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하지만 꼭 다행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
"여덟 살에 현자의 칭호를 받은 후 황실 도서관장이신 릭켄 칸스티어님 밑에서 사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때 만났던 세리안이 자신의 밑에서 일해 보지 않겠냐며 제안을 했죠."
아젤은 빙그레 웃으며 당황한 나에게 설명해주었다. 예전의 세이시아였다면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 그는 기억을 잃은 나에게 귀찮은 기색이 전혀 없이 친절하고 꼼꼼하게 답해주었다.
"아, 손님들을 너무 세워 두었군요. 편하게 앉으세요. 차를 내오도록 하지요. 저는 녹차를 즐겨 마십니다만 손님용으로 팔렌 산 홍차와 스티아 차가 있습니다. 어떤 게 입에 맞으신가요?"
팔렌 산 홍차는 카덴 대륙 홍차 중의 최고급품으로서 향이 굉장히 좋다고 한다. 스티아 차는 하얀 스티아꽃의 꽃잎을 말려서 우려낸 차였는데, 홍차 다음으로 자주 마시는 차였다. 세이시아는 향이 좋은 스티아 차와 자스민차를 좋아했고, 나는 향 따위를 즐기기보다는 오직 단맛으로 차를 마시기 때문에 설탕이나 꿀에 절인 장미차와 홍차 중에서 가장 맛이 순하고 달콤하다는 오베르 산 홍차에 설탕과 크림을 가득 타서 먹는 걸 좋아했다.
우와, 생각해보니 나는 저 열세 살의 현자님보다도 더 어린애 같은 입맛이잖아? 내가 단 거 좋아한다는 건 아젤님 앞에서 평생 비밀로 해야겠다.
세리안은 한두 번 와본 게 아니라는 듯 뻔뻔하게 소파에 툭 걸터앉아 주문했다.
"평소대로 홍차에 설탕 반 스푼."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소곳이 말했다.
"저, 저는 녹차로 하겠어요"
"그걸 마실 수 있겠어? 시아는 단 거밖에 못 먹잖아."
세리안이 내 뺨을 쓰다듬으며 웃는 얼굴로 만류했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마실 수 있다고 우겼다. 제길, 하필 여기서 그런 말을 할건 또 뭐야. 게다가 녹차 정도는 마실 수 있다구! 아젤은 세리안과 언쟁을 벌이는 내 모습을 보고는 풋 하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세리안과 달리 순수한 웃음이었다.
"귀여우시네요, 세이시아 님은."
헐. 4살 연하에게 방금 귀엽다는 말을 들은 난 뭐지. 내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자 아젤은 손을 저으며 나쁜 의미는 아니었다고 부정했다. 그는 저택에 딸린 시종 하나에게 차를 가져와주지 않겠냐고 부탁했다. 세리안의 도도함과는 색다른 공손함이었다. 정중했지만 필요 이상으로 숙이지 않았으며, 남을 편하게 해 주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거야 현자니까 당연하려나. 이렇게 어린 소년에게서 그런 기분을 느꼈다는 것은 조금 의외였다.
"아젤은 카덴 대륙 최연소 현자야. 어린데도 아는 건 엄청 많지."
세리안이 차를 한손으로 들고 마시며 그렇게 말했다. 8살때부터 현자였다고 했던가.
"과찬이십니다, 세리안."
아젤은 웃으며 말했다. 별로 세리안의 말이 칭찬은 아닌 것 같은데, 그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둘이 꽤 오래 알고 지낸 깊은 사이같았다. 서로 '님'자를 자연스럽게 빼고 대화하고 있기도 하고.
원통형의 흙색 도자기 찻잔에 담긴 녹차를, 아젤은 확실히 향을 음미하면서 마시는 것 같지만 나는 그냥 식혀서 맛만 보고 꿀꺽꿀꺽 들이켰다. 설명서 따위 몰라. 차 마시는데 예절과 순서가 무슨 소용이람.
아젤이 맑고 푸른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며 어린아이에 어울리지 않는 말투로 물었다.
"녹차는 입맛에 맞으시나요?"
"머, 먹을 만 한데요."
정말이었다. 지구의 녹차와 다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크게 다른 맛도 나지 않았고, 향이 훨씬 더 깊은 것 같았다. 뜨거운 것은 잘 적응하지 못하겠지만. 자꾸 먹다 보면 맛 들릴 것 같다고나 할까.
아젤은 내 표정을 보고는 빙그레 웃어보였다.
"그거 다행이군요. 세이시아 님께서 마음에 드신다면 앞으로 종종 제 처소에 방문하셔서 차 대접을 받아주시지 않겠습니까? 비록 변변한 것은 없지만 잠시나마 세이시아 님의 말상대가 되어 드릴 수 있다면 저도 기쁠 겁니다."
우, 우와. 이거 초대 맞지? 친해지고 싶다는 거 맞지? 나도 이 어른스러운 현자님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와 친해지고 싶었다. 그는 빙긋 미소지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세이시아 님은 귀여우시니까요."
……그 말은 조금 난감했지만.
또 놀러와도 된다는 말에 내가 들떠서 대답하려는데 세리안이 찻잔을 탁 내려놓으며 내 대답을 끊었다.
"아젤."
"네, 세리안."
세리안의 눈동자에 서린 아젤과 정 반대의 빛깔은 차분하고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가 중요한 말을 하려는 것을 눈치채고 아젤은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세리안은 표정에서 늘 짓고 있던 습관적인 미소를 지워버리고, 진지하게 제안했다.
"차기 공작의 스승이 되어 볼 생각은 없나?"
아젤은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으로 나온 어린애같은 모습이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워서 나는 앙증맞은 곰인형을 보듯이 반짝반짝한 눈으로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제 가르침을 받을 차기 공작이라면……. 세이시아님이겠군요. 세리안, 당신이 자진해서 공작위를 포기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조금 놀랐습니다. 작위보단 여동생이 우선 순위가 된 거네요."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아주시죠, 현자님."
세리안이 반 장난으로 존댓말을 쓰자 아젤은 재미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시 생긋 웃어보인다. 이번에는 나를 향해서. 처음 나를 보았을 때 비추었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 눈동자에는 기대감과도 흡사한 알 수 없는 색깔이 짙게 빛나고 있었다.
"저는 아직 많이 미흡하므로 세이시아님의 스승까지는 되어드릴 수 없습니다만, 사소한 도움이라도 괜찮으시다면 제가 할 수 있는 한은 언제라도 성심성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대륙 최연소 현자에게 초면에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꼈다.
***
아젤은 내 스승이 되어 달라는 요구는 정중히 사양했지만, 그날 이후로 그와는 거의 가정교사같이 시간을 내서 나를 가르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말이 스승이 아닐 뿐이지 실상은 선생과 제자 사이나 다름없었다.
아젤이 추천해 준 정치학 책을 다 외우고-그는 내 머리가 매우 좋다며 칭찬한 후에 외울 분량을 3배로 더 늘렸다. 으앙.- 한가해진 시간에 전에 빌려온 정령술 책을 읽기로 했다. 하지만 책을 미처 펼치기도 전에 네리아가 나에게 전에 불렀던 상인이 왔다며 알려주었다.
아젤님한테 교습받기 시작한 이래로 쉴 시간이 없어진 것 같았다. 게다가 아젤이 내 개인교사가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아버지가 아젤을 찾아가서 한참 얘기를 나눈 후부터 그의 스파르타식 교육은 더 심화되는 듯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조금 한가해지다시피 한 주말에는 직접 부친과 그 비서에게서 후계자 수업을 받아야만 했다. 이 사람들은 내가 무슨 괴물인 줄 아는 것 아냐? 책은 좋아하는 편이지만 요새는 너무 많이 읽어서 머리가 과열될 것 같았다. 나는 책을 덮고 피곤한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공작으로서 영지의 일을 처리하는 것은 대부분이 수행원이나 대리인, 비서들이 도맡아서 하며 공작은 그냥 결재를 내리거나 지시하기만 하면 된다. 직접 혼자서 모든 영지 일을 다 처리했다가는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고 사교술이나 처세술 같은 다른 일도 해야하기 때문이다. 공작이란 직업 자체는 꼬박꼬박 결재를 미루지만 않는다면 꽤 한가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배우는 입장인 나는 달랐다. 지시를 내리기 위해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직접 익히고 외워두어야 했다. 그리고 자신만의 판단력을 기르고 스스로 생각하며 합리적이고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결론은 배우는 게 더 힘들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너무 서두르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조금 천천히 배워도 될 정치학들을 단번에 마스터하라고 하질 않나, 나를 직접 일판에 뛰어들도록 만들지 않나. 심지어는 나한테 자신의 비서인 제인에 대한 지휘권을 맡겼다. 제인은 아주 짙은 흑갈색의 머리를 길게 내려 묶고 안경을 낀, 샤프하게 생긴 20대 후반 남자였는데 평민 출신이라 성이 없었지만 모든 일에 상당히 유능했기에 아버지가 십수 년간 옆에 두고 가장 가까이서 부려먹었(?)던 비서였다.
그만큼 자신의 일에 대한 프라이드도 대단해서 내가 조금만 실수를 하면 곧장 지적하면서 쪼아댄다. 이건 뭐 내가 지시를 내린다기보다는 제인이 지시를 내리고 내가 그에 따르는 것 같다. 예전에도 세이시아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녀의 실수나 잘못을 곧장 지적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세이시아가 그의 앞에서 실수를 한 적은 딱 한번이었단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공작가의 총 책임자이자 집사인 마리안에게서 저택 내의 각 부분이 돌아가는 구조를 배우라고 아버지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에 한동안 마리안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지내야 할 때도 있었다.
마리안은 후계자인 나에게 깍듯이 대하면서도 필요 이상으로 비굴하게 굽히지는 않는 프로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젤처럼 귀엽지는 않았다. 올해 마흔 다섯에 회적색 머리카락을 가진 키가 엄청 큰 남자였기 때문이다. 제길.
그 외에도 요리장와 시녀장과 시종장과 경비대장……. '장'이 붙은 사람과는 죄다 한두마디씩은 대화를 나누어 보고 얼굴을 익힌 것 같았다.
설마 이 교육을 다 끝마치고 나면 나보고 공작이 되라는 거 아냐?ㅋㅋ.
에이, 설마.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응접실 문을 열었다. 그 곳에서는 이미 사이즈를 재기 위한 여성 조수들을 데리고 있는 여자 재단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 직속 시녀인 네리아가 금발머리의 중년 여성이 재단사를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었다. 요즘의 유행이 어떻냐거나, 세이시아님이 바뀐 머리색에는 어떤 색이 더 잘 어울리겠냐거나. 자연스레 대답해 주는 재단사의 행동으로 보아 예전에도 세이시아는 드레스를 고르거나 하는 일에 직접 참견하는 일이 거의 없었나 보다. 주는대로 입는 타입이라고나 할까.
내가 들어온 것을 알자 재단사가 자신의 드레스를 살짝 들어 인사했다. 휴이든 남작 부인이라던가. 수도에 커다란 살롱을 운영하고 있는 귀족 여성이었는데 드물게도 디자이너 일을 겸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의뢰를 받는 것은 최소 공작 이상의 지위를 가진 귀족들에게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뢰비도 만만치 않았는데, 그 실력이 거의 제국의 디자이너들 중 최고였기에 다들 못 불러서 안달이라나.
그녀는 오랜만이라는 둥, 사고를 당해 안타깝다는 둥,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만난 가족들 이외의 귀족을 보는 거라 조금 머뭇거리다가, 귀족에 대한 인사법을 기억해 내고 그녀에게 마주 인사해주었다.
"기억을 잃으셨다고 들었는데 그 기품과 고고함은 여전하시군요."
어찌보면 조금 냉정할 수 있는 평가였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호의를 읽은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어색해서 말을 제대로 못 했는데, 예전의 세이시아와 비슷한 분위기가 난 것 같았다.
"그렇지만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바뀌셨군요. 단순한 디자인보다는 화려한 색이 어울리겠어요. 이전에는 어떤 옷을 입어도 은은하게 빛나는 분이셨지만 지금은 파티에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끌 수 있겠어요. 공식 파티는 이번이 처음이시죠?"
"네."
미성년자는 기본적으로 정식으로 초대장을 받을 수도, 보낼 수도 없다.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은 성년인 열 일곱살에 정식으로 사교계에 데뷔하게 되는 것이다. 예외가 있다면 황실에서 황자나 황녀의 생일파티나 축하파티를 열 때 정도일까. 파티의 주인공이 미성년자이니 그때만큼은 어린애들도 공식 참석 가능했다.
세이시아는 그런 파티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고, 또래 아이들과도 어울려 노는 걸 즐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생일파티를 집에서 열거나 가족끼리 피크닉을 갈 때 이외에는 외출복을 자주 주문해 입지 않았다. 실제로 그녀와 만났던 것도 단 두번 있었을 비공식 생일파티 때 뿐일 것이다.
지금도 드레스보다는 옅은 노란색의 실내용 원피스 차림이었다. 어찌보면 프릴이 달린 메이드복을 입은 시녀 네리아보다도 수수할 수 있는 차림이었지만 장미빛의 머리칼이 화려하게 구불거리고 있었으므로 마치 노란색의 실크천으로 포장한 장미꽃다발같아 눈에 확 띄었다.
"머리색이 너무 눈에 띄니 심플한 옷은 차라리 안 입은것만 못할 수 있어요."
아니, 그래도 안 입은거보다는 낫지 않을까?
"일단 사이즈부터 재 볼까요? 그동안 요양하신다고 체형이 망가지지 않았길 바랍니다. 얼굴만 보면 뺨이 더 통통해시진 것 같네요. 더 어려보이니 나쁘지는 않지만요."
컥. 자, 잔인하다! 이것이 바로 제국 최고의 디자이너, 프로정신이 굉장하군.
나는 그녀의 말에 251의 정신적 데미지를 입었다. 옷을 팔기 위해 구매자들의 비위를 맞추기는커녕 냉정하게 체형을 판단하다니. 처음 본 세이시아의 몸은 약간 마른 편이었지만, 그녀는 채소와 해물을 잘 먹고 과일과 디저트는 입에 잘 대지 않는 성격이었다. 나는 과일중독에 단 거라면 환장한다. 식성이 바뀌어서 100% 살이 쪘다고 확신한 나는 약간 쫄아서는 뱃살측정을 거부했다.
"완벽한 옷을 위해서는 체형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요즘에는 코르셋 없는 드레스를 다들 입으니까요, 파티 내내 힘주고 있을 자신 있으시면 배 집어넣고 재셔도 됩니다. 단, 재봉선이 터질 수도 있어요."
파티가 몇 시간인데 그럴 자신이 어딨냐!! 그녀는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고, 여섯 명의 여성 조수들이 줄자를 내 몸에 들이대기 시작했다.
"세이시아 님, 바스트, 웨스트, 히프, 세 군데 다 늘었어요."
네리아가 이전 기록과 대조해보며 가차없이 말했다. 얽! 말도 안돼! 이럴 순 없어. 내가 기겁하자 네리아는 헷, 하고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에요. 스리사이즈는 완벽하시네요. 그런데 가슴이 두 사이즈나 커졌어요. 드시는 게 다 그쪽으로 가는 거 아니에요?"
세리안은 킥킥 웃으며 네리아가 들고 있는 사이즈 차트를 건네받았다.
"정말이야? 시아, 사이즈 굉장한데?"
당신은 또 언제 들어온 거야?
비록 속옷 위로 사이즈를 잰다지만 그래도 공작영애가 옷을 벗기 때문에 경비병이나 시종들도 다 쫓아내고 방에는 여자들만 있었다. 대체 언제 문을 열고 들어온 건지 세리안은 차트를 보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더 먹이면 더 커지려나? 라니, 당신,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내가 차트를 잡아채듯 빼앗자 세리안은 장난은 그만두고 빙그레 웃었다.
"옷 고르는 거 도와줄까 하고. 이런 건 처음일 거 아냐."
내가 기억을 죄다 잃은 걸 알고 있는 그의 배려였다.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여동생의 드레스 선택을 도와주는 오빠에게 살짝 감동했지만, 끝까지 감동할 수는 없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오빤 남자잖아."
나는 사이즈를 다 재고 벗어두었던 원피스를 입으며 냉정하게 축객령을 내렸지만 세리안은 전혀 나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래봬도 어느 정도의 안목은 있는데 말야, 그렇지. 제가 있어도 괜찮으시겠죠, 휴이든 남작 부인?"
그리고 디자이너의 의사를 물으며 부드럽게 꽃미소를 지어 보인다. 휴이든 남작 부인은 당황하더니 뺨을 발갛게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 유부녀 킬러다.
악마의 미소에 홀린 그녀는 세리안이 머무는 것에 승낙해버렸다. 그리고 사이즈 기록을 바쁘게 적는 척 했다. 그런데 세리안은 어떻게 알고 여길 찾아온 거지? 방에는 아무도 없었을 텐데.
"간만에 아젤과 다과라도 즐기게 해주면 좋을 것 같아서 아젤을 데리고 왔는데, 네가 응접실에 있다고 어떤 시녀가 말하더라고. 그래서 왔지."
분명 이 방에서는 공작영애께서 드레스 사이즈를 재고 있으니 남자는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경비병의 말 따위 한 입에 씹어버렸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누구랑 같이 왔다고?
"아젤 님과? ……그럼 아젤 님은 지금……."
"네가 속옷 차림인 걸 보자마자 얼굴이 벌개져서는 안 들어간다고 버티더라고. 그래서 옷을 다 입을때까지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해뒀지."
……헐. 당신 지금 그런 말을 웃으면서 할 수 있어?! 나는 그를 비난하려고 했지만 세리안은 등 뒤에 달린 원피스 끈을 묶어준답시고 가볍게 내 허리를 껴안으며 당황한 내 귓가에 대고 부드럽게 속삭였다.
"왜, 어린아이한테 네 민감한 몸을 보여주는 게 싫어? 그 녀석, 그래보여도 열 세살이라구. 네 생각만큼 어리진 않아."
어리잖아, 열 셋이면! 나보다 네살 연하잖아! 다음 달에 내 생일이 지나면 다섯 살 연하잖아!
"인다스 왕국 쪽에서는 열 셋이면 결혼 적령기야. 아젤 녀석도 성장이 좀 느린 편이지만 아마도 곧 사춘기일걸. 오늘 이만큼이나 좋은 걸 봤으니, 밤에 널 상상하며 그렇고 그런 짓을 할지도 모른다구?"
이익! 무슨 소릴 하는거야, 아젤님한테! 현명하고 귀엽고 착하신 아젤님은 절대로 그런 짓 안해! 순진한 소년이란 말야, 악악!! 나는 세리안의 어깨를 손끝으로 꼬집었다. 그는 아프지도 않은지 하하 웃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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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골라주는 자상한 오라버니……인건가.
요새 한 회 분량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이번엔 조금 줄이려고 했는데 못 끊어서 전편보다 더 분량이 많은듯!? 이 정도면 두편 울궈먹을 수 있는대 한 편에 몰아적었으니 덧글이 두배……일 리가 없겠죠 흑흑.
제 계획상으로는 한회당 평균 12kb가 되어야 하는데 자꾸 분량조절에 실패하네요ㅜ 게다가 글을 너무 줄창 썼더니 모니터 증후군이 ㄷㄷ;;;
저는 쇼타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오히려 쇼타 싫어하는 편일듯) 키잡은 좋아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키우는 거 좋아해요.
그래도 하렘물에 로리쇼타는 꼭 있어야 하는 3대 캐릭(오빠누님, 로리쇼타, 소꿉친구) 중 하나이기 때문에 한명 넣어봤습니다. 근데 키워지는 건 어느 쪽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