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의여왕-32화 (32/226)

<-- 3. 젊은 여공작과 첩 -->

유렌의 대사에 나와 라이언 경은 동시에 이해 안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엑? 어째서?? 황실 기사단이라면 좋은 거잖아, 기사단장도 될 수 있는 거잖아?"

"시아 님께서는 제가 황실 기사단장이 되길 원하십니까?"

아깝다는 듯한 내 말에 유렌은 도리어 그렇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높은 권력과 지위를 가지고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원하는 삶을 산다는 건 좋은 일이겠지만……, 원래도 첩으로서 내 곁에 묶어두려는 생각은 없었고, 그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놓아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역시 기사단장이 되어 나랑 멀어지게 된다면 싫었다.

"네가 싫다면 상관없지만, ……유렌이 가고 싶다고 말하면, 그렇게 해 줄게."

첩과 귀족의 이혼방법에 대해 라이언 경이 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지만, 첩이 먼저 귀족에게서 단물 다 빼먹고 이혼하자고 할 경우에는 귀족가의 재산 중 동전 한푼도 가지고 갈 수 없었고, 귀족이 아무 죄도 없는 멀쩡한 첩을 내칠 경우에는 법적으로 위자료를 지불해야만 했다. 물론 상황이 보통과 다르거나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재판을 신청해서 위자료를 더 뜯어내거나 위자료를 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위자료 따위가 문제인 게 아니므로 이혼이라고 압축해서 말한 것이다.

나와 라이언 경의 기대 가득한 눈빛에 그는 머뭇거리지도 않고 거부했다. 아니, 고민 정도는 하지 그래?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린데 말야.

"그렇다면 싫습니다. 기사따위는 되지 않겠습니다. 애초에 기사가 되려고 수련한 것도 아니고, 저는 지금 이 상태로도 충분합니다. ……아니, 지금 이 자리가 저에게는 가장 행복합니다."

"하지만 유렌……."

우리 둘의 신파극을 기막히다는 듯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가 라이언 경은 고개를 돌렸다. 제길, 내가 뭘 본 거지,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갑자기 그가 아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는데, 그는 두 가지밖에 말하지 않았다. 나는 세 번째 방법은 뭐냐고 그에게 물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경이 '어? 제가 세 가지라고 말했나요? 두 가진데 잘못 말한듯.'이라고 말하면 그야말로 개낭패지만.

하지만 라이언 경은 그 세번째 방법이야말로 진짜 그가 권하고 싶었던 방법이라는 듯, 매우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결혼하는 겁니다."

"……응?"

나와 유렌은 동시에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내 얼굴과 유렌의 표정변화를 힐끔 보면서 뒷말을 이었다.

"각하께서 위스피닌 공자를 첩이 아닌 정실로 맞아들이시면, 공자께서는 공작이 되는 거지요. 대공 아래의 귀족들은 남편과 부인의 지위 차이가 전혀 없으니까 공자는 각하와 같은 위치의 사람으로서 취급받는 겁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일이 조금 복잡해지지만, 위스피닌 공작가에서의 간섭만 잘 해결하면 앞으로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일이 잘 풀리게 될 겁니다. 제국에서 공자 정도 되는 무력의 소유자라면 출세길은 열려있는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저는 어디까지나 충고하는 것으로서, 결정은 전적으로 각하께서 하시는 겁니다. 부디 잘 판단하셔서 흔들림 없이 올바른 길을 택하시길."

***

그때, 라이언 경의 말로 나는 지금까지 신경쓰고 있지 않았던 사실을 인식해야만 했다. 그와 결혼하게 된다니, 애인이나 첩이 아닌 진짜 반려로 맞아들이게 된다는 것, 마음의 준비는 안 되었지만 그런 게 분명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 아니었다. 유렌이 생각하고 있는 인간의 소녀도 아니고, 정령왕이다. 그 남자는 50년 정도로 성장의 끝을 예정하고 있었지만 언제 성장이 끝날지 모른다. 어쩌면 50년이 훨씬 넘을수도 있고, 바로 내일이 될 수도 있다. 그 때가 되면 유렌과 헤어져야 하는 걸까. ……나는 모른다.

그래서 나는, 역시 나와 결혼한다는 말에 묘한 표정을 짓는 유렌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밤에 중요한 할 말이 있어. ……내 방으로 와줄래?"

***

나는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묘한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자연과 깊게 교감하는 엘프의 피가 섞인 그의 감정은 매우 쉽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유생단계의 정령이라 그런 강렬한 감정에 준비 없이 노출될 수는 없기에 본능적으로 유렌과의 과한 정신적 접촉을 피하고 있었다. ……나에 대해서 밝히지도 않고, 그에 대해서 더 이상 묻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된다. 결혼 얘기가 나온 순간 깨달아버렸다.

나는 지금껏 유렌을 좋아하면서도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와의 결혼마저 원치 않은 혼인이라고 여길 정도로. 사실, 나는 아직 결혼하기는 싫었다. 나는 정령이니 인간의 법에 속박되어 한 결혼은 실제로 이루어질 리가 없는데도, 유렌은 날 그냥 인간으로 알고 있으니까 그와 결혼하는 것은 진짜 결혼이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유렌은 나에 대해 모르고 있다. 내가 말하지 않았으니까. 이 상태로는 결혼이고 연애고 제대로 진행될 수 없다. 진실을 알게 된 그가 상처입거나 나를 피하더라도 일단 말해볼 것이다. 비록 무모하다고 해도 나는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오늘 유렌에게 모든 것을 밝혀야만 한다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에게라면, 말할 수 있었다.

해가 지고 곧 누군가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네리아도 오늘은 이 근처로 오지 말라는 말을 해뒀고, 그렇다면 들어올 사람은 한명 뿐이다.

"유렌."

그는 깨끗이 씻고 옷을 단정하게 갈아입고 있었다. 나는 그를 이끌어서 침대 맞은편 의자에 앉게 했다. 그는 내가 무슨 일로 자기를 부른 건지 묻지 않았다. 그냥, 불러주는 것만도 좋다는 듯이 미소를 띄우며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분명 아찔할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었는데 창 밖의 어두운 노을에 비쳐서 새삼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신가요?"

최대한 들키지 않는다고 하긴 했는데, 내 표정을 눈치챈 그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나는 고개를 젓고, 가만히 그에게 질문했다.

"저기, 유렌. 나는 말야……."

심호흡을 한번 하고, 드디어 말을 꺼냈다.

"나는 네가 내 첩으로 계속 있기보다는 기사가 되었으면 좋겠어. 물론 네가 귀족을 좋아하지 않고, 위스피닌 공작을 싫어한다는 건 알지만 로얄기사가 되면 위스피닌 공작의 간섭도 받지 않을 수 있는데다가 다른 나라로 마음대로 갈 수도 있고, 그리고……!"

나는 갑자기 말이 턱 막혀버렸다. 그 얘기를 꺼내는 동안에 유렌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더니, 마침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서 그대로 침대에 앉은 나를 털썩 쓰러뜨려 손가락으로 입술을 눌러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싱긋 웃었다. ……낮에 보였던 정중한 거절과는 다른, 적극적이면서도 강렬한 자기 주장이었다.

"거부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사랑한다, 는 낯설고 뜨거운 대사에 내 심장은 그대로 철렁 가라앉은 것 같았다. 물론 처음 들은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애매하게 말했던 몇 번의 '사랑'보다 훨씬 더 무게감 있고 진심이 묻어나오는 말에 나는 상기된 뺨을 하고 무언가 말하기 위해 반사적으로 외쳤다.

"하지만!"

"또 무슨 말이 더 필요하십니까? 당신은 분명 법적으로는 나를 내칠 권리가 있지만, 그렇더라도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변함없습니다. 시아가 아직 어리다는 것은, 그래서 내 마음을 제대로 받아주지 못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정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신다면 저를 버리셔도 상관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굳이 쫓아내려고 하지 말아주십시오. 부탁입니다……. 나는 그냥 당신의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으니까."

곧 내쳐질지도 모른다는 첩의 태도 치고는 지나치게 당당했다. 그는 언제나 그랬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내게 명령하듯 말했다. 낮에 라이언 경 앞에서 보였던 비교적 냉랭하고 다소곳한 반응은 죄다 개뻥이었던 것이다.

뭔가 속은 기분이었는데 그리고, 유렌은 약간 쓸쓸해 보이는 표정으로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당신이 저에게 삶의 의미를 주셨으니, 저는 그저 당신이 존재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할 것 같습니까?"

"……엥?"

나는 멍하니 눈을 깜박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유렌은 뜨겁게까지 느껴지는 암녹색의 눈동자로 나를 뚫어버릴 듯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말하세요."

"뭐, 뭐를?"

"내게 말하고 싶은 것 전부. 그리고, 오늘밤은 내게 안기세요. ……오늘만큼은 당신을 혼자 둘 수 없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와, 오늘 이혼 얘기가 나왔을 때, 그리고 아까 당신의 입으로 이별을 얘기했을 때도, 시아는 굉장히 외로운 표정을 하고 있었지 않습니까. 지금 내가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같이 있어주는 것 뿐이지만, 그게 전부라고 한다면 저에게 그것만이라도 하게 해주십시오."

마지막은 거의 속삭이듯이 낮아진 그의 목소리에 나는 놀랐다. 그의 외로움과 나의 외로움은, 같은 것이었던가. 인간들의 세상에 홀로 남아 있던 혼혈 엘프와, 인간으로의 삶밖에 기억에 없는 어린 정령. 서로 동질감을 느꼈고, 시작은 조금 달랐지만 서로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나는 그 상태로 인간이었을 때의 내 과거와 백발 남자의 이야기, 그리고 정령으로서의 나 자신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리고 내 말을 전부 들어준 그는 지금까지와 전혀 변화없는 태도로, 이번에는 자신에 대해 모두 말했다.

내가 걱정했던 것이 완전히 무색해질 정도로, 서로에 관해 그런 식으로까지 상세하게 얘기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유렌은 자신의 과거에 대해 알고 있는 것 전부를 얘기한 후에 나에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내가 정령이라서 다행이라고. 왜냐하면…….

"당신과 조금이라도 더 함께 살아있을 수 있으니까."

하프엘프인 그의 수명은 몇백년, 모르긴 몰라도 소드마스터가 보통의 인간보다 짧으면 1.5배에서 길면 몇배는 더 오래 산다는 것으로 보아 내 예상을 훨씬 넘어서 긴 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하프엘프는 전체적으로 인간의 우성 유전자와 엘프의 우성 유전자 특징이 전부 드러나므로 검, 마법, 정령술, 모든 방면에 두각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긴 수명과 창창한 앞날을 가졌으면서, 그는, 내가 죽게 된다면 자신도 죽을 거라는 의미가 담긴 말을 한 것이다.

물론 나는 정령이라 적어도 수천 년은 살겠지(작은 장미정령에게 들은 말.)만 사랑하는 사람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으면 충격일수밖에 없었다. 나는 당황해서 유렌을 바라보았다.

유렌은 부드럽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시아. 당신은 내 삶의 이유니까."

"……!"

나는 미친듯이 뛰는 심장을 끌어안고 그에게 고백했다.

"겨, 결혼하자!"

"결혼?"

"응응! 나 너랑 결혼하고 싶어. 정령인 나는 결혼을 못하지만, 비록 형식뿐인 결혼이라도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유렌이니까."

드디어 결혼하겠다는 결심이 섰는데, 유렌은 쿡쿡 웃어버렸다. 나는 방금까지 달콤한 사랑의 말을 속삭이던 사람이 갑자기 내 청혼에 웃자, 빽빽 소리쳤다.

"뭐, 뭐야! 너무해, 왜 웃는거야!!!"

"당신이 사랑스러워서요."

그 말 직후 유렌은 내 위에 걸치고 있던 팔을 빼내고, 내 몸을 와락 껴안아 침대 가운데로 올려놓았다. 그리고 이마에, 입술과 뺨에, 발그레해진 귓불과 목덜미에까지 키스를 퍼부었다. 처음에는 반항했지만 곧 내 저항이 잠잠해지자 또다시 입술에 진한 입맞춤을 하고 이윽고 고개를 든 그가 내게 달래듯 말했다.

"지금의 저는 당신과 동등히 설 정도의 남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곧, 조만간 무슨 일이 있더라도, 노력해서, ……최대한 빨리 제가 당신에게 청혼할테니까."

당신은 그냥 기다리고 있기만 하면 됩니다, 라고 그가 천천히 속삭인다.

우, 우와……. 나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뜨거운 그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최대한 빨리……, 해줄거야?"

"네, 물론이지요."

포근하게 나를 껴안는 유렌의 단단한 가슴팍에 귀를 대자, 나의 것 이상으로 빠르게 쿵쿵거리는 그의 심장박동이 들려왔다. 불안정할 정도로 빠르고 큰 소리인데도 왠지 모르게 그 소리에 기분이 안정되는 것 같아서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내 왼쪽 가슴 아래에 대게 했다. 유렌은 부드럽게 내 가슴에 손바닥을 댄 채로 좀 더 가까이 내 허리를 끌어당겼다. 침대 위에 누워 찰싹 달라붙은 상태에서 뭔가 묘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려고 하자, 나는 그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았다.

"저기, 유렌."

"……네?"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할까 하고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뺨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하다가, 조그맣게 움직여 유렌의 셔츠 단추를 위에서부터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전에 장난치던 것과는 달랐다. 아무리 나라도 처음, 끝까지 간다고 하니 조금은 긴장되었다. 하지만 어제 그가 손끝만으로 맛보여준 쾌락의 절정은 정말로 잊을 수 없을 만큼 중독적이었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었다.

"……살살 해줘야 돼."

아. 그는 무엇인가 눈치챈 듯이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안심하라는 듯이 다정하게 웃어보였다.

"불 꺼드릴까요?"

===

음 댓글에 쓰라는 의견과 블로그에 쓰라는 의견이 있었지만, 대, 댓글은 좀;;; 시간이 너무 걸릴것같네여.

그리고 블로그 그거 불펌 안전지대가 아닙니다ㅠ. 드래그 금지를 해도 드래그되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드래그 금지를 푸는 방법도 있고;;;

조아라처럼 아예 글자가 드래그 안되는 소설사이트가 안전한데ㅣㅣ

그래서 베드신 중에서 '위험할것같은 부분만' 노블에 따로 올리는게 어떨까 생각중입니다. 물론 약한 베드신은 그대로 여기에 연재하구여, 앞으로 3p같은것도 막 나올 예정이므로 진짜 이대로 계속 올리다간 위험할것같군요.

어차피 노블은 만 18세이상이신 분들만 보실수있으니 수위도 안전하고, 제가 알아본바에 따르면 앞의 5편인가 10편인가는 공짜라더군요. 일단 공짜부분만 올려보고 그 다음 일은 나중에 생각하겠습니다.

그래서 일단 10편정도는 그냥 노블에 따로 19금장면만 쓰는 소설을 만들어서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다음편이 베드신이에요;; 아직 초반밖에 안적어서 수위가 어느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위 세면 노블에, 약하면 그냥 여기에 올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앞의 목욕탕 씬은 수위가 그렇게까지 높지 않은것 같아서 그냥 맛보기로 놔둡니다. 아마 그 씬보다 수위 높으면 노블란, 수위 낮으면 그냥 올리게 될것같네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