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젊은 여공작과 사막의 황제 -->
미르는 아침부터 보이지 않았다. 대신 쪽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내가 갈 때까지 제국에서 기다려!」
애초에 가지고 왔던 짐도 별거 없었기 때문에 챙길 것은 많지 않았다. 입던 케르타의 옷을 벗어놓고, 마법 주머니에서 꺼낸 속옷과 긴 상의, 치마로 갈아입었다. 제국의 복식은 상당히 오랜만이다. 더워서 지금은 불편하지만 역시 제국의 옷이 나에게는 가장 편했다.
기념품과 선물들을 마법 주머니에 챙겨넣으니 나는 홀가분한 맨몸이 되었다. 역시 성능이 낮아도 편리하다니깐. 나머지 짐은 그 쪽에 있겠지?
멜의 도움을 받아 마차를 타려는데 그라시에 후작이 뒤에서 나를 불렀다.
"어?"
"어? 가 아닙니다! 인원이 늘었잖습니까?! 뭘 주워 오신 겁니까!!"
그라시에 후작이 가리킨 것은 검은 옷을 입은 라르슈와 다갈색의 케이프를 두른 카딘이었다. 허름한 노예 의복이 아니라 명백히 새 옷이다. 선물을 하는 마지막 미르의 배려였다.
"왕에게 받은 선물이에요. 신경 쓸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공작 각하, 위스피닌 공자께는 무어라 말씀하실 생각이십니까?"
"……."
그러게. 뭐라고 말하지?
뭐어, 그냥 시종일 뿐이긴 하지만 말야. 사실 멜과 루이도 유렌이 내게 붙여준 시종이었으니까 남자 시종이 둘 정도 늘어난다고 해도 별 문제 없겠지?
내 첩의 반응을 신경써주는 그라시에 후작과 내키지 않는다는 듯한 라이언 경의 시선을 슬슬 피해서 마차에 타고 휘장을 쳤다. 케르타 측에서 준비해 준 마차에 몸을 싣고 커다란 낙타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는 내 몸을 양쪽에서 카딘과 라르슈가 받치고 있었다. 맞은 편에는 물잔을 건네주는 멜과 루이가 있었다. 좁은 마차에 남자 넷이랑 같이 타니 좀 답답한 분위기였다. 가운데에 내가 있어서 그나마 살만 했다. 나는 카딘의 어깨에 기대 뺨을 부볐다. 까끌거리는 그의 노예 옷보다 이 실크 혼사의 감촉이 훨씬 좋았다. 잘 어울리기도 하고 말이다. 카딘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어두운 색의 천으로 내 몸을 덮어주었다.
"공작 각하, 기분은 괜찮으십니까?"
"으응."
아침에 급하게 준비하고 헐레벌떡 출발해서 마차에 타고 보니, 배웅하던 케르타의 귀족 중에서 미르는 없었다. 나는 괜히 우울해졌지만, 그래도 곧 따라온다고 했으니까 조만간 만나겠지.
나는 라르슈가 내게 좀더 접근하자 한 손으로 그의 무릎에 손을 얹었다. 그는 흠칫했지만 곧 손을 들어 내 손등에 얹었다. 둘의 너무 친근한 행동에 멜의 표정이 굳어지고 있다. 아직 어린 루이는 눈치만 보고 있었다. 나는 네 명의 남자들에 의해 묘하게 가라앉는 분위기를 없애기 위해 내 시종이 될 카딘과 라르슈에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시렌느 공작가는 꽤 위세있는 집안이라 아마 그 쪽에 도착하면 하인으로서 받는 교육이 필요할지도 몰라. 으음, 그 쪽에 가면 다 알게 되겠지만 내 첩의 이름은 유렌 위스피닌. 예쁜 백금발에 에메랄드 같은 눈동자색의 미인이지. 그리고 같은 성을 쓰는 가족 중에서 같이 사는 사람은 내 오빠 뿐인데, 오빠는 은색 머리의……."
***
올 때에 비해서 돌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금방이었다. 심심할 틈이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십여 일 후 드디어 내가 본 것은 그리운 제국의 황성이었다.
우리 집에 먼저 가고 싶었지만 이번 사절행에서 겪은 사고를 미리 보고해야만 한다. 나와 그다지 친하지는 않았지만 동행했던 귀족과 시종이 예측불가의 사고로 사망했다. 그리고 협상의 결과도 보고해야 했다.
여제가 금방 따로 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에 리더인 그라시에 후작과 부 리더인 내가 보고서를 써 올리고 사고에 대해 설명했다. 여제는 한동안 고심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 많았소. 이번 일에 대한 조사는 연합단원에게 맡기고 이제 푹 쉬도록 하시오. 그대들에 대한 포상과 격려는 조만간 있을 연회에서 발표하도록 하겠소. ……시렌느 공작, 처음 맡은 임무일텐데, 수고했소."
드디어 모든 절차가 끝나고, 너무 늦은 시간이라 황궁에서 하루 묵는 귀족들도 있었지만 나는 집이 멀지 않았기에 곧장 마차를 타고 저택으로 출발했다.
집은 저녁때인데도 불구하고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내가 온다는 전갈을 받고 준비한 모양이다. 정말로 내가 이 가문의 가주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수십 명의 하인들이 집 앞에 서서 나를 맞이해주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오래 집을 비운 것은 처음이었지 아마. 당시 차기 공작이었던 세리안이 오랫동안 나갔다가 돌아왔을 때도 분명 이렇게 사용인들이 대부분 집안에 있지 않고 밖으로 나왔었지.
그들에게 빙긋 웃어주며 집 안으로 들어가니 가장 처음으로 나를 꽉 껴안은 것은 유렌이었다. 큰 손도 따뜻한 체온도 여전했다. 나는 금세 발끝을 들고 유렌을 마주 끌어안았다. 정말로 보고싶었어!
사실 미르를 만난 후로는 생존의 위협을 느껴 너무 정신없는 나날들이 계속했지만 집으로 오는 동안 쭉 생각한 것은 유렌과 세르 뿐이었다. 매끈한 뺨으로 내 얼굴을 문지르던 그는 갑자기 내 허리를 부드럽게 안고 있던 팔에 힘을 주었다.
"……."
"……응?"
"저 녀석들은 누구지요?"
……그가 쳐다보고 있는 것은 내 뒤에 있던 카딘과 라르슈였다. 카딘도 단정하고 스타일이 멋졌지만 라르슈는 건들거리는 태도에다가 굉장히 잘생긴 얼굴이었기 때문에 유렌은 미간을 살풋 찌푸렸다.
"시종……?"
"거짓말. 저 둘에게는 당신의 향이 짙게 배여 있어요. 단순한 시종이 아닌 것은 알아요! 기껏 무경험인 남자시종 둘을 붙여줬더니 역시나 바람피운거야! 그 곳에서 몇 명이랑 잔 거지요? 말해봐요!"
랄까, 멜과 루이는 무경험이라서 선택한 거야? 테크니션의 남자 시종이라면 나랑 스캔들이 일어날까봐? 배려심 깊은 선택이긴 하지만…….
"세, 세명밖에……, 세 명과 밖에 안 했어, 저 둘은 케르타의 국왕이 나한테 준 선물이야. 정말 시종으로 쓰려고 데려왔어. 진짜진짜."
내 대답에 이어 뒤에서 세르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나오며 말했다.
"아아, 유렌, 너무 다그치지는 말지 그래. 세 명 정도는 괜찮잖아? 응응 우리 시아 왔어? 자, 오빠에게도 이리 와서 안기렴."
나는 달려가서 세르의 가슴에 포옥 파묻혔다. 세르는 나를 안고 한참을 가슴팍에 부비더니 겨우 놓아 주었다. 이러려고 파인 셔츠로 갈아입고 온 거구나! 나는 감촉이 좋은 그의 셔츠에 좀더 뺨을 부빗거리다가 얼굴을 뗐다.
"오빠, 보고싶었어!"
세르의 셔프 앞섶을 쥐고 그렇게 외치는 나의 뒤로 유렌이 바싹 달라붙어서 이중으로 껴안았다.
"시아, 저도 그동안 정말 보고싶었습니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에요. 걱정되서 못 참을 뻔 했습니다. 다음부터는 꼭 따라갈테니까 걱정 마세요."
유렌의 말에 나는 고개를 홱 들었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라니, 설마 습격 소문이 벌써 퍼진 건가?
"내가 몬스터한테 습격당했다는 거 어떻게 알았어?"
놀랍다는 듯 되묻자 갑자기 유렌과 세르의 표정이 굳었다.
"……몬스터?"
"…………무슨 말이지, 그건? 안전한 여행 아니었던가?"
……모르고 있었구나. 사실 걱정할까봐 숨기려고 했는데, 단박에 들키다니. 나는 뒤늦게 입을 막아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리고 그날 밤은 다친 곳이 없는지 아프진 않은지 세르와 유렌에게 온 몸을 철저히 검사당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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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음 챕터! 그 전에 외전 들어갑니다!!
외전은 두분 다 18금이상 수위를 신청해 주셨는데, 외전 동화라는 게 거의 줄거리의 연속이라.
백설공주는 수위가 그닥 높지 않은 편이고, 다른 건 아직 쓰는 중이라 어떻게 될진 모르지만 역시 노블에 올릴 정도는 아니게 될듯 합니다.
19금 까진 아니고 딱 18금인 그런 소설이랄까;; 그래서 노블 말고 요기 올릴게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