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의여왕-59화 (59/226)

<-- 5. 젊은 여공작과 사막의 황제 -->

*공지이지만 아래에 본문 있습니다!*

네, 저는 이제 확실히 알았습니다ㅋㅋㅋ.

마나모으는법 묻는 덧글은 저 놀리려고 일부러 다신 거죠? 그렇지 않고서야 전편에 그렇게 길게 공지해놨는데 그 편수 밑에 또 그런 덧글이 달릴리가 없어!!! 으아아!!!

이제 더이상 마나에 대한 언급이나 답변은 안하겠습니다. 개별설명과 전체설명 합해서 거의 10번은 설명한듯 하네요ㅠㅠㅠ 절 이상한 쪽으로 혹사시키지 말아주세요;; 이건 뭐 마나모으기 설명캠페인 주최장도 아니고;;

소설이나 소설 내용과 직접적으로 관련있는 질문이라면 10번이 아니라 100번 1000번을 물어보셔도 작가의 의무로서 다 답해드릴수 있지만, 이건 소설과 직접 관련도 없고 오히려 웹사이트 서비스와 관련있는 문제를 작가인 저한테 자꾸……(이후 내용은 전편 작가말에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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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다행히 넘어지던 자리에 있던 멜이 나를 껴안듯이 받쳐줘서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얼떨떨해져서 멜의 어깨를 껴안았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역시 남자 시종이라 그런지 몸이 보기보다 탄탄한 게, 쿠션감은 없었지만 부딪혀도 아프진 않았다. 멜이 자신의 회색 머리와 너무도 대조되는 새빨간 얼굴로 당황해서는 그대로 굳은 것이 느껴졌지만 일단은 바깥 일이 우선이었다. 넘어진 마차 때문에 멜의 위에 거의 올라타다시피 일어서서 위의 창문으로 몸을 빼냈다.

바깥은 그야말로 피투성이였다. 몬스터의 붉은 피가 사방에 튀어 있고, 마부는 말들을 진정시키느라 정신없었다. 기사들이 마차를 둘러싸고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었는데 역시 황궁에서나 각 가문에서 뛰어난 실력자들만 골라왔다는 말이 사실인지 비교적 여유로워 보였다.

몬스터는 개 같기도 하고 표범 같기도 한 거대한 짐승이었다. 그러나 늑대나 야생개는 아니었다. 분명 몬스터. 검정에 가까운 회갈색의 털을 가지고 많이 굶주린 듯 이 쪽을 노려보는 그들은 노란 색의 핏발선 눈에 기형적인 발톱과 여우처럼 큰 귀, 그리고 수많은 이빨을 가지고 있었다.

몬스터 쪽도 수가 많기는 했지만 다행히 기사들이 자신보다 몇 배는 더 강하고, 우리들의 일행이 먹을 것을 많이 가지고 다니는 상단이 아니라 특별히 얻을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그들은 동료 몇 명이 죽어나가자 곧 꼬리를 말고 도망쳤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탄 마차가 넘어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반토막난 몬스터의 시체가 날려가서 내 마차에 부딪친 것이다. 그에 놀란 말이 날뛰었고, 마차가 크게 휘청하며 넘어졌다. 핏자국과 몬스터의 하체 반토막이 마차 옆에 놓여져 있었다. 마부는 지금 막 말을 진정시켰는지 말 목줄을 매달고 질질 끌려가 먼지투성이가 된 옷을 털고 있었다.

최전선에 나가서 싸웠는지 붉은 피로 범벅된 하프 플레이트 차림의 라이언 경이 내 마차와, 고개를 내밀고 있는 나를 바라보더니 기겁을 하고 외쳤다.

"공작 각하!!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마차를 일으키고 싸움터에서부터 멀리 달려와 겨우 재정비를 마친 후 기사들은 냇가를 찾아 피투성이가 된 옷과 갑옷을 손질했다. 몸을 씻고 피냄새를 없앤 후에 다시 플레이트를 걸쳐입은 라이언 경이 내가 탄 마차 문을 두드렸다.

"공작 각하."

그는 내가 멀쩡한 얼굴로 문을 열어주자 놀란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아까, 몬스터의 시체를 보고 분명 충격받았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오지 말라 했던 것인데……. 몬스터를 본 게 처음이 아닙니까?"

몬스터 시체가 아니라 사람 시체를 봤지. 몬스터는 처음이지만, 딱히 무섭다거나 징그럽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몸 사리는 남자 문관 귀족들이나 몇몇 어린 시종들은 몬스터가 무서워서 마차 안에서 벌벌 떨거나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경험이 많은 나이든 귀족이나 몬스터 토벌 경험이 있는 기사들은 그러지 않았지만. 처음인 내가 마차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도 몬스터의 잔해를 멀쩡한 얼굴로 훑어본 것을 알고서 그들은 내가 보기보다 담이 크다고 생각했는지, 앞으로도 몬스터가 나올 때는 굳이 창문을 가리거나 나에게 조심을 요하진 않았다. 게다가 귀족들 그 자신조차도 안전한 길만 골라 왔다는 생각과 정예병들에 대한 신뢰로 약간 해이해져 있었던 점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방심하다가 도착을 앞둔 시점에서 결국 예측을 벗어나는 큰 사고가 나고 말았다.

***

말을 더위에 강한 낙타로 바꾸고, 마차도 사막에서 쓰는 짐마차로 변경하고 나서 케르타와의 국경을 넘어 사막으로 진입했을 때였다. 점점 더워지자 일행은 밤에 별과 방향기(마법 나침반 비슷한 것)에 의존해서 행군하고, 낮에는 천막을 치고 잠드는 것을 반복했다. 지금은 밤으로, 나는 마차 안의 희미한 마법등에 비추어 책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 정령의 정석은 이미 독파 완료했고, 지금은 겨우 1클래스를 모아 정령마법을 시도해보려는 생각이었다. 드래곤처럼 심장을 마력의 근원으로 삼는 보통의 마법사와 다르게 나는 피부호흡을 하며 몸 전체에 마구잡이로 마나를 쌓았기 때문에 난 그저 겉으로 보기엔 남들보다 마나가 조금 더 많아 보일 뿐이었다.

어차피 어디에 마나를 쌓건 일정량 이상의 마나, 즉 약 3클래스의 마나가 모이면 저절로 마나 핵이라는 것이 생겨서 그것 중심으로 마나가 모인다고 하지만, 원래 마법사도 아닌 세이시아의 체질로 그렇게까지 마나를 모으는 것은 무리였기에 나는 일단 정령을 소환할 만큼만 모은 것 뿐이다. 참고로 정식 마법사는 3클래스부터였다. 마나를 어디에 쌓았건간에 그때부터는 마나 핵 때문에 마법사라는 티가 분명히 난다고 한다.

"그러니까, 매개체를 따라 소환하면 된다는 거지?"

물의 정령을 소환하려면 깨끗한 물 한그릇 떠놓고, 정령 소환 마법진과 주문으로 정령을 소환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마법진을 펜으로 빈 종이에 베껴 그려놓고 주문을 달달 외운 후에 물을 찾았다.

"루이, 물 좀 가져다 줄래?"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서글펐다.

"죄송해요, 공작님. 물이 다 떨어졌는데 아직 지급되지 않았어요."

아, 아까 나한테 물을 전부 줬지. 사막으로 들어오면서 일정량의 물만을 챙겨올 수 있었던 우리들은 각자 하루에 수량을 정해서 지급했다. 마법이 발달한 제국답게 마법의 도움을 얻어서 물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기는 대륙에서 가장 위험한 3대 장소 중 하나인 사막이었다. 비록 사막의 길을 따라간다고 하지만 무슨 일이 생길 지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아껴서, 필요한 만큼만 물을 지급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보통 사람들보다 적게 먹어도 사는 대신에 물을 많이 먹어야 하는 식물이었다. 내가 하도 목말라하자 루이가 자신의 물을 내게까지 양보해주었다. 그치만 어떻게 나보다 어린 것의 식수를 뺏어먹을 수 있겠는가. 겨우 버티고 있었는데, 아까 결국 내가 물을 전부 마시고 말았다.

그러던 나는, 문득 지금까지 전혀 쓸 필요가 없었던 내 능력 하나를 기억해냈다. 어째서 지금까지 이걸 잊고 있었던 거지, 생존에 꼭 필요한 이 능력을!!

"그래, 물이 없으면 만들면 되지!! 루이, 나한테 맡겨. 내가 물을 만들어볼테니!"

나는 컵을 쥐고 그곳에 물의 정령력을 끌어모아보았다. 그 결과 기적처럼 물방울이 컵 안에 맺히기 시작했다.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컵을 바라보던 루이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우와, 굉장해요, 공작님! 멜 형, 이거봐요!!"

다 큰 청년이었지만 그래도 역시 마음만은 시골 소년인 루이는 옆에 있던 멜까지 불러서 내가 만들어내는 물을 보고 감탄했다. 훗, 어때? 난 이런 사람이라구! 열심히 자랑하던 와중에 그라시에 후작과 다른 귀족들까지 내 능력을 보고서는 말했다.

"아아, 그러고 보니 시렌느 공작님께서는 물의 정령사라고 하셨죠."

"……."

……잊고 있었구나. 하지만 내가 물의 정령사라고 알고 있어서 그런지 다들 감탄하면서도 내 능력의 출처에 대해 묻지 않았다.

……하지만 양이 생각보다 적은데? 10분 내내 만들어서 겨우 반 컵을 채울 정도였다. 지구에 있었을 때보다야 늘어났지만, 그래도 너무 적었다. 아마 주변이 건조한 사막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그렇게 만들어진 물을 시종들에게 보여주며 자랑하다가 운디네를 소환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한참을 그렇게 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새벽이 되어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잘 준비를 하고서야 물 한잔을 들고 나와서 정령소환을 시도하려고 했다.

그러던 와중, 바깥을 돌아다니던 바람의 정령들이 묘하게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쭈뼛쭈뼛하며 내게 가까이 다가온 실프 하나가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그들 쪽에서 내게 먼저 말을 걸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플로라님, 조금 더 멀리까지 가요.〉

청명하게 울리는 듯한 그 목소리에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산책 겸 더 멀리로 걸어보았다. 하긴, 너무 가까이 있다가 들키면 곤란하니까.

〈좀더, 좀더요!〉

해가 뜨는 시각, 대략 20분 정도를 걸어 굉장히 멀리까지 왔는데도 마차가 희미하게 보였기에 나는 조금 더 걷는 것을 포기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방금 전 내게 멀리 오기를 종용했던 그 실프는 만족했다는 듯 다시 날아가버렸다. 좀 이상했지만, 그 실프가 내게 보인 것은 호의였기에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평지라 그런지 멀리 있어도 희미한 점으로 흰 천막이 보였다. 이 근처는 여행자나 무역가들의 마차가 주로 다니는데다가 안전한 북사막이라 몬스터가 잘 나오지 않고, 나오더라도 한두 마리의 약한 몬스터라 크게 위험하지는 않다더라. 그 말에 안심하고 나는 산책 겸 꽤 멀리 걸었다. 기분상으로는 얼마 걷지 않은 것 같은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실제 거리로는 작은 마을 끝에서 끝까지의 거리로서, 굉장히 멀리까지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물컵을 앞에 두고 운디네 소환을 시작했다.

"aUOiaAAßUyÆCNnðÐ……."

룬어로 된 긴 주문을 따라 읽고서, 나는 마나가 마법진 위로 모이는 것을 확인하고 시동어를 외쳤다.

"운디네 소환!!"

밖은 해가 떠오르는 중이었기에 주문 읽기 불편한 점은 없었다. 생각보다 빠져나가는 마나의 양이 극히 적었다. 이 정도의 마나량이면 굳이 모으지 않고 원래 몸에 있는 마나로도 충분했잖아? 친화력에 따라 정령 소환하는데 드는 마나가 많이 차이가 난다고 알고 있었는데, 나 정도의 친화력이면 겨우 운디네 소환에 요것밖에 안드는구나.

물컵 위에 조그맣게 솟아오른 작은 인어의 형태를 한 정령이 물에 몸을 반쯤 담그고 생긋 웃어보였다. 나는 마주보고 헤실거리며 그 정령에게 정석대로 말했다.

"나와 계약해줘."

원래는 '자연의 네 기둥 중 하나이며 모든 물의 지배자이신 정령 운디네이시여, 저 ○○가 당신과의 계약을 바랍니다.'라고 해야 하는 것이지만 요 쪼그만 꼬마한테 그런 말은 닭살돋아서 못 한다. 운디네는 웃으며 물에서 포르르 날아올라 내 얼굴 가까이로 다가와서 뺨에 쪽 입을 맞추었다.

〈운디네, 플로라 님의 육체에 종속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꺄하!〉

나는 말랑말랑한 운디네를 덥석 잡아채 손에 쥐고 주물거리며 한참 갖고 논 후에 다시 돌려보냈다. 물의 정령은 착하고 말도 잘 듣고, 너무 좋았다. 하는 김에 바람과 땅의 정령과도 계약했다. 그리고 매개체가 없어서 좀 힘들지만, 이제 어느정도 감을 잡았기에 불의 정령 소환도 시도해 보았다. 다른 정령보다야 조금 버거웠지만 하급 정도는 충분히 소환가능했다.

바람의 하급 정령은 실프, 늘 보던 아이들이었다. 지금도 주변에 아주 드물게지만 돌아다니고 있는데 꼭 소환해야 하나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소환해서 계약을 맺었다. 땅의 하급 정령 노움은 조그만 난쟁이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아주 가끔씩 정원에서 보이던 녀석들이 땅의 정령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불의 하급 정령 샐리맨더는 처음으로 보는데, 마치 붉은 도마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전부 만져봤지만 실프는 자꾸 바람처럼 손 안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노움은 딱딱하거나 바스락거리는 느낌, 샐리맨더는 따뜻했지만 금세라도 날아갈 듯 가볍게 포슬거렸다. 역시 감촉은 운디네가 가장 좋은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운디네 소환에 이 정도의 마나라면, 다른 정령도 소환 가능할 것이다. 주머니에서 책을 꺼내 열심히 뒤지다가 중급과 상급, 최상급 소환 마법진까지 발견한 나는 곧장 그대로 종이에 다 베껴 적어서 소환을 시도해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 유선형의 큰 물고기 형태를 한 물의 최상급인 엘레스트라가 가장 촉감이 좋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정령의 계급은 위로 올라가면서 좀더 물질계에 끼치는 영향이 분명해지고 그에 따라 만졌을 때 느껴지는 촉감도 더 선명해졌다. 도마뱀 모양 불의 하급 정령 샐리맨더는 미지근하게 따뜻한데 용과 비슷하게 생긴 불의 최상급 정령이 약간 뜨겁다고 느낄 정도인 걸로 보아 불의 정령왕쯤 되면 뜨거워서 만지지도 못할 것 같았다. 바람의 최상급 정령 실레스틴은 기압이 강해 좀더 분명히 손으로 쥘 수 있었는데 흰색 긴 머리를 가진 인간 여성의 형태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기하다는 듯 막 만졌다.

〈플로라 님? 서, 서, 성희롱하지 마세요!〉

정령인데도 뺨을 붉히며 그녀는 내 손길을 피해 달아났다. 나는 쳇, 하며 고개를 돌렸다. 같은 여자끼린데 뭐 어때.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하급정령은 물질계에 소속된 정령과 다르게 성별이 없습니다만 저는 최상급이라 적어도 성별개념정도는 있습니다. 전 남성체라구요!〉

"……."

……정말?

나는 실레스틴의 몸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실프는 꼬마라서 남자앤지 여자앤지 부정확했는데, 아까 소환했던 바람의 중급과 상급 정령은 갈수록 여성스러워지는 느낌이라 당연히 얘도 여자일 줄 알았는데 말야. 살랑거리는 흰 옷과 흰색의 긴 머리를 가진 정령은 남자라기엔 너무 예쁘장한 얼굴인데 분명 가슴이 없었다. 그 미묘한 연녹색 눈동자는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흰 머리와 녹색 눈, 그리고 흰색의 쉬폰같은 옷차림. ……어디서 봤더라?

나는 옆에 지나가던 실프를 보고 깨달았다. 그 모습은 바람의 하급 정령 실프꼬맹이들과 비슷했던 것이다. 단지 기운이 조금 더 강하고 존재감이 분명하달까. 음, 실프 이전에도 본 듯한 기분이 들지만 별거 아니겠지, 뭐.

〈애초에, 왜 쓸데없이 최상급인 저를 소환한겁니까?! 당신은 아직 유생체가 아닙니까? 성체가 될 때까지 기다리면 자연스럽게 소환해서 부릴 수 있을텐데, 왜 괜히 마법진까지 써서…….〉

게다가 하급과는 달리 머리가 굵었다고 묻고 따지는 것도 많았다. 실프나 운디네처럼 그냥 '플로라니임~♡' 하고 귀엽게 웃으면서 앵기면 좀 어때서.

나는 하급부터 최상급까지 무리하게 소환하느라 마나가 완전히 바닥났기 때문에 실레스틴을 돌려보내고 너무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아서 마차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정령왕도 시도해보려 했지만, 정령왕의 경우에는 마법진 크기도 장난 아니었고, 평균 소환에 드는 마나가 7클래스급. 내 1클래스 마법으로 소환하는 건 무리였다. 벌써 해가 중천이네. 빨리 가서 쉬어야지. 해가 지고 서늘해지면 다시 출발하겠지? 그러던 나는 갑자기 불어오는 피비린내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

내가 없는 사이에 습격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거대한 사막여우처럼 생긴 몬스터들의 시체와 죽은 낙타 두 마리, 부서진 마차 조각, 그리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인간의 신체 조각을 보고 망연히 서 있었다. 마차 바퀴자국은 모래바람에 지워져 있었다.

공기는 너무 건조했고, 중천에 뜬 해는 광합성은커녕 잎의 수분을 전부 날려보낼 정도로 너무나도 따가웠다. 마나는 바닥이다. 물 만들고 노느라 정령력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남들 다 잘때 말도 안하고 빠져나온 것이, 조난의 원인이 될 줄이야.

라콘 왕국에서 케르타로 가는 길은 사막이었지만 주로 여행자들이나 무역가들이 다니는 길이라서 큰 몬스터는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위험한 동부사막의 몬스터는 더위에 매우 강해서 햇볕이 가장 따가운 낮에 주로 움직이지만, 더위에 약한 이곳 북부의 사막 몬스터는 대체로 밤에 움직인다.

그렇기에 일행은 낮에 안심하고 천막을 치고 쉬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대낮에 무리를 지어 습격하는 듣도 보도 못한 몬스터가 나타날 줄이야. 정보와 다른 습격에 제국의 사신 일행은 제대로 맞서 싸울 생각도 못하고 죽은 말이나 시체를 챙길 시간도 없이 서둘러 움직였다. 예측하지 못했던 습격에 뜻밖의 인명 피해를 입고 그들은 정신없이 달려 오아시스를 발견한 후에야 몸을 추스를수 있었다. 이 정도의 위험은 감안하고 사신행에 지원한 것이겠지만 귀족과 기사의 인명피해도 상당히 있었다.

인원수가 거의 절반으로 줄어버린 처참한 현실에 절망하고 있던 그들이 시렌느 공작마저 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은 그 때였다.

***

햇빛이 너무 따가웠다. 갖고 있는 거라고는 마차에서 들고나왔던 이제는 비어버린 유리컵, 그리고 마법주머니 속에 있는 옷가지 두벌, 솜 모포, 두꺼운 책 세권과, 가방 맨 밑바닥에 넣어두고 까먹어서 다 녹은 초콜릿 한 봉지.

"……."

분명 그들이 밤에 무슨 푸른색 별을 따라갔던 기억이 난다. 해가 저물고 밤이 되면 길을 찾을 수 있겠지. 돈을 넉넉히 들고 와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건 둘째치고서라도 너무 더워서 견딜 수가 없다.

아까 보았던 전투의 현장으로서 이번 습격은 전혀 예정에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무난하게 헤쳐나온 것에 비해 이번에는 사람이 죽은 흔적과 마차가 물어뜯기고 박살난 흔적이 보였다. 분명 그 몬스터들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었던 것이다. 내가 알기로 북사막에는 저만큼 크고 위험한 몬스터가 돌아다니지 않는다.

무언가 이변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까의 그 실프는 우리들의 전력으로 감당 불가능한, 비정상적으로 강한 몬스터들의 습격을 예감하고 나를 안전하게 피신시켰던 것이다. 근데 나만 피신시키면 뭘 해? 내가 여기서 죽잖아!!

다른 사람들은 무사히 피신했을까? 멀쩡한 시체는 그 몬스터가 전부 물어갔거나 아니면 일행이 수습해갔을 테니 상황을 짐작해볼순 없었다. 라이언 경이나 내 시종 둘은 무사할까? 만난 지 얼마 안 된 시종이지만 그간 정이 꽤 들었는데.

마나는 바닥이다. 고작 한두 방울씩 모이는 물은 금세 증발해버린다. 나는 컵에 물을 만들어내려다가 포기하고서 모포를 머리에 뒤집어썼다. 미치겠네. 햇빛을 가릴 수 있는 천막 재질이 아니라 추운 사막의 밤, 마차 안에서 덮는 보온용 모포였다. 값싼 저급 기온조절마법이 이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제길. 역시 사막은 식물의 적이다.

드래곤은 무한주머니라는 에픽아이템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던데, 나중에 살아 돌아가면 세리안을 졸라서 무한주머니를 얻어내야겠다. 그리고 제일 먼저 여행용 모포부터 챙겨넣어야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얇은 천으로 된 긴 팔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사막의 여행자로서는 부적합하지만 따가운 햇볕에 화상을 입지는 않을 듯 하다.

***

급한 맘에 저녁이 되자마자 멈춰서서 막상 정비하고 나니 피해가 너무나 상당했기에 모두들 침울해 있는 사이 마이어 자작은 분노를 터뜨렸다.

"이건 말도 안 됩니다! 분명 안전한 길이었을텐데, 그런 몬스터가 대낮에 무리짓고 돌아다닌다니, 말이 됩니까? 북사막의 길에 이렇게 강한 몬스터가 있다는 얘긴 듣지 못했습니다. 이 정도로 위험할 줄 알았다면 정예병과 용병들을 더 데리고 왔을 겁니다. 혹시 케르타 측의 술수가 아닐까요?"

귀족들의 인명피해도 만만찮았다. 열한 명이었던 귀족들 중에서 다섯이 죽었다. 게다가 그 중에는 여제의 총애를 받고 있는 시렌느 공작도 끼어 있었다. 마이어 자작의 말대로 우리와 적대하던 케르타의 술수라 하면 자칫 전쟁으로까지 번질 수 있는 큰 사건이었기에, 그들은 이대로 돌아가야 하나 아니면 이왕 거의 도착한 거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고 가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나 그라시에 후작은 완고하게 밀어붙였다.

"아직 케르타의 짓이라고 판별되지도 않은 일을 두고 거래를 그르칠 수는 없지. 폐하께서는 우리를 믿고 보내셨소. 일단 이대로 케르타에 도착한 후에 그들의 상황을 살펴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소."

"너무 늦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죽일 생각이라면 우리들은 케르타의 궁으로 들어선 순간 죽은 목숨입니다!"

"만약 그들이 우리를 죽이고 전쟁을 선포할 생각이라면 이미 사막에 들어온 순간부터 벗어날 곳은 없다고 볼 수 있소. 일단 한시라도 빨리 케르타에 도착해야 하오."

그라시에 후작의 결정에, 모두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마땅찮아도 일단 황제가 인정한 리더의 결정인데 따라야지. 네이반 백작은 주위를 둘러보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시렌느 공작의 일은, 분명 황제 폐하께서 질책하실 겁니다."

네이반 백작 자신의 입장에서야 적대세력의 우두머리 중 하나가 죽었으니 환영할 일이지만, 호위기사들은 자신이 호위 대상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며 머리를 땅에 박고 자책하고 있었다. 시렌느 공작가 직속의 라이언 경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무슨 근거인지 그라시에 후작은 슬픔을 비치지 않고 굳건하게 믿고 있었다.

"……이트리샤 대공전하 아래의 사람이다. 결코 이 정도로 죽었을 리가 없어. 그 분은 강하지 않으면 자신의 아래로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완벽한 그라시에 후작의 오해였다.

***

밤이 되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자연의 일부인 내가 자연인 사막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지만, 덥고 목마른 건 식물의 본능으로 어찌할 수 없었다. 나는 어느정도 채워진 정령력과 마나로 운디네를 불러 물을 몇잔 만들어내 수분 보충을 했다. 하지만 정작 물은 밤보다 낮에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적정량의 물 이외엔 마나를 아끼기로 하고 별만 바라보며 걸었다. 추운 사막의 밤은 낮에 비해 너무 쌀쌀했기 때문에 지금만큼은 가벼운 솜모포가 유용하게 쓰였다. 그런데 굽이 낮은 가죽슈즈에 모래가 자꾸 들어가서 짜증났다. 마나가 지금의 두세 배만 되었어도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었을 텐데.

밤이 되어 마신 물과 낮에 받았던 햇볕으로 광합성은 실컷 할 수 있어서 배는 별로 고프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생활이 언제까지 지속될지가 문제다. 하루도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지치기 시작한다. 몬스터라도 만나면 정말 큰일인데.

땅의 정령이나 물과 바람의 정령을 잘 이용하면 근처의 오아시스를 찾거나, 오아시스의 식수를 조달해 올수도 있겠지만 건조해진 내 머리는 정령을 응용할 생각을 거부했다. 결국 나는 아침 해가 뜰 때까지 걷다가 사막 한가운데 땡볕 아래에서 그대로 바삭하게 말라서 기절해버렸다. 우아 지쳤다. 여기서 조금만 쉬다가 걷자.

그것은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영원히 쉬게 되는 첫걸음이겠지만, 물이 없는 상태에서 보통의 식물은 제대로 된 판단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마른 바람이 불어오고, 사막의 횡단자가 나타났다. 시아에게는 아쉽겠지만 그녀가 쓰러진 곳은 마을 오아시스 바로 근처의 사막이었다.

칭칭 감긴 흰색의 붕대같은 터번 사이로 타오르는 불꽃같은 붉은 머리카락이 몇 가닥 흘러내려와 있다. 수건으로 얼굴과 몸을 꼭꼭 가리고 있는 그는 시아와 정반대로 사막의 열기와 태양빛에 전신을 철저히 보호하고 있었다. 사막에선 지극히 정상인 차림새였다. 그러나 망토 아래에 보이는 옷에 수놓아진 금실과, 천 틈새로 드러난 백옥같은 새하얀 피부는 그의 신분이 결코 일반인은 아닐 거라고 짐작하게 했다.

건조한 발걸음을 이으며 낙타가 터벅터벅 걷고 있다. 낙타를 타고 있던 그 남자는 모래에 반쯤 파묻힌 분홍빛 은발을 보고 낙타를 멈추었다. 시아는 하르아이나 제국의 기후에 맞는 한 겹짜리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실제 사막 횡단객이라면 미치지 않고서야 저런 옷을 입고 다니지는 않는다.

"아직 안 죽었나……?"

그는 살아있는 인간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유연한 몸으로 낙타에서 가볍게 뛰어내려, 아무렇지도 않게 모래를 헤치고 그 사람의 옷자락을 들어올렸다. 기절해서 딸려오는 사람 얼굴은, 모래 때문에 정확히는 판단할 수 없었지만 젊은 여자였다. 흐음, 얼굴은 잘 모르겠지만 머리색은 내 맘에 드는걸? 데려가 보고 마음에 안 들면 머리만 잘라서 전시해놔야지. 그는 시아의 허리를 잡고 낙타에 짐짝처럼 싣고, 두꺼운 모포를 위에 덮었다. 햇볕을 막아 주어서 오히려 바깥보다 시원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갔다. 원래는 오아시스 시찰이 목적이었지만, 그런 건 나중에 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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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재벌 미르헬 등장.

설마설마했는데 결국은 전에 써놓은 글을 그대로 재탕하는군요. 사막에서 구해준 사람이 알고보니 사막의 황태자(?)였다는 뻔한 스토리. 2년 전에는 별로 뻔하지 않았습니다만 지금은 뻔해졌음ㅠㅠ. 그래도 얜 황태자 아니에요.

제 블로그에 가시면 아직 뜰에 올라와있지 않고 소설에 등장해있지도 않은 캐릭터 프로필이 있습니다. 네타를 원하지 않으시면 블로그 ㄴㄴ.

아, 왠지 글이 안써져……. 며칠 좀 쉴까나…….

(흰설탕은 우울해 보인다.)

…….

(흰설탕은 매우 우울해 보인다.)

…….

(덧글 1000개가 달려야 흰설탕이 다음편을 올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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