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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여왕-53화 (53/226)

<-- 4. 인연 -->

급 쪽지가 와서 설문조사합니다. 위에 투표해주세여!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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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청색 머리를 길게 길러 브레이드를 늘어뜨린 미중년, 청의 대공은 자신의 부인과 아이들을 전부 데리고 당당하게 앞을 쳐다보며 걸었다. 그 곁에 선 적의 대공은 자줏빛의 머리카락을 지닌 미녀인 자신의 딸들을 앞세워 다른 추종자들에게 곁눈질을 하며 인사를 건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귀족들의 모임에 섞여들었다. 어제 참석한 것으로 먼저 아는 척을 해 오는 고위 귀족들이 꽤 많았다. 나는 어떻게 하면 플라니아 공녀를 내 여친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며 적의 대공에게 인사를 건넸다.

같은 여귀족이지만 나는 공작이고 그녀는 계승권과도 거리가 먼 공녀였다. 자크루 공작부인의 성격으로 보아 그녀는 자기 딸들에게 절대로 정치학을 가르치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그건 소극적이고 남 대하는데 서투른 자크루 가의 둘째딸만 보아도 알수 있었다. 보통은 친구가 되기 어렵겠지?

하지만 다른 여자 공작이나 후작, 백작들은 나와 그다지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려들지 않았다. 남자 귀족들은 오직 나에게서 애정에 관련된 것들만 받아내려 한다. 내가 그렇게 머리 나쁘고 능력없어 보이는 건가? 어떻게 이 오해를 타개할 방법이 없나 고민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도 없다. 빨리 내 능력을 이들에게 증명해야만 할텐데 말이다.

그들은 원래 계승후보였던 세리안 시렌느 자작이 단순히 여동생인 나를 귀여워해서 날 시집보내지 않기 위해 내게 공작위를 양보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소드 마스터급인 그라면 굳이 계승받지 않아도 제국에 있는 한 언제든 높은 작위를 딸 수 있을테니까. 그것은 결혼하지 않고 첩만 들인 지금의 내 상황 때문에 거의 진실이라 여겨지고 있다. 게다가 딱히 영지가 전에 비해 크게 부흥하지도 않고 있고, 오빠가 영지 대리인으로서 내 업무를 많이 도와주고 있다는 것도 한몫했다. 그거야 갑자기 내가 공작이 되어버려서 가족들이 곁에서 돕는게 당연하잖아. 난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다고. 이젠 혼자서도 어느정도 일처리가 가능한데 말이다. 그러던 도중,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입구 쪽의 시종이, 커다란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던 것이다.

"레이니안 이트리샤 대공 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왔다아!! 나는 곧장 유렌의 손을 잡고 바닥에 깔린 융단의 가장 앞부분을 밟았다. 그리고 기대 가득한 눈으로 막 정문으로 들어오는 대공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곧 눈을 비볐다. 저 사람이 바로 레이니안 이트리샤 흑의 대공이란 말야?! 흑의 대공이 가족이나 형제, 배우자가 없다는 얘긴 들었지만, 파트너도 없이 혼자서 파티에 참석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 함께 동행한 사람들 중 누가 흑의 대공인지 헷갈릴 염려는 없었지만, 나는 다른 의미로 헷갈렸다.

'기사 제복이잖아?'

그가 입은 옷은 결코 귀족의 예복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는 기사 제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제복은 흑/적/청/백 어느 기사단에도 속해 있지 않았다. 게다가 형태도 조금 달랐다. 은색의 단추가 붙은 짙은 남색의 블레이저 코트에 파란 넥타이, 검은 바지와 부츠. 지금의 기사단 사람들은 금색의 단추와 수로 장식된 스탠드 칼라의 깔끔한 제복이었고, 저런 형식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 우리 기사단의 제복이 자주색과 검은색의 블레이저 코트였지만 저것과는 또 달랐다.

세리안이 큰 키로 사람들 뒤에서 그 남자를 넘겨다보더니,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내게 설명했다.

"저건 황실 구 기사제복이야. 30년도 더 된 옷이지."

그러나 내가 놀란 이유는 대공이 구시대의 유물을 착용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 하나가 아니었다. 흑의 대공은 아무리 봐도, 어딜 훑어봐도 60세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공자인가?"

"그럴리가. 흑의 대공은 아들이 없어. 본인이야."

세리안은 웃음 섞인 말투로 말했다. 흑의 대공은 엘릭처럼 새카만 머리를 길게 길러 하나로 묶고 있었다. 게다가 남들과 미묘하게 톤이 다른 희고 뽀얀, 어떻게 보면 푸르스름한 조명 아래서 병적으로 창백해 보이기도 하는 피부색을 갖고 있었다. 그 피부는 60년을 거쳐왔다고는 상상하기 힘들만큼 주름 하나 없이 매끄럽고 반듯했다. 레이니안 이트리샤, 흑의 대공은 외모 자체만으로 보면 20대 중반인 세리안보다도 더 어려 보였던 것이다. 겉보기로는 한 20살쯤 되어 보이나.

불타는 듯한 엘릭의 뜨거운 벽안과는 다른 심해 속에 가라앉은 오래된 얼음덩이 같은 서늘한 푸른 눈동자와 새하얀 피부, 그리고 검은 광택을 발산하는 긴 흑발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20대의 청년의 외모와 어우러져 내게는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주었다. 아니,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은 그의 외형 따위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눈동자는 마치 사파이어를 박은 인형의 눈과도 같이 아름다웠지만 의욕이랄 것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긴 해도, 오늘 저사람 기분이 별론가보네, 매직데이인가? 하고 금세 넘길 정도로 그다지 심각하게 느껴지지는 않았기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 것보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고고히 턱을 쳐들며 앞만 바라보고 걷는 대공을 사람들은 묘한 선망의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60년의 세월은 헛것이 아니었는지 틀림없는 젊은 남자의 외모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상 다 산 노인들에게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중후하고 무게감 있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몇몇 소녀들은 뺨을 붉히기도 했다. 그만큼 흑의 대공은 굉장히 큰 키에 미청년이라 불릴 만한 외모를 갖고 있었지만 결코 그 아름다움이 가벼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선만큼은 차가운 얼음처럼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다.

"……그러니까 저게 60살이라고?"

인간 맞아? 나는 무심코 혼잣말을 했다. 그 순간 유렌이 뒤에서 내 입을 틀어막았다. 그는 대공이 황제가 있는 상석쪽으로 멀찍히 걸어가자, 내 입에서 손을 떼고 속삭였다.

"그는 적어도 소드 마스터 상급 이상입니다. 작게 말씀하셔도 다 들었을 겁니다. 그에겐 대놓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요. 뭐, 돌아보지 않는 걸 보니 익숙해 보입니다만."

헉. 다 들렸단 말야? 늙어도 가는귀는 안 먹나 보네. 나는 그 20살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남자가 사실은 환갑의 늙은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흑의 대공은 가만히 서서 파티장의 사람들을 하나씩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지루함과 싫증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알페인 대공은 반색을 하며 그의 앞에 달려나갔다. 선배님이라고 부르는걸 보니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 같았다. 50대 노인이 20대로 보이는 남자에게 선배라니, 아무리 실제 나이가 60살이라고 해도 이상했다. 나는 미묘하게 언밸런스한 둘의 관계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기울였다.

그때, 흑의 대공의 눈이 나와 순간 마주쳤다. 아니, 순간적으로 마주쳤다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헐, 이게 뭐야, 그는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유렌에게 잠깐, 세리안에게 조금 길게 다시 시선을 주었다. 나에게만 시선이 집중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내심 안심했지만, 둘다 내 옆에 있었으니 아까 한 말에 원한이 있어 우리를 노려보는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생겼다.

알페인 대공은 레이니안 이트리샤 대공이 자꾸 어딘가를 빤히 바라보고 있자 의아해하며 물었다.

"선배님, 어디를 계속 보고 계시는 겁니까?"

그는 조용히 반쯤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낮고도 거친 특유의 저음으로 느릿하게 중얼거리듯 그에게 대답했다. 딱히 알페인 대공 한 사람에게 대답하는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별로. 보기 드문 것이 있기에……."

그의 그 말은 상당히 미묘한 의미였기 때문에 나는 초 긴장 상태로 최대한 대공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멀어졌다. 젠장, 뭐야, 저 인간의 정체는? 인간 맞아?! 혹시 드래곤이 아닐까 했지만, 세리안도 처음에 내 정체는 거의 짐작하지 못했기 때문에 드래곤이라기보단 정령과 관련있는 인물같았다. 처음의 세리안은 내가 세이시아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낸 것 뿐이다 (그 후에 피의 마법으로 완벽히 오해했다고 생각했지만).

곧 황실의 인원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여황제 레이나는 흑의 대공과 친분이 깊은 사이라고 한다. 그는 흑의 대공을 가장 신뢰하고 있었다. 곧 어느 지방 귀족이 진상한 와인을 시종이 여제의 잔에 따랐다. 나는 세리안이 저 술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무심코 나도 그 자줏빛의 색깔에 홀려 와인을 주의깊게 바라보았다. 이제는 그저 시선을 주는 것만으로도 식물 재료의 이름(대체로 엘프어 또는 고대어 식물 이름이다)과 형태를 알 수 있었다. 용도의 경우 잘은 모르겠지만 어느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

"……."

토르멘이 뭐지?

붉은 색의 기운이 도는 식물체. 보통 포도주와 약간 다른 성분이 몇 가지 들어있자 나는 무심결에 입 밖에 내어 중얼거렸다. 유렌은 내 말에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토르멘은 왜 찾으십니까? 그런 걸 드시면 배탈날겁니다, 아마."

"그게 뭐길래?"

내 질문에,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 간단히 답했다.

"고대서에 적혀있던 흰 줄기를 가진 독초의 하나입니다. 붉은 열매와 흰 꽃에 미량으로도 사람을 즉사하게 하는 극독이 있다고 하는군요. 무색 무취 무미로, 고대에는 사람을 독살할 때 주로 쓰였지만 지금 그 식물은 멸종했다고 합니다. 일단 식물의 일종이니, 식물의 지배자인 시아 님이 드신다면 죽지는 않겠지요."

유렌은 고대서를 읽는 게 취미라고 했던가? 별 특이한 식물을 다 알고 있네. 무심코 넘겨버리려던 나는 지금 그 극독이 여제가 마시려던 와인속에 들어있다는 사실에 기겁하고 벌떡 일어났다.

"자, 잠깐만!!!"

나는 벌떡 일어나서 여제가 있는 곳까지 뛰어갔다. 파티를 즐기던 사람들이 다들 뜬금없는 짓을 하는 나를 바라보았다. 헐. 갑자기 무슨 소란이냐며 노려보는 여자들도 있다. 괜히 뛰쳐나왔나? 그냥 가만 있을 걸 그랬나?

아젤은 나를 보고 놀라서 다른 사람과 얘기하던 것도 그만두고 세리안에게로 다가왔다. 유렌과 세리안은 내가 하는 짓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지만 여차하면 달려나올 기세였다. 그녀는 술을 입에 가져가려다 멈칫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이번이 황제와 처음으로 가까이서 마주본 것이지만 나는 그런 생각보다는 그 잔 속에 들어있는 독성물질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여제는 약간 놀란 것 같지만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나를 마주보았다.

"그대는 누구인가요? 내게 무슨 할 말이라도?"

여제와 전에 직접 만난 일이 없더라도 내가 제국 2대 미녀 중 하나인 시렌느 공작이란 걸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스스로 자신에 대해 소개하는 것이 예의였기에 그것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나는 반사적인 내 행동에 너무 당황해 있었기 때문에 황제 앞에서의 예의를 잊고 머뭇거리기만 했다.

"아니, 저, 그 와인……. ……잔이 예쁘네요. 호호호."

"……?"

……내가 무슨 소릴 한 거지? 여제는 내가 조금 이상한 아가씨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때, 여제의 손에 들린 잔을 누군가가 빼앗았다. 그녀 뒤에 서 있던 흑발의 남자, 흑의 대공이었다.

그리고 대공은 그녀가 뭐라 말할 틈도 안 주고 여제의 입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잔 속의 와인을 단숨에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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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니안 이트리샤, 나온지 5분만에 사망.

아우ㅠ 지난번에 부러졌다던 손톱이 다 나아가는 이 시점에서 다른 손톱이 부상을 또 입었습니다;; 이번엔 손톱이 접혔네염. 무슨 마가 꼈나;; 요새 왜이러징; 손톱부상-친척집크리-신고크리-또 손톱부상.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글을 쓰는 저는 대인배임ㅇㅇ 여러분 대인배에게 덧글을!!

그리고 My Fair Knight에 대해 물으시는 분이 또 계셔서 다시 복붙 설명을 하기보다는 뜰에 아예 적어두기로 했습니다. 궁금하시면 뜰에 가주세요.

꽃의 여왕★ 노블에 새로 올라온 6,7편은 목욕신과 세리안과의 장면을 옮긴 겁니다. 이건 어쩔 수 없어요. 저도 스토리진행상 필요해서 본편에 넣은건데, 수위에 걸리기 때문에 ㅠㅠ 제 판단으로 옮겼습니다. 혹시라도 조아라 소설수위에 대해 잘 아시는 분께서 수위에 안 걸린다고 확인시켜주시면 다시 본편으로 옮기겠습니다. 저는 잘 몰라서; 그 장면은 제 소설 신고당하기 전에 읽으셨던 분은 또 안읽어도 됩니다.

아 그리고 뜰에 시아 그림을 올려주신 에리아님 덕분에 그림 이벤트를 진짜 열어버림; 이벤트 관련은 뜰에서 확인해주세요.

물론 상품으로 제주도 이용권은 뻥이구요, 외전요구권을 드리겠습니다. 그림 못 그려도 참여가능한 이벤트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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