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공작님, 제발! -->
다음 날 아침. 제인에게는 문양이 새겨진 펜대, 네리아에게는 메이네 천 고급 잠옷,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념품 선물을 보냈다. 나는 단검이 들어있는 목재 상자를 들고 별관으로 종종종 뛰어갔다.
"출장 다녀온 아저씨가 딸한테 선물 사오는 것 같아요."
제인은 그렇게 불평했지만 고맙게 선물을 받았다. 집사장을 제외하고 우리 집에서 가장 까탈스러운 제인이 그렇게 평가했다면 아젤도 분명 선물을 기뻐해줄 것이다.
"아젤 님!"
어제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아젤에게는 연락이 가지 않았는지, 그는 나를 보고서 상당히 놀란 듯 하다. 하지만 곧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세이시아 님, 무사히 잘 돌아오셨군요. 어제는 미처 마중하러 가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별관의 2층, 아젤의 방문을 열고 그에게로 다가가려던 나는 멈칫했다. 키가……, 내 키가 작아졌다!!
……그럴 리가 없지. 아젤의 키가 큰 것이다. 으음, 조, 조금만 더 있으면 나보다 크겠는걸? 내가 가까이 가자 아젤도 눈치챘는지 곧바로 나와 그의 키를 대조해보더니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안 본 사이 많이 예뻐지셨네요, 세이시아 님은."
"아, 아젤님도 몇 개월만에 굉장히 키가 크셨어요!"
꺄아, 나보고 예쁘대!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과 아젤이 내게 말하는 것은 느낌상 상당히 달랐다. 왠지 아젤님은 절대 입에 발린 거짓말을 안할 것 같은 기분이라서 아젤님이 칭찬을 하면 세 배로 기뻐지는 것이다.
아젤은 키만이 아니라 얼굴도 조금 더 어른스러워지고, 머리도 긴 것 같았다. 그동안 자르지 않은 걸까? 언제나 단정함을 강조하듯 짧게 잘려 있던 아름다운 파란 색의 머리카락은 거의 목을 덮고 있었다. 끝을 묶어도 될 정도다. 나중에 머리 묶는 리본을 선물할까? 아젤 님은 왠지 흰색 리본이 어울릴 것 같다.
"케르타에서 있었던 일은 나중에 말씀드리고 아젤 님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어요. 그동안 새로운 것도 많이 접하고, 또 좋은 일도 많았어요. 그리고 이거 아젤 님을 생각하면서 선물로 사왔어요!"
나는 들고 있던 상자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아젤은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무 상자를 받아들어 뚜껑을 열어보았다. 푸르스름하고 둥근 보석이 가운데 박힌 은빛의 단검이 비로드에 감싸인 채 놓여 있었다.
"……아."
검집에서 꺼내진 단검은 그냥 봐도 좋은 검처럼 은빛의 날이 거의 하얗게 보일 정도로 잘 닦여 있었다. 아직은 반짝반짝한 새 단검이지만 아젤 님의 몸을 지키는 데 쓰이게 된다면 더 좋을 거에요, 하며 내가 말하자 그는 처음으로 내 앞에서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보였다. 마치 산타클로스에게서 정말 갖고 싶었던 생일선물을 받은 것처럼 환하게 웃었던 것이다.
"세이시아 님에게 이런 것을 받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정말로, 감사드려요."
나는 아젤과 마주보고 빙긋 웃었다. 귀여워라. 아젤님은 평생 안 크고 나랑 같이 살면 좋겠는데 말야.
***
한편, 세르는 시아가 너저분하게 쏟아놓고 간 가방을 정리하다가, 마땅한 주머니를 찾지 못해 비단천에 싸 놓은 어떤 물건들을 발견했다. 화려하게 보석이 박힌 값나가는 귀물들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신경쓰이는 것은 미스릴로 만들어진 반지와 팔찌였다.
"이건……?"
미스릴은 마력을 증폭시키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근처의 마력을 약간 흡수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척 봐도 이 미스릴이 다른 드래곤의 마력이 묻어 있는 물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실버 드래곤인 세르와 완전히 반대 성향을 가진 뜨거운 화기(火氣). 게다가 그 반지와 팔찌를 제외한 나머지 보석들은 거의 제국풍과 살짝 다르게 세공되어 있다. 즉, 처음에 시아가 가져간 보석이 아니라는 것이다.
***
비록 직속이지만 시녀나 기사에게까지 선물을 챙겨주는 주인은 없다. 라이언 경이나 네리아는 극구 사양하다가 결국 고마움을 표현하며 선물을 받고 감동했고, 이제는 세르와 유렌의 선물만 남았다. 세르에게는 수 놓은 손수건, 유렌에게는 검을 선물할 예정이다. 남아 도는 시간에 열심히 비단으로 수를 놓은 손수건에는 '세르'라는 애칭과 예쁜 은방울꽃이 수놓여져 있었다. 비록 처음엔 서툴렀지만 연습하니 그럭저럭 서툰 실력을 숨길 수 있을 만큼은 되었다. 게다가 시간을 들여 조금씩 침착하게 해나갔으니 성의가 없어보이진 않을 것이다.
나는 방문을 활짝 열고 세르에게 곧장 안겼다.
"시아, 너 누구랑……."
"세르! 이거 선물!! 내가 그동안 직접 만들었어."
곱게 접힌 손수건을 내밀자 세르는 조금 놀란 듯 말을 잇지 못하더니, 손수건을 받아
들어 펼쳐보았다. 순간 멍해진 그에게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응? 그런데 아까 무슨 말 하려고 했어? 누구랑?"
그는 손수건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가만히 미소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직접 오빠를 위해 수놓은 거야? 우리 착한 시아, 이리로 오렴."
세르는 내가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내 쪽으로 성큼 걸어와 나를 으스러지게 껴안았다. 직접 수놓은 손수건을 받은 게 기쁜지 안는 힘이 평소보다 강했다. 그리고 곧장 옆의 침대로 나를 끌고 갔다. 나는 짐정리를 마저 해야 한다는 사실에 움찔했지만, 세르가 전부 해 놨다는 소리에 곧 안심했다. 응, 그런데 뭔가 잊은 게 있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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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힌 미르의 진실... 나중에 유렌 경악률이 300% 상승하였습니다.
그보다 왜 다음 외전 잠숲공 안쓰고 본편이냐! 하시는 분들 있으려나 ㄷㄷ;
사실 백설공주도 거의 사막편 쓰면서 짬짬이 고치고 고치고 하며 쓴 겁니다. 스토리를 만들려면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ㄷㄷ; 잠숲공은 쉬울 줄 알았는데 이것도 꽤 어렵네요. 백설공주는 야하지 않다는 말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더 야한 동화를 쓸 수 있게 열심히 노력해야겠어요. 그런데 어쩌다가 내가 이런……;;
이번 챕터 끝나면 올리겠습니다! 악! 의뢰 받아놓고 늦게 올린다고 해서 죄송해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