은 억지로 웃으며 상냥하게 상대해 주었다. 아이답지 않은 처세술을 언제부터 해왔을까. 덕분에 좋은 평판을 얻고 있긴 했지만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았다. 세이시아 님이 나를 착한 아이로 알고 언제나 웃어주지만, 처음부터 의도한 일이 아니었다.

아젤은 그 소녀의 밋밋한 가슴과 조그맣고 통통한 손등을 바라보았다. 세이시아 님은 분명 빠질 듯한 곡선과 작으면서도 길고 예쁜 손가락을 가지고 있었다. 댄스 교습을 할 때에 쥐어진 손이 생각만큼 크지 않아서 놀랐다. 그리고…….

또다시 세이시아에게 빠져가는 상상을 흔들어 쥐며 아젤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적당히 그 소녀를 상대해주다가 결국 아이들 틈에서 빠져나왔다.

***

"황제 폐하께서 드십니다!!"

모두의 이목을 끄는 시종의 외침이 있은 직후 파티장의 분위기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번 연회는 그저 축하하고 즐기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치하 연회였기 때문이다. 정식 예복을 차려입은 여제가 등을 곧게 펴고 아래를 훑어보며 나왔다. 그리고 빙그레 미소지으며 인삿말을 했다.

제국의 귀족들 어쩌고로 시작되는 예의상의 인사말은 꽤 길었다. 서론이 끝나고 본론으로 들어갈 때쯤 나는 유렌의 팔짱을 끼고 연단 앞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여제는 일단 케르타 원정대(?)인 그라시에 후작과 나 이하의 사신단에게 치하를 한 후에 세운 공을 밝혔다.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괜히 엄숙한 분위기에서 황제가 직접 말하니 마치 엄청난 일을 한 것같은 느낌이 들어 기분이 묘했다. 마지막으로 여제는 사고를 당해 죽은 귀족들의 유족에게 보상을 하며 몇몇 유공자에게는 직급 상승과 상금을 하사했다.

나는 얼결에 그라시에 후작과 함께 앞으로 불려나와 개인적인 격려를 받게 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에 익숙하지 못해 한껏 굳어진 표정이 잘 펴지지 않았다. 내가 받은 것은 제국 남쪽의 뮤칸 산의 소유권과 상당한 포상금이었다. 산을 받았다고는 해도 영지에서 그리 가깝지만은 않은 곳이라 땅문서가 늘어난 것 이외에는 실감이 안 났지만, 뭐 그래도 땅이 많으면 좋은 거겠지? 여제는 내게 싱긋 웃어보였다.

나는 제자리로 돌아온 후 추가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일이 축하인사와 인사를 받았다. 아무리 내가 큰 공을 세웠다지만 이제부터 친하게 지내려는 사람들이 뭐가 이렇게나 많은지. 개중에서 몇 명만 겨우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적당히 인사를 받아주고 있는데 또 여제가 말을 이었다.

"자랑스러운 제국민의 활약에 카덴의 영광을."

루페닌 왕국 지원단에 대한 치하의 말이었다. 그리고 지원단의 기사 대부분이 불려나갔다. 중간중간 어색한 예복을 입은, 내가 처음 보는 얼굴들도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조금 다듬어지지 않은 인상들이었기 때문에 뭔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나는 귀족 이외의 사람을 가까이서 보는 것은 그게 아마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잘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제국에 고용되었던 고급 용병 중에서 일부 큰 공을 세운 용병들이라고 했다. 내가 받은 것과 유사하게 치하의 절차가 끝나고 의기양양한, 혹은 부상을 입은 동료를 두어 그다지 밝지만은 않은, 또는 유족의 가족이라 검은 상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내려왔다. 두 번째로 지휘관인 파르만 후작이 여제의 앞으로 불려나갔다. 으응? 그런데, 유렌 위스피닌 공자는 왜 불러?!

여제는 제이란 대공에게서 예식용 봉을 건네받은 후 말했다. 그에 나는 기겁을 했다. 유렌에게도?!

"특히 제국을 위해 살신성인하여 이번 지원행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셋에게 직위상승과 영지를 내리겠소. 먼저 파르만 후작. 뛰어난 지략과 공정한 판단으로 제국 지원단의 임무를 완수시킨 공을 치하하겠소."

훈장을 단 제복 차림의 파르만 후작이 여제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기사의 예를 취했다. 보통은 고개를 까닥이며 모자를 벗어보이거나 한쪽 팔을 가슴에 대거나 치마를 살짝 드는 예라면 적당하지만 그는 여제의 기사였기에 일부러 몸을 낮추었다. 파르만 후작에게는 영지와 상금이 돌아갔다.

"그리고 지원단의 승리를 가장 앞에서 이끌어낸 제국의 기대주인 레이몬드 자작. 앞으로 나오시오."

두 번째로 엘릭이 여제 앞에 섰다. 여제는 엘릭에게 의외로 큰 상을 내렸다. 어지간히도 활약했나보다. 엘릭이 받은 것은 자작으로서의 영지와 백작으로의 직급 상승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엘릭은 조만간 그 실력에 걸맞게 작위를 올려줘야하기도 했고 이번이 그 계기가 된 것일 뿐이다. 엘릭은 표정 변화 없는 얼굴로 여제에게 가볍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내려왔다.

마지막으로, 유렌……?

유렌이 어째서 단상 위로 불려갔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고 내 귀에 들려오는 소근거림도 컸다. 아까 용병과 기사들에게 상금 줄때 안 부르고 왜 지금 부르는 거야?

"그리고 유렌 위스피닌 공자."

위스피닌 공자라고 하면 한두 명이 아니기에 굳이 이름까지 함께 불렀다. 여제의 명에 따라 나오긴 했지만 유렌은 내 쪽으로 시선을 힐끗 주었다. 손을 흔들어줘야 할것 같은 기분이다. 유렌은 그냥 여유롭게 빙긋 웃어보일 뿐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유렌은 뭔가 아는 걸까?

흰 드레스에 틀어올린 금발의 여제는 연단 위에서 자애롭게 웃어보였다.

"레이몬드 자작과 둘이서 같이 제국 지원단의 전투를 성공으로 이끈 공을 치하하겠소. 그대는 공작가의 영식이겠지? 위스피닌 공작의 아들이 이렇게 출중한 검실력을 가졌다는 것을 이제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오. 그 실력이 제국 최고 기대주인 레이몬드 경과 맞먹는 바, 지금부터 레이몬드 경과 휴이든 경과 함께 제국 3대 검사로서 알려지겠군. 그렇다면 그 명성에 걸맞게 작위를 한 단계 높여 백작위와 위스피닌 공작령 옆의 북쪽 영지를 하사하겠소."

여제의 말에 나는 경악했다. 영지랑 작위? 그것도 백작위?!! 잠깐만 유렌 무슨 짓을 한거야!!! 내가 관중들 사이에서 어버버거리며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고만 있자 유렌을 알아본 그 옆의 재무대신이 감히 끼어들어 소견을 밝혔다.

"황공하오나 여제 폐하. 그는 자작이 아닌 걸로 압니다. 위스피닌 공작의 후계는 라포드 위스피닌 자작으로서, 유렌 위스피닌은 정부인 출생이 아닌데다가 지금은……, 시렌느 공작의 첩실로 있다고 합니다."

"첩실? 그가?"

그럼 한 단계 높이면 백작 아니네 뭐. 아예 작위가 없는데 말이다. 게다가 첩이라면 함부로 작위를 주고 말고 할 수는 없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그 첩은 황제가 작위를 준다고 하자마자 첩 자리를 박차고나와 작위 홀랑 받아먹고 지금까지 관계했던 귀족 따위와 깨끗이 바이바이하겠지만 말이다. 여기서 유렌이 한 마디만 하면 더 이상 첩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귀족이 첩을 내쫓을 때와는 달리 첩이 스스로 첩살이 그만둘 때는 그냥 '우리 헤어집시다' 한마디만 하고 스스로 나가면 되니까. 백작이라면 웬만한 귀족도 무시 못할 정도로 비교적 높은 작위였다. 백작 이상부터 고위 귀족이라고 치는 만큼 백작부터는 계승이 가능했으며 그 수도 적었다. 소드 마스터 근접의 검사에게는 모두 백작, 소드마스터는 무조건 공작 작위를 수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유렌이 백작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는?

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첩이라고 달라지는 것은 없잖소. 어째서 그대가 기사가 아닌 첩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오히려 이런 인재가 일개 첩실로 머물며 썩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국가적 손실. 그렇다면 위스피닌 공자. 공자는 시렌느 공작의 첩실을 그만두고 백작 작위를 받겠는가 받지 않겠는가."

……아니 그러니까 나는 어떡하지?

라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유렌은 가만히 여제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의미 모를 미소를 지으면서. 나는 결심했다. 어쩌긴 뭘 어째. 죽어도 못 놔줘. 하지만 그 이전에 유렌은 결코 나를 버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가 이미 내 소유였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내가 한 마디 명령만 한다면 그는 작위마저도 포기하고 내 옆으로 돌아오겠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선택에 내맡겼다.

잘은 모르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유렌 위스피닌, 폐하의 말씀을 받들어 제국의 백작이 되겠습니다."

유렌은 가만히 속삭이듯 말했다. 여제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반쯤 감은 그의 눈꺼풀 아래에서 연한 페리도트가 살며시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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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유렌 첩 졸업!!

이번 편은 자꾸 막히는 바람에 조금씩 조금씩 써서 겨우 분량채워 올리네요. 나중에 수정할거에요 엉엉ㅠ

맞아요, 곱등이 사진보다 실물이 배는 징그럽……. 그러니까 사진도 징그러워 하시는 분이 실물을 보시면 그땐 떡실신 갑니다. 왜냐면 엄청커요ㅠㅠㅠ 사진은 귀엽죠. 실물은 안귀여움.

전 사진으로 먼저 접하고 얼마전 처음으로 습기찬 아스팔트 바닥에서 걸어가는 실물 곱등느님 목격하고 기겁했다능. 사진과는 비교도 안되게 무서움ㅠ 오오 곱멘 곱렐루야!!

곱등이가 뭔지 모르시면 검색창에 곱등이 라고 치는 방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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