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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여왕-63화 (63/226)

<-- 5. 젊은 여공작과 사막의 황제 -->

아까는 그가 정신없이 내 뺨이나 코에 키스를 하긴 했지만 입술이 입술과 직접 닿은 적은 처음이었다. 미르헬의 뜨겁고 보드라운 붉은 입술이 내 입술을 덮고 안절부절 못하다가 곧 혀를 집어넣어 억지로 내 닫힌 치열을 벌렸다. 엄청난 힘으로 하는 막무가내식 키스에 나는 저항하지 못한 채 곧장 그의 혀를 입 안으로 받아들일수밖에 없었다.

도발이 너무 과했나. 이런 상태의 수컷을 괜히 건드렸다가 피 보는 건 나 자신이기에 나는 미르헬의 손이 내 옷안을 파고들어도 막지 않았다. 그의 혀가 내 혀를 집어삼킬듯 강하게 빨아들였다. 서툴게 입 속을 헤집는 미르헬의 혀는 묘하게 어색한 감이 있었지만 나는 설마 그가 처음 키스하는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방조하듯 미르헬의 행동을 가만 내버려두었고, 그는 한참 내 입술을 농락하다가 잠시 떨어져나갔다. 지금은 회의 시간이고, 다른 귀족들이 전부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미르헬은 빤히 나를 바라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다. 다들 나가."

정말 폭군이 따로 없었다. 그의 업적이나 다른 귀족들의 태도로 보아, 보통 때에도 그가 이렇게 막무가내로 굴었다고는 볼 수 없었지만 오늘의 미르헬은 그들 눈에도 조금 위험해 보였는지 귀족들은 말없이 굴러나갔다.

"하지만 전하, 오늘은 제국의 사신에 관한 문제……."

"나가."

단, 하민과 루센만 빼고. 그들은 최고로 왕의 신임을 받는 재상답게 무언가 더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미르헬은 단 한 마디도 용납하지 않았다. 미르헬은 눈빛으로 싸늘한 경고를 날리고, 마지막으로 회의실 옆을 지키던 노예가 그의 눈치를 살피며 문을 닫고 나가자 무릎 위의 나를 그대로 자신이 앉아있던 푹신한 상석 의자에 내려놓았다.

그제서야 나는 고개를 들었다. 미르헬은 화난 것 같기도 하고, 질투하는 것 같기도 하고, 흥분한 것 같기도 했다. 그 선명한 붉은 눈동자로 나를 응시했다. 나는 지금껏 한 번도 느낄 수 없었던, 비정상적으로 뜨거운 열기에 숨이 막혔다.

그는 불의 기운이 너무 강했다.

"……잠깐……!"

사막의 햇볕 아래 그대로 노출되었을 때만큼이나 너무 뜨거워서 잠시 멍해져 있는데, 미르헬은 내 상태에는 아랑곳않고 손을 움직여 허리띠를 아래로 풀어내렸다. 금방 옷을 고정하던 허리끈이 둘다 풀리고 나는 처음에 입었던 속옷 차림이 되었다. 넓은 폭의 리본을 감아 묶은 것 같은 그런 속옷은 그냥 매듭 하나만 풀면 완벽히 알몸이 된다.

그의 손에 의해 희고 하늘거리는 겉옷은 금방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속옷을 벗기려는 미르헬의 어깨에 손을 얹고 밀었다.

"잠……, 그만해! 미르……."

다시 입술을 그의 혀가 스쳤다. 그리고 곧 입안에 가득 들어오는 물컹한 혀 때문에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행동은 생각보다 너무나 서툴렀기에 테크닉으로 인해 정신을 못 차리는 일이 일어나진 않았다. 대신 뜨거운 열기와 강한 힘에 내 머릿속은 어질거릴 정도였다.

"안돼……. 아파."

"아프다고?"

아래로 끌어내려진 속옷 때문에 내 가슴이 공기중에 노출되었다. 미르헬은 낮게 중얼거리며 내 가슴을 입술로 베어물었다. 젤리보다도 더 말캉한 젖가슴은 미르헬의 손에 마음대로 달라붙어서 모양이 변해갔다. 굉장한 감촉이네, 하며 그가 감탄하듯 속삭였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허리가 흠칫하며 떨렸다. 그는 섬세한 손가락 끝으로 내 몸의 떨림을 전부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이 아픔을 의미하는지 쾌락을 의미하는지 정도는, 미르헬도 알고 있었다. 멈춰 있던 내 팔이 다시 그를 밀어내려고 하자, 미르헬은 오싹한 웃음을 지었다.

"소용없어."

나는 눈을 딱 감고 유혹의 정령력을 사용했다. 그는 전혀 멈춰줄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내 쪽에서 위협을 느껴, 나는 일단 미르헬의 정신을 홀려서 조종할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조금씩, 적정선을 지키며 점점 더 강하게 미르헬을 '매혹'했다.

하지만, 마력이 점점 더 강해질수록 그는 행동을 멈추기는커녕 더욱 자극받아서 숨이 거칠어지며 움직임을 빨리했다. 다리 사이에 속옷 한 장을 걸치고 닿아있는 단단한 그의 것에 나는 움찔해서 그의 팔에 잡힌 온 몸을 비틀며 반항했다.

"그만둬, 명령이야, 그만 해! 그만하란 말야!!"

나는 유혹의 마력을 완전히 개방했다. 어느 정도가 미르헬에게 적정량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보통 사람에게 사용할 분량을 벗어났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일반인이라면 거의 미치거나 반쯤 정신이 나가서 내 말을 무조건적으로 받들 터인데, 미르헬은 이상하게도 오히려 더욱 더 흥분해서 나를 놓지 않았다. 그는 히죽 웃으며 마지막 한 장의 속옷까지 찢어내듯 벗겨버렸다.

"향이 점점 짙어지는군, 정신조종계열 페로몬인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겐 통하지 않아."

나의 마력은, 아찔할 정도의 정욕만을 그에게 안겨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제서야 이상을 눈치챘다. 지금 손가락 끝 하나도 꼼짝할 수 없게 내 몸을 붙잡는 힘은 결코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유혹에 걸린 주제에 내 명령이 통하지 않다니. 미르헬은, 분명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 뭐지?

"너 정체가 뭐야!"

"가만 있으랬잖아. 이대로 얌전히 내게 안기면 화풀어줄게. 날 질투하게 만든 벌이야. 어차피 네가 아무리 거부해도 결국은 내 뜻대로 될 테니 소용없어, '나의 종달새'."

그 루비같은 눈동자는 나를 내려다보며 비웃는 것일까. 나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소리쳤다.

"이거 놔! 애초에 난 종달새따위가 아니야, 노예도 아니라고! 나는……."

"제국의 공작이겠지."

내 말을 끊고 미르헬이 단호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 발언에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는 채였지만, 그 미소는 비인간적일 정도로 고고함과 오만함이 담겨 있었다.

"……너……, 어떻게……."

"이틀 전에 제국의 사신단이 도착해서 안전성 미경고 문제로 우리 측에 따지더군. 네가 발견된 곳은 수도 입구 바로 앞의 사막이었어. 그리고 네가 걸어온 흔적은, 하르아이나 제국 사신단 일행이 습격을 당한 곳과 같은 방향. 이 정도면 충분히 추측할 수 있겠지. 사신단의 명단은 이미 마탑을 거쳐 우리 국가에 미리 도착해 있었으니까. 그 중에 여자는 단 한명이야. 하르아이나 제국의 세이시아 시렌느 여공작."

내 일행이 살아있었어?!! 그리고 이 녀석, 내 정체를 알면서 일부러 모르는 척 한 것이다. 덕분에 나는 불안에 떨며 주변 눈치만 살펴야 했지. 하지만 일행이 있다면 곧장 그들과 합류해서 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르헬은 집착과 욕망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며, 두 팔로 단단히 날 가두었다.

"하지만 말야, 돌아갈 기대는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네가 공작이건 아니건 나는 평생 널 놓아주지 않을 테니까. 아니, 놓아줄 수 없어. 나의 사랑스런 종달새, 세이시아."

일순 그 집착에서 전생에 느꼈던 두려움을 본능적으로 기억해 버린 나는 주체할 수 없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몸을 잔뜩 웅크리며 마지막 보루로서, 있는 힘을 다 짜내 바람의 최상급 정령을 소환했다. 이렇게 된 이상 공격밖에 없었다. 갖고 있던 마나의 일정량이 빠져나가고, 흰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나타난 실레스틴에게 나는 명령했다.

"시, 시, 실레스틴!"

〈어떻게 해드릴까요?〉

"바람의 칼날!!"

주인이 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아랑곳않고 느긋하게 서 있는 실레스틴에게 나는 정령책에서 본 흔한 기술명 중 하나인 바람의 칼날을 외쳤다. 보통 바람의 칼날은 공기를 압축해 물체를 양단할 수 있는 살생기술이었다. 기술명도 갑자기 생각난 것일 뿐 생전 처음 써 보는 기술이었지만, 처음부터 바람을 다룰 줄 알았던 나에게 연습 같은 것은 필요없었다. 그러나 보통 때의 나라면 적당히 조절했겠지만, 이 때는 당황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최상급 정령이 이름만 최상급이겠는가, 전장에서는 실레스틴 하나로 300명의 인간을 단번에 몰살시켜버릴 수 있는 엄청난 파괴력의 정령이었다. 그러나 실레스틴의 공격을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걸로 매우 간단하게 저지해버린 그는 그저 놀랍다는 감정만을 살짝 내비쳤다.

"최상급 정령사? 정령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다고는 생각했지만, 분명 마나량은 아주 적었는데……. 뭐, 상관없지. 저항하는 게 더 흥분되니까."

"시, 시, 싫어어어어!!!!"

얘 뭐야! 진짜 변태같아 잉잉. 소드 마스터 중급과 소환된 최상급 정령은 거의 동급이다. 이 남자는 소드 마스터 중급 이상이라는 것인가? 말도 안 돼! 소드 마스터는 대륙에서 단 여섯 명이고 중급 이상의 소드 마스터는 대륙에 단 셋밖에 없다. 그리고 그 중 하나는 하르아이나 제국의 이트리샤 대공이었다. 나머지 둘도 결코 왕족이 아니다. 그럼 미르헬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소드 마스터?! 나는 이를 악물고 실레스틴을 역소환하고 엘레스트라를 불렀다. 이 녀석은 불 속성 같으니까 물이 더 효율적이겠지.

"에, 엘레스트라, 얼음……, 꺄악!"

"성가시군."

미르헬이 느릿하게 말하는 동시에 허공에 불의 창이 나타나 막 형성되려는 거대 물고기를 꿰뚫었다. 크리티컬 히트가 떴다. 한순간 머리가 얼얼하게 울리는 듯한 충격이 전해졌다. 엘레스트라를 소환하는 데 신체에 영향을 줄 정도로 큰 마나가 든 것이 아니라, 다행히 마나가 역류하지는 않았지만 강제 역소환의 충격은 상상 이외였다. 한순간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몸의 감각이 일순 경직되었다. 미르헬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자신의 옷소매로 부드럽게 내 코를 닦아주었다. 역소환의 영향은 신체에도 미친다던데, 사실이었나 보다.

"흐응, 코피가 나잖아. 예쁜 얼굴 다 버리겠다. 저항은 그만둬."

"이……, 이 괴물!!!"

"괴물이라……, 글쎄."

7클래스격의 대마법사의 마나로도 실레스틴을 서너번 소환하면 지쳐버린다. 물론 내 마나는 그 정도로 많지는 않다. 순전히 친화력 하나만으로, 일반인이 실프 한 마리를 소환하는 마력량으로 실레스틴을 소환할 수 있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물질계의 존재로서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미르헬도 이 때 내가 인간이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고 나중에 알게 되었다.

"시, 싫어, 싫어---!!!!!!"

나는 양 팔이 묶인 채로 있는 힘껏 발버둥쳤지만 미르헬의 힘 앞에는 전혀 소용없었다. 순간 닥쳐온 공포감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내 눈물에 조금 움찔했지만, 그래도 나를 안은 팔을 풀지는 않았다.

"흑, 싫……, 미르, 헬……, 아앗……!"

미르헬은 애틋한 눈동자로 잠시 나를 바라보았으나, 눈물에 젖은 내 눈으로는 그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혀로 부드럽게 내 눈가를 닦아주던 그는 더 이상의 저항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내 입을 그의 입술로 막았다. 내 가슴을 더듬어 부드럽게 만지는 그의 손은 멈추지 않는다. 그 손길에 반응해버리는 스스로를 믿을 수 없어서 나는 또다시 미르헬의 혀와 입술을 물어뜯으며 반항을 시작했다.

"으아아앙!"

"가만히 있어, 제발, 아프게 하지 않을 테니……, 세이시아."

애타는 한숨이 섞인 미르헬의 낮은 달램은 내 울음소리에 섞여 잘 들리지 않았다. 그때, '네가 정 싫으면 그만둘……까?'라는 말이 미르헬의 입속에서 이어진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힘껏 미르헬의 어깨를 깨물었다.

"싫어싫어싫어----!! 누군가 도와줘어어어---!!!!!! 실레스틴!"

나는 이번에 소환하면 분명 몸에 무리가 갈 것을 알면서도 마지막 마나를 전부 짜내 한번 더 실레스틴을 소환했다. 실레스틴의 공격 따위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미르헬은 가만 내버려 두면 제풀에 지쳐서 내가 나가떨어지려니 하고 속옷 하의를 마저 벗기려고 손을 들었다.

"윽, 이런……."

그가 손을 멈칫하자, 나를 잡아누르던 팔 힘이 풀린 것을 감지한 내가 그 때를 놓치지 않고 힘껏 미르헬의 어깨를 밀어버렸다. 하지만 내 뒤에 받치고 있는 것은 의자의 등받이였기에 멀리까지 도망칠 순 없었다. 반면, 미르헬은 인상을 사정없이 찡그렸다. 실레스틴이었다면 무시했겠지만, 이번 것은 미르헬도 쉽게 감당할 수 없는 녀석이었던 것이다. 나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떨리는 몸을 양팔로 감싸 가렸다. 그런 내 몸을, 부드러우면서도 따스하게 누군가가 끌어안았다. 흐릿한 눈 앞에 새하얀 천이 보였다. 마력의 휘말림도 없이 순식간에 나타난 정령. 분명, 이것은 정령의 느낌이다. 바람의 최상급 정령인 실레스틴보다도 훨씬 강한 바람의 기운…….

실크처럼 보드랍지만 가벼운 묘한 감촉의 천으로 만들어진 옷소매가 내 눈가를 스쳤다. 나를 끌어안은 흰 옷을 입은 남자는 천천히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낯선 온기. 처음이었지만, 왠지 느낌은 낯익었다. 멍하니 고개를 드는 내 눈앞에, 분명히 내가 본 적이 있는 남자의 얼굴이 들어왔다. 등 아래로 길게 휘날리는 순백색의 머리카락. 그리고 마치 거울같은 연청록의 눈동자.

내가 이 세계로 오게 된 원인. 처음으로 만났던 이계의 정령이 내 눈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플로라가 실레스틴을 정신없이 불러대길래 와 봤는데, 발정난 불도마뱀이 꽃봉오리에 홀린 건가.〉

내게 향하는 시선은 따스했지만, 말투만큼은 시니컬하게 빈정거리며 그는 미르헬을 향해 말했다. 미르헬은 갑자기 나타난 남자에게 전혀 의문을 표하지 않고, 대꾸했다.

"실피드……."

"으에?"

미르헬의 말에 나는 몸을 틀어서 다시 그 백발 남자를 바라보았다. 흰 옷의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

〈플로라, 괜찮아?〉

나를 내려다보며 걱정스레 묻는 그의 연록색 눈동자를 바라보던 나는 어이없다는 듯 한 마디를 내뱉었다.

"시……, 실피드?"

처음 만나면 이름을 안 가르쳐 준 것에 대해 화를 내려던 것도 잊고서 나는 넋을 잃고 바람에 휘감기는 실피드의 흰 옷자락만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가 다급히 근처에 떨어져 있던 옷을 주워 대충 걸쳤다. 실피드는 내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더니 다시 미르헬에게 시선을 주었다. 미르헬은 실피드에겐 눈도 돌리지 않고 나를 쳐다보았다.

"너 정령왕도 소환할 수 있었던 건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에 실피드가 내 어깨를 감싸쥐며 미르헬에게 말했다.

〈난 소환된 게 아니다. 그나저나 네 녀석, 이 어린애를 태워 먹으려고 작정한 거냐? 이게 무슨 짓이지?〉

실피드는 내 앞에 서서 미르헬과 나를 가로막으며 따졌다. 미르헬은 못 들은 척 인상을 구기며 고개를 돌렸다. 나는 실피드의 옷자락을 꾹꾹 잡아당겨 미르헬을 가리키며 물었다. 인간은 아닌 것 같은데, 대체 미르헬의 정체는 뭐길래 보통 인간은 평생 가도 보지도 못한다는 정령왕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보고, 그 정령왕의 말을 멀쩡한 얼굴로 씹을수 있는거지?

"저기, 실피드. 미르헬의 정체를 알아?"

〈새끼 도마뱀이야. 색깔 빨간 거. 본명은 모르지만 성체가 된 지 얼마 안 된 것 같군.〉

간단한 실피드의 설명에 미르헬이 끼어들었다.

"미르헬이 본명이 맞아. 그리고 빨간 도마뱀 따위가 아니라 드래곤의 레드 일족이다. 지금까진 인간의 왕인 라이만 키시이렐의 이름으로 유희하고 있었을 뿐이야."

유희란, 일순의 장난. 드래곤인 미르헬은 인간인 척 잠시 놀이를 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간단히 정체를 밝혀도 되는 거야?

"그러니까 너도 정체를 말하지 그래? 실피드에게 반말을 할 수 있는 걸 보면 분명 너도 인간의 삶에 끼어들어 놀이를 하는 이종족일텐데. 내게도 정체를 들키지 않을 정도로 강한, 에이션트급 드래곤?"

지금까지가 인간으로서의 유희였다고 하면, 나에게 느꼈던 감정도 전부 유희인 것인지. 세르는 분명히 내게 유희가 아니라고 밝혔지만 미르헬은 정말로 장난일 뿐이었는지, 팔짱을 끼고 서서 아무것도 읽을 수 없는 보석같은 눈동자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미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나는……."

〈유희 따위가 아니야. 플로라는 아직 유생체의 정령이다. 지금은 인간의 몸에 들어가서 성장하고 있는 중이지만 성체가 되면 꽃의 정령왕이 될 거야. 너 따위의 꼬마 드래곤이 소유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네가 플로라의 애인 중 하나가 된다면 모를까, 잡아서 키우려는 생각은 하지도 마.〉

내 말을 끊고 실피드가 보란듯이 경고했다. 미르헬은 조금 놀랐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도 아직 어린 정령이 생물의 몸에 들어가서 자란다는 말은 몰랐나 보다. 실피드는 절대 나를 건드리지 말라고 단단히 경고를 하고 다시 정령계로 돌아갔다. 필요하면 언제든 자신의 이름을 부르라는 말과 함께.

***

갑자기 텅 빈 회의실 안에 둘만 남아서 매우 뻘쭘한 분위기가 되었다. 나는 방금까지 울어서 따끔따끔한 눈가를 문지르며, 어설프게 걸친 겉옷을 다시 더욱 어설프게 묶었다.

미르헬은 내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려 그를 노려보았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나를 마주 응시했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너, ……너어……, 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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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편부터 미르헬 괴롭히기 대역전 리버스.

용량이 늘지 않았나염?

초반에 10~14kb를 지향한 것치고는 요새 용량이 늘고 있습니다(맛보기 공지편들은 제외). 완결났을 시 전체 편수를 좀 줄이기 위해 한편당 용량을 늘리고 있어요. 16~20kb 이상으로 점점 늘어날듯. 하지만 하루에 쓸 수 있는 양은 한정되어 있으니 이틀에 한번씩은 못올리는날이 있을지도?

이거 결코 적은게 아니에여!!! 편수당 평균 6~8kb가 조아라 소설들의 보통 분량이라고 하니까 ㄷㄷ;

작가말은 읽는 사람도 있고 안 읽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별로 읽으라고 강요하진 않습니다. 소설 관련 중요한 공지의 경우는 글 상단에 적거나 따로 공지에 적어올리지만 작가말은 그에 비해 소설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거나 사소한 내용들을 적습니다.

〈하지만 소설에 대한 추가 정보나 자신의 덧글질문에 대한 답변을 얻고싶으시면 그 편수의 작가말을 읽어주세요!〉

강요는 안해요! 근데 읽으면 좋잖아요?〈 소설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하고 읽어주시는게 좋을 것……같아요;;;

……근데 작가말 안 읽는 사람들은 아예 스크롤 자체를 소설 아래론 안내리시는건가;; 대여섯번씩 같은 글을 작가말에 쓰면 가끔 스크롤 내리다가 스치듯이 읽을 법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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