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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여왕-25화 (25/226)

<-- 3. 젊은 여공작과 첩 -->

***

유렌은, 내가 울것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오히려 더욱 당황해서는 나를 안고 달래주었다.

"그, 당신은 예쁘고 애교도 있으니까, 게다가 그 때 그렇게나 저를 유혹해버렸으니 전혀 처음일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오히려 제 쪽이 당신 생각은 못하고 그대로 덮치려고 해버렸으니까."

"이 나이때까지 처음이면 이상한거야?"

지구인 치고는 나도 딱히 처녀성에 대한 강박관념은 없었으니 상관없었다. 하지만 내심으로는 그가 나 때문에 당황하는 게 너무 귀엽게 느껴져서, 괜히 울먹이며 그의 팔에 얼굴을 묻었다. 유렌은 쩔쩔매면서도 더욱 포근하게 나를 감싸안아주며 낮고 상냥한 목소리로 나를 설득했다.

"그런 게 아니에요. 당신만이 아니고, 당신과 나이가 같은 제국 2대 미녀인 플라니아 자크루 영애도 아직 숫처녀라는 소문이 있으니까. 자크루 가문의 대공비가 루페닌 왕국 출신이라, 딸에게 정조 교육이란 걸 시켰다는군요. ……저는 제국에서 자랐는데다가 엘프인 어머니에게서 교육받았으니 여자의 정조라는 것이 남자의 정조와 무엇이 다른지 잘 모르겠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여성의 처녀성이란 걸 굉장히 중요시하는 모양이에요. 그러니 신경쓰지 않으셔도 돼요."

보통 하르아이나의 귀족 여자아이들은 열 세살에서 열 다섯 살 사이에 첫경험을 한다더라. 한창 호기심이 생길 때고, 게다가 약을 먹으면 아프지 않으니 무서워할 필요도 없고, 여자로서 순결을 전혀 강요하지 않는 사회적 풍조도 받쳐주는데다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남자들이 주위에 널렀으니 거리낄 것 없었다. 평민들은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귀족들은 정말로 성에 있어 개방적이었다.

그 어린 귀족영애들의 첫경험 상대는 파티에서 만난 잘생긴 청년이라던가, 짝사랑하던 또래의 귀족 남자아이들이라던가, 아니면 자기 마음대로 명령할 수 있는 낮은 계층의 하인이라던가, 혹은 드물지만 친오빠(!)였다. 그야말로 아주 가끔이라 할 만한 확률이지만 가족 중에서 가장 가깝게 지내는 존재인만큼 친오빠가 짝사랑의 대상이 되는 일도 있다고 한다. 게다가 세리안의 말을 그대로 전해버린 것 때문에 유렌은 나와 세리안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것 같았다. 세리안의 말 뜻을 알아버린 나도 덩달아 기분이 복잡해졌다. 정말 오빠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장난이라기엔 너무 진지한 말투였단말야!!

혼자서 세리안의 장난기에 대해 투덜대다 보니 어느새 저택 문 앞을 벗어나 번화가와 공작가의 성을 잇는 공터에 이르러 있었다. 유렌은 아무 말 없이 내가 가려는 방향으로 따라왔지만, 내가 민가 쪽으로 가려고 하자 갑자기 나를 붙잡았다.

"그런데 시아 님."

"……응?"

"어디로 가실 생각이신가요? 그 쪽은 거리로 나가는 길입니다만……."

이 곳의 데이트라고 하면 두 가지가 있었다. 공식적인 연애와 밀회. 공식적인 연애는 말 그대로 결혼을 약속한, 정식 약혼자들끼리 하는 예비 허니문같은 것이다. 둘은 부부나 마찬가지이므로, 모두들 부부로서 인정해주기 때문에 당당하게 같은 방을 쓰거나 길거리에 붙어 돌아다닐수도 있었다.

그리고 밀회는, 공식적인 약혼사이나 결혼한 사이를 제외한 모든 것이었다. 결혼할 사이도 아닌데 연애를 하는 것은 암묵적으로 인정되고는 있지만 역시 당당히 대낮에 내놓고 함께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밀회는 보통 정체를 숨기고 같이 돌아다니거나, 아니면 아예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만 행해진다. 실내, 정원, 혹은 깊은 숲 속이나 인적 드문 곳 말이다.

나와 유렌의 관계는 분명 공식적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유렌을 정식 모임에 데리고 나가거나 배우자로서 인정할수는 있지만, 첩이니까 진짜 남편만큼 당당하게 대하지는 못했다. 그는 아무래도 내가 성 뒤에 있는 산책용 숲으로 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영지내 숲은 대체로 영지를 지을 때 몬스터나 맹수들을 전부 몰아내기 때문에 산토끼나 사슴같은 작은 동물들밖에 살지 않는다. 게다가 가까운곳에는 길도 나 있고 산책로가 닦여있으니, 너무 깊이 들어가지만 않으면 데이트에는 딱 좋은 장소였다.

하지만 나는 그 산책로 입구와 정반대인 공작성 앞문으로 나온거였다. 게다가 제인과 세리안에게만 내가 영지 시찰을 간다고 뻥쳐놓고, 다른 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않고 둘만이서 몰래 나온 것이다. 나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유렌에게 말했다.

"어두컴컴한 숲으로 가면 유렌이 날 덮칠거 아냐?"

"그렇군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악! 잠깐! 어째서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이 긍정하는 거야? ㄴㄴㄴㄴ 그런 거 아냐, 그냥 농담이었다구!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

나는 마치 그를 경계하는 듯한 내 말에 조금 아쉽다는 듯 고개를 떨구는 유렌에게, 내가 쥐고 있던 분홍색의 당밀 병을 살그머니 쥐어주었다. 내가 건넨 약병을 받고 의아해하는 그에게, 나는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나중에……, 내가 준비가 되면 그때 먹여줘. 그때까지 잘 가지고 있어야 해."

그는 조그만 내 목소리에 뺨을 붉히며 당황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유렌이 당연히 내가 처녀가 아니라고 생각할 만큼 이곳에서는 처녀성의 개념이 희박한 것 같았지만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뜻밖의 말을 했다.

"당신의 첫 상대가 제가 되어도 좋은 겁니까?"

아, 안될 거라도 있어? 내가 놀라서 그렇게 묻는 유렌을 바라보자, 그는 묘하게 가슴이 뛰는 말을 했다.

"처음이라는 건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일이니까요. ……당신이 제 첫사랑인것처럼."

헉.

갑자기 기습공격이라니! 잉잉 님 비겁함. 나는 무방비하게 그의 고백을 생으로 들어버리고는 한동안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아, 콩닥거려. 이런 순정적인 공격에는 약한데 정말이지. 아까 내숭떨며 안겨든 것의 복수인건가. 물론 그는 내가 내숭인지 절대 모를테지만.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못할 것 없지. 나는 그대로 유렌의 팔을 꼬옥 껴안으려고 다가갔다. 하지만 유렌은 그 전에 자신의 외투를 벗어 나에게 덮어씌웠다. 얼떨결에 예쁜 원피스 아래에 짙은 회색 코트를 뒤집어쓰게 된 나는 불만어린 표정으로 항의했다. 안감이 실크라서 부드럽긴 했지만 더운 여름에 땀이라도 흘리면 금세 들러붙어서 불편해질 것 같다. 게다가 그냥 입히는 것도 아니고 후드까지 푹 눌러씌우고 완전히 내 어깨와 머리를 덮어버렸다. 우 답답해!

금세 벗어던지려는 나를 유렌이 제지했다.

"이대로 영지 시내로 나가실 생각이신거죠?"

"응. 영지 시찰도 할 겸, 구경도 하고, 살 것도 있고."

내 요청에 그는 별로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상인을 호출하면 되잖습니까? 그 모습으로 다니면 시선을 끌게 될 겁니다. 게다가 위험하기도 하고요. ……영지민들이 영주인 당신의 모습을 알고 있습니까?"

"글쎄. 머리색이 바뀐 이후로는 밖으로 나가본 적 없어. 그치만 모르는 게 낫잖아, 귀족인 걸 알리면서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사실 이번 외출의 목적은 데이트도 있었지만, 시찰의 의미가 더 강했다. 나는 내가 다스리는 영지의 모습을 한번도 가까이서 본적 없었다. 큰 문제 없이 돌아가고 있다는 세리안의 말을 믿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한번쯤 직접 돌아다녀 보는 게 낫다고, 비서인 제인과 아버지도 충고했다.

게다가 상인을 불러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돌아다니며 쇼핑하는 것에 더 익숙해져 있던 나는 왠지 상인을 자주 부르지 않게 되었고, 공책이나 펜, 고무줄, 손수건 등의 생필품 같은 걸 파는 상인은 없었기 때문에 장신구 이외의 물건들은 직접 고르기보다는 아래에서 공수해온 물건들로만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왕 필요한 자잘한 물건이 있으면 가끔 나와서 사가는 것도 좋은 기분전환 방법같았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외출은 재미있으라고 하는 것 아닌가! 성에 만년 갇혀있으면 싫증날 때도 됐지 뭐. 유렌은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호위병들을 데려오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호위병과 함께 다니면 시찰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데이트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게다가…….

"라이언(우리 공작가의 기사단 단장의 이름. 내 직속 호위무사가 아직 없었으므로 가장 실력과 지위가 높은 그가 내 호위를 담당하게 된다.) 경은 분명히 따라다니며 내내 잔소리 할걸."

그는 좋은 사람이고 가문에 대한 충성심도 강했지만, 워낙 올곧은 사람이라 첩에 대해서 안 좋은 시선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내 앞에서 직접 내색한 적은 없지만. 게다가 내가 꼭 평민처럼 마구잡이로 이런 장소를 돌아다닌다고 하는 걸 알면 발벗고 뜯어말릴 것이다.

유렌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검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그냥 영지 내를 잠시 돌아다니는 건데 검이 왜 필요한지 잘 몰랐다. 이곳에서 매일 사는 평민들도 검을 가지고다니지 않잖아? 그런데도 유렌은 꼭 필요하다고 하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인간들은 정말 재밌어.

햇빛이 가려지는 건 싫었지만, 유렌이 불평하는 나를 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내게 씌워준 코트를 상대로 무언가를 중얼거리자, 코트가 굉장히 시원하고 가벼워졌기 때문에 쓰고 다니기에는 편해졌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뭘 한거냐고 물었다.

그는 '별로 어려운 건 아니에요'라며 빙긋 웃어보였다. 우왕. 상처를 눈 깜짝할 새 치료한 건 물론이고 물건에 마법까지 걸다니, 유렌은 세리안같은 마법사인건가? 하지만 방금도 검을 챙기지 않았다고 걱정한 걸 보니 검도 사용할 줄 아는 모양이고, 정령도 부를 수 있다고 했는데. 대체 유렌은 못하는 게 뭐임?

실력을 철저하게 숨기고 있는건 정말인듯, 유렌은 내게 마법을 걸어주면서도 절대 옷에 자기가 마법을 걸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걸로 비밀이 두 개 생겼다. 그가 정령사라는 것과 마법사라는 것. 나에게는 모든 것을 다 말해줘도 상관없을 것 같다고 그가 말했지만, 굳이 물어본 것 이상의 비밀까지 줄줄이 말하지는 않았다. 나도 아직 서로간에는 신비로움이 남아있어야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더 이상 함부로 묻지는 않았다.

"사실은 여전히 걱정되긴 합니다. 당신은 너무 매력적이니 틀림없이 남들의 눈을 끌어버릴 겁니다. 눈에 띄는 이방인은 위험을 겪기 쉬우니까요. 하지만 치안대가 순찰하고 있는 큰 길로만 다니면 안전할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껏 내게 머물던 마성의 마력이 사라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유혹의 강도를 조절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도 최근 깨달았다. 문제가 있다면 그 조절이 아직 서투르다는 것과, 시찰을 하려면 뒷골목 곳곳에까지 돌아다녀야 한다는 점이다.

뭐, 골목을 돌아다니는 건 꼭 오늘 해야하는 법도 없잖아? 유렌과 같이니까, 게다가 첫 데이트이기도 하니까 번화가 쪽으로만 다녀도 될 것이다. 여자에게 찝쩍거리는 남자들의 시비는 많이 당해봐서 혼자서는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지만, 같이 있는 유렌까지 위험해지길 바라지 않으니까 오늘은 안전한 일만 해야지.

이날을 위해 예쁘긴 하지만 평범한 면으로 된 원피스를 입었다. 디자인도 평민들이 입는 옷들과 가장 비슷했기 때문에 골랐다. 유렌도 옷을 그다지 화려하게 입는 편이 아니고, 말하자면 수수한 것과 다름없었으니 별로 눈에 띄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번화가에 들어섬과 동시에 나는 사람들의 은근한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우리 제국은 잘 사는 편이라, 그 중에서도 조금 중상층인 평민이나 부유한 상인들의 옷과 귀족의 일상복이 그다지 큰 격차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넘사벽이라는 것은 존재했다. 코트를 나에게 걸쳐준 덕분에 가린 것 없이 드러난 유렌의 귀티나는 외모와 복장 때문이었다. 이게 뭐야! 날 걱정하더니, 자기가 더 시선을 끌잖아?!

그도 그럴 것이 유렌은 엘프 혼혈이라 인간에게는 없는 신비로운 매력이 있고, 게다가 내가 지금껏 본 남자들 중에서 가장 잘생긴 세리안보다 더 아름다운 외모에, 키도 크고 근육도 제대로 잡혀 있고, 흠이라고는 없었다. 눈에 너무 띄는 것이다. 내가 남들의 시선에 불안해하자 그는 싱긋 웃으며 날 안심시켰다.

"괜찮습니다, 시렌느 영지는 지리적 위치상 여행자가 많은 편이 아니니까, 이방인에게 호기심을 갖는 모양이지요. 예전에 성 밖의 거리를 많이 돌아다녔으니 웬만한 것은 알고 있습니다."

미, 믿어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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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오빠믿어.

음 주인공이 그렇게 고통을 못참는 설정은 아닌거같아염. 좀 애매하게 써진것 같은데 그냥 아야하는게 싫을 뿐인듯. 그보다는 처음이니까 안그런 척 해도 긴장한다거나 무섭다거나 하는 면이 조금 있겠죠.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다는게 그런의미.

랄까 주인공 완전 어리게 설정되어있긴 합니다. 아 이설정 골치아프네요. 인간 인생은 17년인데 정령으로 따지면 유아기에, 이 세계 인간으로 치면 아직 세상경험 부족한 3개월짜리 흑ㅠ

설정이 초창부터 이상하네여. 글 쓰는중에도 계속 신경쓰고 있었지만 이제와서 고치긴 좀 늦은것 같고 그냥 주인공 맛갔다고 하고 봐주세여;;

아 그리고 뜰에 가시면 좋은 그림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남편인 적발 섹시남에 대해 기대하시는분들이 많으시던데, 뜰에 그 캐릭 정보와 사진이 살짝 올라와있습니다. 가서 확인하시고 실망하세요(응?). 아직 나오지 않은 캐릭이라 기대가 많으실듯한데 정작 보시고 어떻게 판단하실지는 본인마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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