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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여왕-8화 (8/226)

<-- 1. 곤충은 아니라서 다행인듯. -->

그는 내 입술이 머뭇거리며 열리는 것을 상당히 흥미로운 표정으로 낱낱이 주시하고 있었다. 내 표정을 분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지? 지금 여기서 정령왕이라고 털어놓을까? 근데 별로 믿어줄 것 같지는 않다. 저 인간이라면 오히려 약점 잡아서 날 있는대로 뜯어먹고 단물 다 빠진 후에 사형시킬지도 몰랐다.

그럼 세이시아라고 끝까지 우길까? 별로 믿어줄 것 같지는 않다. 세이시아가 아니라고 말하고 용서를 빌어야 하나? ……그 전에 죽일 것 같은데.

"지금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결국 다시 입을 다문 나를 보고 세리안이 빙그레 웃는다. 그 웃음에 전처럼 강한 경멸은 엿보이지 않았지만 부드럽고 달콤한 말투에 그대로 속아넘어갈 정도로 그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곧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들어 주지."

무언가를 결심한 듯, 세리안은 내 어깨를 덥석 붙잡고 강하게 벽으로 밀어붙였다. 진득하게 내 귓가에 직접 대고 그렇게 속삭인 후 목 언저리를 힘껏 베어물었다. 이빨을 강하게 세우지 않아서 물린 곳에는 잇자국이 살짝 남을 뿐이었지만 갑자기 터져나오는 신음소리는 막을 수 없었다.

"앙읏!"

야릇한 느낌에 그렇게 스스로 소리쳐놓고 방금 내가 무슨 소릴 냈는지 인식하지 못해 입을 틀어막았다. 뭐, 뭐야 이 소린? 애니메이션 비디오에서나 나올 법한 야한 음성이잖아. 굉장히 민감하구나, 라고 감탄하며 세리안은 웃었지만. 기적적으로 순결을 지켜온 입장에서 남자가 살짝 물어뜯었을 뿐인데 그런 소리가 나온다는 건 상당히 심란했다. 세이시아는 사실 처녀가 아니었던 걸까? 뭐 별로 큰 상관은 없지만.

그저 마음에 드는 남자가 없었을 뿐, 여고생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스스로의 처녀성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지금와서는 내가 보통 사람과 생각하는 기준이 조금 달랐던 것이 정령왕이라는 사실로 해명할 수 있었지만 그 때는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또래의 학생들처럼 그런 것에 흥미를 갖고 간접적으로 접해본 적은 많았다. 그래서 지금 세리안이 나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확실히 알 수는 있었다.

"네가 시렌느 가(家)에 잠입한 스파이이건 아니건 간에, 너 자체로는 내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군. 알지 모르겠지만, 너는 요 며칠간 꽤나 내 앞에서 자극적으로 굴었거든."

방금 나에게 감히 그런 목소리를 내게 한 세리안은 내 턱을 매만지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런고로, 아무쪼록 지금은 자백하지 말고 끝까지 버텨주면 고맙겠어."

역시 흑심이 있었어 이 녀석!!! 아무렴 보통 스파이로 의심되는 자를 고문할 때 이런 방식을 쓰지는 않겠지. 하지만 나는 그의 여동생이다. 영혼은 아닐지 몰라도 육체로는 같은 피가 이어진 친 여동생이었다.

나는, 믿을 수 없지만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그리고 세리안에게도 '가족으로서의 호감'이라는 게 조금 생겨버렸기 때문에 그의 행동을 용납할 수 없었다.

"앙……, 오빠, 그만……."

하지만 내 마음이야 어떻든간에 몸은 어떤 행동이건 용납할 수 있는가보다. 생전 처음 남자의 손길을 받아들여 뭐든 다 당해주겠다는 태도였다. 묘한 감촉의 뜨거운 입술이 목덜미에서 쇄골로 이어진다. 아잉, 옵빠 안대! 찬 공기에 조금 위축되어 있던 살갗이 그의 혀가 타고 핥아내려오자 서서히 녹기 시작하는 듯 하다. 이상한 느낌에 바들바들 떨며 어쩔 줄 몰라하다가 결국 가장 가까이에 잡히는 그의 소맷자락을 꽉 쥐었다. 이로 살살 긁어가며 목덜미를 핥아 맛보던 그가 속삭였다.

"아직도 오빠라고 부르는 건가?"

오빠 소리에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은 것 같은 세리안이 남매 플레이에 오히려 흥분해서는 더더욱 강하게 쇄골 뼈 아래로 키스했다. 하늘색 드레스가 흘러내려 끈 달린 속옷이 드러났다. 그가 어느새 뒤의 끈을 풀어내린 것 같았다. 얇은 어깨끈이 달린 슬립 아래에 하얀 브래지어가 있었다. 나는 지금이 겨울이라 속옷을 꼭꼭 챙겨입고 드레스를 걸쳤다는 것을 정말 다행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속옷 몇 개 정도는 무용지물, 그의 힘에 붙들려 저항할 수 없는채로 머리가 서서히 멍해져가는 지금에서는 단지 세리안을 조금 더 즐겁게 해주는 장난감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못할 것이다.

"시, 싫어어……. 오빠……."

"전혀 싫은 것 같지 않아 보이는데."

짜릿한 감각에 머리가 이상해질 정도의 성감이 온 몸을 덮쳤다. 이 상황에서도 첫경험인 내 목덜미는 철저하게 느끼고 있었다. 들떠 있는 발그레한 뺨과 촉촉한 눈빛을 하고 있는 열 일곱의 소녀가 거울에 비친다. 세리안의 말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내가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세리안은 내 가슴 사이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속옷 두 겹을 사이에 두고서도 묘한 느낌이 느껴졌다.

이상하게 위기감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 그치만 기분 좋은걸 어떡해. 그에게서 진짜 살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부드러운 손길에 안심이 되었다.

사실은.

더 해 주었으면 좋겠다.

"자백 따윌 하라고 입을 막지 않은 건 아냐. 이젠 스파이고 뭐고 상관없으니까, 좀 더 네 목소리를 들려줘. 네 진짜 이름은 뭐지?"

그렇게 생각한 직후 세리안의 목소리가 달라진 것 같았다. 조금, 뭐랄까, 이 녀석. ……진짜로 흥분한 건가. 여동생한테 말야. 지금까지는 본능적으로 저항하지 않고 있었지만 이제 저항해봤자 소용없을 정도로 나는 그의 몸에 단단히 붙들려있었다. 그는 강하게 내 가슴 사이에서 숨을 들이마셨다. 닿은 체온이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치 뜨거웠다. 세리안이 내 허리를 껴안고 중얼거렸다. 어느새 애원조로 목소리가 변해있다.

"이름 가르쳐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세이시아라고 말해봤자 믿을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

슬립을 고정시키는 리본끈 앞에서 마비된 듯 그의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결국 벽에 밀어붙여진 나의 허리를 세게 끌어안고선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작게 속삭였다. 그리고 본인도 무엇인지 잘 표현하지 못하는 어떤 것을 강하게 열망하며 온 몸으로 애원하고 내게 부탁했다.

"좀 더……, 이 향기, 미칠 것 같아. ……무슨."

……향기?

전에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나에게서 향기 같은 건 나지 않는다.

내가 잠시 멍하니 한눈을 팔자, 그 순간 세리안은 정신이 아득해지기 직전 무언가를 깨달은 듯 했다.

주위가, 싸늘해졌다.

그의 행동이 멈추었다는 걸 눈치챈 순간 세리안은 너무 차가워서 은빛으로 보이는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일어서서 내 몸을 뿌리치듯이 놓았다. 따뜻하게 달아올라있던 몸이 보호막을 잃고 곧장 찬 공기에 접촉되었다. 아직 차가워진 방이 데워지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한가보다. 역시 괜히 창문 열었다.

나에게서 떨어진 세리안의 아름다운 얼굴은 그림자가 져서 얼어붙을만치 냉랭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방금까지 뜨거워져 있던 자신의 신체를 믿지 못하겠다는 듯 날 다그쳤다. 차가운 칼이 방금 전까지의 분위기를 얼리고 공간을 벤다. 눈앞에 진짜 칼날을 대고서 그는 나를 위협했다. 달콤한 목소리는 온데간데없다. 하지만 방금의 아찔한 감각은 여직껏 몸에 남아있는지, 날카로운 눈매와 반대로 입술로는 가쁜 숨을 내쉬는 그는 뭔가에 당황한 듯이 다급하고 불안정해 보였다.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아니, 아무짓도 안 했는데요. 오히려 비난받아 마땅할 짓을 저지른 건 당신이거든.

"마약이나 최음향이라도 사용한 건가?"

그는 자신이 지난 5분간 했던 행동과 즉흥적인 판단들을 모두 죄다 알 수 없는 무언가의 탓으로 돌렸다. 그치만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조금 덜 억울한 일이 있다면, 당황한 것은 나 뿐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세리안 쪽이 평소의 몇 배는 더 불안정한 것 같았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평소의 포커 페이스를 생각하면 지금 그의 상태에 무언가 외적인 영향이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꼭 내 탓이라는 증거가 어딨냐고.

나는 눈 앞에 칼을 두고서도 멀쩡한 얼굴로 흐트러진 옷을 다시 매만졌다. 하지만 뒤의 드레스 끈은 혼자서 다시 여밀 수 없었다. 이런, 그냥 벗고나서 네리아에게는 자려고 그랬다고 뻥쳐야겠다. 아직 조금 이르지만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면 그럭저럭 넘어가겠지. ……물론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고 있는 눈 앞의 이 남자에게 지금 죽임당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

무저항으로 강렬한 마성의 향에 노출되었던 세리안이 제정신을 차린 것은 정말 운 좋은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를 「유혹」하던 세이시아가 잠시 다른 곳에 정신을 팔지 않았다간 확실히 넘어가서 그녀의 발 아래에 굴복했을지도 몰랐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일단은 기사 행세를 하고 있는 몸이지만 약간의 마법은 쓸 수 있는 세리안은 방금까지 자신이 출처를 알 수 없는 힘에 매혹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었다. 그저 상당히 좋은 향인줄로만 알았는데 강력한 최음 성분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의 몸은 위험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채 무방비하게 풀려있다는 점이었다. 뜨거웠다. 불타는 것처럼 달아올라버린 심장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밖에서의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부터 그를 흥분시키고 있었다.

약물이라도 쓴 것이 틀림없다.

겉으로는 여유를 되찾은 것처럼 웃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세리안은 천천히 그의 검을 세이시아의 귀 쪽으로 가져갔다. 중간에 이성을 잃지만 않았어도, 처음부터 이 방법을 써서 그녀에게 자백을 받아낸 후 그걸 빌미로 마음대로 하악하악 해볼 예정이었다. 이 내가 그녀에게 취해서 미친듯이 애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일부러 엄격한 목소리를 내며 경고조로 말했다. 감정 조절에 신경써야 할 정도로 당황해본 적은 생전 처음이다. 평소대로의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하며 방금 전의 어지러운 화향을 지워나갔다.

"심증만으로 널 스파이로 몰아붙일 수는 없지. 그래서야 네 입장에선 너무 억울할테니까."

시아는 이번엔 또 뭐냐는 듯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세리안은 검 끝에 힘을 주었다. 따끔한 느낌에 시아가 귓가에 손을 가져다 대려고 했지만 세리안은 그녀의 팔을 제지했다. 영문도 모른 채 귓불 끝을 베여버린 시아는 황당하고 억울하다는 듯이 세리안을 노려보았다.

"피의 마법이란 건 상당히 유용하지. 부친을 모르는 태아의 신분을 가릴 때 쓸 수도 있고, 가문의 진짜 직계 후손을 골라낼 때 쓸 수도 있고. 지금 너처럼 다른 누군가의 행세를 하는 타인을 알아낼 때 쓸 수도 있어."

그러니까, 유전자 검사 같은 건가? 시아는 중얼거렸다. 어쨌거나 그녀는 전혀 무서울 게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나와준다면 내가 완벽히 세이시아라는 걸 증명하게 되니 다행인 일이었다. 하지만 마법에 대해 잘 모르는 그녀로서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어 불안한 점도 있었다.

그러나 의외로 의연해 보이는 시아의 표정을 조금 왜곡해서 받아들인 세리안은 풋 하고 웃었다. 네가 정말로 세이시아였다면 좀 더 귀여워해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녀가 세이시아가 아니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을 부정할 수는 없다.

사실 스파이 따위 처음부터 아무래도 좋았다. 말은 그렇게 해 놓았지만 세리안은 그녀를 스파이로서 정석대로 처벌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어차피 그녀로 인해 큰 타격을 받은 것도 아니고, 설사 그녀로 인해 자신의 작위에 문제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작위 따위는 그의 실력으로 나중에 얼마든지 얻을 수 있지만 마음에 드는 장난감은 언제 또 나타날지 모르니까. 둘 다 그에게는 단순한 흥미거리일 뿐이지만 희소성 면에서는 그녀가 더 우월했다.

지금 세리안은 단지 그녀를 데리고 아까 하던 짓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보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진짜 여동생이었다면 그 짓도 못할 것 아닌가. 방금 이상한 미향에 의해 정신줄 놓을 뻔 했다는 사실도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는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닐까 하고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지만, 뭐, 미쳤다고 해도 상관없다.

"자신만만한 표정인데, 내가 마법을 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웃음 섞인 세리안의 말에 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댁이라면 인간이 아니었다고 해도 믿겠다. 적어도 그녀는 그가 범상한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다.

"명목상으로는 기사이지만 2클래스의 마법 정도는 쓸 수 있어. 그리고 혈연관계를 판단하는 것은 2클래스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어라, 내가 마법 쓴다는 건 비밀이다? 아직 너랑 아젤 말고는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으니까."

친근하게 말하며 세리안은 시아의 귀에서 뚝뚝 떨어지는 빨간 핏방울을 긴 유리막대에 적셨다. 유리막대를 타고 내려간 피는 얇은 종이에 붉은 자국을 남겼다. 그는 그 종이를 반으로 접어 반대편에 글씨를 썼다. 마법 언어로 된 주문인 듯 했다.

"피의 증명……?"

시아가 무심코 중얼거린 말에 세리안은 감탄했다.

"룬어도 읽을 수 있는 건가?"

그는 쿡쿡거리며 웃었다.

"이걸로 네가 세이시아일리가 없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추가됐군. 룬어는 마나에게 선택받지 못한 자는 배울 수도 없고 읽을 수도 없는데 말야, 세이시아는 정말 조금도 마나에 대한 재능은 없었거든."

헐. 시아는 방금 자신이 왜 그딴 걸 읽었는지에 대해 자책했다. 가만히 있으면 반은 간다던데,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걸. 이제 빼도박도 못하게 된 자신의 처지에 절망했다. 왜 자기가 룬어를 읽을 수 있었는지는 이 상황에서 궁금한 것이 못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리안은 자신의 안주머니에서 다른 종이를 두 장 더 꺼냈다. 아마도 피의 증명 어쩌구 하는 말이 또 쓰여 있던 걸로 보아, 세이시아의 친아버지와 친어머니의 피가 묻은 종이일 것이다. 피는 한두방울만 있으면 되는 것 같으니까 그다지 구하기 어렵지는 않았겠지.

그리고 두 장의 종이를 먼저 물잔에 넣고 짧은 주문을 외운 후, 시아의 피가 묻은 종이를 집어들었다. 다른 두 종이는 이미 가라앉아 있었다. 표면이 거칠고 조직이 성글게 제작된 종이라서 젖으면 휴지처럼 물에 금방 가라앉는다.

"이 종이가 가라앉으면 서로의 피가 섞였다는 의미이지만, 가라앉지 않고 거부된다면 너는 부모님의 혈육이 아니라는 의미지. 아버지와 어머니의 피 둘중에서 하나만 섞여 있더라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마법을 통한 증명은 신의 영역이라는 9클래스 이상의 마법사가 아닌 이상 조작도 불가능하지. 그야말로 확실한 증거 아닌가?"

시아는 조마조마하며 세리안의 손에 들린 마지막 한 장의 종이를 바라보았다. 세리안은, 망설임 없이 종이를 잔 위로 떨어뜨렸다. 가라앉을 리가 없다는 자신이 담긴 행동이었다.

시아는 눈을 꼭 감았다가 떴다.

세리안은 그런 그녀를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었다.

마법 증명의 결과는 절대적이다.

살그머니 수면 위로 닿아 떨어진 종잇조각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히 물잔의 물을 흡수해서 곧장 가라앉았다.

"……."

"……."

헐.

시아는 자기가 돈을 건 말이 일등먹었을 때와 흡사한 감동을 받았다. 살았구나. 그녀는 하필이면 다른 마법 다 놔두고 그 마법을 선택한 세리안에게 고마워했다. 그 마법대로라면 그녀가 세이시아가 맞다는 결과가 나오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마법이란 건 정말 믿을 만 하구나. 근데 당신은 어쩔 거?

세리안은 약간 복잡한 표정이었다. 결과가 나왔으니 믿을 수밖에 없는데, 누가 생각해도 이 상황에서 그런 결과가 나올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세리안은 혼란스러운 기분을 감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적어도 겉으로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감추며 빙그레 웃으며 시아를 마주보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미안."

미안하면 다냐!! 하고 외칠법한 상황인데도 시아는 그냥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사실 찔리지 않는다면 그것도 거짓말일테니.

하지만 세리안 입장에선 무죄인 사람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여 놨으니 이번에는 정말 어떻게 할 말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라면, 세리안은 그녀를 체포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방금의 증명과 심문은 둘만이 아는 비밀로서 묻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살짝 베인 시아의 귓불을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쓸며 다시 사과했다.

"칼로 찔러서 미안."

"……그쪽의 사과였냐."

그녀는 어이가 없었지만, 누가 생각해도 자신은 의심받기에 충분할 상황이었기에 너그럽게 오라버니를 이해해 주기로 했다. 오히려 약간 어색했던 시아의 행동이 부모님이나 다른 집안 사람들에게 의심받지 않도록 그동안 세리안이 따라다니며 수습해 주었으니 고마운 일일지도 몰랐다.

게다가 실제로도 그녀는 '진짜' 세이시아가 아니지 않은가.

세리안은 손으로 만져주는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상처난 부분을 혀로 핥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귓불이라, 할짝이는 소리와 뜨거운 숨결이 그대로 귓가에 느껴져버렸다. 피를 깨끗이 전부 핥은 세리안은 다시 빙그레 웃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방금 일은 우리들만의 비밀이야. ……대신에, 좋은 거 줄 테니까."

그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만큼은 방금 전의 쌀쌀맞은 어투와 비견될 수 없을 정도로 상냥했다. 그래. 어쨌건, 당신의 속셈은 여전히 모르겠지만 말야. 목숨의 위협을 당할 일은 사라진 거지? 이제부터 잘 부탁해. 오빠

시아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세리안에게 그녀가 거리낌없이 웃어준 것도 처음이었다.

***

세리안은 다정하게 미소를 지으며 드레스 끈은 가지런히 묶어서 반쯤 벗겨진 내 옷을 정리해주었고, 그러던 와중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나는 벌떡 일어나려다가 여직껏 벽과 세리안 사이에 끼워져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반사적으로 익숙해져버린 명령어를 말했다.

"아, 드, 들어와도 돼."

그리고 본능적으로 외친 직후에 나는 깨달았다. 아차. 지금 이 사황은 누가 본다면 오해받기 딱 좋은 상황이다. 악! 들어오지마!! 하지만 무자비하게 문은 열렸고, 역시나 나에게 마실 것을 챙겨주러 온 네리아는 방 안의 어지러운 풍경과 세리안에게 거의 안기다시피 한 나를 보고 굳어버렸다.

"……."

문 좀 잠그지 그랬어…….

===

시아는 경험치 3000을 획득했다.

오빠는 아무래도 동생을 조금 핥다가 시집보낼 생각이신듯.

전 독자님들의 예지력이 무섭게까지 느껴집니다. 이건 뭐 무슨 복선을 깔아놓던간에 뒷내용을 죄다 알아채버리니... 하지만 작가의 마지막 자존심으로서, 예언하신 댓글들에는 죄다 노 코멘트 하겠습니다. 제발 예언하지말아주세여ㅠㅠㅠ

일단 7금으로 추정되는 내용을 가볍게 적어놓고 반응을 살펴봅니다. 급 야한전개&막장전개에 지금부터 서서히 소설을 걷어차고 나가시는 분들이 많이 생길 예정입니다만, 뭐 그래도 역하렘 하앍이신 분들은 끝까지 제 글을 읽어주시리라 믿습니다ㄷㄷ. 순전히 이 글은 자기만족으로 역하렘만을 희망하면서 쓰는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시작단계에여. 역하렘의 꽃인 남자 성희롱 장면을 쓰기 위해 밑작업을 해놓는겁니다. 주인공이 간접경험뿐만 아니라 실전경험도 좀 먹어줘야지 플래그 세워지잖아염. 이거 소개글에 적힌 15금이라는 거 읽고 오신거 맞죠? 정실 중 하나인 본남주가 나오면 그때부터 노블로 올려야하는 수위까지 올라간다는 걸 확신하고 있음.〈 전 노블레스 옮기기 싫으므로 이대로 나가겠습니다. 제가 노블레스로 올리면 돈내고 봐야하잖아요 ㄷㄷ. 그니깐 제발 신고하지 말아달라능.

이쯤되서 눈치 까신 분이 대부분이실텐데 세리안은 이 글 상에서 현재 친오빠로 취급되고있지 않습니다. 시아도 친오빠라고는 생각 안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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