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의여왕-56화 (56/226)

<-- 5. 젊은 여공작과 사막의 황제 -->

"내일 다시 영지로 떠나는데, 중요한 일은 하나도 안 했어."

더운 여름이라 앞머리를 넘겨 머리를 바짝 당겨묶고 있는 유렌은 내 머리를 빗으로 빗어 묶어 올려주며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충분히 유익한 2주간이었던 것 같습니다만?"

"아니야, 정작 진짜 목적은 이루지 못했어! 맨날 일만 하고 관광을 안 했잖아?!"

소파에 앉아서 얼음 딸기주스를 마시며 그렇게 울분을 터뜨리고 있는데, 세리안이 더운지 기사 제복 겉옷을 벗어던지며 방 안에 들어왔다.

"시아. 황궁에서 호출이 들어왔다. 귀족 회의라는군. 참석해보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그는 이마를 짚으며 피곤하다는 듯 말했다.

"오늘 기사단장 회의에서 결정이 났어. 아무래도 나는 두어 달 더 황궁에서 머물러야겠구나. 최근 신입들이 말썽이라, 부단장으로서 자리를 비울 수가 없게 되었어. 더러운 단장들 같으니라고. 최대한 빨리 일을 끝마치고 영지로 돌아갈게."

"뭐? 그럼 나랑 유렌이랑 아젤님만 돌아가야하는 거야?"

그렇게 되면 올 때랑 같은 구성이 되는거네. 심심하게 혼자 마차를 타는 건 이제 질렸다. 그렇다고 유렌을 계속 마차에 데리고 있다간 위험해질텐데(다른 의미로).

그러나 그런 고민은, 3시간 후 소용없는 것이 되었다.

***

황실에서 열리는 귀족회의는 나로서는 처음 참석해보는 회의인데, 급한 사안이 아니므로 참석은 자유지만 정계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수도에 있는 귀족들은 꼬박꼬박 참석하는 것이 낫다.

"아, 역시 시렌느 공작각하께서도 참석하셨군요!"

회의실에 들어가니 아는 척을 해오는 귀족들이 꽤 많았다. 나는 적당히 인사를 해두고 자리에 앉았다. 군데군데 공석에서는 하얗고 커다란 구슬 같은 것이 놓여져 있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그걸 쳐다보았는데, 현재 영지에 있는 귀족들이 참석의사를 비칠 경우 올려놓는 화상연락 마법구슬이라고 한다.

역시 마법이 발전하니 이런게 넘쳐나는구나. 그러고 보니 우리 영지의 내 집무실에도 이렇게 생긴 구슬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쓰지 않아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지만.

곧 상석에 황제가 들어와 앉았다. 보통 때에는 혼자 만나지 못하는 황제라도 귀족회의때는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함부로 대화를 하거나 할 수는 없지만.

황제는 그 때와 다르게 위엄있는 표정을 하고 들어와 귀족들의 인사를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곧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늘 갑자기 예정에 없던 귀족회의를 개최한 이유는, 타국에서 들어온 요청 때문이오. 루페닌 왕국에서 목재를 벌목하는 도중 문제가 생겨 우리 제국에 도움을 요청했소. 그리고 케르타와의 교역을 새로 맺기 위해 케르타 측에도 사신을 파견해야하오."

다시 말해 누가 갈건지 정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황제에게 잘 보이면 엄청 출세할 수 있으므로 다들 이런 곳에는 먼저 가려고 난리일 것이다.

나는 새삼 넓은 테이블의 귀족들을 스윽 둘러보았다. 아마 황실 기사단 측에서는 또 따로 회의를 진행중이겠지. 그대로, 황제는 귀족들에게 통보했다.

"케르타의 오만한 왕은 다들 알다시피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며 우리 하르아이나 제국의 위용에 도전하고 있소. 하지만 언제까지나 적대하며 지낼 수 없는 것. 이번에 친선겸 무역을 위해 사신을 뽑아 보내기로 했소. 국가적 특성상 여성 귀족들의 지원은 짐으로서도 권하지 않는 바이오."

그 말에 다른 여자 귀족들은 불만스런 표정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케르타라면, 남쪽 남쪽 극남쪽의 모래밖에 없는 엄청 더운 곳 아냐? 게다가 그 나라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가장 높은 우리나라에 비해 여성의 지위가 대륙 최하였고, 그 때문에 우리 제국과는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 황제도 일단은 여자 아닌가. 비록 황제라고는 해도 자신을 인격적으로 모욕하는 국가를 좋게 볼 리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와 케르타는 서로를 야만국이라 부르며 다른 국가체제와 문화를 욕하기 바빴다. 나도 일단 여자이므로, 여성을 노예나 가축보다 못하게 취급하며 일부다처가 관습으로 자리잡힌 그 불합리한 국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루페닌 왕국 측에서 우리 제국에 수출중인 대형 오크목을 벌목하는 도중 심각한 문제가 생겼소. 국가 교류에 대한 측면으로도, 제국의 목재수요에 대한 측면으로도 돕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오. 엘프숲과 인접한 숲이니 짐은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하나 있소. 정령사인 시렌느 공작이오."

갑자기 내 이름이 언급되자 나는 깜짝 놀라 황제와 눈을 마주쳐버렸다. 얼떨떨해져서 멍하니 있는데, 다른 귀족들은 반론을 제기했다.

"설마 시렌느 공작을 지휘자로 파견하실 생각이십니까?"

설마 이런 일에 4대 대공이 나설 리는 없을테고, 공작인 내가 지위상으로는 가장 높았다. 그렇기에 다른 고위귀족이 같이 가지 않는다면 내가 총책임자이자 리더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이런 일에 관한 경험이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황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번 일로 나에 대한 신뢰가 깊이 쌓였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그녀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오."

"하지만……."

내가 나이가 너무 어리니, 실력이 검증되지 않았니, 경험이 없니 하는 것을 들어 몇몇 귀족들은 반대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새에 내 편이 되었는지 그 귀족들에게 반발하며 나만한 인재가 없다는 말로 내 편을 들어주는 귀족들도 있었다.

아, 이런게 바로 당파 싸움이란 거구나. 인간은 역시 재밌어. 파티장에서 약간의 친분을 쌓았다고 생각되는 그라시에 후작을 포함한 그 아래 라키아네 백작과 흑의 대공 휘하의 기사 출신 귀족들은 전부 내 편을 들어주었다.

나는 내가 지휘관으로 가는 것을 결사반대하는 프쉘드리만 후작에게 악당처럼 씨익 웃어보였다. 흥, 어떠냐?! 흑청색 긴 머리를 대충 쓸어담듯 묶은 젊은 남자 후작은 그 외모만큼이나 성격이 거칠었기에 한참 목소리를 높여 반발하고 있던 중이다. 그의 표정이 갑자기 굳더니, 얼굴이 빨개져서는 할 말을 잊은 듯 주춤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소, 프쉘드리만 후작?"

내가 가는 것을 결사반대하는 말을 당연하다는 듯 하려던 후작이 무언가에 목이 막힌 듯 어버버거리고만 있자, 황제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는 반박하려던 입을 닫을 생각도 못하고 당황해서 말했다.

"……아,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요, 그렇게 보내고 싶으면 그냥 보내세요, 흥, 쳇, 핏. 그렇게 말하는 듯한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어이없이 후작이 반대를 포기하자, 내가 루페닌 왕국 구출대(라고 멋대로 속으로 이름붙였다)에 가장 지위가 높은 리더가 되는 것이 거의 확정되었다. 황제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는 듯 다정하게 말했다.

"정령사이자 현자의 제자인 공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오. 루페닌 왕국의 검은 숲 외곽에서 벌채를 하는데, 예상치 못하게 많은 독충들이 나타나 그 쪽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었기에 우리 나라에 도움을 요청했을 뿐이오. 그대라면 독에 대해 잘 알고 있는데다 정령사이기도 하니 큰 도움이 될 것이오."

……독충?

"……."

그리고 3초 후, 나는 어느새 케르타 사신으로 가는 사절단 신청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

집으로 돌아온 후 세리안은 회의 결과에 대해 다 들었는지 한숨을 쉬었다.

"케르타로 가기로 했다며? 그 쪽은 정말로 여자인 네게는 좋지 않아. 제국의 귀족이라고 해도 무시받기 쉽다구."

하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숲에 가는 걸 거절할 방도가 없었는걸. 역시 곤충보다야 인간 남자가 낫지 않겠어? 나는 세리안의 걱정은 뒤로 하고 일단 짐부터 챙겼다. 네리아와 다른 시녀들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하고, 같이 갈 수행원 두세 명도 결정해야 한다. 출발일은 바로 내일. 특별히 신경써야 할 무슨 임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안전상의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것저것 재지 말고 그냥 가볍게 짐만 챙겨서 바로 출발하기로 했던 것이다.

"불안해서 안되겠어. 내가 기사단 일 집어치우고 함께 가 줄까?"

그런 제안을 하는 세리안을 뜯어말리고, 나는 내가 알아서 한다며 오빤 기사단 일이나 잘 하라고 그를 방에서 내쫓았다. 비상금으로 돈과 보석은 얼마나 챙겨가면 좋을까 고민중인데, 유렌이 내 방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나는 유렌을 데려가도 되나 고민했다. 유렌이 뛰어난 검사라고는 하지만, 남들은 그를 단지 기사작위도 없는 내 첩으로 알고 있다. 같이 가면 나에게도 그에게도 좋지 않을 것이다. 고민 중인데, 유렌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

"시아 님께서 케르타로 가신다면, 적어도 2개월은 걸리겠지요?"

"응, 늦어도 3개월 전까지는 돌아올거야."

"그렇다면 그 동안 제가 수도에 머무르면서 잠시 다른 곳에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다른 곳?"

설마 친정에 갔다 오려는 것이던가. 하지만 유렌은 위스피닌 공작가를 싫어하는데, 대체 어디에 갈 곳이 있다는 거지? 바로바로 캐물어보고 싶을 만큼 궁금했지만, 그가 먼저 나서서 내게 말하지 않는다면 굳이 그가 곤란하도록 따져묻고 싶지 않았다. 설마 유렌이 딴데 가서 허튼짓을 하겠는가. 나는 흔쾌히 허락했다.

"좋아. 뭔가 필요한 거라도 있어?"

"신분 증명패가 필요합니다. 금패와 동패, 두 개가."

신분 증명패라면, 어디 다른 도시에라도 갈 셈인가? 하지만 대체 동패는 왜 필요하다는 걸까. 백금패는 왕족과 황족, 금패라면 백작 이상의 고위 귀족에게 허가받은 귀족의 신분패였다. 그리고 은패는 하급 기사와 하급 귀족, 일부 상인들에게 지급되는 패, 동패는 평민이나 용병들이 사용하는 증명패였다.

하지만 그냥 같이 데려갈 시종에게 주려나 보다, 하고 가볍게 생각한 나는 패 두개를 지급하라고 공작가의 도장이 찍힌 인증서를 써 주었다.

그렇게 대충 데려갈 사람을 시종 하나, 호위기사로 라이언 경, 이렇게 셋으로 챙긴 나는 내가 없는 동안 영지 일을 맡아볼 대리인을 제인에게 맡긴 후에 마지막으로 아젤님을 찾아갔다.

그는 요즘 무슨 일을 한다고 바쁜 것 같았는데, 아젤 님은 내가 여제의 명으로 외교사절단에 끼여 간다고 하니 밝게 웃으며 축하해주었다.

일단 챙길 건 다 챙긴 것 같아서 후련한 마음으로 샤워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기 위해 방으로 돌아왔다. 내 방에서는 유렌과 세리안이 셔츠 차림으로 방금 감은듯 젖은 머리칼을 말리며 무슨 두꺼운 책을 들고 있었다.

"둘 다 뭐해? 무슨 책이야?"

……정령서 두 권? 녹색 표지와 갈색 표지의 세 권의 책은 합쳐서 상당히 두께가 있었다. 순서대로 「마나와 친해지기, 대마법사 이트리샤 저」, 「정령술 : 물질계 사대 정령을 위주로 한 정령에 관한 조사서, 플리어스 디프리넨 저」, 「정령 소환의 기본, 마법사 길드 엮음」이었다. 그 중에서 두 권은 내가 읽으려다가 그만둔 거라 기억에도 있었다.

"혹시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안되잖아? 미리 정령술을 배워두는 게 좋을거야. 너는 근처에 있는 정령이 아니면 부르지 못한다며? 적어도 정령을 소환하는 법 정도는 외워둬."

세리안의 말에 나는 반색하며 달려들었다.

"진짜? 진짜 나도 정령을 부를 수 있어?"

그 정령소환이란 걸 하려면 마나가 필요하다며? 세이시아는 마법을 익힌 적이 없어서 나는 아예 기대도 안 하고 있었다. 세리안은 웃으며, 그래도 시도 정도는 해 보는 것도 좋을거라며 말했다.

"그러니까 일단은 마나를 모아야지. 정령 친화력이 높고 정령에 가까울수록 소환하는데 마나가 많이 필요하지 않으니까, 케르타까지 가는 데 3주 이상 걸린다고 했지? 네 경우에는 그때까지 익히면 운디네나 샐리맨더 정도는 마음대로 부릴 수 있을 거야. 사실 네가 지금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실프'와 '드리어드'들은 전투나 실생활에 그다지 큰 도움은 되지 않거든."

실프라는 것은 바람의 정령 ξτ를 엘프나 인간들이 흔히 부르는 이름이라고 했다. ξτ는 본래 그 정령의 이름이고. 그들이 나를 불렀던 υσζ는 플로라, 풀꽃의 정령인 φσηι는 드리어드라고 흔히 칭한다. 인간의 언어는 역시 어려워.

유렌은 내게 마나를 다루는 가장 기초적인 부분에 대해 설명했다. 세리안이 알려줄 수도 있었지만, 그는 드래곤이라 인간의 기초 마법에 대해서는 유렌보다 못했다. 정령은 뜻대로 부리는 것보다 처음 소환하는 것 자체에 마나가 더 필요했다. 어느정도 마나가 모여야 하기 때문에 소환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세리안은 혼자 거리에 나가지 말고, 이상한 남자가 말을 걸어오면 거시기를 걷어차버리고, 여자라고 무시하면 샐리맨더로 머리카락을 태워버리라는 등등 케르타로 갔을 때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유렌과 번갈아가며 내게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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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님이 정치적 편 가르기 스킬을 습득하셨습니다. 역시 인간은 재밌어 ㅇㅇ.

늦은 이유는 사실 이 다음의 3p장면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 것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덧글이 다른 때보다 현저하게 적었기 때문에 의욕상실 ㅠㅠㅠ

메모장 문제는 임시로나마 해결했습니다. 쪽지로 도움주신 님 덕분에요. 그리고 어떤 문제였는지 덧글로 물어보신 분도 계셨는데,

원래는 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

이렇게 줄에 따라서 잘려서 나와야 하는 글이 복붙 하면,

가가가가

가가가가

가가가가

가가

이렇게 끊겨서 옮겨진다는 의미랄까. 자동 줄 바꿈 해제로 임시로 해결했지만 줄 바꿈 해제를 하면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군염. 다른 프로그램을 추천해준 분도 계셨지만 제가 쓰는 넷북 이라고 해야할까 하여든 그 기계가 메모장밖에 호환되지 않아염. 나중에 노트북이라도 사게되면 한번 그걸 써봐야겠음 ㅠ

아 그리고 레이니안을 공략캐로 만들어달란 부탁이 매우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무리ㅠ. 레이니안 성격이 맘에 드시나요?

아젤의 공략은 미르헬 다음입니다~. 그나저나 이벤트 참여인원이 너무 적군요. 괜히 이벤트 열었남... 10명 넘기기는커녕 10명 채우기도 힘들듯 ㄷㄷㄷ; 지금까지 그려주신 분들은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벤트 하시는지 몰랐다는 분도 계시려나? 이벤트 내용은 제 뜰에 있고, 이벤트 상품은 3가지 중 하나입니다.

1. 표지에 그림 게시권

2. 외전 요구권

3. 19금 외전 요구권(성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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