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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여왕-92화 (92/226)

<-- 6. 공작님, 제발! -->

"안★녕! 오랜만이지 시아?"

유쾌한 얼굴에 오렌지색의 머리를 하나로 하프업해 묶은 이루였다. 유렌은 내게서 조금 몸을 떼고 다시 바로 어깨를 안았다. 이 놈은 황자인데 할 일도 없나. 마치 세리안이 자리 비우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거네. 그는 옆에 노란 드레스를 입은 예쁘장한 여자애를 끼고 나한테 인사를 건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잘 지냈어? 머리색 또 바뀌었네, 스읍."

그는 의외로 분위기를 편하게 해 주는 화술을 능숙하게 구사할 줄 알고, 그의 입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도 굉장히 많았다. 물론 모두가 질 높은 정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내가 그 팔찌에 눈독들이는 것을 아직도 포기하지 않자 이루는 흠칫하며 팔찌를 뒤로 감추었다. 안줘, 라고 말하는 듯 하다. 칫, 나도 세르한테 조르면 얼마든지 그런 거 만들 수 있거든! 진짜거든!

"그나저나 시아 너 형님이랑 아는 사이라며? 그렇다면 그거 알아, 그거!?"

"그거라니?"

게다가 형님은 또 누구야? 네 형님이라면 케이드린 황태자? 확실히 한두 번 안면은 있지만 잘 아는 사이라고는 할 수 없는뎅. 이루는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지간히 특종인가 보다.

"형 말고 형님, 이트리샤 대공작을 말하는 거야!! 어릴때부터 나랑 케이형은 대공작에게 직접 교육을 받았으니까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 뿐이야."

아, 그러고 보니 황태자는 이트리샤 대공을 스승님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어릴 때의 가정교사여서 그렇구나. 그나저나 그 대공이 뭐가 어쨌는데?

"약혼했대!"

"……읭?"

하긴 미혼이니까 이제 슬슬 약혼할 때도 됐지 뭐. 이루가 진지하게 말하는 걸 보니 헛소문은 아닌 것 같고, 내가 자리를 비운 3개월간 어떤 여자와 썸씽이라도 있었나 보다. ……잠깐만?

제국에서는 거의 동갑이거나 한두 살에서 많게는 대여섯 살까지 차이가 나는 결혼을 흔히 하며 남녀의 나이차가 열살 이상 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은 남녀 연상연하 관계없이 동갑에서 두세 살 차이까지가 제일 이상적이라고 한다.

이트리샤 대공은 올해 60살.

이 매너없는 영감탱이 같으니라고! 한창 때는 그렇게 튕겨놓고 이제 와서 젊은 여자 잡아서 결혼하겠다고? 상대는 몇 살이야? 앙? 예뻐?

이루는 킥킥거리며 대답했다.

"약혼녀는 지금 십대 소녀래. 그리고 예쁜지 아닌지는 직접 만나보면 알걸."

십대라면 딸 뻘도 모자라서 손녀뻘이잖아, 이 나쁜 영감탱이!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하필 결혼도 못한 나님 앞에서 결혼소식을 대놓고 전한 이루에 대한 분노도 컸다. 그래 나 결혼 못했다! 유렌이 청혼을 안해줘서 아직 미혼이다 어쩔래!! 빨리 남편있다고 자랑하고 싶은데 유렌은 약속해놓고 도무지 청혼을 안 한다. 내가 먼저 청혼해버릴까? 적어도 60살 영감보다는 일찍 결혼하고 싶어!

"누가 결혼한다고 합니까?"

유렌이 기웃거리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트리샤 대공 말야. 약혼했으니 조만간 결혼하겠지. 아아, 나도 빨리 결혼하고 싶은데 남자가 없넹. 미혼의 예쁜 여공작한테 청혼해줄 남자 어디 없으려나."

대놓고 그렇게 말하자 유렌이 흠칫하며 내 어깨를 땀나도록 꽉 쥐었다. 나는 유렌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며 중얼거렸다. 재촉할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말이 나와버렸네. 이루는 심술궂게 미소지었다. 그리고 대공의 결혼소식을 내게 전한 이유를 말했다.

"그래서 그런데, 시아는 대공의 집에 방문허락을 받았다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잠입하자!"

이루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이 인간, 자기 전 가정교사 집에 대공비를 보러 잠입하자는 말을 할 나이가 아닐텐데. 왜 이러세요 황자님. 그나저나 대공이 지금 여기에 있는 거야?

"이미 한참 전부터 수도에 머무르고 있었어. 어마마마의 생신 파티 후부터 쭉."

"난 패스."

괜히 그런 짓을 해서 대공의 눈 밖에 나면 내 출세길이 막힌단 말이지. 내가 튕기자 이루는 징징대며 매달렸다. 나 혼자는 못가, 같이가쟈 시아! 하지만 나는 끝내 거부했다. 이루가 계속 조르자 어쩔 수 없이 모월 모일 약속을 잡았다. 흑의 대공 수족으로서 결혼축하 선물을 넣어야 하니 어차피 한번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루가 오늘 파티 한정 만남인 것으로 보이는 예쁜 소녀와 히히덕거리며 다시 다른 곳으로 가버리자 이번에는 같은 사절단이었던 그라시에 후작이 찾아와 인사를 건넸다. 그라시에 후작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내 옆에 있던 유렌에게도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위스피닌 공자. 그간 푹 쉬셨습니까?"

그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색 바랜듯한 진한 청색과 흑갈색이 섞인 짙은 색 머리를 검을 끈으로 묶고, 훈장 몇 개가 달린 예복을 차려입고 있는 걸로 보아 무관이다. 누구였지? 분명 예전에 본 적 있는데…….

엄격해 보이는 인상의 그 남자가 내게도 인사했을 때에야 나는 그를 기억했다.

"아, 시렌느 공작각하께서도 동행하셨군요. 사신행에 무사히 다녀오신 것 축하드립니다. 상당한 공을 세우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파르만 후작. 나 대신으로 루페닌 왕국 지원단 총지휘관에 임명되었던 사람이었다. 아마 청의 대공과 잘 아는 사이였던가. 그래서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것은 처음이지만 그는 나에 대해서 꽤 알고 있을 것이다. 유렌한테 귀찮게 매달린다는 남자가 이 남자야? 라이언 경도 유렌 정도의 실력자는 첩으로 머물러선 안된다고 내게 반복해서 말하기는 했지만 요새 좀 뜸해졌다 했는데, 이제 두 번째 추종자가 생긴 걸까.

유렌은 별로 달갑지 않게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그럼 전 이만."

나는 가려는 유렌을 붙잡고 후작과 얘기를 나누었다. 유렌은 후작을 힐끔 보더니 체념한 듯 고개를 돌렸다. 파르만 후작은 좀더 구체적으로 유렌이 세운 공에 대해서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여제의 치하가 있을 거라는 말도 마지막에 덧붙였다. 나는 갑자기 나온 벌레 얘기덕에 흐느적거리며 유렌에게 안겼다. 유렌은 한숨을 쉬며 나를 쓰다듬어 달래주었다.

"그러게 듣지 않는 게 좋다고 했잖습니까."

"아냐, 그래도 유렌의 짱 멋진 모습을 들었으니까 만족해. 그나저나, 엘릭……, 아니, 레이몬드 자작도 그만한 공을 세웠다면서?"

파티장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는데 레이몬드 자작은 커녕 검은 머리카락도 안 보인다. 흑발이라 눈에 잘 띌줄 알았는데 검은 제복의 기사단 때문에 그렇게 잘 보이지도 않는다. 유렌은 내 어깨에서 손을 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무언가를 망설이고 있는데, 갑자기 멀리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시아, 잠깐 이리 와 볼래?"

세리안이었다. 세리안은 나를 끌다시피 어떤 부부 앞으로 데려갔다. 깃 장식 드레스를 입은 단아해 보이는 금발 부인과 키가 큰 갈색 머리의 남편. 부인 쪽은 상당한 미인이었는데, 누군가와……, 닮았다.

내가 망설일 틈도 주지 않고 세르는 자연스럽게 소개했다.

"이 분들은 레이몬드 백작과 백작부인. 시아는 기억이 안 나겠지만 우리 부모님과 매우 친분이 깊으신 분들이란다."

소개받긴 했지만, 나는 망설이며 눈을 깜박였다. 백작은 그런 내게 인상 좋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많이 성장하셨군요. 못 알아볼 정도였답니다. 늦었지만 공작위 계승을 축하드립니다, 공작 각하."

나는 조금 주춤하다가 손을 마주잡았다.

"세이시아 시렌느 공작입니다. 저기, 혹시 엘릭의 부모님??"

정확히 말하자면 모친 쪽만 친부모겠지만.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둘째 엘릭과는 많이 친하신 모양이지요?"

헉, 친하긴 개뿔. 무심결에 그냥 이름이 나간 모양인데, 나는 방금 한 말을 혹시나 엘릭이 들었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으악, 깜짝이야! 바로 근처잖아! 엘릭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나를 딱 0.3초간 힐끔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 옆에서 칼릭이 반갑게 내게 인사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이번 사신행에서 무사히 돌아오신 것 축하드립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케르타 사신행 얘기였다. 물론 내가 부 리더로서 조약을 유리하게 이끈 장본인이기는 하다, 히히히. 하지만 자꾸 이러니 조금 부담된달까나. 이번에 여제가 상을 내린다던데 사실 지금 있는 영지에서 더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재산도 이미 많으니까. 아니 물론 찌질하게 유렌에게 줄 선물도 자기 돈으로 못 샀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때 케르타가 제국과 무역동맹을 맺고 있던 나라였다면야 그 정돈 큰맘먹고 어음 끊어서 살 수 있었다고. 내가 무역동맹을 맺으러 가긴 했지만.

레이몬드 백작 부부는 내가 기억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있긴 했지만 친절하게 대해주며 나중에 자기네 집에서 주최하는 파티에도 가끔 참석해 달라고 말했다. 너무 거리가 멀어서 자주 올수는 없겠지만. 그들은 엘릭과 칼릭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다. 엘릭이 어릴 때 얼마나 찌질하고 난폭했는지도. 뒤에서 엘릭이 열받아하는 것을 대충 따가운 시선으로 눈치챘지만 그래도 재밌는걸. 지금의 엘릭과 비교하면 엄청 웃겨. 유렌은 따라오지 않은 걸로 보아 다른 곳에서 그 후작에게 붙잡혀 있기라도 하나보다. 유렌은 어린애가 아니니까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게다가 자기 부모님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하고 다소곳하게 있는 엘릭도 꽤 볼만했고. ……나중에 나를 암살하진 않겠지?

***

유렌은 파르만 후작을 대충 쫓아내고 테라스 근처의 벽에 도망쳐 있었다. 저번 파티보다 사람이 배는 많았기 때문에 이런 구석에 있으면 발견될 위험이 적다. 그는 한숨을 쉬며 안주머니에 있는 보석함을 만지작거렸다. 언제 건네주면 될까 고민하느라 긴장해 있는 몸을 조금 이완시키며 한숨을 쉬었다.

그때, 익숙하면서도 굉장히 불쾌한 목소리를 몇개월만에 들었다.

"이봐, 잡종!"

"……."

유렌은 눈을 뜨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위스피닌 공작의 첫째와 둘째 아들. 라포드 위스피닌 자작과 라엘 위스피닌 공자였다. 라포드 옆에 선 라엘은 형인 라포드보다 훨씬 키가 커서 거의 유렌과 비슷할 정도였고 상대적으로 키가 작고 곱상하게 생긴 라포드는 고개를 위로 들고 거만한 자세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

시아가 굽 신고 시선이 유렌의 명치에 닿으니까 실제로는 약 30센티 정도 차이나는 키겠군요. 유렌은 약 188 시아는 약 155~160 정도입니다.

그나저나 빨리 써야하는데 글이 안 잡히네. 좀 쓰다보면 원래 페이스를 찾겠죠.

제가 하도 바쁘다고 해서 직업여성인줄 아시는 분들도 있고, 의외로 20대 초반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시는 분도 계셨군요ㅋㅋㅋ. 여러분, 이 세상에는 노느라 바쁜 사람도 있……〈〈

그냥 할일이 있다보니 '일'이라고 표현했을 뿐이지 저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아닙니다.

말투가 경박해서 그런지 본좌의 나이를 어리게 추측하는 분들이 많지 말입니다.

요 앞에 보시면 비교적 정확한 제 나이 힌트가 있습니다. 몇화인지는 비밀ㅋㅋㅋㅋ.

내일 마루밑 아리에티 개봉일인데 전 이미 며칠전에 예매했어요! 오랜만에 영화관 놀러가야지! 포뇨포뇨보다 더 기대됨!! 전국의 영화관 중 한군데에서 저를 찾으시는분 용자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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