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젊은 여공작과 첩 -->
내가 정령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유렌의 경계는 조금 허술해졌다. 아무래도 본능적으로 나를 받아들이게 된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그날 밤 유렌의 처소로 침입을 시도했다.
유렌은 한밤중에 제 4관의 자기 방까지 찾아온 나를 보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공작 각하. 뭐 하시는 겁니까?"
나는 당당하게 그의 방문 앞에서 말했다.
"잠깐 얘기 좀 하게. 괜찮지?"
넌 날 거부할수업서. 지금까지도 그래와꼬 아패로도 개속.
유렌은 이 밤중에 공작이 찾아왔다는 사실에 조금 긴장한 듯 했지만, 내가 아주 순수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놀자고 말하자 그는 한숨을 쉬었다. 첩이라고 해도 함부로 잠자리를 요구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같은 정령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동질감을 느껴서 나는 그와 친해지고 싶었던 것 뿐이다.
어쩌면, 그 동질감은 유렌보다는 나에게 좀 더 절실했던 것 같았다. 이 세계에서 혼자라는 기분은 아무래도 적응되지 않으니까. 처음으로 나 이외에 정령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너무 안심했을지도 모른다. 공작인 내가 그를 함부로 믿었다간 뒷통수 맞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내 일부이자 전부인 정령의 나는 그를 믿어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나는 그가 마음에 드니까 일단은 그와 친해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같이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게 가장 좋았다. 당분간 여기서 지낸다고 말해 두었으니,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거야.
나는 얼굴에 철판부터 깔고 그의 침대에 앉았다. 역시나 킹 사이즈의 침대는 두 명이 아니라 서너 명이 자도 충분할 정도로 넓었으니 그다지 침대 한구석을 차지해도 폐가 된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셔츠와 바지차림으로 어정쩡하게 서있는 그에게 손짓했다.
"정령에 대해서 가르쳐줘."
사실은 여유가 생긴 이 때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정령 책을 읽어볼 생각이었지만 살아있는 교본이 옆에 있는데 책을 왜 읽겠는가? 그는 갑자기 그런 것을 물어보는 나를 이상하게 보았다. 유렌은 자신의 공간에 예고 없이 침입한 나를 경계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내게 적의를 내보이며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저라고 해서 인간들의 상식 이상의 것을 알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상식을 알려달란말야. 아까 아침에 나한테서 정령의 기운이 안 느껴진다고 했지? 그 정령의 기운이란게 뭐야? 왜 나한테는 없는거야?"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내게 알려줘서 나쁠 건 없다고 판단한듯 했다. 아니면 내가 상식도 모르는 바보라고 생각했던가.
"정령의 기운이란, 정확히 말하자면 정령 자체의 기운은 아닙니다. 정령을 볼 수도 없는 주제에 정령력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물론 저도, 드물게 정령이 보이는 체질이지만 정령력 자체는 느끼지 못합니다.
정령의 기운은, 일종의 마법의 기운입니다. 정령을 소환하고 교감하는 데에는 자신의 몸에 있는 마나를 마법처럼 변환시켜 사용해야하는데, 정령에게 마나를 이용해 명령하면 그 마나의 잔여물이 잠깐이지만 남게 됩니다. 그 정령마법의 흔적을 정령의 기운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당신은 정령을 볼 줄만 알뿐 정령마법은 쓰지 못하니, 정령의 기운이 남아있을 리가 없겠군요."
"그럼 그 정령력이랑 정령의 기운이란 건 어떻게 느끼는거야?"
"정령력은 보통 인간이 느낄 수 없습니다. 자연과 가장 가깝다는 하이 엘프라면 모를까 보통 인간이 정령을 직접 느끼는 건 불가능합니다. 정령의 기운이라는 것은 정령마법을 배우게 되면 저절로 알 수 있을 겁니다. 마나를 느끼고 그 종류를 구체적으로 분간하는 것이 마법의 기초이니까요."
아마 세리안이 내게서 딱 한번, 정령의 기운을 느낀 적이 있던 것은 내가 바람의 정령에게 명령을 했기 때문에, 그 때 나도 모르게 정령마법의 흔적이 남아버린 것 같았다. 이미 오래 전 일이고 최근에는 정령에게 명령한 적이 없어서 정령의 흔적은 나에게서 지워진 지 오래였다.
그보다 유렌은 귀찮은 척 하면서 설명을 잘 해주잖아? 의외로 다정한 사람…….
"다른 용건이 없으시다면 이젠 나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으엑. 냉정하다! 유렌은 방어적인 자세로 내게서 약간 떨어져 서 있었다. 이게 무슨 첩의 태도야! 사실은 첩을 들였다는 세리안의 말을 들었을 때 조금 더 사근사근하고 다정한 남자를 상상했던 나는 유렌의 차가운 행동에 주춤할수밖에 없었다. 무슨 남자가 저렇게 접근이 어렵담. 젠장.
정말 내가 이런 말까지 하긴 싫지만, 나는 그에게 살살 구슬리듯이 애교있게 말했다. 누가 누구에게 애교를 떨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네. 그래도 아쉬운 건 내 쪽이니까.
"조금만 더 얘기해주면 안될까? 응? 혹시 졸려? 벌써 잘 시간이야?"
"……그다지, 언제 자든 상관없습니다."
"그럼 더해줘. 아, 그렇지. 정령을 어떻게 소환하는지 보여줄수 있어?"
그에게서 정령소환 마법을 배울 수 없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는 갑자기 그 얘기가 나오자 지금까지 잘 대답해주던 것과 달리 비협조적으로 나왔다.
"별로 내키지 않는군요."
"엑, 그게뭐야! 한번만 보여주면 안돼?"
"싫습니다."
"보여달라니까, 응??"
물의 정령은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컵이나 욕조 정도를 채울 양에서 정령이 나오지는 않았던 것이다. 꼭 한번 보고 싶어서 괜히 고집을 부렸는데, 절대로 누군가에게 화 같은 건 안낼 것 같았던 유렌이 그 무표정함을 무너뜨리고 갑자기 벌컥 화를 냈다. 힉, 잘못했어요. 역시 괜히 고집부렸던 건가.
"싫다고 했잖습니까! 내가 왜 인간을 위해 그런 일까지 해야 하지요? ……정령은 당신의 장난감 따위가 아닙니다."
낮고 거칠게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를 내는 그는 위협적으로 옆에 놓여져 있던 장검을 거칠게 집어들었다. 저 검, 장식용인줄 알았는데 진짜 날카롭게 번쩍이는 진검이었다. 이젠 막나가자는 건지 그는 성큼성큼 걸어 다가오며 낮은 어조로 내게 말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드시겠지만, 평민이건 귀족이건 목숨의 무게는 같습니다. 이미 인간을 몇 명이나 베었는데 아무 힘도 없는 귀족 여자인 당신 정도를 못 죽일 것 같습니까? 정말로 죽고 싶지 않으면 이 이상 귀찮게 하지 마시고 돌아가십시오. 난 눈에 거슬리는 것이라면 뭐든 죽여버리고 싶어지니까."
나는 당황했다. 내가 무슨 못할 말이라도 했나? 혹시나 엄청난 실례를 저질렀던 걸까 하고 내 행동을 다시 되짚어 보았지만 그런 건 없는 것 같았다. 그보다, 유렌이 검을 검집에서 빼내들자 나는 그가 정말로 폭발해서는 날 공격하려는건가 하고 멈칫했지만, 그의 말투는 여전히 존댓말이었다. 갑자기 유렌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밖에서 대기중이던 시종이 무슨 일이냐며 문을 두드리며 물었다. 나는 당황해서, 그대로 침대에서 문으로 돌진해 잠금쇠를 걸었다. 그 덕분에 시종은 들어오지 못하고 그냥 문만 두드렸다.
"공작 각하? 안에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그러고 보니, 위스피닌 공작의 망나니 아들은 성격이 더러우니 조심하라는 말을 네리아에게서 들었다. 나는 그 아들과 만날 일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그냥 넘겼지만 지금은 왜 그녀가 내가 이곳으로 향하기 전에 그 말을 해주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망나니 아들이란게, 바로 내 첩인 유렌이었던 것이다. 이런 뜻이었구나. 지금 이런 상황을 겪는 와중에도 그에게 나쁜 감정을 가질순 없지만 말이다.
방에 나와 그가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소란을 피웠으니 바깥에 있던 시종이 당황하는 이유도 충분히 짐작이 갔다. 하지만 이대로 그를 들여보내면 곤란했다.
이 상황을 남에게 보였다간, 그는 공작을 살해하거나 공격하려고 한 죄로 분명히 잡혀가겠지. 그는 평민을 죽였다고 했지만, 공작과 평민의 목숨값을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이 세계에서 나와 유렌 뿐일지도 모른다. 물론 유렌도 공작의 아들이니 심한 처벌을 받지는 않겠지만 그의 아버지인 위스피닌 공작에게 피해가 갈 것은 자명했다.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냉정하게 가라앉아 있는 녹색의 눈동자는 절대로 지금 이 상황이 우발적인 행동일 리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나를 위협한 것이다. 대체 어째서일까. 나는, 내가 유렌에 대해서 정말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음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이런 상황에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할 정도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가 화내는 이유도, 일부러 이런 짓을 하는 이유도 모르겠다.
나는 일단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밖에까지 들리게 말했다.
"들어오지 마. 별 문제 없어."
"정말이십니까? 문을 부술까요?"
"괜찮다니까! ……방해하지 말고 저리로 가 있어줘. 이 근처엔 오지 말고!"
그 시종은 내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알았다는 대답을 끝으로 멀리 떨어져나간 듯 했다. 그제서야 나는 안심하고 유렌을 돌아보았다.
"정말로 죽고 싶으신 모양이군요. 방금 그 시종을 들어오게 했더라면, 어쩌면 당신은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요."
"정말 날 죽일 거야?"
그의 눈동자에 서린 것은 살기가 아닌 체념이었기에, 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유렌은 날카로운 검을 내게 겨눈 채로 한숨에 가까운 심호흡을 했다.
"당신은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습니다. 오래 살고 싶으셨다면 제가 정령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서는 안 되었으니까요."
엑, 그럼 유렌이 정령사라는 건 나밖에 모르는 거야?
그런데 왜 나를 죽이려는 거지? 정령사라는 게 그렇게 비밀인가?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를 향해 겨눈 검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까짓거 곤충이 되는 것보다는 지금 내 앞의 유렌의 기분이 더 신경쓰였다.
무엇을 그렇게나 증오하고, 어째서 자신의 삶을 포기한 것인지 알고 싶었다. 나는 그의…….
내가 유렌의 위협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자 그는 비소를 지으며 검을 내려놓았다. 다행이다. 역시 죽인다는 건 협박이었나보다. 그는 자신이 검을 놓았던 주제에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본인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혼란스럽게 나를 응시했다. 그러나 곧 검을 옆에 챙겨놓고, 그대로 이마를 짚었다.
"피곤하군요. 이제 정말로 나가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정말로 죽여버릴지도 모르니까요."
나가지 않으면 또 화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일단 잠시 물러나기로 했다. 하지만 내일은 이대로 물러날 수 없었다. 정말로.
***
다음 날, 나는 일단 제 4관에서 유렌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는데 열중했다. 이름은 유렌 위스피닌. 나이는 스물 두 살로 나보다 네살 많았다. 위스피닌 공작의 스무 번째 아들인데, 놀랍게도 그의 어머니는 엘프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유렌은 하프엘프인 셈이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로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인데도 몰랐다는 것은 정말 내가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위스피닌 공작이 20여년 전 엘프 노예를 사들여 자신의 열두번째 첩으로 삼았다는 것도 들었다. 하르아이나는 노예 매매가 금지였고, 노예계급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제국 출신의 인간이 타국에서 산 노예를 제국으로 데려오면 그 노예는 주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노예가 아닌 평민이 된다. 게다가 이종족인 엘프는 당연히 치외법권자였기에 어떤 강제력도 적용되지 않아야만 했다. 하지만 귀족들 사이에서 타국 노예의 천민 취급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그 엘프는 공작에게 강간당해 강제로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차마 살아있는 생명을 죽일 수 없었던 엘프는 그 아이만을 낳은 후에 자살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어떤 어린시절을 보냈는지는 굳이 듣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렌의 태도에서 보였던 인간에 대한 경멸과 귀족계층을 향한 증오는, 내가 어제 그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깨닫게 해 주었다.
유렌이 평민 인간 여자들을 농락하고 죽이거나 민가에서 검을 휘두르고 다닌다고 하는 소문도 있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망나니였던가.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귀족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이나 유렌과 그의 어머니가 당했던 처사는 귀족들에게서 당연했던 것이다. 본능이었을까, 아니면 평등과 자유를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던 내 출신배경 때문일까. 나는 그의 행동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그날 아침, 어제의 행동을 사과하고 변명하기 위해서 나는 그의 방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도 가능한한 많은 것을 말해주고 싶다. 나는 그가 좋으니까, 친해지고 싶으니까 먼저 접근해 봐야지. 유렌의 얘기도 많이 들어보고 싶었고.
그에게서 비이성적일정도로 친근감과 호감을 느낀 이유는 유렌이 가진 반쪽뿐인 엘프의 피 때문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그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
유렌은 얇은 잠옷 바지만 입은 채로 옷가지를 들고 있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아침햇살에 비치는 구릿빛의 탄탄한 근육들이 정말로, 가린 것 전혀 없이 그대로 보였다.
넓은 가슴과 어깨도, 굵은 팔뚝도, 쭉 뻗은 긴 다리와 부드러우면서도 거친 곡선의 선들이 순간 내 머리를 어지럽혔다. 옷 갈아입는 중이었나보다. 순간 너무 놀라서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더 당황스러운 것은 그의 반나체가 아니라 그의 반응이었다.
유렌은 내가 자신의 몸을 보던지 말던지 상관없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천천히 하던 일을 계속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거 뭐, 가녀린 소녀처럼 비명지르며 난리쳐도 이상한 사람은 내가 될 것 같은데. 그래서 나도 그냥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문을 조심스레 닫는 대신에 그의 방 안으로 들어와서 인사를 건네며 몸을 훑어본 것이다.
"안녕. 옷 갈아입는 중이었어?"
하지만 곧 내 표정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옷을 갈아입던 중인건 맞는데, 입는 게 아니라 벗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오 이런. 하지만 이대로 뛰쳐나가기엔 이미 그의 앞에서 깎인 점수가 너무 많았다. 전생에서 온갖 간접매체로 인해 남자의 몸에 대해서는 알 만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거리낄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조금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나오면, 적어도 조금 부끄러워하거나 몸을 가리거나 뒤돌아 서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유렌은 정말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속바지-이곳의 팬티 비슷한 것-를 벗어던졌다.
"……."
우와.
시선을 돌릴 타이밍을 잊고 너무 빤히 바라보았나보다. 타인의 중요한 부분을 눈 돌리지 않고 쳐다봐야 한다는 것은 꽤 힘든 일이었다. 아니, 물론 그의 것은 생각보다 그다지 흉측하게 생기거나 하진 않았지만, 크고 아름다웠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정신적으로 매우 부담되는 것이다. 굳어지려는 표정을 애써 감추고 있으려니, 그가 다시 새 옷을 입으며 내게 평이한 어조로 말했다.
"왜 그렇게 신기하게 보시는겁니까? ……원래 엘프는 체모가 거의 나지 않습니다. 수염도 나지 않는 건 물론이고 아래쪽도 인간에 비하면 털이 없는 편이니까요, 그다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뭘 안심하는데?
그러고 보니 그는 남성적인 체형에 비하면 까칠한 수염도 없고 몸이 매끈매끈한 편이었다. 만지면 감촉이 끝내줄 거 같고. 그, ……거기에 털도 없어서 너무 적나라하게 보이긴 했다. 이상하다기 보다는 너무 감각적이고 음란해 보였다. 하지만 그 이유 때문에 유심히 바라본게 아니었다. 절대로! 그냥 지면이나 모니터를 통해서가 아니고 생으로는 처음 보는 거라서 신기했을 뿐이야. 실제로 본 그의 몸은 다른 매체로 접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야하게 생긴 것 같았다. 하지만 말했다간 변태취급받겠지. 아니, 어쩌면 이미 변태인가.
경직된 표정으로 겨우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어보이자, 마지막 셔츠의 단추를 다 잠근 유렌이 방금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히 말했다.
"당신도 참 별나군요. 어제 일로 온갖 정이 다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일찍 찾아오시다니. 그럼, 이제 당신이 저에 대해 조사해 본 내용에 대한 소감을 말하러 오신 겁니까? 딱 십 분만 들어줄 테니 그 이상 지껄이려거든 꺼지세요."
우와. 신랄한데?
나는 그의 요구대로 10분만에 모든 말을 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10분은 너무 짧았다. 그래서 그에게 협상을 청했다.
"아냐, 10분은 부족해. 적어도 30분은 필요할 것 같단말야."
유렌은 뭐 이런 게 다 있냐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너 좋을 대로 하라는 듯이 팔짱을 끼고 나를 마주보았다. 나는 그의 따가운 시선을 억지로 마주보며, 겨우 입을 열었다.
"어젠 내가 미안했어."
"……."
그는, 뜻밖에도 내 첫마디에 놀랐다는 듯이 움찔하는 반응을 보였다.
"당신이, 제게 미안한 짓을 했다고요?"
"응! 응응! 정말 미안해."
유렌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기이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좀 더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 생각해보면 내가 잘못한 것밖에 없잖아. 위협적으로 한밤중에 남자 혼자 있는 방에 쳐들어온것, 함부로 남의 정령을 보여달라고 떼쓴 것, 방을 허락없이 밀실로 만들어버린 것, 그리고 너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던 것도. 전부 내 책임이야."
===
뭐 그냥 그렇군요. 이만큼의 분량은 상당히 타격이 큽니다ㅜ
당분간 또 미친듯이 글만 써야겠네염. 그런고로 댓글좀 ㅇㅂㅇ
댓글이 많으면 글이 빨리 써지거든요 진짜에요!
음 그리고 저도 끌려다니는 주인공은 싫습니다. 하지만 제가 진짜 막나가면 너무 주도적인 주인공이 되어버리기 때문에ㄷㄷ;
아직 시아는 남자를 리드하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라 초반에는 여왕님포스가 부족할거에여. 하지만 후반은 도S 여왕님으로 갑니다. 집에 남편들을 놔두고 윤락가에서 바람피우는 모습이나,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려 자기 첩으로 한 명씩 들이거나, 개목줄 들고 남편을 유혹하는 행각들을 보시고 이 때가 좋았다는걸 깨닫게되실 겁니다.
유렌 쪽에서 애원하게 만드는것도 멀지 않았습니다! 얘는 초반캐릭인만큼 아주 간단히 먹을수 있습니다. 이대로 밀어붙여서 잘해주면서 녹인다음에 감정만 자각시켜주면 게임 끝 ㅇㅇ. 다다다음편에 베드신 나올정도임. 공략에 시간이 걸리는 캐릭은 제가 전에 말했던 3번 흑발 츤데레 캐릭입니다. 진행 초반에 등장해서 찔러보고 괴롭힘당하고 유혹하고 온갖 짓을 다 하고는 거의 마지막에 공략 성공하거든요.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