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하지만 꼭 다행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
아직까지 아버지는 정식으로 후계자 공표를 한 적이 없다. 그저 남매 둘의 기싸움을 관전하기만 하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사고를 계기로 나와 세리안이 친해지고, 내가 차기 공작 후계자로 확실히 결정이 되자 공표식을 한답시고 공작가의 저택에서 파티를 연다고 했다.
"……파티?"
"네, 그래요! 그리고 이번 파티는 세이시아님의 생일파티와 데뷔도 겸하는 거라서 엄청 성대하게 치러질 예정이래요."
세이시아의 생일은 공교롭게도 이전의 나와 같았다. 장미꽃이 피는 5월 중순에서 말로 넘어가는 시기 말이다. 이번엔 세이시아의 18살 생일로서, 보통은 열 일곱살에 사교계 데뷔를 하지만 세이시아는 저번 열 일곱 살 생일에 감기로 앓아누운 적이 있어 이번이 첫 데뷔나 마찬가지였다. 아직 생일까지는 한달 넘게 남아있었다. 요새는 날씨도 서서히 풀려서 외투 없이 밖에 나와도 춥지 않았다.
"그러니까 조만간 재단사와 장신구 상인을 부르도록 할게요. 늘 부르시던 그 재단사와 상단이면 되겠죠?"
나는 열의를 불태우는 네리아에게 니 맘대로 하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늘 부르던 상인이라고 해도 나는 처음 보는 사람일텐데 뭐.
세이시아의 안목은 뛰어난 편이니 그리 나쁘진 않을 것이다.
마침 시녀인 네리아와 함께 티타임을 갖기 위해 나온 정원에서는 마악 꽃봉오리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하고 있다. 꽃과 풀의 정령들도 생기가 돌아서는 정원의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심지어는 내가 있는 티테이블 위까지 기어올라와서 찻잔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하얀 티테이블 위에 기웃거리는 풀의 정령은 녹색의 옷이 그들의 머리색과 같은 선명한 노란색이나 빨간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한 아이는 민들레였고 다른 아이는 튤립이었다. 보통 때에는 녹색 옷을 입고 다니지만 꽃을 피우게 되면 그 꽃에 맞는 색으로 모두들 갈아입는다. 대체로 머리색과 꽃의 색은 같았다. 민들레와 튤립 말고도 다른 알록달록한 정령들이 꽃을 피우거나 봉오리를 맺을 준비를 하며 서로 들떠서 재잘대는 중이었는데,
〈있지, 이번에는 어떤 나비가 수정하러 와주면 좋겠어? 나는 올해 꽃의 향이 짙어서 나비 열 마리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을거같아.〉
라던가,
〈줄기를 만져주는 정도로 느껴버린다니, 야해!〉
라던가,
〈날개가 커다란 호랑나비는 숙련된 일벌만큼이나 거칠어서, 아잉, 꽃잎 안 가득 파고드는게 너무 좋아♡〉
라던가, 굉장히 심란한 소리들을 사람 듣는데서 말하고 있었다. 조막만한 꼬마들이 하는 말 치고는 너무 수위가 높은 것 같다.
〈있지, 나는 올해가 처음이라서 조금 무서워. 나비가 꽃가루를 핥을 때나 꿀을 빨아갈 때 아프지는 않을까?〉
라는 어느 조그만 정령의 말에 선배로 보이는 자주빛 머리의 정령이 안심하라는 듯이 말했다.
〈꽃이 활짝 피게 되면 별로 아프지 않다니까, 그치만 성격이 급한 벌은 덜 여문 꽃잎을 억지로 벌리고 들어올수도 있다던데. 나는 속꽃잎보다 겉꽃잎이나 꽃받침을 먼저 거치고 들어오는 게 좋더라. 그럼 전혀 안 아파. 그렇게 나비나 벌에게 부탁해봐.〉
〈그, 그치만 그런 말 하기 부끄러운걸.〉
〈그치만이 아니고, 어차피 벌나비들은 죄다 변태라서 그 정도 부탁쯤은 꿀로 조금만 유혹해도 들어준단 말야.〉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 니네들은.
꽃이 나비에게 선택받는 기준은 색깔과 형태와 향기였다. 꿀의 질이나 맛은 2차적으로 들어가봐야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 꿀이 맛있는 꽃이 가치있는 꽃이지만, 아무리 좋은 꿀을 가지고 있어도 형태와 향기에서 딸려 나비가 선택하지 않는다면 소용없을 뿐이었다. 그 점을 선배 정령들이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후배 정령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정령들은 자기들끼리 얘기하면서도 나에게 호감을 보이거나 내 근처에 본능적으로 몰려들었지만, 보이지 않는 선을 딱 지킨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에 내가 먼저 말을 걸었을 때에는 공손하고 성심성의껏 대답했지만 그들이 먼저 말을 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시키면 어떤 일이건 복종한다. 하지만 나도 그들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무리한 부탁은 시킬 수 없었다.
여하튼간에 날씨가 풀리고부터 매일매일 광합성을 하러 정원에 나와 한두 시간씩 있다 보니 이젠 내가 꽃인지 사람인지조차 헷갈릴 지경이다.
꽃이 만개한 식물에게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단연 식물의 생식기관(生殖器官)인 꽃 자체였다. 성감대라고 한다면 꽃받침과 겉꽃잎, 속꽃잎, 그 중에서도 최고로 예민한 꽃술일 것이다. 줄기와 잎도 그들 입장에서는 몸의 일부라 만져주면 느낄 수 있는데, 뿌리만큼은 절대로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만져도 아프기만 할 뿐이라고 한다.
아마도 인간으로 따지면 뿌리가 내장 기관으로 취급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땅 속에 살면서 뿌리에 해를 입히는 일부 벌레들은 기생충이나 암세포와 마찬가지일것이다.
그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내가 무슨 식물이 된 듯한 느낌이라 나는 지금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난 식물인가 인간인가. 꽃의 정령이라고 해도, 본체(식물)와 정령이 따로 멀리 떨어지지 못하며, 식물 자체의 수명대로만 살수 있는 하급 식물의 정령들밖에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정령왕인 나는 어떤 형태를 하게 되는지 잘 몰랐다. 일단은 성체가 될 때까지 크는 게 중요하다고 했지만…….
"시아, 역시 여기 있었구나!"
세리안이 빠른 걸음으로 정원에 들어왔다. 네리아는 그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뒤로 물러섰다. 그는 오후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나를 다짜고짜 일어서게 하더니 도서관으로 가자고 말했다.
"갑자기 웬 도서관?"
야한 책 빌리러 가게?
지금까지 내가 필요한 책이라고 하면 기본적인 상식을 쌓는 정도. 그래서 세리안이 적당한 책을 우리 공작저의 도서관이나 서재에서 골라 나에게 직접 갖다바쳤던 것이다. 게다가 내 방 옆에 나만의 전용 서재도 있었으므로 그곳에 있는 책은 거의 다 읽었다고 해도 될 것이다.
세이시아의 서재에 있던 책의 종류는 약간 편파적이었다. 대부분이 경제학과 제왕학, 상업이나 세계 정세와 영지에 대한 내용으로서 그녀가 공작이 되기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검술이나 호신술에 대한 책도 많은 걸로 보아 무예에도 관심이 있던 것 같았다.
세리안이 갖다준 기초상식 책을 전부 외우고 나서 내 서재에 있는 책들을 읽기 시작한지 수 주가 지났으니, 이제는 심화적인 부분만 아니면 예전 세이시아의 지식들을 전부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빨리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세이시아의 몸에 남아있는 기초적인 지식들의 공이 컸으리라. 하지만 내 모든 지식이 세이시아의 것과 비슷한 수준이 되었다 하더라도 성격 자체가 변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같은 지식을 가지고서도 세이시아와 나의 언행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전의 세이시아가 아랫사람을 다루는 부분에서 한치의 편견도 없이 냉정하고 공평했더라면, 나는 그렇게 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제왕학에서 읽어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묘하게 감정이 개입된 대응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도서관에 가면 마법이나 정령술에 관련된 책도 있을 거야."
내가 별로 내키지 않아하자 세리안이 그렇게 덧붙였다. 나는 그 말에 냉큼 앞장서서 따라갔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세이시아는 정치와 검술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책도 그런 류 뿐이라, 나는 마법에 대해선 가장 기본적인 것만 알고 있었고 정령술은 '정'자도 몰랐다.
마법은 그렇다쳐도 내가 정령인데 정령술에 대해 몰라서야 되겠는가. 이번에 도서관에 가면 정령술에 관한 책을 모조리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령술에 관한 책이, 겨우 두 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디 있단 말이냐! 하르아이나 제국은 활자 인쇄술이 어느정도 발달되어 있어서 평민들도 책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거기다가 문과 무를 동시에 추구하는 고고한 제국의 귀족들이라면 각자 저택에 도서관 하나씩은 두는 게 필수였다. 우리 집안은 공작가였고, 영지도 부유한 편이었기에 제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많은 책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겨우 정령술에 관한 책이 두 권이라니!
그 중에 한권은 「정령술 : 물질계 사대 정령을 위주로 한 정령에 관한 조사서」였는데 수천년 전 고대 왕국의 사상 최고 정령사였다던 플리어스 디프리넨이 그 당시 복잡하고 정확도가 떨어지던 정령에 관한 모든 상식들을 총집합해서 정리해 놓은 정령 백과사전과 비슷한 책이었다. 자그마치 6천년간이나 정령술의 기본 지식서이자 바이블로서 모든 정령사들에게 읽혀져온 '정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초보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렵고 필요없는 부분이 많았는데 마탑에서 그 부분을 싹 잘라서 쉽게 풀어쓴 「정령 소환의 기본」이 요즘에는 더 자주 읽히고 있다고 한다. 인간 중에서야 잘해봤자 물질계 사대 정령 중급이나 상급까지 소환하는 게 고작이니 정신계 정령이나 사대 원소 정령 이외의 물질계 정령에 관한 내용은 읽으나마나일 테니까.
다시 말하자면, 인간이 정령에게서 알아낼 수 있는 지식의 한계점까지는 「정령술 : 물질계 사대 정령을 위주로 한 정령에 관한 조사서」에 모두 적혀있다는 것이었다.
그 이상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엘프 마을에서나 취급할까 모르겠다나. 도서관의 도우미가 어쩔 수 없다며 그렇게 말했다. 세리안은 내가 황당해하건 말건 그 도서관 안내 담당인 갈색머리의 여자에게 명했다.
"여기의 총 책임자를 만나러 왔는데."
응? 세리안은 책 빌리러 온 게 아니었던 건가. 나는 그가 도서관의 총 책임자와 얘기하는 동안 혼자 책을 읽겠다고 했지만, 세리안은 나까지 끌고서 그 여자의 안내에 따라 자리를 이동했다.
***
아젤 칸스티어. 원래는 황실 도서관 총 책임자의 비서로서 일하고 있었는데 5년전에 세리안이 우리 집으로 스카웃 해왔다고 한다.
원래 그는 평민이었다지만 칸스티어라는 성은 현자의 탑에서 자신들의 시험을 통과해 낸 지식인들에게 주는 성으로서 일반 왕국의 백작 정도의 작위와 거의 맞먹는 힘을 가지고 있다. 현재 대륙에서 현자의 칭호, 칸스티어를 받은 사람은 총 15명. 평민이건 귀족이건 천민이건 간에(하르아이나 제국에는 천민-노예-가 없지만 타국에는 있다고 한다.) 카덴 내에서 단 열 다섯명 뿐일 정도로 머리가 좋으므로 칸스티어는 어디에서건 그에 걸맞는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대접 안해주면 어쩔 건데. 대륙의 모든 지식과 정보를 가진 현자의 탑을 적으로 돌리고도 멀쩡할 수 있는 국가는 없었다.
그런 대단한 사람을 집안 책방사서로 삼은 세리안이 더 경이롭다고 생각하는 나였다.
"그래서 아젤에게 네 스승이 되어 달라고 말해 볼 생각이야. 아무리 네가 유능해도 나보다 여섯 살이나 어리니까, 이 상태로 공작위를 이어받기에는 조금 부족하니 너에게 더욱 여러가지를 가르쳐 줄 스승이 필요해. 차기 공작의 스승이라면 아젤 녀석도 흔쾌히 받아들이겠지."
세리안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말했다. 아젤 녀석이라니, 대체 무슨 사이길래 그런 식으로 부르는거야?
아젤 칸스티어는 현자의 칭호를 받은 자 답게 도서관 책임자임에도 불구하고 저택 별관의 한 층을 전부 다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죄다 책 뿐이다. 아래층이 전부 도서관인데, 그의 거처인 2층도 도서관이었던 것이다.
"이곳에서는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지 않는 희귀하고 중요한 책이나 금서들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방에 들어가시거나 책에 손을 대시면 안됩니다. 금서를 읽거나 취급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현자의 탑에서 인정받으신 아젤 칸스티어님과 다른 열 네분의 현자들 뿐입니다."
젊은 여성인 도서관 도우미가 2층 계단을 오르는 동안 미리 언질을 주었다. 역시나 각 방은 전부 마법 잠금장치로 단단히 보안이 되어 있었다. 열려있는 방도 있긴 했는데, 그 안에 있는 책들은 금서라기보다는 단지 공작가 소유의 희귀본이었기 때문에 공작의 자식인 나와 세리안은 읽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 방을 몇 개쯤 지나자 드디어 사람이 사는 것 같은 공간이 나왔다. 그녀는 응접실에 우리들을 잠시 기다리라며 안내하고는 아젤 칸스티어를 부르러 갔다.
역시 현자의 거처답게 응접실도 조용하고 단정한 느낌이었다. 벽에는 오래된 두루마리가 걸려 있었고, 약간 색이 바래 보이는 연노란색 종이 벽지에는 수없이 많은 언어로 된 글귀들이 쓰여져 있었다. 책상 위에 놓여진 흰 종이에는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글씨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녹차 마시는 법」
녹차는 제국에서 자주 마시는 차가 아닌데, 엘프들의 마을에서는 흔히 허브티와 함께 손님접대용으로 내오거나 마시는 경우가 많다, 라고 그 종이에 쓰여져 있었다. 내가 알고 있었을 리가 없잖아, 그런 걸.
제국에선 홍차나 플라워티(꽃잎을 띄워 우려낸 차)를 마시는 경우가 많았다. 방금의 티타임에서도 네리아는 설탕과 우유를 가득 넣은 밀크티를 내왔었다. 녹차는 이곳에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깨끗하게 코팅된 그 종이에는 엘프 식으로 차를 마시는 예절이 순서대로 적혀 있었는데 마지막에 작게 '아젤 칸스티어'라고 적혀 있는 걸로 보아 그가 자신의 거처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배려해서 적어둔 것 같았다. 역시 현자, 배려심도 엄청 깊은가보구나!
"아젤은 현자 중에서 가장 최근에 현자로 임명되었으니 지금의 열다섯 명의 칸스티어들 중에서 가장 젊지. 보통 초면에는 '현자님'이나 '칸스티어님'이라고 부르지만 기억을 잃기 전의 너는 도서관에 자주 들러서 그와 안면이 있었으니까 '아젤님'이라고 불렀어."
아젤은 별로 친한 녀석이 아니라도 한두번의 만남만 있으면 이름을 쉽게 허락하니까, 라며 세리안이 덧붙였다. 세이시아는 책을 좋아했으니 당연히 5년간이나 가문 도서관 총책임자였다는 아젤 칸스티어와도 접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젤은 세리안이 스카웃해 온 인재였다. 그 당시 두 남매의 사이는 최악을 달리고 있을 테니 세이시아의 입장에서는 아젤이 마음에 들었더라도 함부로 친해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좋은 사람 같긴 했다. 새삼 종잇조각 하나에 감탄하고 있는데 드디어 현자라는 아젤 칸스티어가 응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랜만입니다, 세리안. 그리고 세이시아 님. 세이시아님께선 최근 도서관에 뜸하시길래 이상하게 여겼는데 사고를 당하셨다구요. 심하게 다치신 것은 유감입니다만 그래도 건강해 보여 다행입니다."
직접 보게 된 현자, 아젤 칸스티어는 생각보다, ……젊어 보였다. 그는 조금 헐렁한 듯한 하얀 로브를 걸치고 있었는데, 응접실 안으로 들어서며 상냥하고 꾸밈없는 미소를 빙그레 짓고 예법에 어긋나지 않는 인사를 했다. 청아하고 낭랑한 목소리가 햇빛에 아름답게 반사되는 그의 푸른 머리카락과 굉장히 잘 어울렸다.
……생각보다, 젊어 보였다.
"……."
랄까 저게 어디가 젊은 거야!?! 나는 속으로 세리안을 욕했다. 아젤 칸스티어라는 이름의 현자는, 고작 내 가슴께까지 닿는 키의 솜털도 안 난 어린 소년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머리색과 같은 청량한 푸른빛의 큼직한 눈동자는 순한 사슴처럼 반짝였고, 쌍꺼풀 진 눈꺼풀에 곱게 드리워진 푸른 속눈썹은 뽀얀 그의 피부색과 어울려 신비롭게까지 보였다. 아직 우유 냄새가 날 것 같은 뺨의 솜털과 보드랍고 결 좋은 파란 생머리를 가진 소년은 굉장히 귀엽게 생겼는데, 외견과 어울리지 않는 듯 하면서도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어른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엄청난 동안이다.
"저기, 몇살이세요?"
나는 당황해서 인사 대신 가장 먼저 나이를 물었다. 아젤은 예법에 어긋난 내 반응에 잠시 놀란 듯 했지만 곧 인자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대답해 주었다.
"지금은 열세 살입니다. 두 달 전이 생일이었으니까요."
잠깐, 딱히 동안도 아니잖아? 그 소년의 나이는 열서너 살 정도로 보였기 때문에 실제로는 십대 후반이나 이십 대 초반이 아닐까 예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열 세살이 된지 두달밖에 안 되었다니!
게다가 5년 전에 세리안이 스카웃해 왔다면 대체 그 때는 몇 살이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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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연속으로 올리다니 제가 미쳤나 봅니다. 오늘은 만우절이라서 안 올리려고 했지만 만우절이라서 올립니다(응?).
벌써 10회째군요.
키잡은 좋아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