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인연 -->
이곳, 내가 다스리는 시렌느 영지는 제국의 남서쪽 변방에 붙어있었다. 땅이 비옥한 편이고 큰 강과 산을 옆에 두고 있는데다가 공작령답게 매우 넓었으므로 살만하고 다스릴만한 곳이다. 젤타 왕국과 큰 산맥을 두고 있어서 이쪽으로 넘어오는 사람이 없기에 무역을 할만한 장소가 아니었고, 산세가 험하고 몬스터가 많아-물론 난 못봤다- 산에서 돈이 될만한 것을 찾을수도 없어 영지민들은 대부분 농업위주의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커다란 마차를 타고 황도로 향하는 도중에 논밭밖에 안 보여서 좀 심심했다.
말을 빠르게 달리면 수도까지 3일이면 도착한다. 물론 전령이 쉬지않고 달리면 하루 반, 느긋하게 가면 5일은 넘게 걸리지만, 내가 까다로운 성격이 아니었기에 제인은 가장 부담되지 않으면서도 될수있으면 효율적이고 빠른 길을 골랐다.
어차피 나는 마법이 걸린 조용하고 푹신한 마차 안에서 가만히 누워 뒹구는 일만 하면 되지만.
하지만 그 짓도 몇시간째 하니 심심해서 미칠 것 같았다. 두세 시간에 한번씩, 잠시 멈춰서 휴식할 때를 빼면 스쳐지나가는 바람의 정령들을 붙잡아 수다를 떨거나, 내가 가서 주의깊게 봐야할 귀족들의 신상명세서를 훑어보는것도 질렸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가 극구 사양하더라도 아젤님과 같은 마차를 탈걸. 붉은 깃발이 달린 공작의 마차를 탈 수 있는 것은 공작의 손님이나 가족들 뿐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선에서 물러나서 지금은 성에 있지 않으니, 이 마차에 공식적으로 탈수 있는 것은 세리안과 내 첩인 유렌 뿐이다. 하지만 유렌은 말을 타고 가고 나만 혼자 남아서 책이나 읽는 신세였다. 나도 말 타고싶은데 솔직히 말하자면 말타는 법을 몰라서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마차에 올라탔다.
아젤은 예의를 들먹이며 내 마차에 타는 것을 거부했고, 유렌은 옆의 기사들이 그의 실력을 존경한다며 자꾸 말을 걸어왔기에 아예 처음부터 마차에 타지 않고 기사들과 함께 말을 타며 간간히 기사들이 말을 걸어오는 것에 대꾸해주고 있었다. 그런 예절따위 안 지켜도 되는데, 쳇. 원래는 같이 타도 되는 내 직속시녀인 네리아는 훨씬 뒤에 시종들만 타는 마차에 실려있었다. 아젤님은 뒤의 흰 마차에 아마도 혼자 타고있으시겠지. 그때 마차의 창문이 열리더니, 옆에서 말을 타며 혼자 바람을 즐기던 유렌이 마차에 바짝 붙어 말을 달리며 내 이름을 불렀다.
"시아 님, 괜찮습니까? 아까부터 안이 너무 조용하던데, 가끔 나와서 바람도 쐬는 게 어떻습니까."
나는 마차 안의 쿠션에 머리를 묻고 작게 말했다.
"……심심해에……."
"그럼, 밖으로 나오세요."
유렌이 자신의 말 안장 앞부분에서 조금 물러서 앉으며 나를 유혹했다. 말, 태워주는건가? 우와! 진작 말할걸.
하지만 30분 전에 휴식을 취했기때문에 다시 출발한지 얼마되지 않은 이제 와서 마차를 멈추게 해 또 진열을 흐트러뜨릴수는 없었다. 내가 명령을 내리는 걸 망설이자, 그는 밖에서 마차의 문을 활짝 열었다. 상쾌한 바깥바람이 안으로 들어와 커튼의 술을 흩날렸다. 그리고 유렌은 자신의 팔을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빠르게 휙휙 지나가는 길바닥을 내려다보며 잠시 망설였지만, 곧 눈 딱 감고 뛰어내렸다. 유렌은 팔을 뻗어 나를 가볍게 안아들고 자신의 앞에 앉힌 후에 덜컹거리는 마차의 문을 닫았다. 주위에서 기사들이 놀란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았고, 마차 반대편에서 나를 호위하던 라이언 경은 거의 기겁하며 조심하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곧이어 격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전부 잊혀져버렸다.
아, 경치 좋다. 바람도 좋고. 역시 화분에 갇힌 꽃보다 화단의 꽃이 더 싱싱하고, 화단의 꽃보다는 야생화가 더 생생한 법이지. 시렌느 영지에서 수도로 가는 루트는 약간 구불거리지만 안전하고 평평한 길 뿐이다. 전부 영지였고, 밭이나 도시, 혹은 잘 닦여진 길이었다. 나는 주변의 넓은 지평선과 멀리 보이는 숲과 산을 바라보며 유렌에게 안긴 채 말 위에 앉아있었다.
그때, 라이언 경이 말을 몰아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괜찮냐고 물었다. 아마 그는 낙마로 인해 내가 부상을 당했다고 하니 말을 타도 상관없겠냐고 물은 것이겠지만, 글쎄, 사실 그건 세이시아지 내가 아니니까.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여보이자 그는 선두의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말을 탄 기사들과 마차를 모는 마부들에게 지시하는 사람이 그였기 때문이다. 딱딱한 기사인 그가 허락한 것도 말 위에 있는 내 표정이 훨씬 좋아보여서인지도 모른다.
저녁이 되기까지 몇 개의 마을을 지나쳤고, 이윽고 노을진 하늘 너머로 저 멀리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 묵어갈 큰 도시였다. 아직 지평선 끝이 희미하게 붉어지긴 했지만 어두워지려면 조금 남았다. 하지만 이 시간이 딱 적당했다. 말도 쉬어야하니까.
도시의 성곽 앞까지 도달했을 때, 유렌은 나에게 자신의 외투의 모자를 뒤집어씌웠다. 저녁이 되었는데도 내가 떼를 써서 마차 안으로 들어가지 않자, 유렌은 추울까 걱정해서 내게 담요를 덮어줬다. 담요까지 몸에 둘렀는데 그가 모자를 눌러씌우자 답답함에 몸부림쳤지만, 마차로 들어가기 싫으면 이대로 있으라며 유렌이 속삭였다. 성곽 바로 앞에서 라이언경도 내게 안에 들어가지 않겠느냐고 물었지만 유렌이 내 모습을 완전히 가리니 별수없다는 듯 내버려두었다.
마침내 높은 성문앞에 다다르고, 경비병들에게 라이언 경이 가문의 문장패를 내밀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말에 달린 천 장식과 기사들의 갑옷문양, 마차의 깃발에 그려진 붉은 새와 나뭇잎 문장으로 우리가 시렌느 공작 가문이라는 것은 확실이 그들이 알수 있었기 때문에 이미 번거로운 절차 없이도 들어갈수 있게 해둔 상태였다.
"여긴 루이자르라는 곳입니다. 여행경로로 지나가는 사람이 많은 큰 도시지요."
유렌이 성문을 지나치는 동안 나에게 속삭였다. 아까 기사들에게 다 들었는지 그는 나도 모르는 도시 이름을 알고있었다.
그리고 성문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그가 어째서 내 모습을 가리면서까지 나를 마차 안으로 억지로 밀어넣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그는 나에게 도시라는 것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좁은 마차 창문으로가 아니라 실제 모습을.
시렌느 영지는 부유하긴 했지만 도시인지 시골인지 애매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시시하게 느꼈는데, 유렌은 그걸 알고서 진짜 귀족들이 다니는 무역도시란 이런 것이라는 메뉴얼 그대로 따르고 있는 루이자르의 거리를 내가 볼수 있게 해주었다. 어두워지는 시각이라 가로등처럼 되어있는 마법등이 큰길을 밝히고 있었다. 건물은 비할 바 없이 화려하고 컸고, 반듯하게 자로 잰 듯이 나란히 서 있었지만 제각각 특색에 맞게 꾸며져 있었다.
사실 사람이 많고 건물이 크다는것밖에 크게 다른 점은 없었지만 나에게는 마법등으로 길을 밝힌다는 것이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우리 성에 복도마다 널린 게 마법등이었으며 몇몇 큰 가게 안에도 있었지만 거리에는 없었고, 농사짓는 사람들의 길거리에 마법등 따위가 있을 필요도 없다.
공작이 없는 빈 마차를 몰고 큰길을 지나서 라이언 경이 점점 도시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 곳에는 커다란 여관, 아니 호텔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화려한 여행자들의 숙소가 있었다. 가난한 여행자가 이용하는 조금 허름해보이는 여관과, 진짜 귀족들만이 쓰는 화려한 여관이 있다.
경은 그 중 하나의 크고 넓은 하얀 벽의 여관으로 마차 셋을 이끌었다. 입구 앞에서 안을 들여다보니 역시, 내부도 성만큼은 아니었지만 화려했다. 시종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깔끔한 차림을 하고 있는 남자에게 경이 머물 방을 준비해달라고 말했다. 그 남자는 귀족 손님을 맞는 일이 자주 있는듯, 능숙하게 예를 취하며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우리 인원은 공작과 현자의 여행치고는 그리 많지 않았다. 혹시나 있을 위험한 일에 호위할 기사들이 스무 명으로 가장 많았고, 그리고 나와 유렌, 아젤 님, 시종 셋과 시녀 셋 뿐이었다. 그렇게 전하자, 시종의 숫자가 생각만큼 많지 않았는지, 시종들에게도 방을 따로 주어야하냐고 물었다.
대체로 귀족들의 시종이나 시녀는 직속이 아닌 이상 여관의 다른 방에서 머물렀다. 황실 기사가 아닌 이상 보통 귀족가에 소속된 기사들은 평민과 하급 귀족이 섞여있었기에 대부분 침대를 따로 사용하고, 방이나 욕실은 함께라도 상관없다.
그는 여섯명이 전부 나, 시렌느 공작의 직속인지 물었던 것이다. 나는 유렌이 안아서 말에서 내려주자 얼굴을 가리던 코트를 벗어제꼈다.
"저기, 그럼 나는 누구랑 방을 같이 써야 해?"
여관 종업원은 내 얼굴을 넋놓고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어떤 위치의 인물인지 헷갈려하는 모양이었다. 라이언경은 머리에 쓰고 있던 두건을 벗고, 하프플레이트를 입고 있음에도 가볍게 말에서 내려 말했다.
"기사들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각하와 현자님께서는 당연히 각방을 쓰셔야지요. 가장 좋은 방으로 준비해두라 일러놓겠습니다."
까다로운 귀족이 아닌 이상은 여관에서는 시종이 필요없다. 시종 역할은 여관 종업원이 다 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네리아도 여행하는 동안은 쉬라는 의미로 내버려두었다. 어차피 같이 가도 할 일도 없을테니까.
얼결에 나는 아젤과 함께 먼저 그의 안내를 받게되었다. 종업원은 이 중에서 가장 지위가 높아보이는 나와 아젤이 시녀와 시종을 데리고가지 않자 고개를 갸웃했고, 내가 유렌의 팔을 잡고 데려가자 더욱 더 알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유렌은 경갑이 아니라 귀족처럼 천옷을 입고 있었는데도 말을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위가 지위인만큼 궁금해도 함부로 묻지 못했다.
아젤은 내가 유렌과 같은 방을 쓴다고 말하자 무슨 상상을 한건지 얼굴이 빨개져버렸다. 그리고 조금 급하게 걸으며 자신에게 배정된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여유롭게 웃으며 내 방을 둘러보았다.
유렌의 거처인 제 4관과 비슷한 디자인이었지만 조금 더 단정하고 깔끔한 분위기였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씻지도 않고 침대부터 찾았다.
유렌은 내 겉옷과 간단한 드레스를 벗겨주며, 침대에서 떨어지려하지 않는 나에게 말했다.
"목욕물을 준비하라고 일러두었으니 곧 준비될겁니다. 반나절 내내 말을 타고 달렸으니 피곤하시겠지만, 먼지는 씻어내야지요. 씻고 나오면 저녁식사도 준비되어 있을테니까, 자, 일어나세요."
"……목욕물 준비?"
"여기는 고급 여관이지만, 최고급까지는 아니기 때문에 시아 님의 성에서처럼 그런 마법 수도가 없습니다. 수도를 틀어도 찬물만 나올걸요. 아마 곧 종업원이 데운 물을 가지고 욕조에 채워줄겁니다."
……그랬지. 여긴 지구가 아니었지. 워낙 편해서 그만 착각해버렸다. 곧 종업원이 방문을 두드렸다. 스위트룸의 한구석에 딸린 욕실에 뜨거운 물이 채워진 후에도 내가 일어나지 않자, 유렌은 침대에서 내 옷을 싹 벗긴채 욕실로 안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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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첫 여행이니 상세하게 쓰고싶었다능.
지난번 노블의 난(…)으로 인해 소설을 여러개로 나눠 올리거나 단편으로 쓰시라는 분들도 계시던데 그럼 제가 헷갈려요ㅠㅠ 지금 '꽃의 여왕'과 '꽃의 여왕★' 이렇게 두개 올리고 있는것도 헷갈려서 미치겠음 ㄷㄷㄷㄷ. 표지와 제목이 같으니까여;; 이렇게 헷갈릴줄은 몰랐어요;
무료로 마나 모아서 마나로 하루나 한달 결제하셔서 보시는거 추천드립니당. 캐시 없이도 잘 모으면 한달분량 금방모여요. 하지만 저는 아바타 옷입혀주고 싶어서 문상을 샀는데, 문상충전 안되고 도문상만 된다네요. 이걸 어쩌지 젠장ㅠ 이미 긁어버렸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