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의여왕-90화 (90/226)

<-- 6. 공작님, 제발! -->

***

라르슈는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장면에 경악하면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세이시아 님과 유렌이란 남첩, 둘이 잔디밭에 깔아놓은 천 위에서 거의 반라로 서로 뒤엉켜 있었던 것이다. 정원이라는 개방된 장소에서 말이다!

비교적 으슥한 공간이긴 하지만 분위기도 좋고 조용해서 고독을 즐기는 몇몇 사람들은 산책삼아 자주 오는 곳이다. 게다가, 보고 있는 사람은 혼자가 아니다. 라르슈는 전사의 감으로 반대편에도 누군가 이 비밀스러운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어차피 둘 다 남의 정사를 몰래 훔쳐보는 상황인데.

유렌이라는 그 남자는 남첩이라 여릿하게 얼굴만 반반하고 계집애 같은 성향일 거라는 그의 예상과는 달리 훨씬 등빨이 서고 남자다운 사람이었다. 남첩보다는 오히려 기둥서방 쪽이 더 어울릴 것 같다. 게다가 그는 의외로 사교성이 없어 남과 말을 잘 섞지 않았다. 싹싹하고 애교가 많아야 첩살이를 할 수 있을 거라는 라르슈의 편견을 확 깨뜨려 버린 유렌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모습은 남첩이라기보다는 거의 짐승과도 같은 성노예같았다. 흥분해서는 시아의 위에 허락 없이 올라타서 마구 허리를 흔들어대는 그 모습에 시아는 완전히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그는 미친 듯이 자신의 아래에 깔린 시아에게 애원하며 외치고 있었으니까. 어쨌든 그녀의 앞에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남자는 없다는 것이 판정났다.

하지만 라르슈는 자신이나 카딘과 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시아의 반응에 약간의 울컥하는 감정을 느꼈다. 나랑 할 때는 저렇게 울기까지 하며 느낀 적은 없단 말이다. 물론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할 정도로 흥분하는 모습도, 밑에 깔려서 앙탈부린 적도 없다. 그는 처음으로 접한 그런 시아의 모습에 흥분되었다. 억울하지만 남의 아래에 깔린 그녀의 모습이 의외로 큰 자극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응 여기, 여기인가요? 여기가 좋습니까?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알고 있으니까……."

유렌이 그렇게 외쳤을 때, 갑자기 라르슈의 어깨로 누군가가 손을 얹었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뒤를 훽 돌아보았다. 바로 뒤까지 오는데 눈치채지 못했다니, 어지간히도 빠져 있었나보다. 라르슈를 잡은 사람은 카딘이었다. 세리안의 말에 곧장 정원으로 온 그는 조금 정원안 깊숙히 들어가자 무언가를 넋놓고 바라보는 라르슈가 있었다. 그는 깜짝 놀라는 라르슈의 드문 반응에 조금 의아해서 라르슈가 보던 것을 자신도 보기 위에 발걸음을 옮겼다.

"대체 뭘 보고 있었던 거야?"

"자, 잠깐만!"

라르슈가 낮게 경고했지만 카딘은 이미 그 장면을 봐버리고 숨을 들이킨 후였다. 라르슈는 생각했다. 망했다. 하지만 결코 일부러 보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라르슈."

카딘은 충격받은 듯 가만히 라르슈를 불렀다. 평소라면 쌩깠을테지만 라르슈는 카딘의 기묘한 분위기에 자신도 모르게 대답해버렸다.

"뭐, 뭐야?"

카딘은 라르슈의 어깨에 턱하니 손을 올렸다. 그리고 벌컥 화를 냈다.

"당신만 이런 좋은 걸 혼자 보다니! 왜 날 미리 안불렀어!!"

"……."

***

어두운 밤이라 건물에서 나오는 빛으로 형체를 구분할수밖에 없지만, 정원 잔디밭에서 엉켜있는 두 남녀가 자신이 아는 사람들이라는 걸 확인하자 시렌느 가 기사단의 단장인 미쉘 라이언 경은 눈앞에 닥친 시련을 원망했다.

공작 각하! 어떻게 이런……!!

"아, 하응, 유렌……. 아아아, 거기, 거기이, 너무 깊어! 아하응, 그렇게……, 기분좋아♡ 넘 좋아아아♡"

평소 듣지 못했던 달콤한 음색에 그는 자신의 귀가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게다가 공작의 측실인 유렌 위스피닌의 목소리에도 평소 검 훈련을 할 때조차 듣지 못했던 거친 숨소리와 조신하지 못한 애원이 섞여 있었다. 라이언 경은 당황해서 벌개진 얼굴로 뒷걸음질을 쳤다. 심장이 기분과 관계없이 거칠게 뛰었다.

아직 미혼인 그였지만 질퍽질퍽거리고 끈적끈적끈적한 이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도는 안다. 공작과 첩은 비공식적으로 이렇고 저런 일을 할 수 있는 사이라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자신은 그저 정원을 잠시 산책하고 있었을 뿐인데 이게 무슨 봉변이란 말인가.

그는 재빨리 이 자리를 피하려다가 뒤의 나무기둥에 부딪혔다. 멈춰서서 멍하니 있던 도중 남녀의 목소리는 거의 절정을 향해 치달아갔다.

열락의 시간이 끝나고 시아는 유렌의 밑에서 추욱 늘어졌다. 조용하고 끈적한 숨소리 속에서 만족감이 묻어났다. 유렌은 빙긋 웃으며 시아를 잡아올려 귓가에 대고 무언가 속삭였다.

그는 휙 고개를 돌렸다. 이, 이, 이런 장면을 몰래 훔쳐보고 음심을 품는 것은 변태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래, 기사라면 이런 사적인 장면을 봐도 빨리 자리를 피하고 못 본 척하는 매너가 필요하다. 그러나 라이언 경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발걸음을 뗄수 없었다. 생전 처음으로 접하는 남의 정사 장면을 목격하고 땡 잡았다고 생각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는 분명히 남자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힐끔 시아 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마침 몸을 일으키던 유렌과 눈이 마주쳐 버렸다.

"……."

"……."

이후,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모르겠다고 라이언 경은 생각했다.

***

눈부시게도 밝은 정원의 잔디밭 아래, 한낮의 꾀꼬리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역시 좋은 검이군요."

유렌은 미스릴 재질의 파르스름한 표면을 한번 쭉 훑어보며 작게 감탄했다. 다른 기사들이 전부 그 비싸다는 드워프제 미스릴 검에 정신이 팔려있는데, 라이언 경은 머뭇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위스피닌 경도 좀 난감한 표정이었다. 양털처럼 조금 푸석거리는 느낌의 불그스름한 머리털을 하나로 묶은 남자, 첼시 경은 단장인 라이언경과 위스피닌 경 사이에서 흐르는 미묘한 기류에 고개를 갸웃했다.

유렌은 검을 단번에 뽑아 허공을 세로로 질렀다. 일반 롱소드에 비해 조금 무거운 듯도 하지만 그 정도 무게가 오히려 알맞았다. 힘으로 눌러 베기 적당한 무게중심에 완벽한 대칭, 역시 드워프 중에서도 최고의 실력자 축에 드는 카롯의 미스릴 검이었다.

지금까지 쓰던 것과는 조금 달랐으므로 손에 익도록 연습을 해야겠지만 이대로도 평소 실력 이상을 낼 수 있을 듯한 기분이다. 다시 시아님에게 데이트 하러 나가자고 말해 볼까? 전의 데이트를 어둠의 군단의 습격 때문에 망쳐버린 이후로는 집 밖에서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해본 기억이 없다. 이번에는 쓸만한 검을 차고 다닐테니 아무도 함부로 접근하지 않을 것이다. 유렌은 시아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기 위해 검 연습도 내팽개치고 본관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본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일거리였다.

"……내게서 검술을 배우고 싶으시다구요?"

아젤은 약간 상기된 얼굴로 유렌을 바라보았다. 어린 소년의 동경을 차마 무시하지 못하고 유렌은 곤란하다는 듯 되물었다. 아젤은 귀여운 뺨을 우물거리며 간절한 눈빛으로 그에게 말했다.

"네, 몇달만이라도 기본적인 검술을 가르쳐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게, ……플로렌스 아카데미의 체술 학부의 입학시험을 통과해야 하니까……."

"플로렌스 아카데미?"

그러고 보니 유렌은 플로렌스 아카데미 졸업생이었다. 열 다섯 살부터 열 일곱 살까지 3년만에 검술과 학문 과정을 수료했다. 비록 블루 로즈를 받지는 못했지만 그 당시에 그는 최고 수석으로 졸업했고 졸업 후 그에 따른 여러가지 제의도 많이 들어왔는데, 형제들의 질투 때문에 모두 거절하고 잠적해야만 했다.

이 현자님도 열 세살이라고 하니 곧 아카데미에 입학할 것이다. 현자라면 입학은커녕 오히려 교수로 들어가도 될 정도이기에 그냥 입학과정 없이 졸업장을 받는 시험만 치루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체술 학부?

"아카데미에서는 학문 계열의 전 과목과 마법 계열 이론 과목, 수식 과목, 체술 계열의 검술과 체술 과목을 수료할 생각입니다. 다른 쪽은 상관없지만, 저는 체술 쪽은 겨우 평균 수준이라서 위스피닌 공자님이 조금 도와주셨으면 해요."

확실히 아젤은 키도 평균, 체격도 평균이었다. 안 그래도 키가 큰 중부인에 비해서도 더 큰 성인 유렌이 보기에는 아이인 아젤이 완전 땅꼬마로 보일 정도다. 거기다가 피부는 눈처럼 새하얀게, 줄넘기 하나도 제대로 못할 백면서생처럼 생기지 않았는가.

유렌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거절하겠습니다. 저는 남을 가르치는 데 적합한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선생을 찾아보시는 것이 더 나을 겁니다."

아젤은 눈에 띄게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유렌은 흠칫했다. 이 꼬마, 내 앞에서만 이런 표정을 짓는 건가? 남들을 대할 때의 아이답지 않고 큰 표정변화가 없는 얼굴을 유렌의 앞에서는 감정이 풍부한 어린아이처럼 변화시킨다. 분명 이 자는 내게서 뭔가를 노리고 있다. 이유가 뭐지? 유렌이 긴장하고 있는 사이 아젤은 시무룩해져서는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이 없는데……."

"라이언 경이 있잖습니까!"

유렌은 나름 실력자인 기사단장 라이언 경을 지목했다. 그러나 아젤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라이언 경은 세이시아 님을 보조하느라 굉장히 바쁘셔서 제가 그런 요청을 했다간 방해가 될 거에요. 라이언 경을 더 바쁘게 했다가는 세이시아 님께서 힘들어하실걸요."

"그럼 세리……."

"세리안은 지금 기사단 일 때문에 매일 아침마다 출근하고 계십니다. 거의 얼굴 볼 시간도 없어요."

하긴, 그래서 요즘은 시아의 낮을 모조리 유렌이 독점하고 있다. 세리안이 바쁘긴 바쁜 듯 낮에는 출근하느라 시아에게 손도 못 대고, 이제는 거의 밤낮이 바뀌어 어젯밤에는 세리안이 유렌과 시아가 놀고 있는 침대 위에 막무가내로 끼어들었지.

나도 바쁜데. 시아 님이랑 데이트 해야 하는데. 유렌은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말로 꺼내지는 않았다. 대신 조금 굳은 표정으로 아젤을 바라보았다. 검술이라, 머리만 쓰던 어린 현자가 검술을 얼마나 배울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하루에 두어 시간쯤이면 시간을 못 낼것도 없다.

"……어쩔 수 없군요. 대신 그다지 오랜 시간을 내 드리지는 못합니다."

포기와도 같은 유렌의 말에 아젤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 어린 현자는 머리가 좋아서 그런지 의외로 영악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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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캐들이 헷갈리시는 분이 드디어 나오셨군요,

이쯤 되어서 다시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주요남캐-

유렌 - 백금발 엘프 혼혈

미르 - 빨간 드래곤

세르 - 시아 옵빠, 은발머리 드래곤

엘릭 - 마족 검은머리 오드아이. 예비 첩 츤데레

슈 - 엘프. 본명은 슐츠라윈 카르테인입니다. 얘 본명 헷갈리시는 분도 계실듯.

아젤 - 현재 유일한 쇼타캐.

-비주요남캐-

카딘 - 남부 출신의 노예로 시아에 대한 충성심이 엄청난듯

라르슈 - 아직 귀걸이의 비밀이 안 밝혀졌습니다! 금발.

멜, 루이 - 시아의 시종.

케이즈 - 유렌에게 150토크로 몸을 판 남자(?). 어둠의 길드 부길마입니다. 취미는 좀도둑질. 흰 피부에 보라색 머리가 포인트.

엘레스트라, 실피드, 등 기타 정령.

라이언 경 - 본명은 미쉘 라이언이니 미쉘이라고 불러야겠군요. 시아의 기사입니다. 30대.

제인 - 시아의 보좌관입니다.

레이니안 - 흑의 대공입니다. 시아 편의 대빵.

하민 - 미르 꼬붕.

황태자, 세자, 이루 등.

한 두어명 비주요남캐가 더 나올수도 있지만 일단 주요남캐들은 이걸로 끝입니다! 헷갈리시나요? 저는 헷갈린 적은 한번도 없지만 까먹은 적은 있습니다;

-주요여캐-

시아.

여캐는 안 헷갈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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