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의여왕-68화 (68/226)

<-- 5. 젊은 여공작과 사막의 황제 -->

***

내가 문득 정신을 차린 것은 미르가 내 다리 사이에 입을 대고 만신창이로 짓눌려진 포도알을 꺼내 삼켰을 때였다. 그는 땀투성이가 된 내 아랫배를 한번 할짝이더니 깨어난 나를 보고 미소지었다. 그 미소는 두려울 정도로 매혹적이었으며 아름다웠지만 나는 다른 의미로 소름이 오도돋 하고 끼쳤다. 미르가 살며시 내 배에 혀를 갖다대는 순간 드디어 정신을 차린 내 몸에서 미미한 이물감이 느껴졌다.

이 녀석은 정상위밖에 모르는 건지, 한 자세로 계속해서 수십 분을 당해버린 내 몸은 조금 움직이는 것만도 뻐근한 감각이 들었다.

"잘 잤어?"

미르의 느릿한 인사에 나는 기가 질렸다. 난 잠든 게 아니라 기절한 거였다. 관절이 약간 아프긴 해도 나는 금세 감각이 돌아온 몸으로 상체를 일으킬 수 있었다. 그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내 몸을 집중적으로 잡고 내리누른 허벅지나 허리는 붉은 자국이 남아있었다. 내가 미르를 노려보자, 그는 내 날카로운 시선을 부드럽게 마주보면서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 아파? 미안, 어제 나름대로 안 아프게 하려고 노력했는데, 역시 치료마법 써줄까?"

노력했다는 말은 사실인듯 몸에 크게 무리가 간 곳은 없었다. 막상 할 때도 그 엄청난 힘에 기겁할 정도로 놀라긴 했지만 이상하게 아프지는 않았고. 치료마법이 필요할 정도로 아프거나 쓰라리지는 않았다. 단, 여전히 뜨거워져 있는 내 다리 사이만 빼고. 나는 힘들게 몸을 뒤집었다. 엎드린 내 허리를 붙잡아오는 미르의 팔을 밀쳐내고 침대의 가장자리를 붙잡아 겨우 일어섰다. 뱃속에 가득 들어있던 하얀 액체가 아래로 주륵 흘러내렸다.

"으으, 끈적끈적해. 몇 번이나 안에다가 한 거야?"

"하ㅏ악하악 한번 더해도 돼?"

"안돼."

얼마 기절해있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이 녀석은 대체 얼마나 할 셈이야? 지치지도 않는 거야? 내가 지쳐서 더 서있지 못하고 베개를 붙잡은 채 엎드려서 숨을 내쉬자 갑자기 미르는 자신의 손가락을 내 벌려진 두 다리 사이에 집어넣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내 속살 안으로 헤집고 들어온 그의 손가락을 꾹 조였다.

"꺅! 뭐하는 거야?"

"얌전히 있어, 깨끗하게 닦아줄테니까."

그가 시전한 것은 워터마법이었다. 가끔씩 마른 식물에 물을 줄 때 유렌이 쓰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나는 흘러내리는 정액과 여전히 안에 든 정액마저 깨끗이 씻어내고 아래에서부터 내 몸을 씻어내고서 증발해버리는 깨끗한 물이 목 근처까지 뿌려지자 충동적으로 입을 갖다댔다. 그제서야 나는 굉장히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열심히 내 몸으로 떨어지는 물을 마시는 내게 미르가 곤란해하며 말했다.

"목말라? 옆에 물잔 있는데."

"물 더줘!"

내 요구에 미르는 내 옆에 있던 물잔과 냉각마법이 걸린 긴 주전자를 가리켰다. 그러나 나는 물잔에 더 가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그에게 요구했다.

"물 따라서 먹여줘."

"뭐?"

"빨리, 나 목말라!"

그는 알았다고 말하며 찬 물을 컵에 가득 따라서 내 입술에 대주었다. 비록 조금 서툴렀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 했다. 주전자 안에 있던 물을 전부 마시고서야 나는 한숨과 함께 다시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서 잠에 빠져들었다. 미르는 내 머리를 들어서 자신의 팔 위에 올려놓고는 내 몸을 껴안고 이불을 목까지 덮어주었다.

***

마케. 젤타 왕국과 아크샤 왕국과 하르아이나 제국의 세 나라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카덴의 중심지나 다름없는 곳. 이 마케는 수십년 전에 대륙의 기둥인 세 길드탑이 세워지고 그 길드를 향해 모여든 사람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큰 도시였다.

하르아이나 제국의 수도에서 대륙의 중심에 위치한 마케를 향해 일직선으로 가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그 방향은 수많은 산과 국경 검문소와 몬스터 주요 출몰지와 거친 골짜기가 연속으로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제국에서 루페닌 왕국의 숲으로 파견된 지원단들마저도 급한 임무임에도 불구하고 이리저리 돌아서 가는 길을 선택할 정도로, 직선으로 가는 것은 바보짓의 범위를 넘어서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직선 길이라고 과연 빠를까? 그 길에는 애매한 국경을 둔 옆의 젤타 왕국과의 국경검문소가 수없이 길을 가로막고 있다. 검문소를 겨우 지나왔다 싶으면 험한 산이 자리하고 있고, 산을 넘으면 국경검문소가 또 기다리고 있다. 검문이란 것이 그리 빨리 걸리는 것이 아닌데다가 어떤 검문소는 귀족들이 이동경로로 종종 지나가기에 귀족들의 검문이 오래 걸리고, 어떤 검문소는 상인들이 많이 다니기에 평민들의 검문이 매우 오래 걸린다. 차라리 빙 돌아가는 것이 물리적 거리는 많이 걸릴지언정 시간은 훨씬 단축된다.

유렌은 소드 마스터에 6클래스 유저인 자신의 실력과 선천척으로 엄청난 체력, 동패와 금패의 이중 신분증을 불법으로 잘 이용하고 가끔 뇌물도 찔러주는 방법으로 자그마치 7일만에 수도에서 대륙의 중심지이자 국경 중립지대에 도착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보통 방법이었다면 한 달은 넘게 걸려야 정상이다. 일주일간의 강행군으로 그는 꽤 피곤했다. 지금쯤 동시에 같은 곳으로 출발한 루페닌 왕국 지원단들은 반도 못 오고 찌질거리고 있겠지만 유렌은 남 일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제국 내에서라면 많이 돌아다녀 봤지만, 정식 허가를 받아야 하는 외국 여행은 한번도 해본 적 없었던 유렌은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혼자서 그럭저럭 마케의 쓸만한 여관을 찾아냈다. 푸른 창문이 달린 평범한 여관이지만 비수기인 요즘 시기에도 꽤 붐비고 있어서 이 부근에서는 유명한 여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렌은 지금 타인의 주의를 최소로 끌기 위해 낡고 평범한 여행자복과 검 한자루를 차고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남부인이 희귀한 것도 아닌데 괜히 몸을 다 가리는 로브를 입으면 오히려 더 눈에 띄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괜히 시비에 말려드는 것도 질색이었지만 괜히 사람 없는 여관에 혼자만 방문했다가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는 것도 꺼려졌기에 선택한 것이었다.

전 마을에서부터 계속 타고 온 갈색의 말을 마굿간에 맡긴 후에 여관의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자 딸랑이는 흔한 쇠방울 소리가 들렸다. 남색의 긴 치마 위에 약간 물이 묻은 에이프런을 두르고 바쁘게 손님을 맞이하고 있던 금발머리의 예쁘장한 여급은 또 손님이 들어오자 예의상 한번 웃어보이며 인사했다. 지금은 한창 저녁시간이라 손님이 많았던 것이다.

"어서오세요! 방이 필요하십니까, 식사가 필요하십니까?"

"식사, 지금 아무거나 가장 빨리 되는 걸로 2인분. 침대 하나인 작은 방 이틀치. 얼마입니까?"

그는 망토와 검이 달린 여행자복에 후드와 두건을 눌러쓰고 있어 얼굴이 그늘져 보였지만 키나 체구가 굉장히 크고 겉으로 보이는 피부도 그을려 있어 험악한 용병이라고 생각할 만한 외견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그에게서 나온 것은 매우 낮고 부드러워서 듣기 좋은 미성이었고 말투 또한 드물게 공손했다. 여종업원은 놀라서 유렌의 얼굴을 다시 올려다보려다가 그가 한 말을 떠올리고 급히 대답했다.

"네, 네! 알겠습니다. 1인실은 하루에 80토크, 하루씩 더 묵으시면 5토크 DC해서 전부 1실버 55토크 선불입니다. 식사는 후불 계산이에요. 곧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유렌은 여종업원이 잠시 관심을 보인 것에 괜히 긴장해서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카운터로 가 숙박계를 쓰고 은화 하나와 동화 두 개를 냈다. 쓸데없이 많은 일행과 합석되는 건 싫었기 때문에 가장 구석에 있는 2인용 탁자에 앉았다.

주문했던 대로 식사는 금방 나왔다. 최대한 빨리 마케에 도착하느라 오늘 아침부터 쉬지 않고 달렸기 때문에 체력소모가 커서 피곤했다. 2인분의 식사는 두 명이 먹기에도 넉넉한 편이었지만 거의 한나절을 굶었던 그는 남기지 않고 전부 먹었다.

아까 그 여종업원이 식사할 때조차 후드를 벗지 않은 유렌을 보더니 호호 웃으며 복숭아 타르트 한 조각을 가져다 주었다.

"서비스 디저트에요, 손님. 굉장히 빨리 드셨네요? 하긴, 몸집이 크고 근육도 있으시니까 그 정도는 평소 식사량이겠죠? 마케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역시 용병?"

복숭아 타르트는 다른 손님들에게도 다 서비스한 것인 듯 다른 테이블에도 놓여 있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계속 아무것도 안 먹고 말을 타고 온 거라 특별히 체력보충을 한 것이지만 그는 여종업원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여종업원은 뭔가 신비로워 보이는 유렌에게 흥미가 생긴 듯 계속 말을 걸었지만 그는 달콤한 시럽이 가득한 타르트를 빤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시아님은 무사히 계실까? 역시 따라가봐야 하는 것 아니었나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전혀 위험하지 않은 임무였기에 유렌은 다른 일행들과 기사를 믿고 그녀를 홀로 보냈다. 안전함이 보증된 여행로로만 이동하고 다른 남자들도 많으니 당연히 그녀를 지키겠지. 위험한 일이라고는 전혀 없으니까. 개중에서 가장 튼튼한 시종으로 둘이나 딸려 보냈으니 혹시나 모를 위험에서도 안전할 것이다.

과일 타르트……, 가져다주면 굉장히 좋아할 텐데. 하지만 타르트가 거의 두 달이 넘는 시간동안 포장지 속에서 가만히 버텨줄 리가 없었으므로 그는 시아에게 이 타르트를 갖다주는 건 포기했다. 그 순간 또다시 문이 딸랑이며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여종업원은 그제서야 접시를 치우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이번 손님은 유렌이 일부러 꺼려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즉, 짙은 녹회색의 로브로 온 몸을 칭칭 감아두르다 못해서 후드를 쓰고 넥 마스크로 입과 코까지 가린, 매우 음침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혼자다. 어딜보나 누구든 관심을 가질 만한 모습의 그 남자에게 여종업원은 조금 멈칫하다가, 옆에 서빙중이던 다른 남종업원을 불렀다.

그 남종업원은 망설이다가 그 손님에게 말을 걸려고 했다. 하지만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만큼의 미성이 그 음침한 로브 남자에게서 들려왔다.

"며칠 묵고 싶은데요."

남자 목소리임은 분명한데 그 울림은 마치 아까 여관 문에 달린 방울의 쇳소리가 거슬리게 들릴 정도로 아름다운 은방울 같았다. 맑고 예쁜 목소리에 놀란 종업원은 고개를 빠르게 끄덕이며 당황한 듯 말했다.

"아, 엣, 네, 알겠습니다. 숙박계를 쓰셔야 하기 때문에 묵는 일수를 임시로라도 정해주셔야 합니다."

"그럼 일단 하루로 하지요. 언제 떠날지 모르니까요. 돈은 선불인가요?"

"네, 이쪽으로 오십시오."

카운터로 걸어가는 그 남자의 모습을 유렌은 무심코 바라보았다. 숙박계를 쓰는 그 남자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여종업원이 놀라서 중얼거렸다.

"어머, 이름이 '이에르'? 신기하네요, 저기 저 분도 오늘 오셨는데 이름이 '이에르'라는데요. 혹시 무슨 특별한 뜻이라도 있나요?"

그 말에 유렌은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로브의 남자도 놀란 듯이 동시에 유렌을 바라보았다. 여종업원은 직원이니까 당연히 숙박계를 볼 수 있을테지만 이에르라는 뜻은 모르는 게 당연했다. 이에르. 엘프어로 '무명'이라는 의미다.

흔히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을 때 대체어로 사용한다. 마케의 조그만 여관 숙박계에 '유렌 위스피닌'이라고 적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유렌은 곧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저 남자가 엘프이건 아니건 나와는 상관없지. 애초에 그가 들어올 때부터 엘프라는 것은 어느정도 눈치챘지만 엘프는 어머니 외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불확실한데다가 자신이 하려는 일에 별 연관도 없었으니 무시했을 뿐이다.

그 남자도 대충 이에르의 의미에 대해 얼버무리며 무마했다. 그리고 유렌 바로 옆의 빈 2인용 테이블에 앉은 후 저녁식사를 주문했다.

"혹시 채식 메뉴는 있습니까?"

"아……, 채식주의자이신가 봐요? 저희 여관에선 신전에서 수행하시는 몇몇 사제분이나 채식주의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채식 메뉴가 딱 네 가지 있습니다만 주문하시는 분은 거의 없어서요."

그림과 글이 적힌 메뉴판을 건네주며 여종업원이 싹싹하게 웃어보였다. 이에르라는 그 남자는 주문하는 와중에도 유렌을 연이어 힐끔거리며 관찰했지만 유렌은 식사를 끝냈기에 바로 일어나 열쇠를 들고 자신에게 배정된 방으로 올라갔다.

***

다음 날 아침 그는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다. 늦게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른 시각이다. 이런 곳에서 아침 검 수련을 할 수는 없었으므로 차라리 체력 보충을 하는 것이 더 나았다. 유렌은 아침 식사를 빵이나 풀로 간단하게 때우고 곧장 짐을 챙겨들었다.

가져온 짐이라고 해봐야 별 거 없었다. 국경을 넘을 때 썼던 금패와 동패 두 가지, 귀족 행세를 하기 위해 가져온 고급 옷 두벌과 튼튼하고 허름한 여행복 두 벌. 청소년 시절 틈틈히 위스피닌 영지 밖을 돌아다니며 모았던 금화들. 그리고 시아가 지원해 준 말 하나와 다른 여행경비용 보석들. 검과 단검과 사냥용 칼, 튼튼한 가죽 부츠.

그가 10년전부터 주로 써왔던 이 낡은 검은 기사들이 가장 흔히 쓰는 보급용 롱 소드로서 평민들 입장에서야 비싼 검이겠지만 귀족들, 특히 소드 마스터의 실력을 가진 유렌에게는 한없이 허접한 검이나 다름없었다. 유렌도 좋은 검을 하나 장만하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히 있겠지만, 검을 쓸 일이 없었는데다 여건도 안 되어서 그냥 이걸로 쭉 사용해왔다.

요리를 해본 적은 없었지만 마른 빵이나 말린 건량들, 정 안 되면 사냥을 해서라도 배를 채울 수는 있었다. 한창 여름이라 먹을 수 있는 풀들도 많았다. 문제는 몬스터였지만, 그것도 그럭저럭 혼자 해치우면서 올 수 있었다. 마을을 거의 거쳐서 오지 않았기에 여행경비도 상당히 아낄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 유렌의 수중에 있는 금액은 예상보다 꽤 많았다.

그는 금화와 보석을 전부 한 주머니에 쓸어담았다. 그는 마법 물품 제작 전문이 아니지만 5클래스씩이나 되는 마법을 며칠 내내 걸어 만들어낸 경량화 주머니가 있었기에 그다지 무겁지 않게 짐들을 챙길 수 있었다.

금화가 들어있던 낡은 가죽 주머니를 끝까지 털어내자 먼지와 모래, 자갈, 토크 동화 두세 개, 그리고 낡고 오래된 묵직한 로켓 펜던트와 쇠로 만들어진 정체불명의 조각 몇 개가 나왔다.

그 주머니는 유렌이 어렸을 때부터 독약이나 검, 가끔 보석들이나 돈, 잡동사니를 넣고 다니던 오래된 주머니였다. 이 주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가진 물건 중 하나로서, 유렌이 소유할 수 있던 얼마 안 되는 물건들 중 하나였지만 사용빈도가 높아 굉장히 낡아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남긴 물건들은 극히 적었다. 가끔 아들인 유렌에게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엘프어나 식물에 대한 지식을 학습시키던 것 이외에는 시체같은 눈을 하고 있던 어머니는, 노예로 이리저리 팔려오면서 단 두개의 물건만을 몸에 지닐 수 있었다고 한다. 사용자 인식 마법이 걸린 낡은 펜던트와, 엘프 노예에게 반드시 채우는 마나 봉인 기구.

이미 노예로 잡혀온 이상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지만 그 묵직한 펜던트는 마법이 걸려 있어 몸에서 강제로 뗄 수 없었기에 그녀가 가질 수 있었다. 물론 펜던트가 비싸 보였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떼냈겠지만 단순히 금속을 대충 녹여 만든 로켓 펜던트의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다가 표면이 구겨지고 엉망으로 녹슬거나 낡아 있어서 아무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유렌이 네 살때, 막 엘프어나 다른 엘프의 지식들을 전부 배우고 살아남는 방법을 습득하자마자 그의 어머니는 그것으로 족하다는 듯 스스로 치욕스러운 삶을 끝냈다. 그리고 유렌에게는 펜던트와, 그 펜던트가 담긴, 어머니가 직접 바느질해서 만든 가죽 주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유골만 남게 되었다. 혼혈인 그의 습득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천재적일 정도로 빠르고 완벽하게 그의 어머니가 가르친 것들을 배워왔지만, 유렌은 그 때문에 자신의 어머니가 더 일찍 죽어버렸다고 후회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실력을 남에게 숨기게 된 가장 큰 계기였다.

……물론 엘프의 사고방식에 정신적으로도 익숙해진 지금은 차라리 그녀에게 견디기 힘들었을 그 삶이 빨리 끝나서 평온을 찾게 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엘프는 동족의 유해에 집착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렌은 그 가죽 주머니와 펜던트만큼은 지금껏 쭉 가지고 있어 왔다. 가죽 주머니는 쓸모가 있어서라고 해도 펜던트는 대체 어째서였을까?

지금 당장 쓸모는 없었기 때문에 그는 펜던트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묵직한 금화와 보석이 담긴 보라색의 비단주머니를 들고 여관 밖으로 나섰다.

그가 첫번째로 간 곳은 마탑, 즉 푸른 별의 정보길드였다. 유렌은 카운터를 맡아보는 여마법사 직원에게 정보 신청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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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유렌의 모험기(먼치킨) 시작?

모험물은 꽤 오랜만에 써보는 거라 왠지 새로운 느낌이군요ㄷㄷ.

포도(19금) 단역출현인데 인기 많군요. 심지어 바나나보다 인기가 많음. 포도의 행방을 묻는 댓글까지 달리다니!

원래 유렌편은 훨씬 더 일찍 등장했어야 했는데 시아 얘기 쓰는거에 정신팔려서 이제서야 등장하는군요. 유렌편은 나중에 챕터 중간마다 시간흐름에 맞게 끼워넣어야겠음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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