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의여왕-46화 (46/226)

<-- 4. 인연 -->

***

세이시아 시렌느 12대 여공작. 연분홍빛 머리카락의 소녀는 묘하게 섹시하면서도 화려한 분위기의 미녀였다, 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플라니아 자크루 영애 못지않은 미를 보는 순간, 그녀의 또 다른 별명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제국 2대 미녀. 마성의 장미.

기이하게 사람의 시선을 끄는 딸기 사탕과도 같은 반짝이는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모든 남자들은 영혼을 빼앗긴다. 이미 말을 걸어 오던 모든 남자들을 무시한 그녀가 자신의 오빠인 세리안 시렌느에게 소개되는 순간마저도 그 도도한 소녀는 귀찮다는 듯한 시선으로 알페인 공작을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한번쯤 말을 걸어보기 위해 모든 미혼의 귀족 영식들과 이번 파티의 주인공인 기사들은 그녀 곁을 맴돌며 기회를 엿보았다. 하지만 세이시아는 이미 자크루 영애와 함께 황제의 근처로 가버렸기 때문에, 함부로 접근할 수 없었다.

***

플라니아가 나에 대해 기억해내기 위해 고개를 갸웃하는 동안 금빛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큰 키의 황태자는 나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시렌느 공작이시군. 오랜만이오, 이전에는 내 동생이 실례가 많았소."

"시렌느 공작?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의아한 표정의 제이란 대공의 뒤로 여황제가 긴 드레스자락과 망토를 끌며 자신의 아들들과 딸을 데리고 다가왔다. 황제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그녀 뒤에 서 있던 이루가 나를 보더니 반갑게 소리치며, 곧 내 팔을 끌고 나갔다.

"아아, 시아구나! 나 찾으러 온 거야? 한가하니까 같이 놀자."

잠깐만, 놔라! 어디로 끌고 가는 거야? 난 너 보러 온 거 아니란 말야!! 나도 동성친구를 사귀고 싶단 말야!!! 나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자크루 영애를 뒤로하고 이루에게로 질질 끌려갔다.

이미 사라진 시아와 이루의 뒤로 제이란 대공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루를 만나러 온 건가? 그렇게 가벼운 여자로는 안 보였는데."

"젠. 이루는 그렇게 생각 없는 아이가 아니야. 자기 아들을 좀 믿어보지 그래?"

제이란의 말에, 여제인 레이나가 웃으며 말했다. 제이란은 그런데도 둘째 아들인 이룬다인이 못미더웠다. 이루의 바람기는 마치 선왕의 여성 편력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재능은 있는데 그 재능을 노는 곳에만 쓰는 것도 걱정되는데다가, 여자까지 밝히다니. 제이란은 한숨을 쉬었다.

***

"뭔 짓이야!!"

구석까지 끌려온 내가 빽 소리지르자 내 손을 놓은 이루가 갑자기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국가 기밀을 얘기하는 양 내게 손을 가리고 귓속말했다. 장난치는 어린아이로 보이기도 했고, 생각보다 진지해 보이기도 했다.

"내가, 방금 영애들한테서 엄청 이상한 얘길 들었거든. 그 얘기의 진상을 물어봐도 돼?"

"이상한 얘기?"

무슨 얘기길래 날 보자마자 끌고왔나 했더니, 그는 엄청 무시무시한 얼굴을 내게 들이대더니 들릴 듯 말듯 속삭였다.

"너, 그 위스피닌 공자를 첩으로 두고 있다며? 전에 본 그 남자 맞지?"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 얘기를 꼭 무슨 도깨비 얘기 하듯 말해야겠냐? 나는 간단히 긍정했다.

"그런데, 왜?"

"왜냐니! 그 망나니 말야!? 너 그 남자에 대한 소문을 알아?!"

내가 모를 리가 없잖아. 유렌에 대해서는 빠짐없이 그가 내게 말해주었는걸. 이루도 여자를 하룻밤만 취한 후 매정하게 갖다버린다는 유렌의 소문에 대해서 알고 있었나 보다. 그게 거짓말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젠 더 이상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뭐라고 해야 하나 망설이다가, 이루와 함께 있으면 으례히 그러듯이 세리안이 자크루 대공과의 얘기를 마무리하고 내게 다가왔다. 이루는 세리안의 등장에 깜놀해서 기죽은 척 입을 다물었다. 2황자와 첩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는 걸 들켜서 좋을 일도 없었기에 나도 곧 입을 닫았다. 하지만 내게 다가온 세리안은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세리안과 나란히 서 있는 남자는 짙은 밤색 머리를 목 아래로 늘어뜨려 꽁지처럼 묶은 20대의 남자였는데 세리안과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였고 갈색 예복에 단정한 가는 테 안경을 낀 학자 스타일의 남자였다. 선이 가는 편이라서 우락부락해보이진 않았다. 게다가 그 남자 뒤에는 검은 머리의……, 엘릭 레이몬드?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세리안은 이루에게 한번 눈길을 주더니, 곧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인사를 건넸다.

"2황자저하, 오랜만입……."

"하하, 오랜만일세, 시렌느 공자. 그럼 난 이만 할 일이 생각나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루는 도망쳐버렸다. 정말이지, 세리안은 왜 내가 이루와 노는 걸 못마땅해하는 거지? 동성친구를 최대한 빨리 사귀어야겠다. 이대로라면 파티에서 얘기할 사람이라곤 오빠와 유렌과 아젤밖에 없게 되겠어. 이루를 쫓아내고 이윽고 개운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세리안은 내게 옆의 두 남자를 소개했다.

"자, 이쪽은 내 친구인 칼릭 레이몬드. 그리고 칼릭의 동생인 엘릭 레이몬드 자작이야. 오늘 작위수여받은 것 봤지?"

그 남자는 칼릭 레이몬드. 바로 내게 청혼한 엘릭 레이몬드의 형이자 레이몬드 가의 장남이었던 것이다. 칼릭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일단 내 안부부터 물었다.

"세이시아, 정말 오랜만이야. 사고를 당했다고 들었는데 상태가 좋아 보여서 다행이야."

"……어?"

갑자기 친근한 말투를 사용해서 나는 당황했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집안과 저쪽 집안은 어렸을 때부터 친분이 있었다고 했던가. 둘 다 같은 청의 대공 세력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집안은 이제 오빠는 흑의 대공을 지지하며 나는 아직 중립. 세력상으로는 그다지 친하게 지낼 수 없지만 칼릭과 세리안은 사적인 친분이 깊어 보였다.

누구냐고 묻는 내 질문에 칼릭은 약간 당황했다. 하지만 곧 납득하고는 그 친절한 표정에 약간의 걱정스러움을 섞어보냈다.

"……기억을……, 잃었다고 했던가. 갑자기 반말을 해 버려서 당황하셨겠네요. 어릴 때 안면이 있는 사이라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세리안의 친우인 칼릭 레이몬드라고 해요. 아홉 살 때 뵙고 처음 만나는 것이군요. 많이 변해서, 머리색만으로는 못 알아볼 뻔 했어요."

그, 그렇다고 곧장 존댓말로 바꿀 것까지야. 나도 칼릭 공자에게 마주 인사했다.

"아, 네에. 세이시아 시렌느 공작이에요."

"자, 엘릭. 인사드려야지. 어릴 때랑은 다르게 공작 각하라고 해야 돼."

그리고 칼릭은 자신의 뒤에 선 흑발의 동생을 앞으로 불러와 손짓했다. 나는 오랜만에 보는 새카만 흑발에 신기함을 느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저 새하얀 얼굴을 가로지른 왼쪽 눈을 가린 안대를 벗겨보고 싶다. 흑요석보다도 더 검은 것 같은 머리카락과 검사라고는 상상도 안 되는 창백하리만치 희고 뽀얀 피부의 조화가 너무도 신비로웠다. 먹진 못하더라도 한번 찔러보고 싶다고나 할까. 엘릭은 무관이고 칼릭이 문관이라 그런지 동생인 엘릭 쪽이 키가 조금 더 컸다. 하지만 엘릭은 발을 뗄 생각은 하지도 않고 뭔가 뾰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굉장히 딱딱하고 냉랭한 표정 때문에 함부로 다가가기 힘들어 보였다.

나와 눈조차 마주치지 않는 엘릭을 보고 애가 왜 이러지 하며 칼릭은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오, 오늘따라 유난히 까칠하네요. 그 때는 엘릭이 갑자기 집 앞까지 와놓고 돌아가겠다며 떼를 쓰는 바람에, 혼자 보낼 수도 없어 파티에 참석을 못했습니다. 이제라도 뵙게 되어 다행이에요."

그 때라면, 내 데뷔식 파티 때? 그 말에 문득 생각나는 기억이 있었다. 세리안이 거절했다며 화난 듯이 말한 목소리와, 바로 저 남자, 칼릭의 타이르는 듯한 목소리.

그때 돌아간 사람이 이 둘이었어?

"쓸데없는 말 하지 마, 그때 나는 혼자 돌아갈 생각이었다고."

이윽고 처음으로 엘릭이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그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푸른 오른눈은 틀림없이 시원한 호수의 푸른빛이 아니라 고온을 품은 뜨거운 불꽃의 푸른 빛일 것이다. 약간 쌀쌀맞은 듯한 목소리는 조금 낮은 바리톤이었지만 굉장한 미성이었다.

……근데 형한테 상당히 버릇없게 말하는데? 칼릭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은 채로 동생에게 살살 달래주듯 말했다. 동생이나 형이나, 원래 저런 성격인 듯 했다.

"그랬다가는 네가 청혼을 거절해서 삐진 걸로 오해받을텐데? 가족들은 다 참석하는데 혼자만 집에 남아있다는 건 말야."

"웃기네, 애초에 결혼따위……!!"

그 말을 하며 나와 엘릭의 눈이 마주쳤다. 나는 순간 멍해졌다. 그래, 틀림없었다. 여제에게 작위를 수여받을 때 우리의 눈이 마주쳤던 것은 결코 나만의 착각이 아니었다. 그 차가운 파란 눈동자와 마주쳤을 때, 곁에서 느꼈던 활활 타오르는 열기는 어디가고 사방이 얼음 벽으로 막힌 것 같은 냉기만이 느껴졌다. 오싹오싹하다. 나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옆에 있던 세리안의 손을 무심코 붙잡았다.

……저 사람, 뭐야.

분명 착각이 아니야.

그의 파란 눈동자 속에 담긴 동공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어째서 그의 마음은 읽히지 않는 거지? 그가 기뻐하는지, 슬퍼하는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도 나는 모르겠다.

세리안도, 아젤도, 유렌의 감정도 분명히 읽을 수 있다. 때로는 은근하게, 때로는 짙고 분명하게 나는 그들의 감정의 색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이 무도회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마음도 나는 읽을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지만 엘릭만은 깜깜한 어둠 속에 가로막힌 듯 아무것도 안 느껴졌다. 나는 생각 외로 지금껏 이 식물의 능력에 많이 익숙해지고 의지하고 있었나 보다. 상대의 기분이 읽혀지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이렇게나 불안하고 꺼려지다니. 분명 그의 친형인 칼릭의 마음은 읽을 수 있었다.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하는 내용을 일일이 읽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구체적으로, 혹은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갑작스런 이질감에 놀라 멍하니 서 있자, 세리안은 내 손을 잡고 엘릭에게 풋 웃어보였다.

"이봐, 엘릭 레이몬드. 내 사랑하는 여동생에게 인사 안 하나?"

"……엘릭 레이몬드, 자작. ……입니다."

세리안의 말에 그는 잠시 나인지 세리안인지를 노려보더니 정말 마지못해 말한다는 듯 끊어서 간단히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다. 평소에 언제나 사람의 기분을 읽고 대응하던 나였기에 마음이 읽히지 않는 상대 앞에서는 눈치가 굉장히 없었지만, 나는 하나만큼은 정확히 짐작할 수 있었다.

엘릭은, 세이시아를, 엄청 싫어한다.

***

……근데 유렌은 지금 어딨지?

나는 오빠와 비슷하게 다정한 인상의 칼릭은 마음에 들었지만 그의 동생인 엘릭은 굉장히 불편했다. 기분의 색이 전혀 읽히지 않는다는 것도 불안감의 한 요소로 작용했다. 그래서 급히 실례한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나중에 칼릭 혼자 있을 때 다시 얘기를 해 봐야지.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가 없었던 것을 깨닫고 나서 주변을 휙 둘러보았다. 세리안이 나를 끌고가면서부터 그와 헤어진 듯 했다. 주변에는 대부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중간중간 아는 얼굴이 보이기도 했다. 황태자와 얘기 중인 플라니아 자크루 공녀, 또래 여자아이들을 모아서 자신의 장신구를 자랑하는 셀리아나 황녀, 칼릭과 함께 얘기 중인 세리안, 현자들끼리 대화하는 아젤, 그리고 영애들 사이에 둘러싸인 유렌…….

……유렌?

나는 그대로 유렌에게 다가갔다. 남자 간수하는 게 이렇게나 힘든 일일 줄이야. 조금만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려도 유렌 곁에 금세 여자들이 몰려든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지금까지는 그의 곁에 다른 여자가 있었던 적이 없었다. 있다고 해 봤자 저택의 시녀들이나 길 가다 스쳐지나간 평민 혹은 여행자 여자들. 유렌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어도 걸 수 없는 상태의 여자들밖에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그가 얼마나 다른 귀족영애들에게 인기가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이건 완전 하렘의 제왕이네. 한껏 멋을 낸 예쁘고 젊고 파릇파릇한 귀족영애들이 온갖 아양을 떨며 유렌에게 달라붙으려고 하고 있었다. 정작 유렌은 도도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달라붙는 여자들을 떨쳐내며 그녀들을 완벽히 무시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가 내 첩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자님 공자님 하며 저런 식으로 달라붙는 거야? 대체로 유렌에게 접근하는 여자들은 자작 아래의 하급 귀족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공자라면 첩이라도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런데도 저렇게 숫자가 많다니. 나는 첩임에도 높은 지위를 가진 공자라는 그의 위치를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그 공자에게 목욕시중을 시키거나 발을 핥게 하거나 속옷을 세탁하게 하는 등 온갖 잡일거리를 명령했다는 사실도 새삼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런 건 제국에서는 지위가 낮은 하인들에게도 안 시키는 일이다.

나는 그와 관련된 소문들에 관한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았다. 분명 유렌과 스캔들이 난 여자들은 꽤 많았다. 하지만 유렌은 절대로 여자와의, 아니, 남과의 관계에 적극적으로 응할 사람이 아니었다. 나와의 첫대면때도 그러지 않았던가. 그런 남자를 자그마치 침대까지 끌고 가기 위해서는 일방적이면서도 과감한 육탄공세와 술수와 유혹이 필요했을 것이다.

유렌을 멀찍이서 힐끔대는 주변의 영애들은 나와 유렌과 함께 있을 땐 코빼기도 안 비치던 십대 후반의 어린 귀족 영애들이었는데 유렌을 향해 선망과 관심을 보이는 쪽이 대부분이었지만, 은근한 무시를 내보이는 쪽도 있고, 단순한 관심거리로만 보는 쪽도 있었다.

"저분 알아? 굉장히 잘생기셨는데 어느 집안 자제분이셔?"

갓 열일곱이 된 걸로 보이는 어린 붉은 머리칼의 소녀가 소근거리며 묻자 그 옆의 소녀가 말했다.

"관심 갖지 않는 게 좋을 걸. 위스피닌 공작가의 열두 번째 첩의 자식이래. 게다가 성격도 무척 난폭하고, 지금은 제국 2대 미녀라는 시렌느 공작이라던가 하는 여자의 첩으로 들어가 있다지 뭐야."

"뭐? 첩이라니, 시렌느 여공작은 몇 살이야?"

깜짝 놀란 듯한 붉은 머리 소녀의 물음에 호박색 머리의 소녀가 의기양양하게 아는 대로 전부 수다를 떨었다.

"열 여덟 살. 미혼이고, 애인과 첩만 들이고 있대. 제국 2대 미녀라던가, 오늘 파티에 처음 참석한 것 같지만 공식적으로 본적은 없어."

"그럼 그 여공작이 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첩은 버려지겠네. 그때 한 번 접근해 볼까?"

"어머, 쉽지 않을텐데. 비록 첩의 자식이지만 하프엘프고 공작가 자제이고, 저런 남자 흔하지 않단 말야, 경쟁률이 장난 아닐걸?"

유렌, 의외로 인기 많구나. 그렇게 따지자면 공작가의 아들이라는 그의 지위가 생각보다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에 와서 제대로 대접받는 모습을 못 봐서 그런지, 그를 선망하며 공자라는 것만으로도 애틋한 눈길을 주는 하급 귀족의 영애들이 엄청 많았던 것이다. 유렌의 지위를 새삼 깨닫는 것과 동시에 공작이라는 내 작위의 무게도 분명히 느껴졌다.

게다가 제국에서 첩이란 것은, 생각보다 자유로운 지위같았다. 그녀들의 말로 따지면 첩이 아니라 정부나 애인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ㅋ그렇게 함부로 말할 게 아니에요."

"레노아 남작영애……?"

그 소녀들의 대화에 갑자기 어느 예쁜 여자가 끼어들었다. 나이는 스무 살 정도? 옅은 갈색 머리의 여자였는데 플라니아 공녀만큼은 아니라도 굉장한 미인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내가 있는 쪽을 힐끗 바라보더니 풋 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한번 안은 여자를 두 번 건드리지 않거든요. 혹시 모르지, 그 아름답다는 시렌느 공작도 이미 예전에 그에게 버림받은 몸일지. 과연 첩이나 남편의 자리로 언제까지 그를 묶어둘 수 있을까요?"

그렇게 말하며 유렌을 슬쩍 바라보는 그녀는 어쩌면 유렌의 전 애인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남작의 딸이라고 했던가.

자존심 높은 고위 귀족의 딸들이라면 자신을 받들어줄 다른 남자가 넘쳐나는데도 굳이 쌀쌀맞은 남자 앞에서 몸으로 애원하는 짓을 즐기진 않겠지만, 하급 귀족의 딸들은 그야말로 목숨과 자존심을 둘 다 걸고 유렌을 유혹하는 것이다. 게다가 유렌에 대한 소문은 이상한 방향으로 발전해서 그를 유혹할 정도의 여자라면 다른 귀족 남자들에게도 흥미를 끌게 되었고, 자신의 매력 과시용이나 스캔들이 나는 것을 즐겨서 유렌에게 접근하는 귀족 여자들도 흔치않게 보였다.

"공자님께서 그 유명한 위스피닌 가의 스무 번째 아들? 저기, 굉장히 잘생기셨네요! 몸도 괜찮고, 혹시 기사세요?"

콧소리를 섞어 아양을 떨면서 어느 노란 색 드레스의 젊은 여자가 유렌 앞으로 접근해왔다. 은근슬쩍 그의 팔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유렌은 한 발짝 옆으로 물러서면서 귀찮다는 듯이 눈을 내리깔고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다.

"……."

그런 무관심이나 폭언은 거의 유렌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어졌기 때문에 그녀는 조금도 눈을 깜짝하지 않은 채 태연한 표정으로 요염히 웃어보였다. 이 정도에 울며 뛰쳐나가거나 뺨을 한대 때릴 여자라면 애초에 접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당당히 손을 내밀었다.

"전 마리아나라고 해요, 아버지가 베이카 공작이시죠."

공녀……인가? 굉장히 화려하고 예쁜 금발의 여자였다. 유렌이 비록 공자이지만 첩의 자식인만큼 보통의 공작가 자제들보다는 약간 낮은 지위였다. 이런 자리에서까지 이리저리 따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녀가 본처의 자식이라면 실제 유렌보다는 높은 지위인 것이다.

그러나 묘한 일이라면 위스피닌 공작의 아이들 중에 공식적 지위가 가장 높은 것이 유렌이라는 것이다. 위스피닌 공작의 정실부인과 측실을 모두 꼽아 보아도 평민 뿐, 귀족은 없었다. 하지만 유렌의 어머니는 엘프였으므로 이종족과의 협약에 따라 귀족 취급을 받을 수 있다. 가문직계 중에서 혈통상 가장 우수한, 엄밀히 말하자면 공작의 후계자로서 유렌은 다른 공작가처럼 자작 작위를 받았어야 했다.

그런 높은 지위를 가졌을지도 모를 공자에게 여자들은 흥미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아마 자신들이 유렌의 옆에서 조금만 부추기면 공작 후계자의 자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일 것이다. 비록 지금의 지위는 낮을지언정. 내가 주인이지만 혹시나 아직 젊은 내가 다른 고위귀족과 결혼하게 되면 유렌이 첩에서 쫓겨날테고, 그렇게 되면 자기들이 꿀꺽할수 있으니 미리부터 접근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럼, 베이카 공녀. 눈에 거슬리니 제 앞에서 사라져주시겠습니까? 난 기사가 아니니까 당신의 같잖은 놀음에 친절히 응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역시 쉽지만은 않았다. 유렌은 그녀가 내민 손을 무시하고 고개를 돌렸다. 동등한 계급의 남녀사이에 악수도 있을 수는 있지만, 방금의 손은 악수하자고 내민 것이 아니었다. 기사라면 레이디의 손등에 키스를, 하는 의미인 것이다. 하지만 유렌은 기사도 아니었고, 거절당한 베이카 공녀는 호호 웃으면서 친근하게 유렌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가까이서 속삭였다.

"당신, 지금 시렌느 공작의 첩이라면서요? 그 여자 얼굴은 예쁘게 생겼는데, 아직 한참 어려서 밤기술이 그렇게 뛰어날까 모르겠네. 당신은 싫증을 잘 내는 성격이잖아요? 어때요, 당신을 혼자 내버려두는 공작은 놔두고 나랑 정원에서 잠시 얘기할래요?"

그 '얘기'라는 것은 결코 말로서 하는 얘기가 아닐 것이다. 노골적인 유혹에 유렌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유렌은 내키지 않는다는 듯 대답했다.

"그다지……."

뒷말이 이어지기 전에 나는 곧장 유렌에게로 걸어가서 그의 팔을 꼬옥 붙잡았다. 그리고 유렌의 허리에 손을 얹은 그 공녀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유렌의 얼굴을 보며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유렌, 여기서 뭐 해?"

"어머, 시렌느 공작님이시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베이카라고 해요. 위스피닌 공자님은 저와 잠시 얘기 중이었답니다."

방금까지 내가 한참 어려서 밤기술이 어쩌고 했는데도 내게 반가운 척 인사를 건네는 그녀의 표정에는 적의따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 약간 깔보는 표정이 깔려있을 뿐이었다. 이익! 뭐야!! 내가 정말 그렇게 무시당할 정도로 아이같은 모습인가 하는 약간의 후회와 함께 이 순간 어떻게 하면 저 여자를 떼어내기 좋을까 하는 생각에 머리를 굴려보았다.

그녀는 예쁘장한 얼굴에 푸른 눈, 긴 금발을 가진 20대 초중반 미녀였다. 게다가 화장까지 완벽하게 하고 있어서 남자들의 눈에 잘 들어오는 성숙하고 섹시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노란색 드레스는 상체를 조금 많이 드러내는 모양이었는데 길게 늘어뜨려진 드레스 자락은 풍성하지 않아 엉덩이 윗선이 살짝 드러났다.

얼굴은 내가 더 젊고 예쁘다. 당연하지. 게다가 잘 보니 가슴도 내가 조금 더 우월했다. 하지만 키는 내가 더 작잖아. 흥, 칫, 핏, 나는 괜히 기분이 상해서 유렌을 좀 더 내쪽으로 끌어당겼다. 여기서 유렌이 내편 안들어주면 삐질거야. 진짜야.

하지만 대놓고 질투하거나 그녀를 적대할 수는 없었다. 일단은 나는 공작이었기 때문이다. 남의 시선을 신경써야 하는 이런 파티에서는 무엇보다도 자비로운 대응이 중요했다. 그런 면에서 내가 조금 불리했다. 하지만 이왕 막나가기로 한거 나는 당당히 턱을 쳐들고 그녀에게 흥미 없다는 듯 말을 흘렸다.

"그러세요?"

그리고 짧고 간단한 한 마디의 인사만을 남긴 후 유렌에게 고개를 돌렸다.

"유렌,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뭔가 재미있는 얘기 중이었던 거야?"

"그녀의 대화요청을 거절하려던 중이었습니다. 그다지 내키지 않았으니까요."

유렌은 빙긋 웃으며 내 어깨를 살며시, 하지만 힘주어 감싸안았다. 역시 유렌도 거절하려는 거였지? 하지만 뒤의 말은 뭐야,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니! 그럼 내키면 같이 나갔을 거란 의미야? 그 말에 베이카 영애의 인상이 조금 찌푸려진 것은 내가 미처 보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그녀와 함께 가지 말라고, 질투하고 화내도 좋은 걸까? 나는 첩으로서 그를 구속하고 싶지도 않았고, 게다가 내가 세리안과 그렇고 그런 일이 있은 후로는 미묘한 죄책감 때문에 유렌의 행동에 함부로 소유욕을 드러낼수도 없었다.

그에게 청혼 약속을 받아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를 완벽히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세리안과의 삼각관계가 되면서 바뀌었다. 바뀐 것은 나뿐, 유렌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나는 내가 한 남자로는 만족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린 것이다. 꽃이니까. 소유될 수 없었다.

그에 유렌에게도 나와 같이 완벽한 종속을 바랄 수 없게 되었다. 내가 한 남자만 사귈 수 없는데 그는 어떻겠는가.

나는 조금 우울해져서, 유렌에게 말했다. 생각해 보면 굳이 이럴 필요는 없었다. 유렌도 나만으로는 만족 못할 수 있으니까 그에게도 똑같이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남자에게라면 그런 식으로 놓아주려는 생각따위 안하겠지만, 나는 그를 정말 좋아하니까. 단 한번쯤의 기회는 주고 싶다.

그런데도 유렌이 그것을 거부하며 나만을 원한다면, 절대로 나에게서 벗어날 다음의 기회는 주지 않겠지만. 나는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치만 굳이 나 때문에 거절할 필요는 없어. 나는 잠시 바람 쐬러 나갈 테니까 유렌이 원한다면 좀더 놀아도 돼."

그리고 당황감에 물든 그의 시선을 무시하고 밖으로 연결되는 홀의 입구로 나갔다.

"……시, 아니, 공작 각하?!"

곧 놀라서 유렌이 시아를 따라가려고 했지만, 베이카 공녀가 그의 팔을 붙잡고 의외라는 듯 말했다.

"어머, 생각보다 소유욕이 없는 여자네. 나라면 절대 허락 안 했을 텐데, 역시 높은 귀족은 얼마든 남자를 얻을 수 있다는 건가. 뭐, 당신의 성격을 잘 아는 것일지도. 그보다, 공작각하께서도 허락했잖아요. 그러니까……."

공개적으로 바람피우는 걸 허락했다는 듯 베이카 공녀가 말했으나 이미 유렌은 그녀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말했다.

"내 몸에 손대지 마십시오. 내 몸의 첫 번째 주인은 공작 각하고, 두 번째 주인이 나. 그러니 공작 각하께서 허락했다 해도 내가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싸늘한 눈동자를 한 채 남들에게 들릴 듯 말 듯한 낮은 목소리로 마지막 경고를 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유렌마저 사라진 그 장소에 베이카 공녀는 멍하니 서서 그가 가버리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황홀해 보이기도 했고, 분해 보이기도 했다. 날 거절한 남잔 니가 처음이야 하악하악. 평소에도 약간 가벼운 언행이지만 매력적이고 섹시한 행동으로 남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었고, 그저 엔조이로만 남자들과 어울리기 때문에 문란하다는 평을 듣고 있었긴 하지만 유혹에는 거절하지 않고, 이후에는 귀찮게 굴지 않는 여자로 소문이 나서 그녀를 거부하는 남자는 많지 않았다. 아니, 지금까진 없었다. 그녀는 상대를 봐가며 작업을 걸었으므로. 만만해 보인 고작 첩의 아들이 자신을 거절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놀란 표정의 레노아 남작영애가 손수건을 쥐어뜯으며 원망 섞인 눈으로 유렌을 바라보았다. 나한테는 이름조차 부르지 않게 했으면서, 대체 그 여자가 뭐라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게 허락한단 말야? 당신같은 차가운 피를 가진 남자가, 어째서 그렇게 사랑스럽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는 거야? 왜 내가 아닌 그녀에게만 연정을 불태우고 마음을 열어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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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이 길어도 다 읽어주시면 좋을듯;ㅅ;(맨 아래에 요청하신 내용도 있습니다.)

느, 늦은 이유는 이 나이에도 어쩔 수 없는 주말 친척집 크리티컬 때문입니다. 게다가 다 써놓고 이건 좀 아니다 싶어서 처음부터 새로 썼어요ㅠ 대신 분량으로 봐달라능.

오늘 글을 다 쓰자마자 올리려고 일찍 컴을 켰는데(아침 8시), 조아라 점검이 자그마치 12시까지길래 제가 바람을 피웠습니다. 사실 다른곳에도 글을 올리다 보면 더 많은 댓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에 회원가입을 했습니다. ...근데 *** 분위기는 너무 진지하더군요. 이곳에 제 막장소설을 올렸다간 매장당할 기세. 게다가 여성향 글이 전혀 안 보입니다. 조아라 판타지란은 여성향이 점령한 대신 남자분들은 죄다 ***로 간듯하네염. 결정적으로 덧글이 적습니다. 그래서 에프월드인가? 거긴 뭘 눌러야 소설란으로 가는지조차 모르겠더군요. 메뉴가 어려워요. 그래서 메인페이지만 보고 다음, 아이작가? 이건 최신사이트인듯 하네여. 게다가 로맨스 위주인듯. 그리고 로망띠끄 사이트는 제글 올렸다간 100% 짤립니다. 동성애, 팬픽, 야설, 근친, 불륜, 강간 소재 금지라고 하던데, 제 글은 근친과 야설과 불륜이 해당되는군요. 헐. 이렇게 막장이었을 줄이야. 딱히 야설이라고 할것까지는 없지만 ㄷㄷ. 조연중에서 동성애 의혹(?) 캐릭도 몇마리 있구요.(실제 BL은 안나옵니다!) 아 아쉽네여. 근친과 불륜이야말로 진짜 재밌는건데! 왜 사람들은 몰라주지!!

그래서 역시 저는 원조 투드의 탄생의 장인 이 조아라 사이트를 매우 좋아합니다. 근데 진짜 다른 적당한 사이트 아시는 분 없나요? 제 소설 올려도 안 짤릴만한 곳이여. 그래도 나름 중고딩 시절의 제 글과 비교하면 지금 이 글이 꽤 읽을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유치한 건 변함없군요. 전 원래 진지한게 뭔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평생 이럴까봐 걱정.

음 다시 글내용으로 돌아가자면, 여주의 눈치없음이야말로 츤데레 생성의 원리 중 하나! 고로 시아는 엘릭의 마음을 읽을 수 없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나중에 나와요.

에로도 업 미르헬을 기대하시는 분들이 많던데, 저는 미르헬이 야하다는 내용은 말한적 없어요! 그냥 한번 고려해보겠다고만 했는데ㄷㄷ; 써봐야 알기 때문에 미르헬에 관한 내용은 아직 모릅니다. 진짜라구여!!

그런데 엘릭이 고자이길 바라셨다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잖아?!?!

27편에서 목숨을 내놓으면 무기만은 살려주겠다는건 일부러 그렇게 적은겁니다ㅋㅋㅋ 알아차리신분이 계셨군요!

만화 '꽃이되자'는 저도 좋아합니다. 근데 저는 모모가 다른 좋은 남자 다 놔두고 왜 평범한 꽃집하는 남자랑 결혼했는지 이해가 안돼요!!! 악악 게다가 그렇게 자기 좋다는 남자가 많으면 좀 갖고놀아도 되잖아! ……랄까, 그 만화와 설정이 비슷하다는 건 저도 지금와서 깨달았네요; 이제 사막도 나올건데 그럼 더 비슷해지는 건감? 뭐 스토리는 다르니까요. 그 작가님 만화 중에서 요즘에 연재하시는 '메이의 집사'인가? 그 만화 일드로 만들어졌다는데 메이역 여배우가 너무 나이들어 보여서 일드는 안봤음. 어딜봐서 그분이 중학생이에요 척 봐도 20대로 보이는데!! 전 푸릇푸릇한 10대 초반의 소녀가 좋은데ㅠ 빈유는 스테이터스인데ㅠ 그래서 전 만화책으로만 봐요.

그러고 보니 제 소설에는 아직 설정된 미중년이 없군요. ……나중에 등장시킬까나? 흑의 대공은 좀 다른 계기로 시아를 도와주기 때문에, 스토리상 공략해서는 곤란합니다. 게다가 다른 연계작 설정의 주요인물이라 나이수정과 공략도 불가능해요. 먹지말아여ㅇㅇ.

여황제와 대공과의 얘기가 궁금하시다는 분이 계셨군요ㅋㅋㅋ.

하지만 딱히 얘기로 쓸건 아니고, 앞으로의 내용에 나오게 될지 말지도 모르니까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겁니다.

*

젊은 시절의 레이니안 이트리샤(현재 흑의 대공, 당시에는 대공의 직속기사, 당시 20대)가 자기 주인(당시의 초대 흑의 대공 마검사 엘리아스 이트리샤)의 시녀를 구하러 길거리에 나왔다가 집 없는 아이인 젠을 여자앤줄 알고 황궁으로 주워갑니다. 당시의 황궁에는 초대 황제 데이시의 조카인 소녀 레이나가 있었지요. 또래친구가 없었던 레이나는 젠을 보고 우왕 니가 레인오빠(레이니안 이트리샤. 친오빠는 아니지만 친분이 있는 사이였음)가 주워왔다는 애야? 나랑 나이가 비슷해보이넹 님 나랑 친구먹자ㅋㅋ 이러면서 지저분한 옷을 입고 있던 젠에게 자기 드레스를 빌려주고 욕실로 데려가서 같이 목욕합니다.

그리고 여자아이에게 없어야 할 것이 달려있는 젠 때문에 소동이 일어났지요.

남자임이 밝혀진 젠. 여자가 아니니 시녀로 쓸 수도 없고, 주워온 걸 도로 갖다버릴수도 없고, 그래서 레이니안은 고민합니다. 하지만 엘리아스가 '쟤 검에 재능있어 보이네, 키워보지 그래?'라고 말한 덕분에 젠은 엘리아스의 시녀가 아니라 기사였던 레이니안의 종자로 키워지게 되지요.

그때 제이란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고 종자→기사→귀족→그리고 레이나의 호위무사가 되었다가 레이나와 결혼해 여제의 남편인 대공작위를 얻게 된겁니다.

신분상승 죽이네영. 국가가 세워진지 얼마 안된 혼란기라서, 제국에서 가장 낮은 신분의 남자→제국에서 가장 높은 신분의 남자. 그런 신분상승이 가능했던것일듯. 지금은 좀 어렵지요.

*

러브 스토리라고 할것까진 없습니다. 어린시절의 젠이 좀 여자같이 생겼으니 레이나에게 드레스를 입혀지며 놀려졌다거나, 젠이 가끔 따분해하는 레이나를 데리고 황궁 밖을 안내해주다 레이니안에게 들켜서 개 깨졌다거나 하는 얘기 정도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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