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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여왕-5화 (5/226)

<-- 1. 곤충은 아니라서 다행인듯. -->

나와 세리안의 관계에 대해 가장 노심초사하던 분은 이 저택에서 단연 아버지와 어머니였다. 두 분은 다짜고짜 내 방으로 찾아들어온 세리안을 보고 내가 열받아 날뛰며 또 소란을 피우지 않았으려나 걱정하셨다고 한다.

그때 옆에 있던 시녀에게서 뒤늦게 나와 세리안 사이의 대화를 전해듣고 아버지는 당황해하셨다. 하지만 의외로 일은 잘 풀렸고, 기억을 잃게 된 나와 세리안은 조금 늦었지만 남매로서의 친분을 쌓아가는 듯 했다.

……과연 그럴까?

삼일째 되는 날이자 오빠인 세리안을 만난 다음날, 나는 한가로이 침상에 누워 제국백과라는 엄청나게 두꺼운 책을 느긋하게 읽고 있었다.

내가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어제 일이었다. 처음 보는 언어와 처음 듣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은 첫날부터 쭉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이지만, 이게 바로 그 남자가 말했던 정령왕의 능력이려니 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 세계의 글까지 쉽게 읽을 수 있게 되다니. 혹시 이건 세이시아의 육체에 남아있던 기본적인 잔존 지식이 아닐까 추측만 할 뿐이다. 어쨌거나 나는 카덴어(語)라고 하는 카덴 대륙의 공통언어를 습득하고 있었고, 그 언어로 씌여진 대부분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독서를 하면 기억을 되찾는 데 조금쯤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아버지께서도 권한 일이었다.

이 책에는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곳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이 세계의 이름은 '카덴'이었다. 카덴은 대지와 바다, 그리고 하늘로 구분한다. '대지'란 물론 내가 살고 있는 넓고 넓은 이 카덴 대륙을 말하는 것이다. 동쪽과 남쪽에 두 개의 대륙이 더 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긴 하지만 잘 알려져 있지도 않고 교류도 없었기 때문에 이 커다란 중간대륙의 이름에 '세계' 그 자체를 의미하는 카덴이라는 칭호를 붙인 것이다.

카덴 대륙에는 여러 나라가 있다. 대륙 북부에서 가장 큰 나라는 바로 내가 있는 하르아이나 제국. 유일한 제국 칭호를 사용하고 있는 거대 국가였다.

하르아이나는 현재 여제의 통치하에 한창 전성기를 맞고 있는 나라였다. 대륙의 실세라고 불리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인 하르아이나 제국은 드래곤-드래곤이 실제로 있어서 그런 건지 상징적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의 축복을 받아 건국되었으며, 2대째인 레이나 여제는 더도 없는 성군이라 일컬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카덴 최고의 검사인 대공마저 이 국가에 충성을 바치고 있다고 들었다.

그 밖에 기본적인 사실에 대한 매우 간단한 요약정리가 책 속에 쓰여 있었는데, 지구로 따지자면 다윈 진화론이나 구약성서 정도라고 할까. 그런 당연한 내용까지 적혀있는 상식 대 백과이니 당연히 두꺼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1/4정도 읽었을 때 어제 세리안과의 대화에서 느꼈던 이상한 의문점을 해결할 수 있었다.

설마했지만, 정말로 내가 사는 하르아이나 제국이라는 나라는 남녀평등제도가 실시되고 있는 국가로서, 성별에 상관없이 작위와 계승권이 공정하게 주어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틀림없이 여기가 중세시대쯤의 나라일거라고 생각했지만 이곳은 완전한 별개의 세계였다. 그래서 나에게도, 세리안에게도 똑같은 작위 계승권이 있는 것이다. 물론 나보다 여섯 살이나 많으니 경험과 나이 면에서는 세리안이 조금 더 유리하겠지만, 동생임에도 작위를 물려받기 위한 세이시아의 노력도 만만찮았던 것 같다.

대륙 내에서만 따지자면 완전한 남녀 평등의 국가는 오직 내가 있는 이 하르아이나 제국뿐이라고 볼 수 있었다. 다른 나라들은 차별이 매우 심하거나, 은근한 차별이 존재하거나, 나름대로 대륙의 실세인 하르아이나 제국의 유행을 따른답시고 성차별을 철폐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공공연히 차별이 발생하거나 하는 실정이었다. 하르아이나도 전대 황제때까지는 다른 국가들과 비슷했다고 하니, 성차별을 없애고 노예를 폐지하며 국가를 발전시키는 데는 지금의 여황제가 상당한 공헌을 했던 것 같다.

어쨌거나 세리안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면, 세리안은 나를 여전히 싫어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아침부터 이렇게 한 시간에 한번씩 찾아와서 자는 얼굴을 보고 가거나, 죽을 떠먹여주겠다고 난리치거나, 나한테 그림동화를 읽어주겠다면서 떼를 쓰지는 않을 것 아닌가.

게다가 그것 뿐이라면 모를까. 거기에서 참아준다면 사이가 나빴던 남매가 여동생의 기억상실을 계기로 친해졌으며, 오빠가 지극정성으로 다친 동생을 챙겨준다-는 감동적인 스토리가 성립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인간은 그렇게 친근하게 굴다가도 급 떠보는 것처럼 묘한 말을 잡고늘어지거나 갑자기 냉랭한 시선으로 나에게 의미 모를 말을 속삭이거나 하는 것이다.

진정한 포커페이스는 무표정이 아니고 어떤 상황에서도 웃는 얼굴이라더라.

남 앞에서 웃기만 하는 이중인격자를 눈앞에 두고 있는 기분이 어떤지 아는가? 그리고 그 악마같은 이중인격자가 매일 자기 옆에 붙어 있는 기분은 또 어떤지 알고 있는가? 정말 스트레스를 받다 못해 본성격 나올 것 같았다. 날 싫어하는 건지 좋아하는 건지 확실히 하라고. 대체 무슨 속셈이야!?

"시아~, 오빠가 자장가 불러 줄까?"

꽃이 피어나는 듯한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세리안이 노크도 없이 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아침에 그가 어설프게 떠먹여주는 죽을 반 그릇이나 흘리면서 먹고, 낮잠 자기 전 동화책 읽어주겠다는 세리안을 피곤하다는 핑계로 내쫓은 후 드디어 독서를 할 틈이 생겼나 했더니 그 평화는 채 두어 시간을 못 가서 깨져버렸다. 나는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고 책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내 직속 시녀를 부르는 탁자 위의 금빛 벨 버튼으로 손을 가져갔다. 네리아, 얘좀 데리고 나가! 젭라ㅏㅏㅏ!!! 그녀는 의외로 똑부러지는 면이 있고 영리했기 때문에 오전에 아버지 핑계를 대며 세리안을 내보내준 것도 그녀였다. 하지만 미처 호출벨을 누르기도 전에 나는 그의 팔로 인해 제지당했다.

"이런, 네 시녀를 부르려는 건가? 이제 좀 컸다구 세대차이 나는 오라버니와는 얘기도 하기 싫다 이거야?"

그는 다정하게 날 감싸는 척 하면서 침대 위에 걸터앉아 나를 은근슬쩍 껴안았다. 물론 벨을 누르려는 손을 꽉 쥐고서. 우리 이러지 말자구. 생긋 웃으며 짐짓 아쉽다는 듯이 말했지만 나는 그 속에 담긴 뜻을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부르면 죽어.

"……ㄷㄷ."

"그럼 네가 흥미있어하는 화제는 어떨까, 예를 들면 공작위 얘기라던가……, 그런 건 어때? 좋아하지?"

거기서 공작위가 왜 나와!! 게다가 당신, 그 말 할때 눈이 번뜩거렸다구. 확실히 그건 날 떠보는 거야. 내가 이젠 공작위 따윈 관심없다고 분명 말했는데도!

정말이지 호롤롤한 일이었다. 차라리 자기 앞길에 방해된다며 날 제거할 생각이면 그냥 지금 죽이던가. 그럼 난 곤충이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 상황에선 곤충보다 세리안이 더 무서웠다. ……아니, 아직은 곤충이 약간 더 무섭다.

그가 거의 날 안듯이 팔을 휘감자 나는 움찔하며 침대 바깥쪽으로 슬슬 기어나갔다. 아무래도 조만간 이 저택에서 탈출을 꾀해야겠다. 비록 가출한 귀족가의 영애로서 비루한 삶을 살아갈지언정 곤충으로 살아가는 것보다야 낫겠지.

그런 나에게 세리안은 덥석 몸을 앞으로 숙여 내 허리를 껴안았다. 잠옷 한 장을 사이에 두고 갑작스런 친근한 접촉으로 인해 굳어버린 나에게 그는 묘한 말을 속삭였다.

"이상하네……."

엑!? 뭐, 뭐가 이상한데? 찔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당황할수밖에 없었다.

"……달라."

"ㅁ뭐, 뭐가?"

설마 이 녀석이 내가 세이시아가 아니란 걸 눈치챘을리는 없겠지? 그, 그래! 누가 뭐래도 지금의 나는 세이시아인걸. 보통 사람이 알아낼 리가 없어.

세리안은 고개를 그대로 안고 있던 나의 목덜미에 깊숙히 파묻었다. 그리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의 코와 입술이 목에 닿았다. 생각보다 부드러운 감촉에 미처 빠른 상황판단을 못했지만, 따뜻한 느낌이 직접 목덜미에 와닿은 것을 느끼고 나는 경악했다. 갑자기 무슨 짓이야! 좋은 냄새가 날 리 만무하잖아, 내 기억으론 나는 거의 사흘간 씻질 못한 걸로 알고 있었다. 다친 사람을, 그것도 낙마로 인해 머리에 중상을 입은 사람은 어떻게 물에 넣고 씻긴단 말인가! 물론 중간에 물에 적신 수건으로 닦거나 한 것은 제외하고.

하지만 나른하게 말하는 세리안의 발언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처음 맡아보는 체향인데……, 인간의 것이 아니군."

힉.

"꽃 향기라. 분명 '세이시아'는 향수를 매우 싫어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별명은 향기 없는 얼음꽃, 프리셀이었어."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향수라니, 난 모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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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댓글에서 강력한 공감을 말씀해주신 분들이 많았는데, 사실 이 소설은 제가 역하렘이 보고싶어서 조아라를 뒤지다가 없어서(;ㅅ;) 직접 쓴 소설입니다.

흑흑.

역하렘 키워드로 검색해서 겨우 '진짜' 역하렘을 한 작품 찾았는데 그나마도 연중이신듯 하고ㅜ

연재주기는 당분간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일듯합니다. 요새 워낙 바빠서요ㅜ 하지만 어느정도 이야기가 궤도에 들면 조금 빨라질지도 모름. 본격적인 스토리 진입하면 제가 미리 설정해놓은 것도 있고 써놓은것도 조금 있어서 잘하면 격일연재 가능할지도?

랄까 왜냐하면 이거 초반부분이 상당히 어렵거든요ㄷㄷ. 역하렘이라니. 완전 제가 조아라의 전설을 새로 하나 창조하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댓글로 감상이나 글의 어색한 점 등등을 말씀해주신다면 엄청난 도움이 될꺼에요! 정말 진짜로!! 제가 웬만한 다른 소설 쓸때도 댓글구걸은 엄청 많이 하지만(응?), 이 소설은 정말 댓글감상이 절실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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