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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여왕-7화 (7/226)

<-- 1. 곤충은 아니라서 다행인듯. -->

세리안, 의외로 좋은 사람이구나! 먹을 거 챙겨주는 사람한테 내가 이렇게 약한줄 처음 알았다. 이전 세계에서도 고급 레스토랑에 데려다 줄 테니 아저씨랑 호텔 가서 애니메이션 비디오 찍자고 하던 어떤 남자가 있었는데 나는 그 녀석의 거시기를 발로 응징한 후에 난 3P 이하는 안 한다고 거절했다. 그 남자와 세리안과의 차이점은 뭘까.

대가 없는 사랑에는 익숙하지 못하다. 모두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만났던 남자들은 모두 내게서 대가를 원했다. 입술에서부터 몸까지 전부. 그런 애정에 불쾌감을 느껴 아직까지 아무런 남자에게도 몸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이런 것이라면 조금 다를까 하고 생각했다. 세리안이라면 말야. 세리안 정도의 남자라면 괜찮을지도……?

나는 곧 고개를 저었다. 무슨 생각이냐, 나야. 저 악마에게 마음을 빼앗기다니. 아직 저녀석의 속셈도 잘 모르면서 말이다. 나는 턱을 괴고 포크를 물어뜯으며 생각에 잠겼다. 식탁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다들 그냥 너그럽게 보아 넘기고 있었다. 부모님과 세리안, 옆에 있던 시녀들조차도 말이다.

내가 이 곳에 와서 나를 적대한 자들이 있었던가? 그들의 태도는 아무리 기억상실증의 소녀를 상대한다고 해도 너무 호의적이었던 것이다. 확실히, 이전의 세이시아는 능력과 카리스마만큼은 인정받을 만 하지만, 오히려 노력하는 세이시아에게 윗사람들은 더욱 기대하고 아랫사람들은 더욱 존경하며 그런 그녀의 힘에 겨운 엄격한 기준을 요구했을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했던 것들이라고 네리아가 내민 예전 일정표와 틈틈이 써왔던 세이시아의 메모들로 추측할 수 있었다. 세이시아는 꽤 부담스러운 삶을 살아왔던 거구나, 하고.

하지만 나에게는 모두 태도가 바뀌었다. 그 이면에는 친절함을 넘어선 근본적인 무언가가 있다. 나는 식사를 끝내고 방에 돌아와서 한동안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능력 중 단 하나가 아직 불분명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과 바람을 다루는 능력은 백발 남자의 말에 따라 정령력으로 판별되었다. 그 능력이 없어지지 않은 것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마성의 능력. 모든 이성을 유혹하는 그 무서운 능력 하나가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이 세계로 와서 나와 대면했던 남자인 몇몇 시종과 세리안과 아버지가 아무런 반응이 없었으므로 혹시 그 마성의 능력이 사라졌다던가 내가 조절 가능하게 되었다던가 약해졌다던가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만약 내 예상이 맞다면 그 능력은 지금도 발휘되고 있었다. 무의식 중에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약간의 호감을 저절로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마성의 능력은 내가 여직껏 가져왔던 능력 중에서 가장 골치아팠고 조절 불가능했던 능력이었기에 그 이상 알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결론은 내 매력이란 거지, 응응.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서 내 방 한쪽 면에 붙은 커다란 창문을 활짝 열었다. 잠금장치가 조금 헷갈렸지만 단순히 외풍을 막기 위해 이중으로 잠겨있을 뿐 여는 것은 쉬웠다. 갑자기 문을 열자 따뜻한 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찬바람이 불어제꼈다. 그리고 바람의 움직임을 타고 바람의 정령 몇 명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집에 바람의 정령이 없었던 이유는 보온을 위해 창을 꽉꽉 닫아 환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아마, 마법 환기 장치였던가 하는 것이 있으니까 겨울에는 창문을 절대 열지 않는댔지. 집 안으로 들어온 정령들은 몇 마리가 나에게 몰려들고 나머지 몇 마리는 수줍은 듯이 약간 거리를 두었지만 근처에서 맴돌아다녔다.

나는 그 중 하나를 집어서 말을 걸었다.

〈저기, 너희들은 바람의 정령이니?〉

나에게 지적당한 반투명한 흰 정령 하나가 고분고분하게 대답했다.

〈네, 저희들의 이름은 ξτ입니다. 여왕님. 인간들은 바람의 하급 정령이라고 불러요.〉

멈춰섰는데도 그 새를 참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모습을 보니 성격이 상당히 급한 모양이었다. 그게 바람의 정령의 통상적인 특징인지, 저 아이만 그런 건지는 몰라도. 분명 그 정령이 말해준 그 언어는, 이름같았는데 뭔가 달랐다. 적어도 카덴 어는 아니었다.

그 미묘한 발음을 따라해 보았다. 마치 바람소리 같기도 하고, 무언가 스치는 소리 같기도 한 발음이었다. ξτ라…….

〈그럼, ξτ. 이 밑에 있는 아이들은 뭐지?〉

〈식물의 정령 φσηι에요. 나무도 있고, 풀도 있고, 종류가 많아요.〉

귀여운 바람의 정령은 손을 이만큼 벌려 보이면서 내게 성심성의껏 답했다.

〈그럼 말이지, φσηι를 한 마리만 이쪽으로 데려와 줄 수 있어?〉

〈네! υσζ님.〉

그 정령은 상큼하게 대답하고 곧장 창 밖으로 날아갔다. υσζ라는 건 정령들 사이에서의 내 이름이나 직위 같은 걸까? 그 ξτ는 아주 자연스럽게 나를 υσζ라고 부르고 있었다. 다른 ξτ들과 φσηι들도 마찬가지였다.

곧이어 ξτ가 창문 앞으로 나와서 속삭이듯 말했다.

〈여기 있는 φσηι들은요, 다들 급이 낮아서 꽃이 피기 전에는 본체에서 멀리 떨어질 수가 없어요. 식물 본체를 여기로 가져오거나 아니면…….〉

쿵.

갑자기 나에게 말하던 바람의 정령이 헉 하며 멈칫했다. 나는 살그머니 귀를 기울였다. 무슨 일 있나? 그 바람의 정령은 순식간에 얼굴을 굳히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누군가 이 근처로 오고 있어요!〉

그냥 누가 오고 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그가 너무 불안해했기 때문에 나는 그 정령에게 이제 그만 돌아가도 좋다고 명령했다. 아무래도 사람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왠지 기분 탓인줄만 알았는데, 밖에서도 사람이 많은 곳 근처엔 정령이 가까이 가지 않는 것 같았다. 실내에 정령이 없는 것도 동일한 이유인 걸까. 정령은 사람을 싫어하는 것 같다. 싫어한다는 것 까지는 아니라도 조금 꺼리는 것만은 확실했다.

바람의 정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쌩하니 사라져 버렸다. 창문으로 나갈 줄 알았지만,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시간조차 아까운 것 같았다. 갑자기 사라지는 방법이 뭔지는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과연 그 정령의 말대로 누군가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나는 깜짝 놀라 창문을 허겁지겁 닫았다. 들어온 사람은 세리안이었다. 그는 내 방에 확연히 감도는 너무나 찬 공기를 느끼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왜 창문을 열었던 거지?"

흠칫.

거짓 웃음을 짓는 세리안은 많이 보았지만, 인상을 찌푸리는 세리안의 그 표정은 처음으로 본 거라 반사적으로 흠칫거렸던 나는 방금 한 행동을 후회했다. 아, 이거 정말 수상해 보이잖아? 바깥의 누군가와 내통하고 있다가 딱 걸린 모습이잖아.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환하게 웃었다.

"오, 오빠 왔어? 웬일이야?"

그는 뭔가 찔려하는 듯한 내 모습을 보고, 짙은 핏빛의 미소를 띄웠다.

"아아, 그래. 물어볼 것이 조금 있어서 말이지."

왜 갑자기 또 웃어! 그 웃음은 방금 찌푸렸던 세리안의 표정보다 훨씬 더 무서웠기 때문에 나는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쳤다.

겁을 집어먹은 나와 반대로 세리안은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단단한 원목으로 만들어진 방문을 닫았다. 출구 봉쇄? 갑자기 무슨……!

"잠시 이리 가까이 와 보지 않을래? 세이시아."

명령조로 그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지금의 그 말투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서야 안 것이지만 그는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코트, 라고 해야 할 것이다. 붉은 벨벳 천으로 만들어진 고급스러운 코트는 금장 장식과 가느다란 사슬이 달려 있었다. 저 옷, 알고있다. 분명 내 방의 창문에서 멀리 내다보이는 손님용 정원에 가끔 지나다니던 남자들이 그것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색깔은 짙은 청색으로 세리안의 옷과는 달랐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나 디자인은 비슷한, 네리아의 말로는 우리 가문의 기사들이라고 한다. 그 옷은 기사제복이고 귀족들의 예복과는 조금 다르게 생겨서 확실히 기억해 둘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눈은 아까부터 그 붉은 기사제복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허리춤의 검에 붙박혀 있었다. 왜 검을 차고 내 방에 들어온 거지? 설마 설마 설마 정말로 날 죽이려는 건가?

침을 꿀꺽 삼켰다. 문득 뒷걸음질치다가 벽이 아닌 무언가에 부딪쳤다. 커다란 전신거울이었다. 그 거울에도 세리안과 내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거울에 비친 세이시아의 얼굴은 이 와중에도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워 보였다. 세리안은 부드럽게 설명하듯이 내게 말했다.

"그런데 말이지. 세이시아는, 은빛 머리에 창백한 피부와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거든. 그 탓인지 언제나 차가운 표정만을 짓고 있는 모습밖에 볼 수 없었지."

마법 치료의 부작용으로 유전자 배열이 교체되어 외형이 바뀔 확률은 정말로 낮아, 라며 그가 속삭인다.

마치 추억 속에 깃든 동생을 묘사하는 듯한 세리안의 말과 반대로 거울 속의 발그스름한 머리칼을 가진 소녀는 생기있는 뺨을 하고서 당황스러움이 분명히 드러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방의 거울은 8개. 그 여덟 개의 거울은 넓은 방의 거의 모든 부분을 비출 수 있다. 당연히 나와 세리안의 행동반경도 전부 거울에 비치고 있었다. 사방에 널린 거울들은 세이시아의 예절 선생이 권유한 거였다고 한다. 언제나 거울을 가까이 하며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라고. 세이시아도 말이지, 그걸 실천한답시고 거울을 쫙 깔아놓다시피 했으니 어지간히 자기관리가 철저한 여자였던 모양이다.

그런 세이시아와 같은 피를 타고난 냉정한 관찰자인 세리안, 그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마치 나를 비웃듯이.

"그녀는 결벽증에, 남과 접촉하는 걸 정말 싫어하지. 특히 그 중에서도 나를 엄청나게 싫어해서 '오빠'라는 호칭따윈 입에 올리지도 않았어."

이런.

그는 나를 분명히 의심하고 있었다. 기억상실이란 건 처음부터 믿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나는 망했다는 표정으로 그가 검을 빼드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 머릿속에서 세리안을 오빠라고 부르며 그가 내민 손을 거리낌없이 잡았던 것과, 그가 쓰던 포크를 빨았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헐. 난 무슨 짓을 한 거지. 세이시아의 그런 성격이라면 사람을 대하는 면에서도 까탈스럽다는 걸 진작에 눈치챘어야 했는데 너무 정신 놓고 사느라 그만 실수해버렸다.

"그리고 해물 요리를 가장 좋아하고 채식은 그다지 즐기지 않는 식성이었지. 어릴 땐 유모에게 편식하지 말라는 잔소리까지 들을 정도였거든."

나랑 정반대잖아, 그건. 하필이면 이런 여자 몸에 들어와서는 얼마 살지 못하고 죽어야 하다니, 좀 억울했다. 세리안은 이미 자포자기한 날 보고서도 자기 할 말은 끝까지 했다.

"물론 고고하고 냉정하신 그 여자는 곤충따위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어. 오히려 거미나 바퀴벌레같은 게 보이면 손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집어서 치웠는데."

안대! ㄱ, 거, 거미, 라고 말하지 마, 무섭잖아!! '바'로 시작하는 그 까만 벌레 얘긴 꺼내지도 말아줘!

"그리고 결정적으로……."

세리안은 긴 다리에 걸맞게 큰 보폭으로 걸어 내 옆자리를 스쳐지나갔다. 그곳은 내가 아까까지 바람의 정령과 대화하던 창문 앞이었다. 그곳에서 빙글 돌아 벽에 붙어있는 나에게 선언했다.

"세이시아는 정령을 다루지 못해. 방에 정령의 기운이 남아있을 이유는 전혀 없지."

그, 정령의 기운이라는 거, 그냥 바람의 정령을 잠시 불러 얘기만 해도 남아있게 되는 건가? 어쨌든 방금 그걸로 세리안에게 결정적인 의심을 불러일으켰으니 이젠 끝장이다. 지금까지 살아남으려고 한 행동들이 죄다 무덤 판 짓이었잖아?

"세이시아. ……아니, 이제 이렇게 불러서는 안 되겠지."

얼음장같이 차가운 목소리에 몸 속까지 파르르 떨리는 것 같았다. 세리안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름돋게 낮고 묵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넌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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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 넌 햄복칼수업서. 시아 위기일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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