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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여왕-38화 (38/226)

<-- 4. 인연 -->

수도에 도착한 것은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수도 근처에도 시렌느 공작가의 저택이 있었다. 그 저택은 붉은 벽돌의 화려한 느낌이 드는 건물이었는데, 최근은 관리를 잘 하지 않았는지 입구의 장미넝쿨이 거의 시들어 있었다.

정원 자체에는 화려했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 수도 저택의 정원사는 아버지가 아끼던 인물이라 아버지가 은퇴하면서 자신의 정원을 꾸미게 하기 위해 함께 데려갔기 때문에, 정원사의 부재로 인한 영향이었다.

물론 정원사만 없을 뿐, 저택의 집사가 집을 제대로 관리하고 있었다. 저택 입구의 장미는 무지개 장미라는 꽃으로서 희귀하지만 키우기 어려워, 그 정원사가 놔두고 가버리자 점차 시들어갔다고 한다. 집사가 인수인계를 받았긴 한데 이상하게도 시들어가기만 하더라고. 비싼 꽃이라 파낼수도 없고, 살릴 수도 없어서 그냥 방치해둔 거라고 이 저택의 집사가 그렇게 말했다.

일단 도착하자마자 아젤님과 다른 기사들은 푹 쉬라며 따로 방을 받았고, 나는 세리안부터 찾았다. 하지만 세리안은 이미 아침 일찍 황궁으로 출근해서 저녁 늦게야 돌아온다더라. 그래서 나는 혼자서 황궁으로 향했다. 공식적인 자리에 첩을 데리고 갈 상황은 아니었기에 호위로 라이언 경만 데리고, 곧장 황궁으로 향했다.

수도의 거리는 듣던 대로 정말 화려했다. 특히 황궁 앞의 광장은 흰 대리석으로 바닥을 깔았고 그 중심에 큰 분수대까지 서 있었다. 분수라는 것은 마법으로 만든 물품이었기에 이토록 커다란 분수를 작동시키려면 꽤 비싼 마석이 들어갔을 것이다.

황궁 앞에 서 있었다면 고개를 힘껏 꺾어야지 그 위를 올려다볼 수 있을 만큼 황성의 벽은 높았다. 하르아이나 제국의 성은 마법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그것이, '너네 마법 쓰지마. 황궁에서 마법 쓰면 감옥 ㄱㄱ', 하고 금지한 것이 아니고, 황궁 벽 자체에 8클래스의 거대한 마법진이 깔려있어 황궁을 중심으로 구를 형성하고 있기에 황궁 내부로 텔레포트는 물론이고 폴리모프나 환상마법, 투명화, 공격마법도 사용할 수 없었다. 위험한 암살의 대부분의 방법이 막히는 것이다. 8클래스 마법진. 인간이 그린 마법진일리가 없다. 이 제국을 수호하는 블랙 드래곤이 처음 제국을 세웠을 때 황가의 안전을 위해 마법진을 그려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예외는 있었다. 마법 자체가 사용 불가능하다면 제대로 된 생활이 될 리가 없지. 금지된 마법은 일정 클래스 이상의 공격마법과 은신마법, 사람의 오감을 현혹시킬 정도로 위험한 환상마법과 이동마법 정도였다. 아예 못 쓰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8클래스가 넘는 실력이라면 마법을 쓸 수 있겠지만, 9클래스는 인간이 아닌 드래곤의 영역이다. 8클래스 마도사도 마법을 제한당하는 마법진이었지만 드래곤은 황궁 내에서 마법을 쓸 수 있었다. 근데 제국에 설마 드래곤 같은게 오겠어?ㅋㅋ.

황궁 내부또한 카덴 대륙 최고의 권위를 보여주듯이 웅장했다. 라이언 경은 성 입구에서 기다리겠다며, 나 혼자만 성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마법진으로까지 보호받고 있는 성이라 위험할 일 같은 건 없었다. 나는 우리 성의 응접실 4배는 되는 듯한 넓은 응접실에 안내받아 차 한잔만 대접받고, 서류만 제출한 후에 그냥 돌아오면 되는 것이다. 공작이라지만 일개 귀족과 여제가 겨우 작위를 물려받았다는 별거 아닌 이유로 독대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나중에 좀더 중요한 일로 기회가 있으면 모를까.

여제는 구경도 못해보고 다시 돌아가는데, 황궁의 앞뜰에서 정문과 이어지는 넓은 돌길을 걷던 도중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시아-!"

무심결에 고개를 돌렸는데, 헐렁한 셔츠를 입은 이룬다인 제 2황태자가 멀찍이서 나를 바라보며 손을 휘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처음에는 누군지 못 알아봤다. 왜냐하면 헤어스타일과 머리색이 확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색이 묘하게 변하는 연두색과 청록색의 머리카락은 어디가고 붉은 빛 섞인 오렌지색 머리를 한 그는 이번에는 등까지 닿는 세미 롱 헤어를 포니테일로 깔끔하게 올려묶고 있었다. 유일하게 바뀌지 않은 이목구비와 보랏빛 눈동자 덕에 그의 정체를 겨우 눈치챈 나는, 멍하게 서있는 동안 이루가 큰 보폭으로 걸어오자 정신을 차렸다.

"너……. 왜 여깄어?"

이해가 안 된다는 내 반응에 그는 경악했다.

"나는 황자니까 당연히 황궁에 살지, 내가 여기 있는 게 그렇게 이상해?"

아, 맞다. 너 황자였지.

그런데 겨우 파티에서 한번 본 사이에 무슨 친분이 있다고 날 불러세운건지, 그는 내게 허리를 숙이며 신사답게 손을 내밀었다.

"그 때의 드레스도 잘 어울렸지만 오늘의 노란색 원피스 차림도 예쁜데. 자, 황실 기사단의 세리안 경을 찾아온거지? 안내해 줄게."

아, 그러고 보니 여긴 황궁이니 세리안도 지금 이곳에 있겠구나. 딱히 세리안을 보러 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랜만이니 만나봐도 좋을 것이다. 나는 이루와 나란히 걸으며 아까부터 궁금했던 걸 질문했다.

"근데 머리색이 바뀌었네. 어떻게 된 거야?"

그는 시원스럽게 웃으며 자신의 팔에 달린 은색 링에 색색의 사각형 보석이 나란히 붙은 얇은 팔찌를 보여주었다.

"머리 색을 바꾸는 마법팔찌야. 내가 열 살 때 생일선물로 받은 거지."

"비싸겠다."

"앗, 눈독들이면 곤란해. 내가 이걸 받으려고 얼마나 형님 뒤를 따라다니며 졸랐는데! 요새는 월담해서 놀러 나갈 때나 기분전환으로 머리색을 바꿀 때 상당히 유용하게 쓰고 있다고."

내가 그를 만난 뒤 처음으로 눈을 반짝이자 그는 팔찌를 얼른 옷소매 밑으로 숨겼다. 굳이 숨기지 않아도 그의 손목에는 팔찌가 많았으니 섞여서 얼핏 보면 티도 안 날 것 같다. 형님이라면 황태자를 말하는 걸까. 무뚝뚝해 보였는데 의외로 동생을 챙기는 면도 있네.

하지만 설마 겨우 청록색과 주황색 두 가지만 있는 건 아닐테고, 자유자재로 머리색을 바꿀 수 있다면 상당히 값나가는 마법 아티팩트일 게 분명하다. 황태자와 2황자는 나이차이가 크게 나지 않을텐데 그런 값비싼 걸 어떻게 구했을까? 뭐, 황족이니까 그정도는 껌값일지도.

여자처럼 생긴 이루와 같이 수다를 떨며 나란히 걷고 있으니 꼭 여자친구가 생긴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 근처에는 시녀를 제외하고는 내 또래의 여자가 없구나.

"이루."

"응? 왜 불러, 시아?"

살며시 웃으며 돌아보는 그의 머리카락이 터프하게 날렸다. 얼굴은 영락없는 여자다. 목소리가 약간 굵은 편이긴 하지만 조금만 다듬으면 완벽한 여성이 될 것 같았다.

"여자처럼 말해봐."

내 말에 그는 기겁을 하고 내게서 두 발짝 떨어졌다.

"그게 뭐야! 나는 남자라구! 이렇게 생겼어도 엄연한 사내자식이란 말야."

하지만 여자처럼 보이고 싶어서 환장한 사람같이 꾸미고 다니고 말투도 엄청 가볍게 하잖아. 나는 순간 이 녀석이 게이가 아닐까 했지만, 남자라는 걸 강조하는 그의 말투와 전에 홍등가에서 오빠랑 진탕 마시고 놀았다는 말로 보아 그건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이 녀석을 우리집으로 꼬셔 끌고와서 여자 드레스를 입혀보면 어떨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그런 쓸데없는 얘기들을 하면서 걷다가, 황궁의 공터처럼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을 라이언 경이 걱정되긴 했지만 서류전달 절차가 생각보다 빨리 끝났고, 잠시 오빠 얼굴만 보고 돌아갈테니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기사단의 훈련장처럼 보이는 매우 넓은 공터에는 천막이 쳐져 있었고, 땅에 우리 집 연무장과 비슷한 선이 그어져 있었다. 지그재그로 그어진 선과 일직선으로 길게 쳐진 금, 그리고 뺑뺑이 돌릴 때 사용하는 연병장 가장자리의 선과 보폭을 일정하게 하기 위한 가로선들.

그 곳에, 은빛의 풀 플레이트를 입은 수십 명의 기사들이 열을 맞춰 나란히 서 있었다. 햇살에 반사되는 쫙 깔린 갑옷들의 은색이 장관이라고도 할 수 있는 풍경이라 순간 멈춰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오빠는 어디있지?"

투구까지 쓰고 있어서 내가 알아볼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곧 이루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주니, 세리안은 갑옷 대신에 하얀 색과 금색이 섞인 제복 차림을 하고 그 기사들의 앞에 서 있었다.

"세리안 경은 전 단장인데다가 지금 로얄 기사단에서 참모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보통 기사들 사이에서 찾으면 안되지."

그의 말대로 세리안이 팔짱을 끼고 서 있는 곳은 지휘하는 연단 위였다. 황실 기사들은 흑, 백, 적, 청 네 개의 기사단으로 나뉘어있고, 그 중에서 황가 직속의 로얄가드라고 불리는 이들은 백의 기사단 소속이다. 건국 초반에는 네 개의 기사단이 동등한 위치였지만 백의 기사단이 황제 직속으로 결정되다보니 로얄기사단으로 승격된 것이다.

세리안은 흰 제복을 입은 걸로 봐서 백의 기사단이겠지. 그가 자신의 기사단에 대한 얘기를 나에게 해줬던 기억이 나긴 하는데 주의깊게 듣지 않아서 까먹었다.

디자인이 같고 색만 다른 빨간색, 파란색, 검은색의 제복을 입은 다른 기사 무리들도 보였지만 나는 세리안의 금사슬 장식이 달린 긴 하얀 블레이저 코트만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봐도 눈처럼 새하얀 제복에 포인트인 금장식과 긴 은발머리가 하얗게 너무 잘 어울려보였다. 풀 플레이트가 아닌 보통 제복을 입은 기사도 있었지만 전부 기장이 세리안보다는 짧은 편으로, 세리안이나 세리안 옆에서 기사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 금갈색 머리의 남자만이 긴 코트 차림이었다. 설마 교복을 자유자재로 줄이고 늘리는 것처럼 불량스러운 짓을 하는 기사 일진은 아니겠지?

"주요 지휘관과 일반 기사들의 제복은 조금 다르니까."

그럼 세리안은 주요 지휘관이란 말인가? 대체 얼마나 잘난 사람이길래. 그냥 검 좀 쓰고 마법 좀 쓰는(물론 이건 비밀) 기사인줄로만 알았는데, 참모인걸로 보아 머리도 좋다는 말 아닌가.

멀리서 기사들의 행진연습을 보고 있으니, 세리안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었다. 아마 멀리 훑어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나는 그를 보고 활짝 웃어주었다.

그런데 그 직후 갑자기 세리안은 옆에 서 있던 연단 위의 금갈색 머리의 남자와 몇 마디 말을 섞더니, 단에서 내려와 곧장 내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세리안이 다가오는 동안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오빠?"

왜 이쪽으로 오냐는 듯이 말하자 그는 말없이 내가 다가오며 내 머리를 큰 손으로 쓰다듬어주고 부드럽게 웃었다. 그리고 나와 이루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오랜만이구나, 수도에는 이제 도착했느냐? 그런데 왜 황자전하는 제 여동생과 함께 있는 거지요? 따로 무슨 용건이라도?"

이루는 날카로운 그의 눈빛에 흠칫하며 시선을 돌려 딴청피웠다. 나는 그를 무시하려다가, 돌아가려면 안내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에게 눈짓했다. 이루는 내가 자신의 옷소매를 꾹꾹 잡아당기자, 무슨 일이냐는 듯 묻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눈빛으로 그에게 말했다.

'도와줄까?'

그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미천한 인간이여, 이로서 계약은 성립되었도다ㅋㅋㅋ. 나는 이루의 앞에 서서 가로막듯이 거리를 벌리며 세리안에게 말했다.

"이루는 내 친구야. 황궁 안내받고 있었어. 나중에 우리 집에 놀러오겠다고 약속도 했는걸."

물론 드레스차림으로.

내 뒷말을 모르는 이루는 세리안에게 무언의 추궁을 받게 되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역시 내 뒷말을 모르는 세리안은 조금 미심쩍었지만 내가 그렇게 말하니 믿어준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루에게서 위협적인 시선을 걷었다.

"그래? 그렇다면야 상관없지만. 황궁 구경은 이제 끝났겠지?"

이루는 갑작스런 세리안의 시선을 받고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세리안은 형식적인 것이 분명한 인사를 황자 이루에게 하고, 집으로 가자며 내 팔을 잡고 내가 온 길로 돌아가려고 했다. 잠깐, 오빠. 저녁때 끝난다면서 왜 벌써 퇴근이야?

아무래도 아까 기사단장으로 보이던 옆 남자에게 몇 마디 말한 게 조퇴 통보였나 보다. 출퇴근을 맘대로 할 수 있다니. 기사란 건 속 편한 직업이구나. 혼자 갔던 내가 세리안과 함께 돌아오자 라이언 경은 놀란 것 같지만 곧 우리를 태우고 출발하라며 마부에게 지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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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라는 꽃의 정령왕 이름입니다. 시아의 진짜 이름이라고도 할수있고 종족명이라고도 할수있지요. 운디네가 운디네고 실피드가 실피드인 것과 같습니다(?).

아오 손톱부러져서 붕대를 감아도 타자를 오래칠려니 아프군요ㅠㅠ. 타자속도도 느려지고. 이게 무슨 봉변이람. 재생되는데 한달은 넘게 걸릴듯. 손톱 부러진데는 힐링포션도 소용없구여ㅠ

그리고 전편 노블에서 대중적으로 나가겠다는건 대략적인 수비범위 이상의 장면을 넣지 않겠다는 겁니다. SM같은거요 ㄷㄷ.

다음편은 수위입니다만 15금으로 판단되니 노블에는 안올리겠습니다. 윗면에 경고적고 그냥 ㄱㄱ. 근데 수위있다고 안보시면 스토리 진행이 잘 이해되지 않으실듯. 야한거 싫어하시는 분은……, 이 소설 왜보시는거지??? 기본적으로 성인 타깃으로 한 야한역하렘소설이기 때문에 내용 중간중간에 수위가 들어가는건 당연합니다. 여전히 전 수위경고라는 걸 왜 적어야하는지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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