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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여왕-18화 (18/226)

<-- 3. 젊은 여공작과 첩 -->

무언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응접실로 안내하는 그 시종의 뒤를 따라가며, 유렌은 내심 의아해했다. 첩을 응접실에서 만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심지어는 가장 호화로운 제 1응접실로 안내받아서, 기다리는 동안 들어온 시녀가 취향에 맞는 차까지 물어본다. 공작이 시켰단다. 완벽한 '손님'취급에 유렌은 아연해했다.

공작이라는 여자는 보통 이상의 괴짜임이 틀림없었다.

그는 녹차를 자주 마셨지만 그가 좋아하는 그 차는 대부분의 귀족가에서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기에 아무 차나 마셔도 상관없다고 말하자, 시녀가 내온 차는 설탕에 절인 장미잎을 띄운 달콤한 장미 차였다.

"공작각하께서는 이 차를 좋아하시니까요."

"그렇습니까."

시녀의 말에 그는 무심결에 찻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하지만 곧 내려놓았다. 그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 정도로 달았기 때문이다. 차를 마시는 기호로도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었는데, 그는 뭔가 달지만 난해한 맛이다, 라며 장미차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그가 한 입만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자 시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뭔가가 잘못됐는지 물었다. 바로 그 때, 응접실의 문이 열리고 유렌이 기다리던 공작이 들어섰다.

하지만 유렌은 그 공작의 얼굴을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 그녀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방 앞까지 갔을 때 맡았던 꽃향기 때문이었다. 향수처럼 짙게 머릿속을 파고들지는 않았기에 방심하고 있던 순간, 그 옅은 향은 유렌의 기분을 일순 멍하고 들뜨게 만들었다. 매혹향. 사람의 이성을 좀먹어들어가는 마약 같았다. 매력적이면서도 아찔한, 그는 처음 맡아보는 향이었다. 장미 향과 비슷하기도 했지만 보통 장미꽃의 향기보다도 더 은근하면서도 더 짙었다.

가까이 가지 않으면 잘 맡을 수 없어 보통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감각이 민감한 혼혈인 그는 그녀 특유의 향을 인식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위험하게까지 느껴지는 생소한 향기로 인해 시렌느 공작이라는 여자는 유렌에게 굉장히 인상깊은 첫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그뿐, 그냥 마약을 향수에 섞어 쓰는 미친 여자라고 생각했다. 유렌이 그녀와 직접 마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가벼운 푸른 색의 경장 차림을 한 공작은 굉장히 작고 아름다운 소녀였다. 아마도, 제국 2대 미녀라는 소문이었던가. 그냥 단순한 소문은 아닌 것 같았다. 그녀의 데뷔 전에 제국 최고의 미녀라고 불려졌던 플라니아 자크루 영애는 작년 황가 주최의 연회에서 딱 한번 만나본 적 있었다. 서로 인사도 오가지 않은 채로 잠깐 스쳐지나갔을 뿐이지만, 제국 최고라는 말에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져 멀리서 유심히 바라본 적이 있다.

결국 인간의 외모에 큰 감흥을 받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 말대로 유렌은, 여자를 보고 특별한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다. 비록 많은 여자들을 상대해 왔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복수심만을 더욱 불타오르게 하는, 그리고 한순간이나마 그것을 삭일 수 있는 매개체였을 뿐이다.

세이시아 시렌느라는 여자는 자신을 첩으로 들인 공작으로서, 부친과 비슷한 위치의 여자였다. 그녀를 만난다면 복수심이 더욱 강해져야만 했다, 그래야만 했는데…….

그녀의 눈동자를 처음으로 접한 순간, 그런 감정이 침입할 하나의 틈도 남겨주지 않고 그의 심장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듯한 생소한 감각을 느꼈다. 매우 깨끗하고 순수한 눈동자에 홀려버린 걸까, 그는 한순간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자크루 영애와 나이는 같다고 들었지만 약간 어려보이기도 하는 시렌느 공작에게는 그 영애와는 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았다. 자크루 영애가 백합꽃이라면 그녀는 장미꽃. 진주빛을 띠는 옅은 붉은 머리카락은 장식 없이 길게 늘어뜨려져 있었지만 그 머리칼 자체가 알알이 붙은 다이아몬드가 뿌려진 루비장식이며, 그녀 자체가 화려하고 아름다운 한 송이의 꽃봉오리처럼 보였다.

하지만 유렌의 감성 자체를 뒤흔든 것은 그녀의 외모가 아니었다. 그 눈동자 너머에 자리하는 오래된 기억의 각성. 혹은 경외로운 존재를 눈 앞에 마주한 것만 같은 깊은 깨달음이었다.

그러나 그런 기분은 매우 순식간으로 그녀와 눈을 마주친 일 초간의 시간도 되지 않았다. 유렌은 기이할 정도로 이유없이 들뜬 마음을 억누르며 겉으로나마 예의바른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

응접실에 그를 기다리게 하고 옷을 급히 갈아입는 동안 나는 내 첩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첩을 들여본 적이 있어야지 뭘 알것 아닌가. '첩 다루기의 정석'이라는 매뉴얼이라도 있다면 읽고 싶었다.

첩이라고는 하지만 일단은 정략 결혼이다.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아니면 첩답게, 돈이나 권력을 요구할까? 어떤 것을 요구당해도 말빨에 밀리면 안 되는데. 나는 걱정하며 응접실의 문을 열었지만, 그런 생각은 곧장 머릿속에서 확 사라져버렸다.

'우와, 예쁘다아-.'

처음 그의 모습을 본 순간, 유일하게 든 생각이었다.

그는 내 쪽을 향해 일어서 있었는데, 봄햇살처럼 은빛을 띤 밝은 블론드는 여기에선 보기 드물게 짧은 숏컷이었다. 약간 곱슬기가 있는지 병아리의 솜털처럼 매우 보송보송해 보였다. 하지만 그 아래에 있는 얼굴은 부드러움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약간 굳은 무표정인데다가 남들에 비해 살짝 그을린 구릿빛의 살갗 때문일까, 너무나 선명한 이목구비 때문일까……. 그러나 강인해 보이는 짙은 눈썹 아래에는 생각외로 맑고 청명한 느낌이 드는 녹색의 눈동자가 있었다. 에메랄드를 박아넣은 듯, 보석처럼 반짝이는, 실감이 나지 않는 환상적인 눈동자. 저런 걸 바로 보석안이라고 하는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이슬처럼 투명한 내 눈동자와는 또 달랐다. 강렬한 빛이었다.

"아, 일어나지 않아도 돼요, 아니, 돼……."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도 실례가 된다는 생각에 나는 금방 표정을 가다듬고 말했다. 얼결에 존댓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곧바로, 내 첩에게 존칭을 사용하면 여러모로 관계가 어색해질거라는 것이 생각나서 반말로 고쳤다. 그런데……. 그래도 어색하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나는 한번 더 놀랐다.

피부가 그을린 편이라서 관리를 안 하는 줄 알았는데 여자 뺨칠 정도로 잡티 하나 없는 매끈한 피부에 신이 직접 조각한 듯 완벽한 비율로 이루어진 이목구비. 요정같기도, 천사같기도 한 그의 모습을 한동안 시아는 넋놓고 물끄러미 응시하고만 있었다.

그때,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처음 뵙겠습니다, 공작 각하."

윽.

'오랜만입니다'도 아니고, '처음 뵙겠습니다'라니. 그의 무표정한 인삿말에 나는 목소리 짱 멋지다, 라고 두근두근하기도 전에 이미 그 의미로 인해 양심이 쿡 찔렸다. 단순한 인삿말인데도 비꼬는 것처럼 들릴만큼이나 내가 그에게 잘못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를 제1 응접실로 데리고 가라고 명령했을 때 보인 시종의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본 순간 깨달았다.

나는 그를 첩으로 들인 한달간 그의 거처인 제 4관에 방문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를 이쪽으로 부르지도 않았던 것이다. 본의 아니게 갇혀지내게 된 그는 공작에게 버림받은 남첩으로서 남들 눈에 보였을 테고, 내 무관심 속에서 우리 집안 사람들의 대우가 그리 좋지 않았다는 건 안 봐도 뻔한 일이다. 내게 첩으로 팔려왔을 정도이니 귀족으로서도 입지가 그다지 크지 않을테고. 냉대받는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왜 자길 억지로 첩으로 들여놓고 이렇게 가둬만 두느냐고 열받아서 한달만에 이쪽으로 따지러 온 것이겠지. 전적으로 내 책임이었다. 나는 그가 어떤 말을 꺼낼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내 반응을 기다린다는 듯이 인삿말만을 한 후에 가만히 앉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냉정한 눈빛에 나는 흠칫했다. 세리안이 초면에 나를 경멸하듯 바라본 것과는 다르게 그는 마치 돌멩이라도 보듯이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선은 '어디 입이 있으면 말해봐라'는 의미인건가?! 아니, 물론 나도 잘못한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해도 난 공작이라구. 의도치 않게 심한 짓을 해버렸지만, 그래도 첩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내 마음이다. ……라고 말하면 너무 악당처럼 보이려나?!

내가 말을 고민하고 있자 그가 내게서 무슨 말을 듣는 것을 포기한 듯, 단도직입적으로 먼저 용건을 꺼냈다. 아무래도 그는 내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줄 착각한 것 같다.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누, 누굴 직위상승시켜 주면 되는데? 왠지 청탁받는 분위기라 나도 모르게 기분이 꺼림칙해졌다. 하지만 그가 무덤덤한 얼굴로 요구한 것은, 부탁이라 하기에도 뭐한 간단한 내용이었다.

"각하께서 저에게 지정해주신 거처에는 저 혼자 시간을 보낼 만한 것이 없으니, 시렌느 공작가의 도서관에 출입할 수 있도록 허가를 내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손한 말의 나열에 비해 감정이 하나도 섞여들어가지 않은 그의 어조는 딱딱하기 그지없지만, 그 말을 듣고 나는 엄청나게 미안해졌다. 제 4관이 그렇게나 열악한 환경이었다니. 몰랐어. 사람 사는 집이 아니라 호텔처럼 꾸며져 있어서 잠깐 들렀을 때야 호화롭다고 느꼈지만 실제로 그 곳에 갇혀서 살게 되면 엄청 심심할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저 도서관에만 출입할 수 있게 해 주면 감사히 갇혀 살겠다는 말투로 그런 소리를 하니 마치 내가 괜한 사람을 가둬놓고 괴롭히는 악인이 된 것 같았다.

그의 공손한 말투와 반대로 무표정한 얼굴은 나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것 같아 보였다. 나는 곧장 승낙하고서는, 그의 표정이 조금, 아주 약간 밝아진 것을 확인하고 의아한 점이 생겼다.

그 곳이 그렇게나 심심하면 우리 집 안에서 노는 것보다는 밖에 나가 놀면 되잖아? 하지만 나는 곧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류처리를 할 때 알수 있듯이 제 4건물에는 그저 건물유지비밖에 지급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냥 넘어갔지만 이제 우리 집의 일원이 된 내 첩에게 지급되는 생활비라던가 용돈조차 지급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한달만에 깨달았지만, 더 나중에 알았으면 어떡할 뻔 했냐! 나야!!

돈이 없으니 밖에 나가도 할 게 없겠군. 게다가 그는 노예가 아니니 외출이 제한되지는 않겠지만, 공작을 주인으로 모시는 첩의 입장에서 매일 바깥으로 돌아다니는 일은 좋지 않은 소문을 만들어내기 충분했다. 그리고 내 허락 없이는 함부로 멀리까지 나갈수도 없었을 테고.

그래서 나는 그날부로 곧장 내 첩에게도 인간적으로 신경써주자고 다짐했다. 물론 조금 어색하기는 했지만, 그는 도서관 출입 말고는 용건이 없는 듯이 시간을 빼앗아 죄송하다며 전혀 죄송하지 않은 얼굴로 금세 돌아가버렸다. 나는 그와 좀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차마 대사 두 마디 나누고 돌아가려는 쌀쌀맞은 그를 붙잡을 용기가 없어서 나는 그냥 그를 보내버렸다. 짧지만 인상깊은 첫만남은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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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 다음편이요. 오늘 저녁 8시까지 덧글 30개넘으면 오늘밤에 한편 더올립니다!! 중복댓글 가능ㅋㅋㅋ./)

절단마공을 사용할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느끼신분들께는 죄송합니다만 저는 분량을 정해서 올리기 때문에 대부분의 편이 10~15KB 사이입니다. 페이지수는 적게 느껴지실지도 모르지만 엔터가 적은편이라서 그다지 적은분량은 아니에여! 진짜에여! 믿어주세여!!! 엔터 많이쓰는 작가분들은 저와 같은 페이지수에 분량은 6~7KB정도입니다. 진짜임. 확인해보셔도 됨.

아 근데.

영서 4의 브리안이랑 유렌이랑 너무 닮아서 순간 헉 했다능;;

하지만 유렌은 영서4 나오기 전부터 설정되어 있던 인물이라서요. 유렌은 2년전에 만들어졌음. 당시 유렌의 모델이었던 캐릭은 라그나로크에 나오는 캐릭인데요, 태닝스킨과 밝은 머리색의 조합이 너무 모에해서 그 설정만 비슷하게 따온겁니다. 그것 말고는 비슷한 점이 전혀 없죠.

근데 영서 브리안과 왤케 닮은거죠ㅠㅠ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유렌 피부색이 좀더 밝은 갈색인 것 같고 유렌은 머리색이 백금발이고 오토메일을 안 달고 있다는 것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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