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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여왕-15화 (15/226)

<-- 2. 하지만 꼭 다행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

그는 긴 속눈썹을 내리깔고서 다정하게 내 이름을 물었다.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 예쁜아?"

"남의 이름을 묻기 전에 자기 이름부터 먼저 말하는 게 예의야."

일단은 황자이니 지위상 나는 그에게 존댓말을 써야 하겠으나, 그가 내 태도에 불쾌해져서 돌아가버려도 상관없었기 때문에 반말을 했다. 난 도도한 여자임. 하지만 그 남자도 레이디에게의 예의로 내게 존댓말, 적어도 하오체 정도는 사용해 줘야 했다. 예의를 먼저 어긴 것은 그 남자이니 나도 마주 반말을 쓴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내 반말정도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군. 당연히 내 이름을 알 거라고 생각한 건 자만이었던 걸까나, 내 이름은 이루라고 해. 올해 스물 한 살이지."

이루가 성인가? 하지만 황족의 성은 내가 알기로 크라이덴-하르아이나였다. 귀족들이 그렇듯 황족이라도 대체로 중간 이름은 생략한다. 적어도 2황자의 이름이나 중간 이름이 이루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네 녀석이 여자 꼬시러 돌아다니는 데 나는 왜 끌고오는 거냐? 놀고 싶으면 혼자 놀 것이지, 당장 이것 놓지 못해?"

그때, 이루에게 오른팔을 꽉 잡힌 금발의 키가 큰 남자가 짜증스럽다는 듯 그에게 소리 높여 말했다. 지금 보니, 키가 거의 190cm는 되는 듯 했는데 이루 못지 않게 잘생겼다. 이루가 여자같이 나긋나긋하다면 그는 외모며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남성미가 흘러넘치는 듯 했다.

마치 순금을 녹여놓은 듯한 그 짙은 금발은 내 기억상으로 분명, 황족의 상징이었다.

"황태자이시네요."

아젤이 무신경한 말투로 말했다. 마치 '옆집 사는 개네요'라는 대사를 하는 것 같아서 나는 순간 내 눈앞의 남자가 황태자라는 높은 지위의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엑, 황태자? 그러고보니 이루가 둘째 황자라고 했지. 그럼 이 남자가 이루의 형이라는 거네. 미묘하게 닮은 점이……, 없네. 왜 안 닮았지? 태생이 다른가?

나는 당황해서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둘을 쳐다보았다. 이루는 내 표정이 웃긴지, 푸하하 하고 교양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형은 외할아버지를 닮았어. 나와 내 아래의 형재자매들은 모두 부모님을 닮았고 말야. 집안 사정이 복잡하진 않으니 그런 눈으로 볼 것 없어. 아, 그렇지. 소개가 늦었군. 이쪽은 내 형인 케이드린, 그리고 저기 여자분은 제국 2대 미녀 중 하나인 자크루 첫째 영애야."

"제국 2대 미녀?"

분명 제국 최고의 미녀는 자크루 대공가의 첫째 딸이라고 들었는데. 제국 2대 미녀가 있다는 얘기는 듣도보도 못했다.

역시 제국 최고의 미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자크루 영애는 굉장히 아름다웠다. 한순간 나마저도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단아한 이목구비와 사파이어같은 푸른 눈동자의 조화는 거의 환상적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이미 작년이 데뷔식이었기 때문에 그녀 자신의 취향인 듯한 수수한 연한 노란색 드레스와 굽 낮은 비단 단화를 신고 있었는데, 그 심플함이 오히려 그녀의 아름다움을 더 부각시켰다. 아마 그녀가 요즘의 드레스들의 유행을 주도하는 선두주자가 아닐까. 그녀가 입은 가슴과 팔이 드러나지 않는 드레스는,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다른 영애들까지도 꽤 많이 따라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리 아래로 길게 늘어뜨려진 윤기있는 적갈색의 긴 생머리는 적갈색이라는 단순한 이름을 붙이기보다는 '체리빛'이라는 명칭이 더 적당할 정도로 그녀의 단정한 외모에 도발적인 변화를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루에게는 눈길도 주고 있지 않았다. 이루도 다른 보통의 소녀들에게 하는 것 이상의 관심을 그녀에게 보이진 않았다. 분명 처음부터 이런 담백한 관계가 이루어졌을 리는 만무하고, 격한 관심을 보이는 이루를 일방적으로 이 영애가 거부했음이 틀림없다. 대체로 저런 동양적이고 고아한 타입의 여인네는 가벼운 기생오래비같은 남자는 질색하는 편이니까. 대신 황태자처럼 무게감 있고 믿음직스러운 스타일에는 환장하지.

내 예상이 적중한 듯 자크루 영애는 이루 따위를 따라왔다기 보다는, 황태자와 얘기하다가 이루가 황태자를 끌고 오니 자기도 따라온 듯 했다. 우리끼리 할 얘기가 있으니 당장 손 놓으라는 듯 은근한 눈길을 이루에게 주고 있었으나, 그는 뻔뻔하게도 자신의 형을 내게 소개하고는 아래와 같은 망발을 내뱉었다.

"그래. 너와 여기 계신 자크루 영애. 이렇게 제국 2대 미녀 말이야."

아니, 거기에 나는 또 왜 끼워넣는 거야? 설마 얘는 작업거는 여자들에게 죄다 제국 최고 미녀와 동급으로 예쁘다는 의미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자크루 영애께 실례잖아.

하지만 자크루 영애는 그런 데 별로 관심도 없는 듯 했다. 마치 제국 최고 미녀란 칭호도 자기가 원해 얻은 게 아니라는 듯이, 그리고 내게도 그다지 큰 흥미가 없는 것 같았다.

자크루 대공가의 계승자는 첫째 아들, 즉 저 영애의 오빠였다. 자크루 영애 위에 오빠가 둘씩이나 있으니 그녀가 대공가의 뒤를 이을 일은 없을 터였다. 그러니까 그녀도 정치에는 흥미가 없어보였다. 지금 18살이니 어느 집안에 시집을 갈 건지 하는 문제가 그녀를 비롯한 다른 비계승자 소녀들의 최대 관심사일 것이다. 그러니 나같은 후계자들 중에서 여자인 부류들은 그녀들의 관심 축에도 들지 않는 것이다. 결혼상대를 찾을 필요가 없으니 결혼이 절실한 그녀들의 공감상대도 되어주지 못하고, 또 당장 결혼해야 하는 라이벌도 아니었으니까. 그녀와 나의 결혼적령기는 자그마치 5년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다.

황태자는 옆에 서 있다가 한숨을 쉬고는, 결국 동생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는지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옆의 아젤에게도.

"케이드린 크라이덴-하르아이나라고 하오. 만나서 반갑소, 그리고 오랜만입니다, 아젤 칸스티어 현자님."

"네, 저도 오랜만입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황태자 전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시렌느 공작의 후계자인 세이시아 시렌느라고 합니다."

일단 은근슬쩍 묻어가듯 인사했는데 내 이름을 듣자 다들 상당히 놀란 것 같았다. 아, 하긴 시렌느 공작이라면 파티의 주최측이니까.

그 이후 나는 아는 사이인것처럼 인사를 나누는 둘을 보고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아젤은 황실도서관의 관리인 조수였다고 했지. 황태자와의 안면도 있었을 테고, 황자와의 안면도…….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이루는 웬 파란 머리의 소년과 자기 형이 인사를 나누자 의외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엑, 형. 저 애랑 아는 사이야?"

"말조심하거라, 이루. 5년 전에 등극한 대륙 최연소 현자로서 우리 도서관의 사서이셨지 않나. 물론 너는 도서관에는 근처에도 안 갔으니 몰랐겠지만. 게다가 현자 임명식날은 황족으로서 참가하지도 않고 심지어 궁 밖으로 놀러나갔었지? 그러니 초면일 수 밖에."

과거 일을 들춰내자 그는 움찔하더니, 못 들은척 했다. 하지만 형인 황태자는 그런 동생의 행태에 맺힌 일이 많았는지 기회를 잡아 5년전은 물론 10년 전 일마저 입에 올릴 기세였다. 이루는 다급하게 황태자의 등을 밀쳐내며 저리 가라고 쫓아냈다. 아니, 그럴거면 뭐 하러 여기까지 끌고 왔대?

그는 씨익 웃으면서 다시 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자, 우리 계속 얘기해볼까, 시아?"

이런.

망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내 이름을 말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왜 그가 싫다는 형을 끌고 내 앞까지 데려왔는지 깨달았다. 황태자가 먼저 정식으로 이름을 말하며 인사를 건네면 내가 이름을 얘기 안 할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건 황자에게도 해당되었지만 내가 워낙 황자인 그를 개취급하고 있으니 그런 수법을 썼나보다.

그리고 그냥 '황태자요'라고 말하면 될 것을 굳이 이름까지 알려줘 가며 정식으로 인사를 건넨 황태자도 이루의 이런 속셈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제길. 자신을 끌고 온 동생에게서 빨리 벗어나려고 할 필요도 없는 말까지 하다니.

근데 왜 내가 시아야? 내 이름은 세이시아라고 했잖아. 누구 맘대로 애칭을 불러?

"'이루'도 내 애칭이야. 너도 내 애칭을 부르는데 내가 못 부를 거 없지."

역시 뭔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초면에 애칭만 달랑 가르쳐주다니. 이건 또 무슨 개념이래. 너도 본명 말해, 인마.

"내 본명? 맞춰봐."

…….

황자고 뭐고 확 잎줄기를 꺾어버릴까보다. 하지만 내 옆에 서 있는 아젤님이 나를 구원해주셨다.

"제국의 2황자의 이름은 이룬다인 데이시 크라이덴 하르아이나입니다. 3황자는 페트로, 막내 황녀이자 1황녀의 이름은 셀리아나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황녀님이 세이시아님보다 한 살 어리시고, 황자들은 모두 세이시아님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네명 다 정식 부군-여제의 남편, 여제는 남편이 하나이고 첩도 없다고 한다-에게서 태어났으니 적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몰래 속삭여주는 아젤님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이루는 어느새 가까이 접근해서 내 손에 들린 부채를 빼앗았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선 얼굴을 가리는 효과도 없는 부채였지만 웃을 때 부채로 입을 가려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펼친 채 들고 있었던 것이다.

"뭐야?"

"이런 아름다운 얼굴을 가리는 건 범죄야. 부채 속에 꽃같은 미소를 감추는 것도 안될 일이지. 자, 이쪽 보고 웃어봐줄래?"

즐.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는 나에게 호감이 있어서 이런다기보다, 나를 자신의 관상용으로 삼으려는 것 같다. 진정 내게 호감이 있다면 '너무 예뻐서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으니 얼굴을 가려달라'고 해야 할 판이다. 이런 내가 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건가? 하지만 그의 행동은 어딜 봐도 예쁜 여자를 낚아서 '난 이런 미녀랑 사귄다' 라면서 자기 과시를 하려는 것 같았다. 마치 장신구를 자랑하려는 것처럼. ……그건 좀 심한가?

게다가 황자의 자리에 맞지 않는 행동들까지. 정말 개념이 없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면, 일부러 개념없는 척 한다는 건데. 내가 보는 이룬다인은 그만큼 머리가 나빠보이진 않았다. 그럼 왜 저러지? 약먹었냐?

멍청한 척 해서 그에게 돌아오는 이득이 뭐가 있을까?

이루의 질문에 적당히 대꾸해주고, 아젤님에게서 약간의 지식들을 얻어 섭취하고 있을 때 이윽고 세리안이 자기 할 일은 다 끝낸 듯 위스피닌 공작과 헤어져서 다른 남자와 함께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어머니도 나에게 정식으로 사교계 데뷔를 시켜주기 위해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세리안은 제일 처음으로 내게 달라붙어 있는 이루를 보고 못마땅한 듯이 중얼거리더니, 금세 싱긋 미소지으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거, 2황자님 아니십니까? 작년에 수도의 블루 문에서 보고 처음이지요?"

블루 문, 이라는 이름에 이루가 마치 못 들을 거라도 들은 듯 흠칫했다. 블루 문? 무슨 뜻이지? 가면 안 되는 건가. 내가 금방이라도 오빠에게 물어볼 듯한 기세로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젤이 난감한 표정으로 내 드레스자락을 잡았다.

"블루 문이란, 유곽을 뜻하는 겁니다. 수도에서 유명한 매춘업소의 이름이기도 하지요."

켁.

아젤이 속삭이듯 알려준 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져서 그들을 쳐다보았다. 유곽 같은 데를 다닌다 이거지? 이루는 그 말이 저쪽 구석에 있는 황태자의 귀에 들어가지 않은 것 같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세리안은 개의치 않고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건넸다. 소리를 더 높여서.

"이런, 이거 아쉬운데요. 그 때는 그렇게 친근하게 말씀을 나눠놓고는 이제와서 모르는 척 절 냉대하십니까? 분명히 그……!"

"우리 저쪽 가서 얘기할까? 하하, 물론 그, 그때는 즐거웠지. 그러니까 소리를 조금만 더 낮춰서. 응?"

이루는 내 옆에서 냅다 뛰어와 점차 높아지는 세리안의 말소리를 끊고, 내키지 않는 듯한 그를 벽으로 질질 끌고 갔다. 세리안, 지금 보니까 진짜 무섭다. 상큼하게 웃으며 사람을 궁지로 몰아붙이다니.

어쨌든 이걸로 오빠가 이룬다인을 떼내 주었고, 어머니는 아젤과 함께 나를 파티장 이곳저곳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나 가문의 관계자, 그리고 무시 못할 고위 귀족들에게 후계자이자 올해 데뷔하는 자신의 딸로서 인사시켰다.

***

"피, 피곤하다……."

파티라는 게 이렇게 피곤한 일이었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그 시녀의 말처럼 드레스의 솔기가 터질 정도로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하지만 다른 걱정이 하나 더 생겨버렸다. 미치겠다.

나는 새벽이 되어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밖이 어슴푸레 밝아오는 걸 보고 기겁했다. 시녀들은 편히 쉬라며 내 머리를 풀고 드레스를 벗겨주었다. 한 시녀는 잠옷을 입혀주고, 다른 한 시녀는 화장수에 적신 솜으로 내 눈가와 입술의 화장을 닦아주는 걸 느끼며 이런 때는 정말 내가 귀족이라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평민이었다면 드레스를 혼자 벗고 화장도 스스로 지우고……, 아, 애초에 평민이면 이런 걸 입고 밤새 파티에 나갈 필요도 없겠구나. 그러면 이건 특권이면서도 의무인가.

몇 시간동안이나 어머니에게, 세리안에게, 아버지에게 끌려다니면서 강제로 그 파티에 있는 귀족들 중 1/3에게 인사해야만 했다. 물론 우리 집안은 공작가였으니 대부분 그 쪽에서 먼저 인사를 건네왔지만 소개되는 것은 나였던 것이다.

황태자와 황자까지 참석할 만치 큰 파티였으니, 웬만한 고위귀족들은 거의 다 참석했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후계자인 나를 소개하기에는 적절했겠지.

그리고 그 파티의 마지막은, 정말 내가 생각해도 충격적인 발표였다. 지금 생각해도 이가 갈린다. 매우 중대한 일을 얘기라도 하듯 나를 가운데에 세우고, 황태자를 그 옆에 세운 후 이렇게 선언했던 것이다.

"오늘로서 나 카센 시렌느는 공작 자리에서 물러나며, 후계자인 세이시아 시렌느에게 공작 작위를 물려주겠습니다."

……라니! 아버지에게 이렇게 갑자기 뒷통수를 맞을 줄은 몰랐다. 게다가 그 소식을 아젤님과 세리안과 어머니까지 내게 속이고 있었다니!

파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황태자가 굳이 여기에 참석한 것도, 그 '계승식'의 증인이 되어 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직계가 아닌 후손이 작위를 물려받는 것이나 평민이 새로운 작위를 받는 것은 국왕이나 황제, 현자, 고위 귀족 2명 이상의 증인이 필요하지만 나는 이미 예정된 후계자였고 친딸이었기에 황태자의 간단한 참관만으로도 공작 계승식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게다가 다른 이들도 전부 초대장에 적힌 글로서 내가 오늘 공작위를 물려받을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소개 후 혼자 남은 내게 남자들이 죄다 관심을 보였고, 위스피닌 공작이 나를 영애가 아닌 '공작'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정작 장본인인 나는 그때 알게 되었는데 말이다.

나는 시녀들이 다들 물러가자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한숨을 쉬었다. 내일부터 나는 공작, 아니 오늘부터구나. 아버지는 뻔뻔하게도 '곧장 일선에서 물러나는 건 아니고 네가 공작 일에 익숙해질 때까지 도와줄 테니 잘 해봐라'고 하셨고, 오빠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나이는 45세로서, 보통 귀족들의 평균적인 은퇴 날짜가 50대 이후, 후계자가 조금 빨리 성장했을 경우에는 40대 후반인 것을 감안해 조금 이르지만 일손을 놓기에는 적당한 나이였다. 보통 죽을 때까지 작위나 왕위를 지키고 있는 몇몇 타국과는 달리 하르아이나는 즉위와 계승 날짜가 빠른 편이며, 은퇴 날짜도 상당히 빨랐다. 물론 60세가 넘도록 은퇴하고 있지 않는 원로귀족들도 있지만 말이다.

현 여황제폐하도 40대가 넘으셨으니 이제 조만간 은퇴할 것이다. 그리고 황태자가 그 뒤를 이어받겠지.

그건 그렇다쳐도, 나는 아직 어렸던 것이다. 지금 상황에선 스무 살이 넘는 오빠가 작위를 물려받으면 딱 좋을 타이밍인데, 나는 작년에 성인식을 치르고 올해 데뷔식과 계승식을 동시에 한 새파란 열 여덟 살 어린애라고. 앞으로가 걱정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후계자로서 10년은 더 살줄 알았는데 갑자기 나보고 공작이 되라니. 당장 내일부터가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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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전개 ㄷㄷ. 사실 저 내용을 일일이 다 쓰려고 했지만 그랬다가는 남주 등장이 더 늦어질 것 같아서 설명으로 끝냅니다. 다음편 새챕터입니다! 진도 빨리 하라는 여러분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함ㅠ.

황태자 공략안한다는 말에 아쉬워하는 분이 많으실듯 한데ㅋㅋㅋ. 이 소설은 제가 고딩때 썼던 설정을 그대로 가져와서 쓰는거라 황태자는 '삐-'라는 설정입니다. 그러니 시아에게 호감을 가질리가 없져. 그게 뭔지는 나중에 나옴ㅋㅋㅋㅋ. 그리고 지금 황태자가 꼭 황제 자리를 이어받는다는 보장도 없자나여? 황자3에 황녀1이 있는데 넷 중 누가 황제가 될진 모름.

세리안 공략은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아젤 다음이 세리안으로 예상 중입니다. 그리고 흑발의 츤데레 남주 등장은……. 중반쯤 되면 츤데레 맛보기가 가능합니다만, 공략은 맨 마지막으로 일정 잡아두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얘가 진히로인일지도.

자, 이제 다음편에는 시아의 첫번째 남편이 될(지금은 아직 첩) 백금발 남주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기대해주세옄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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