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젊은 여공작과 사막의 황제 -->
*막장변태주의*
미르헬의 말에 잘 생각해보니, 일단은 그에게 잘 보여서 나쁠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그는 이곳에서 어느정도 권력이 있는 왕자같았다. 잘 하면 왕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처음 보는 나한테 이렇게나 잘 대해주는 걸로 보아 성격이 원래 좋은 왕자일지도. 조금 건방지기는 하지만, 정체도 알 수 없는 내 무례를 전부 참아주는 걸로 보아 그다지 포악한 성정은 아닌 듯 했다.
물론 잘 해주는 이유가 뻔해 보였지만 말이다. 그렇다쳐도, 여전히 그를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었으니 어느정도 경계를 푸는 척만 하고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말했다.
"좋아, 입을테니까 시녀 불러줘."
"시녀? 그런 건 여기 없어."
미르헬은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방금 음식 가져왔던 그 여자들은 시녀가 아니고 뭐냐? 하지만 내 이런 말에 미르헬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여긴 귀족가가 아니라 궁이라구. 걔네들은 사용인이 아니고 전부 내 소유의 궁녀들이야. 아아, 물론 그녀들은 전부 네 아래가 될 거야. 넌 내가 가장 총애하는 애완 종달새니까."
종달새 드립좀 닥쳐.
"그럼 이건 어떻게 입으란 거야? 난 이런 처음 보는 옷 혼자 못 입는단말야."
"당연히 내가 입혀주는거지."
미르헬은 그렇게 말하곤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반쯤 침대에 걸쳐서 누운 상태로 덮쳐오는 그에게 발길질을 했다. 꺼져! 무슨 개수작이야?! 이 막장 변태같으니라고!!!
***
시아는 만난지 겨우 한 시간째인 남자가 갑자기 끈적하게 성희롱을 해오는 상황이 전혀 달갑지 않았지만, 미르헬은 그저 그녀를 귀여워해주지 못해서 애가 타기만 했다. 그러나 자신의 종달새가 별로 아프지도 않은 보들보들한 맨발로 걷어차며 명백한 거절의사를 표하자 아쉽다는 듯 뒤로 물러설……, 리가 있나.
미르헬은 그녀의 거부를 무시하고 바동거리는 가는 팔다리를 잡아 쥐며 시아의 조그만 몸 위로 올라탔다. 으흐흐. 잠들어 있는 모습도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는데, 깨어 있는 모습도 오그라들도록 귀여워서 참을 수 없었다. 저항하는 그녀의 보드라운 어깨 살갗을 충동적으로 이로 콱 깨물었다. 너무 세게 물면 아파할 거 같아 그저 귀엽다는 의미로 가볍게 잇자국만 내 주었다. 이 정도면 안 아프겠지?
"아악! 물지마, 아파! 이거 놔아아!"
"흠, 살살 했는데 그런데도 아팠어? 그럼 좀더 약하게 물어줄게."
"물지 말래도, 병신아!!"
시아는 비명을 지르며 미르헬의 어깨를 치거나 밀어내며 온갖 악을 다 쓰다가 통하지 않자 그의 팔을 온 힘을 다해 깨물었다. 미르헬은 귀여운 시아의 행동이 너무도 사랑스럽다는 듯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팔에 남은 작은 치아 자국을 혀로 한번 할짝이고는, 다시 입술을 옮겨가 시아의 보드라운 뺨을 가볍게 쪽 빨아들였다. 말랑말랑 매끈매끈한게 완전 죽이네 이거.
"후우……, 쪽, 쪼옥, 쪽쪽쪽쪽. 냠냠 쪽, 쭈우우욱."
한참 물고핥고빨고를 반복하던 미르헬은 시아를 놓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녀의 피부에선 굉장히 달달하면서도 기분 좋은 맛이 났다. 혀가 아릴 정도로 전해져오는 강렬한 촉감에 미르헬은 갈증이 나 다시 한번 더 뺨을 핥으며 입맞춤을 반복했다. 그리고 촉촉하게 젖은 입술을 시아의 보송보송한 귓볼에 대고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으음, 사랑스러워. 아무리 빨아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아. 그렇다고 삼켜버리긴 또 아까운데……."
시아는 키스마크가 군데군데 잔혹하게 남은 뺨을 질색이라는 듯 문지르며 미르헬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조금 잔인한 듯 했지만,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의 위에 올라탄 미르헬의 고간을 힘껏 올려찼다. 미안하지만 변태에겐 이게 약이다. 하지만 미르헬은 남자가 아닌지, 오히려 시아의 공격에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매력적으로 히죽 웃어보였다. 시아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눈을 깜박였다. 네놈 거시기는 돌로 만들어졌냐?! 무슨 마법을 쓴 거야? 왜 멀쩡한거야?
"아아, 자극하는 거 좀 봐, 심장이 오싹오싹해. 역시 귀여워서 못참겠어. 너, 몇살이야? 섹스해도 되는 나이인거야? 그 유렌인가 세르인가 하는 남자가 있던 걸로 봐서 경험이 있어 보이는데……."
미르헬은 재촉하듯 시아에게 물었다. 케르타의 왕으로 유희 중이었는데다가 내궁의 하렘까지 차려놓고 있지만, 미르헬은 남부인도, 인간도 아니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남쪽의 사회상과는 달리 여자의 과거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인간의 나이는 여전히 헷갈린단 말야. 특히 그녀는 중부인이라 더 헷갈렸다. 일단 가슴을 보면 꽤 성장한 것 같지만, 주름 없이 탱탱한 얼굴을 보면 10대 초반으로 보이기도 하고. 미르헬은 생각했다. 그래서 직접 물어보았지만 귀여운 종달새의 얼굴은 갑자기 새파랗게 질려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에 아직 성교를 요구하기엔 조금 이른가 싶었던 그는 아주 조금만 더 참아주기로 했다.
지금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다른 인간 여자와 몸을 섞는데서 나오는 쾌감보다는 이 귀여운 종달새를 빤히 바라보기만 하며 느끼는 기쁨 쪽이 더 컸던 것이다.
미르헬은 생소한 감정에 이유 없이 기뻐하며 시아를 껴안아 흔들며 달래주었다.
"괜찮아. 아직은 첫날이니까 좀더 쉬게 해줄게. 자, 그럼 옷입자, 귀여운 나의 종달새."
"……."
시아는 미르헬을 잠시 바라보더니, 포기한 듯 그가 이불을 걷어내는 손을 가로막지 않았다. 미르헬은 정말로 충실하게 옷만 입혀 주었다. 물론 속옷차림의 시아의 몸을 황홀하다는 듯이 정신없이 눈으로 훑기는 했지만, 금세 얇은 바지를 입히고 그 위에 넓은 천으로 된 치마를 걸쳐서 허리띠로 고정시켰다. 그 와중에도 미르헬은 시아의 뽀얀 속살을 정신없이 바라보며 진짜로 덮칠까 말까 고민 중이었다.
***
옷은 아까 그 궁녀들의 옷과는 달리 노출이 매우 심하진 않았다. 신부의 베일같은 반투명하고 새하얀 두건을 머리에 두르게 하고 파란 보석이 달린 머리띠를 뒤집어씌웠다. 그리고 매우 부드럽고 폭신한 천이 덧대진 가죽신발을 신겼다. 게다가 몸 여기저기에 장신구들을 주렁주렁 달아놓았다. 금으로 된 목걸이와 팔찌와 발찌, 귀걸이, 반지까지.
옷은 꽤 예쁜 무늬였는데, 제국의 복식보다 케르타의 건조하고 뜨거운 기후에 잘 맞았다. 가벼우면서 헐렁헐렁하고 통풍이 잘 되는 옷이었는데 미르헬은 그 위에 금실로 수가 놓여져 있는 하얀 겉옷을 덧입혔다. 입고 보니 옷보다 장신구 무게가 더 무거울 지경이다.
"자, 가자."
내가 밥먹는 내내 누워서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기에 게으르고 귀찮은 걸 싫어하는 성격이 아닐까 했는데, 미르헬은 갑자기 성실하게 벌떡 일어나서 내 손을 잡았다. 나는 방금 식사하고 나니 너무 피곤해져서 조금 쉬고 싶어 그대로 침대에 앉은 채 뻗댔다.
"나 귀찮아. 어디 가려고?"
"널 자랑하러."
무슨 자랑이냐고 묻기도 전에 미르헬은 나를 번쩍 들어서 마치 두세 살짜리 아이를 안듯 그렇게 안아올렸다. 아까의 그 무식한 힘은 역시 착각이 아니었다. 내가 이래봬도 성인 여성인데, 그렇게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안다니. 유렌처럼 근육이 확실히 잡혀있는 것도 아닌데 힘은 괴수 수준이었다. 그러고 보니 세리안도 꽤 가는 몸에서 비정상적일 정도의 힘이 나왔었는데. 하긴, 세르는 드래곤이니까.
나를 안고 일어선 미르헬의 붉고 긴 머리가 엉덩이 아래까지 찰랑이며 늘어졌다. 사내자식 주제에 머리는 되게 기네. 멍하니 생각하고 있으려니 페로몬 같은 달달한 향기가 묘하게 코끝에 느껴졌다. 그리고 조금 뜨거운 불의 향기. 몸에 와닿는 미르헬의 체온은 보통 정도였는데 왜 이렇게 뜨거운 기운이 느껴질까?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의 옆모습이 매우 가까이서 보였다. 잡티 하나 보이지 않는, 마치 최고급 종이처럼 새하얀 살결은 만져보고 싶을 정도로 부드러워 보였다. 상대적으로 붉어 보이는 입술, 매끈하게 뻗은 목덜미와 높은 콧날의 비율은 웬만한 여자와도 비할 수 없을만치 에로한 분위기가 났다. 얼굴만 보면 꼭 큰언니라고 부르고 싶은 느낌이었다.
조각상처럼 차가워 보이는 그의 잘 세공된 육체는, 그의 팔에 안긴 지금에서야 온기를 가진 생물의 몸이라는 것이 실감날 정도였다. 살며시 손가락을 뻗어 미르헬의 뺨을 꾹 눌러 보았다. 탱글탱글한게 폭 들어갔다. 그는 약간 놀란 듯 내게로 고개를 돌리더니 나와 눈을 마주치곤 그 서늘해 보이는 눈매를 금세 부드럽게 휘었다.
방 안을 나오자마자 나는 정신없이 주변을 살폈다. 처음 오는 케르타의 왕궁이란 점도 있었지만, 일단 여기서 나갈 방도를 찾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화려한 분위기의 궁은 아마, 미르헬의 말에 따르면 케르타의 가장 안쪽, 즉 왕이나 왕가 식구들의 거처, 그리고 왕의 하렘이 있는 내궁이었다. 어쩌면 왕을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거라곤 직위가 낮아 보이는 자들 뿐이었다.
붉은 옷을 입은 궁녀들이 종종 복도를 걸어다니다가 미르헬을 보고 곧장 무릎을 꿇고 신에게라도 경배하는 것처럼 엎드려 고개를 깊숙히 조아렸다. 나는 보통의 국왕에게도, 심지어는 우리 나라의 황제에게도 하지 않는 예법에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는 것은 기사가 왕이나 레이디에게 취하는 예로서 존재하지만, 두 무릎을 다 바닥에 대고 고개를 땅에 닿을 듯 절하는 풍습따위는 제국은 물론이고 아크샤나 라콘 왕국에서도 있을 수 없다. 그 예법은 신관이 신상을 앞에 두고 취하는 가장 큰 경배법이었던 것이다. 물론 보통때는 그냥 고개를 숙이거나 손을 맞잡는 정도지만.
북쪽의 제국과 반대로, 남쪽의 케르타와 인다스 왕국은 신분격차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심하다던데, 그래서인가.
미르헬은 그런 인사를 받아주기는커녕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곧장 앞으로 걸어갔다.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내가 있던 궁 밖을 나서니 처음 보는 열대의 식물들로 화려하게 장식된 정원과 잘 닦인 길이 보였다. 그 길을 따라 조금 걷자 붉은 벽돌의 궁이 있었다. 내가 알기로 하얀 내궁은 왕이나 그 식구들이 거주하던 곳, 붉은 내궁은 그 왕의 후궁과 궁녀들이 거주하던 하렘이라고 들었다. 헐. 지금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붉은 벽돌의 궁 근처로 발을 들이자마자 붉은 옷을 입은 궁녀들이 넘쳐났다. 그러나 더 안쪽으로 가자 이번에는 푸른 옷과 몇몇 노란 옷을 입은 여인네들이 미르헬을 보더니 무릎을 꿇고 인사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미르헬에게 안겨서 빤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케르타는 왕실 예법이나 규칙이 엄격하게 지켜지지만, 그 규칙이라는 것이 내 입장에서 보면 실용성도 없고 어이도 없는 것들이 많아서 읽어보니 기가 막혔지만, 그래도 일단 아젤님의 수업이니 열심히 들었다. 이 곳이 케르타의 왕궁이라는 것을 알자 이전에 배웠던 것들이 조금씩 기억나기 시작했다.
사막은 여러 개의 부족국가들이 넓지만 쓸모없는 모래 황무지에서 부족한 물이나 땅 등을 걸고 전쟁을 하고 있었지만, 바로 20년 전, '케르타'부족 출신의 한 젊은 남자가 뛰어난 머리와 압도적인 무력으로 족장이 되어 통일을 이끌었고, 사막 부족 대부분의 통합을 이루어 지금과 같은 '케르타'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케르타는 사막 부족들의 일반적인 문화나 풍습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진, 새롭지만 또한 역사가 깊은 왕국이라 해야 할 것이다. 궁중 예법이나 케르타의 법도 등이 그 오래된 역사에 속했다.
국가 체제적으로 보아 '연합국'이라는 통칭이 적당하지만 왕의 권력과 그 왕을 섬기는 충실함은 웬만한 왕국, 아니 제국 못지 않았기에 지금의 케르타는 뭐라고 딱히 부르기엔 애매해져서 그냥 '케르타'라고만 사람들에게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뛰어난 왕이라면 비록 찌질한 불모의 땅을 가진 국가라고 할지언정 제국의 칭호를 얻게 되는 날도 머지않았다고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물론 우리 제국 입장에서야 코웃음치고 있지만 말이다.
여하튼 그 역사 깊은 케르타의 궁중법도는, 수천 년 전의 과거, 사막의 제국이자 모든 사막 민족들의 뿌리인 '태양의 나라'에서 따온 것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고대국가에서는 일부다처제가 없었다. 단지, 모든 국민이 남녀를 불문하고 '전사'로서 교육받고 크며, 후계를 가지는 일은 남녀간의 합의를 통해 이루어지며 결혼풍습이 일체 없고 모든 남녀가 평등하게 대우받는 곳이었다고 한다.
일부다처제라는 것은 그 태양의 나라가 멸망한 후 흩어진 남부인 부족들이 전쟁을 하느라 줄어든 남성의 수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였다. 물론, 평민들은 일부다처 그딴거 없다. 오히려 부족끼리의 전쟁이 멈춘 지금 와서는 여자가 부족할 정도인데 뭐. 이 곳의 일부다처는 오직 권력가나 부자들을 위해 만든 제도였다. 지금 케르타에 이 하렘이 있는 걸 보면 그 제도는 그대로 따왔던 것이다.
하렘의 여자들이 입은 옷 색으로 그녀들의 신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시종-나중에서야 이자들이 시종이 아닌 '노예'라는 걸 알았다-들이나 궁녀들은 대체로 갈색 피부의 순혈 남부인이었는데, 왕의 후궁들은 피부색이 하얀 중부인들도 몇몇 섞여 있었다. 하긴, 그러니까 왕자인 미르헬이 저렇게 새하얀 피부색이겠지.
그냥 왕이 생각없이 사들여 모아놓고 전시만 하는 불쌍한 후궁은 노란 색의 옷, 그리고 한 번이라도 왕이 성은을 내린 후궁은 푸른 색의 옷을 입는다고 했다. 그 밖에는 왕이 총애하는 후궁일 경우 왕이 직접 자주색 옷을 선물해주고, 정식 왕비일 경우에는 오렌지색의 옷을 입을 수 있다. 그런 풍습은 옛 케르타 부족의 부족장이나 권력가가 각자의 집에 하나씩 가졌던 하렘-이 경우에는 궁녀가 아니라 그들의 아내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따온 것이다.
이 방안의 꼴을 보니 왕의 성벽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주색은 없고 수십명이 푸른 색이잖아? 이 얼굴도 모르는 변태 국왕은 처녀만 먹고 버리는 취향인가 보다. 그래도 왕비는 있을 것 아닌가. 일부다처의 나라답게 왕이 여러 명의 정식 부인을 취하는 것이 허용된다더라. 현 케르타의 왕비는 총 세명이다.
세 왕비는 나이와 순서에 상관없이 동등한 권력을 갖지만, 지금은 그 중 첫째 왕비가 낳은 장남이 현재 왕세자와 가장 가깝다고 한다. 물론 왕이 지금 30대로 정정하니 당분간은 계승받을 일이 없겠지만.
그런데, 왕자가 보통은 자기 아버지의 하렘에 이렇게 마음대로 들어와도 되는 거야? 왕세자일 경우에야 하렘이 궁 내에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이 붉은 벽돌의 건물은 틀림없는 왕의 하렘이었다.
내가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바닥에 엎드려 미르헬의 눈조차 마주보지 못하는 후궁들을 제치고 오렌지빛의 케르타풍 쉬폰 드레스를 걸친 옅은 갈색 피부의 미녀가 나긋나긋한 몸짓으로 걸어오며 눈웃음을 지었다. 그 피부색은 다른 남부인들보다 밝았기에 아마 중부와 남부인의 혼혈인 것 같았다.
"황제 폐하, 당신의 비 메르아가 인사 올립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하렘의 홀 내부에 가장 푹신해 보이는 소파에 걸터앉아 있던 미르헬이 그녀를 힐끔 바라보았지만 곧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의 무릎 위에 앉아서 미르헬이 건네주던 과일주스를 빨다가 순간 멈칫했다.
……황제? 누가? 쟤가?
건방진 케르타의 왕실에서는 공공연히 왕을 황제라고 부르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다고는 들었다. 미르헬이 말하던 제국 드립도 나는 그냥 넘겨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당당히 들은 적은 처음이다.
랄까, 얘가 진짜 이 케르타의 왕이야?!! 왕자가 아니라? 근데 왜 이렇게 젊어? 게다가 왜 아깐 그렇게 바보짓을 한 거야?!!
이 녀석이 사실 케르타의 건국왕이자 냉철한 두뇌와 카리스마를 지닌 최강의 왕이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반패닉 상태에 빠져 있는 나를 힐끔 바라보던 메르아라는 여자가 굉장히 놀랐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곧 노골적으로 흐느적거리는 에로한 몸짓으로 미르헬 옆에 바싹 달라붙었다.
"폐하, 저 여자는 대체? 게다가 처음 보는 얼굴인데……."
미르헬은 나른한 손짓으로 자신의 팔에 감겨드는 메르아의 손을 쳐냈다. 그리고 방금까지 내게 달콤하게 속삭인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 여자를 바라보는 미르헬의 눈은 결코 내가 생각했던 멍청한 왕자의 것이 아니다. 비소와 경시가 담긴 눈으로 하렘의 여자들을 훑어보던 미르헬은 천천히, 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대답했다.
"글쎄, 나의 종달새보다도 못한 여자들에겐 이제 질렸어."
"……예?"
메르아는 뜻밖의 반응에 움찔했지만, 미르헬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메르아의 뒤를 이어 같은 오렌지색 옷차림의 여자 둘이 매력적인 미소와 부드럽게 살랑이는 몸짓으로 홀 안으로 들어왔다. 한 명은 짙은 레드브라운의 곱슬머리를 틀어올려 묶은 작은 체구의 남부인이었고, 한 명은 금발에 녹색 눈동자를 가진 흰 피부의 중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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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파탄범 시아.
드래곤 미르헬은 아내건 자식들이건 나라건 다 버리고 시아를 따라가겠죠 묵념ㅠ.
추천수가 평소의 1.5배~2배정도밖에 안되지만 그래도 특별히 연참해드립니다. 근데 대체 추천수 1000개 채우기가 왜이렇게 힘들죠? 선작이 거의 2500 넘으니까 쉬울줄 알았는데ㅠ. 조회수는 천명 가까이 되는데 작가말 읽고 추천 눌러주신분은 반도 안되는듯;;;
사막의 왕국이나 하렘에 대해 검색해봤지만……. 일부 생활상 정도만 참고하고 나머지는 다 제가 그냥 적당히 지어내기로 했습니다. 즉 역사적 고증따위 전혀 없는 짬뽕입니다. 이건 뭐 역사공부도 아니고 너무 헷갈림;
저 위의 옷 색깔에 대해서도 들은 것 같았는데 지금와서는 자료를 찾을수 없어서 마음대로 지어냈습니다.
그러니까 판타지잖아요 ㄷㄷ 〈멋대로.
하지만 '이건 누가 봐도 말이 안 된다'는 걸 아시는분께는 좀 덧글이나 쪽지로 찔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전편에 시아가 멍청해보인다는 의견은 예상했던 내용이었습니다. 저도 쓰면서 '이건 좀 멍청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어린 정령으로 세상물정에 아주 밝지만은 않은 주인공을 쓰기 위해 그 정도는 감수했음. 애가 순수한 꽃의 정령이어야 하는데 너무 사악하고 영악해도 이상하잖아요. 요즘 트렌드는 사악인것같지만. ㄷㄷ.
어쨌든 너무 바보같아도 주인공이 아니니까 물이 보충된 지금부터는 좀 머리좋고 능력있게 써……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