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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여왕-55화 (55/226)

<-- 4. 인연 -->

내 말에 대공은, 아주 미세하게 눈썹을 찌푸렸다. 하지만 부정적인 대답은 하지 않았다. 가까이에서 본 그는 정말로 미형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큰 키나 얼굴 쪽은 선천적인 외모일테지만, 수많은 세월에 의해 철저히 단련된 근육질의 육체는 보통의 노력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이 진짜, 제국 최강의 실력자라는 것인가.

"제게 부탁이 있다고 하셨습니까."

낮은 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공은 비장한 내 표정을 보더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정령이 인간에게 부탁한다는 말은 처음 듣는군요. 당신이 청하는 것은 일종의 거래입니까? 그렇다면 일단 들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순간 하얗게 질렸다. 내가 정령이란 걸 어떻게 알았지? 유렌도, 세리안도 몰랐던 사실인데 그는 단번에 알아챘다. 하지만 그는 내가 놀라느라 대답을 할 생각을 못하고 있자,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생물에 기반을 두고 있는 자연계 정령은 현계의 육체에 깃들어 머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본 적은 이번이 두 번째지만, 육체를 구성하는 마나 배열과 사슬구조가 아주 미세하게 다르기 때문에 생물과 마법과 정령에 대해 조금 깊이 연구한 적이 있다면 누구나 눈치챌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생물과 마법과 정령, 세 가지 분야에 대해 동시에 극성까지 연구한 인간이 현재까지 실존하지 않았다는 거지. 생물마법과 정령마법이면 모를까 생물과 정령은 별개로 취급되니까. 저 인간은 굇수인건가? 나는 예상치 못하게 정체를 들켜버려 버벅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대공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그대와 아까 그 드래곤의 유희에 간섭할 생각은 없습니다. 아까도, 정령은 생물에게 악의를 갖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그대를 믿고 용의선상에서 제외하긴 했지만 다른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대가 독의 이름을 알려준다고 해도 제가 할 성가신 작업이 하나 줄어드는 것 뿐이니, 그것과 상응하는 대가밖에는 지불할 수 없습니다. 제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지요?"

결론은 니가 정령이든말든 등가교환 ㄱㄱ 라는 의미였다. 나는 내가 대공에게 요구할 것이 과연 독의 이름과 같은 무게인지 고민해보았다. 하지만, 판단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를 당신의 밑으로 넣어주세요."

"……그대를?"

"시렌느 공작은 흑의 대공의 수족이 되고 싶다구요."

그것이 바로 내가 그에게 요구할 수 있는 가장 큰 것이자, 가장 유용한 것이자, 유일한 것이다. 사실 세리안의 제안도 있긴 했지만 지금 내가 내 눈으로 판별한 결과, 그것이 당연하겠지만 흑의 대공 밑에 붙어서 손해볼 것 없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내 정체를 알고 있고, 그만큼 강했다. 게다가 여제와의 사이도 각별해 보였다.

내 요구에 흑의 대공은 잠시 생각하다가 되물었다.

"그건 유희하는 동안만 인간인 그대가 저에게 요구하는 것입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인간으로서 그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령이 되면 딱히 대공의 도움이 필요할 것은 없지만 지금은 적어도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강자의 보호가 필요했다. 그는 조금이나마 고민하느 모습을 보여줄거라고 생각했으나, 단 1초도 생각해보지 않고 대답했다.

"좋습니다. 제가 대공의 자리에 있는 한 언제라도 이트리샤 대공의 저택과 성에 방문하는 것을 허가하겠습니다. 하지만 귀찮으니 자주 오지는 말아주십시오."

"……."

잠깐, 그게 무슨 의미야? 집에 방문하는 허가라는 게 대체 무슨 의미냐고? 나는 그 남자의 어깨라도 흔들어 다그치고 싶었지만 그가 빨리 말하라는 듯 나를 짙은 푸른 눈으로 가만히 응시했기에, 얼결에 말해버렸다.

"그, 독의 이름은 토르멘이에요. 토르멘의 열매."

"토르멘……? 고대어군요. 성분 분석보다는 고대서를 찾아보는 것이 빠르겠군요. 어쨌든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오래 걸릴 뻔 했군요."

전혀 감사인사같지 않은 감사인사를 남기고 그는 한 치의 미련도 없다는 듯 방에서 나갔다. 잠깐, 너무 쿨하잖아?! 나는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뒤늦게서야 그에게 따지는 걸 잊었다.

무, 물론 이름을 날로 알아내긴 했지만, 그래도 고작 보답이 집에 아무때나 와도 된다는 거라니! 내가 손해본 것 같은 기분에 나는 다시 그를 찾아가서 따지려고 했다.

***

오늘 대공과 단 둘이서 있었던 일을 집에 와서 세리안과 유렌에게 설명하니, 세리안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그렇다면 내일 바로 찾아가보렴. 너무 늦게까진 있지 말고, 저녁시간 전에 돌아와야 한다."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물어봤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같이 간다면, 너에게보다는 내게 더 많은 관심이 쏠리겠지. 그러면 곤란해. 나보단 유렌을 데리고 가는 편이 낫겠군. 이라면서.

그래서 다음 날 바로 이른 점심을 먹고 그의 저택으로 향했다. 이트리샤 대공의 저택이라고 하니, 마부는 곧장 알았다는 듯이 황궁이 있는 동쪽 방향으로 향했다. 그의 저택은 웬만한 귀족들의 저택보다 황궁에 약간 가까이 있었다. 나는 이트리샤 가의 저택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

"……검은 색이 아니잖아?"

그의 집은 결코 검은 색깔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튼튼한 은빛의 창살 대문과 고아한 멋이 느껴지는 담쟁이덩굴의 높은 담. 그 안에 있는 커다란 베이지색 벽돌 저택은 분명 어딜 보나 마치 최고의 건축가가 심혈을 기울여 지은 것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따스함이 느껴졌다. 내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자 유렌은 그런 내 표정이 귀엽다는 듯 백금발의 머리칼을 살랑이며 쿡쿡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집을 검게 칠했겠습니까?"

"하지만 마차는 분명 검은색이었어!"

"대공의 저택은 황궁이 지어질 때처럼, 선대 시절 드워프를 직접 초빙해서 지은 유서깊은 건물입니다. 꽤 멋있는 집이지요? 가끔 담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정원의 분위기가 참 부드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집이야 어쨌건 집터 하나는 잘 잡은 것 같군요."

드물게 대문 앞에 병사들이 빠릿빠릿하게 서 있었다. 흑의 대공가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바로 이 문지기였다. 대공을 찾아오는 사람은 하루에도 수 명씩 되는데, 그들을 다 거절하고 돌려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문지기는 집 앞에 멈춰선 마차를 보더니, 마차의 문장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마차 안에 몇 명이 있는지까지 직접 확인한 후 들여보냈다. 무슨 검사를 황궁에서보다도 더 까다롭게 하냐고 투덜거리며 안으로 들어갔지만, 나는 어이가 없었다.

대공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반기리라는 건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적어도 얼굴 정도는 보러와 줘야 하는 거 아냐? 하녀에게 안내받아 크고 넓은 응접실에서 스티아 차를 홀짝이고 있는데, 이 인간은 나와볼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저기, 대공 전하께서는 언제 오십니까?"

혹시 하녀들이 안쪽에 기별을 넣지 않았나 한참을 기다려 봐도 소식이 없자, 나는 직접 그를 만나기 위해 하녀를 불러 연락해달라고 직접 요구했다. 그러나 돌아온 하녀가 한 말은 더욱 가관이었다.

"아……, 저어, 그게……, 귀찮게 하지 말라십니다."

"……."

무슨 그런 반응이 다 있어?!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자, 시녀가 자신도 이런 경우는 처음인지 쩔쩔매며 대답했다.

"저희는 그저 시렌느 공작님께서 오시면 차와 다과를 대접해 드리라는 지시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약속한 저녁때가 다 되어 나는 집에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그날 황궁 연회에서 흑의 대공이 말한 바의 진정한 뜻을 알 수 있었다.

그 날은 대공이 참석하지 않았는데도 파티장의 모든 사람들이 바로 나를 주목하며, 심지어 영향력 있는 청의 대공이나 적의 대공마저도 내게 먼저 인사하고 말을 걸어왔던 것이다. 능력 없는 여자라고 오해받던 일은 끝나고, 황제의 목숨을 구한 정령사 겸 흑의 대공과도 각별한 사이인 공작으로 오늘 하루는 엄청나게 높은 대접을 받았다.

춤추자고 청해오거나 예쁘다며 아부하던 남자들보다, 좀더 심도 깊은 내용으로 말을 걸어오는 귀족들의 비율이 더 많았던 적은 처음이었다. 흑의 대공은 사람을 쉬이 만나지 않아, 심지어는 황자들이나 다른 대공들조차 아무 때나 집에 들이기는커녕 만날 수도 없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공이 그런 허락을 했던 것이었다.

매일매일 그의 집에 찾아가서 두세 시간씩 머무르고 나왔더니 나를 정말로 대공의 아랫사람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이거, 이러다가 권력에 맛들리는 것 아닌가 모르겠네. 뒷빽 하나는 잘 고른 모양이다.

파티 마지막날이 지나자 더이상 그의 집에 방문할 수 없게 되었다. 파티 참석을 위해 수도에 잠시 들렀던 흑의 대공이 다시 공국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다고 우리 협력관계(라고 생각하고 싶다)가 깨지는 것은 아니지만, 대공은 북쪽에 공국을 갖고 있어 지금까지처럼 빈번하게 찾아가기는 어려웠다.

다음 황실파티 때 만날수 있을까 했지만 그는 황실 파티에 거의 찾아오지 않으니 그건 무리였다. 하지만 이미 나는 그의 권력을 등에 업고 다른 귀족들에게 이미 공작을서의 위엄과 두뇌와 능력을 보여 점수를 많이 따 놨으니, 이제는 그의 도움이 절실하진 않았다.

'시렌느 공작각하께서는 아름다운 외모에 걸맞게 굉장히 머리가 뛰어나시군요, 역시 칸스티어님의 제자!'라는 말이 분명 100% 진심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아젤의 제자라는 점도 내 등급을 좀더 올리는 데 한몫 했다. 설마 현자의 제자인데 멍청하진 않을 것 아닌가, 라는 판단으로 내게 사업제의를 하는 상인들의 방문도 늘었다.

정치나 사업적인 면에서는 아젤의 도움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수도에 머문지도 예정된 2주일이 훌쩍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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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 님의 정치적 인지도가 +3000 증가했습니다.

어제랑 오늘 저는 못쉬었어요;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보니 3끼를 빵 두쪽으로 때웠네ㅠ 아오 조낸 바빠요; 3일 휴일이라서 좋습니까? 전 휴일 아님 ㅠㅠㅠㅠ 일이 생겨서 올리는 시간도 다른 때랑은 다르네여.

아 그리고 눈치빠르신 분은 세리안이 공자→자작이 되었다는 걸 아실듯. 엘릭도 작위를 받았는데 얘가 못받았을리가 없을 것 같아서 바꿨습니다. 나중에 앞부분도 마저 한꺼번에 수정할 예정입니다. 편수가 50편이 되어가니 수정도 날 잡아서 해야하는군요; 그리고 앞의 파티부분에 시아가 유렌에게 목걸이 사달라고 조르는 부분도 있었는데 그걸 빼먹고 올렸군요. 나중에 수정해야겠습니다.

앞부분 수정을 한번에 못하는 이유가, 제가 메모장에다가 글을 쓰고 옮기는데 이놈의 메모장에 쓴 글이 한 10초쯤 있으면 멋대로 문장이 끊겨버립니다. 그래서 담편 올릴때는 저장후 끄고 다시 켠 후에 급 드래그해서 글올리고, 이래야합니다. 혹시 문제 해결법 아시는분??

대공 완전 재수없죠? ㅇㅇ 걔가 원래 좀 그래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츤츤거려드립니다. 근데 의외로 전편에서는 흑의 대공이 인기가 많군요. 대체로 귀엽다(...)는 의견이고. 사실 원래 레이니안은 190cm 근육질 시크남 외모에 소녀틱한 성격 이라는 설정이었습니다. 다들 그냥 흑의 대공 흑의 대공 하시는데 이름은 레이니안입니다ㅋㅋ 흑의 대공이란 호칭이 그렇게 부르기 편했나요 ㄷㄷ;

다음편부터는 챕터가 바뀝니다. 이제 미르헬 나오는 챕터라고 보시면 될듯.

그리고 이 소설은 바로 며칠 전에 수위땜에 경고를 받아 강제로 노블로 옮겨졌던 소설입니다ㅠ 그래서 불가피하게 원래 본편에 있던 조금 야한 장면까지 노블 6, 7화로 옮긴거에요. 그런데 또 야한부분을 본편에 올리면 이번엔 정말 삭제당할지도 몰라요; 노블에 대한 점은 양해해주시길. 전체 다 노블인것보다야 낫잖아요 ㄷㄷ;;

단지 수위정도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시면 그 선까지만 본편에 적겠다는 의미입니다. 짜르기 애매해서요;

하지만 현 조아라에선 수위판단이라는 게 정확한 기준이 있는 게 아니라 느낌상 야해보이면 다 짜르는 상황인듯 하네요. 빨리 기준이 정해져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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