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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여기사에게 구원받았다 (110)화 (110/154)

110.

김이 새고 뻔뻔한 대답이었으나 또 새삼 그 모습조차 귀엽게 보여서 플로라는 입술만 벙긋거렸다. 머릿속으로는 그의 칭찬이 줄줄이 흘러나왔지만 막상 입 밖으로는 나오질 않았다. 그녀가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눈만 굴리자, 시몬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재촉했다.

“얼른 더 말해 봐. 귀여운 것 말고는 없어?”

“……음.”

할 말이라면 많기야 했다. 칭찬을 듣고 싶은 것일까. 뻔뻔하게 되묻는 말에 농담을 해 주고 싶기도 했지만, 듣고 싶다면 진지하게 말해 줄 의향도 있었다.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고민하듯 위로 천천히 눈을 굴리던 플로라가 입을 열었다.

“시몬은 알고 계실지 모르겠으나, 제국에서는 폐하를 아름답다고 표현합니다. 제가 처음 시몬을 만났을 때도 그렇게 느꼈어요. 주홍색 눈동자도 구슬처럼 영롱하고, 속눈썹도 길어서 눈을 깜빡거릴 때마다 요정의 날갯짓을 보는 것 같습니다.”

입이 트인 사람처럼 그녀의 말에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일부러 끼워 맞추려는 말들이 아니었기에 술술 새어 나왔다. 생각보다 부끄럽거나 낯간지럽지도 않았다. 그녀가 말하는 건 하나같이 모두 진실이었으니까.

“피부도 매끄럽고, 코도 오뚝하고 입술도 붉어 항상 볼 때마다 감탄하게 돼요. 또 어떤 색상의 옷이든 다 잘 어울리시고, 머리스타일 또한 끝내주게 잘 소화하시고, 음, 강단도 있으시고 지혜로우시며 또 한편으로는 다정한 면도…….”

“……플로라. 그만.”

결국 시몬이 다급하게 그녀를 붙들며 말했다. 이런 칭찬을 한두 번 들어본 것은 아니지만, 플로라의 입을 통해 직접 전해 들으니 괜히 부끄러워졌다. 그녀를 골리기 위해 시작한 말이었으나 되려 당한 것 같다.

“그만하면 됐다.”

플로라는 고분고분 침묵했다. 그러자 곧 시몬이 슬쩍 눈을 돌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플로라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진 걸 보고 나서야, 역시 자신이 당했다는 생각에 더 힘이 실렸다.

“더 할 수 있습니다. 농담으로 한 말 아니고 진심이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나도 읊어 주고 싶구나.”

“…….”

“네가 얼마나 예쁜 사람인지.”

시몬이 애정이 담긴 눈빛으로 플로라를 바라보았다. 플로라는 문득 낯간지러운 말들을 쏟아내는 것보다 그 눈빛을 받는 게 더 수줍다고 생각했다.

“……그건 나, 나중에 듣겠습니다.”

“그러자. 밤을 새워도 모자랄 테니, 건국제가 끝나면 해야겠어.”

놀리는 말인지 진심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석양을 품은 눈동자가 뜨거웠기에 그렇겠거니 생각할 뿐이었다. 플로라가 더 눈을 맞추지 못하고 먼저 시선을 내리깔았다.

“이만 주무실 시간입니다.”

그녀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시몬이 플로라의 손등에 입을 짧게 맞추곤 창밖을 향해 눈을 돌렸다.

“그래야지.”

붉게 물들던 하늘은 어느새 어둑해져 있다. 그녀와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는 내일도 오늘처럼 고단한 하루를 보낼 예정이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귀빈들을 대접할 준비를 하고, 밀린 정무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솔직히 시몬은 왜 타국의 사람들까지 초청해서 성대하게 건국제를 열고 사치를 부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해할 수 없는 문화 중 하나였다. 피곤하고, 번거로운 일 투성이니까. 물론 자랑스러운 자신의 제국의 건국을 함께 축하해 주는 건 마땅히 고마워해야 할 일이었고, 전통처럼 이어지고 있는 문화였기에 아직은 바꿀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시몬이 보기에 제국에는 개혁해야 할 일이 많았고, 그렇기에 이리 매해 여는 가장 성대한 제국의 축제 정도는 잠시 보류할 의향이 있었다.

“이 시간에는 늘 잠이 오지 않아 고생이었는데.”

“…….”

“사람을 많이 만나고 다니다 보니 금방 지치는구나.”

귀족들의 눈을 피해 숨어 지내고, 방탕한 척 연기를 하며 살아 왔던 세월이 있다. 시몬은 밤에 움직이고 낮에 자는 생활을 꽤 오랫동안 해 왔고, 이제는 그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우려 가득한 첨언 겸 잔소리를 듣고 몇 번 바꾸려고 시도는 해 봤으나 한 번 몸에 깃든 습관을 쉬이 바꿀 수 있을 리 없었다.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더 피곤하게 느껴지는 몸이 되어 버렸다.

“네가 옆에 있어서 마음도 편안해.”

살짝 풀린 그의 눈빛은 뇌쇄적이었다. 밤이 주는 오묘한 분위기가 그를 더 매혹적으로 보이게 했다. 플로라는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야 했다.

“주무실 준비를 시키겠습니다.”

시몬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플로라는 복도에 대기하고 있는 시종장에게 폐하께서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라 일렀다. 그는 시종들의 움직임에 따라 익숙하게 움직였다. 플로라는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방을 지켰다.

방 안에 아무도 없음에도, 숨어 있는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곧 시몬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불편해 보였던 제복을 벗고, 금수가 놓인 짙푸른 색 가운이 한눈에 들어왔다. 살짝 젖어 흐트러져 반 정도는 말려 올라간 머리칼은 공들여 건드린 것처럼 보였다.

플로라는 아까와 다르게 심장이 더 격렬하게 뛰는 것을 느끼며 겨우 뜨거운 시선을 피했다. 순간 아주 작게 바람 빠지듯 웃는 소리가 들려왔던 것도 같다.

그는 잘생겼고, 섹시하고, 귀엽고, 아름답고, 다정하며 따뜻하다. 어떤 수식어를 그의 앞에 가져다 붙여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터벅터벅. 침대에 걸터앉은 시몬이 탁상 옆에 준비된 물을 마시고, 시종들을 내보냈다. 방 안에 둘이 남자 또다시 숨이 턱 막혀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리 와. 플로라.”

이번만큼은 그가 자신을 부르지 않길 바랐으나 그는 이제 습관이 된 것처럼 플로라를 불렀다. 플로라는 그의 말을 거절할 수가 없다. 곁으로 쭈뼛거리며 다가가자 시몬이 자신을 높이 올려다보며 눈을 반짝였다. 그에게서 풍기는 내음이 한층 더 짙어진 것 같았다.

“피곤할 텐데 플로라도 옆방 가서 쉬도록 해.”

“……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에 플로라는 그저 눈을 둥글게 떴다.

“널 옆에 세워두고 내가 편하게 잘 리가 없잖아.”

시몬의 마음도 플로라와 마찬가지였다. 그녀와 한 공간에 있는 것은 좋기도 하지만, 그에게는 많은 인내심을 요했다.

자신을 지키는 것이 그녀의 일이다. 그녀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그리 생각하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를 보면 공사 구분을 하지 못하는 천치가 되어 버리니까.

“너도 이만 돌아가서 쉬어.”

“하지만 오늘은 제가…….”

“에르네도 자는 시간에는 내 곁을 지키지 않아.”

“지금은 위험합니다.”

플로라는 고집을 부렸다. 건국제로 인해 일이 더 많아진 에르네 대장을 다시 이곳으로 부르더라도 그를 혼자 두고 갈 수는 없었다. 플로라의 눈빛에 고집이 감도는 것을 느낀 시몬이 머리를 쓸어 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숨을 쉬며 살짝 눈가를 파르르 떠는 것마저도 너무나 아름다워서, 마음에 오래 기억할 만한 장면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버린다.

“그럼 같이 자.”

“……시몬.”

“그게 좋겠어.”

시몬이 침대에 자리를 잡고 누워 자신의 옆 빈 공간을 툭툭 쳤다. 순간 플로라는 사고회로가 멈춰버리는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못 이기는 척 눕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그렇게까지 대범하지는 못했다.

플로라의 머릿속에는 온갖 사념들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원래 이렇게 소심했던가. 아니, 원래 이리 소심한 편은 아니었는데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이를 마음에 품다 보니 모든 욕구를 억누르는 것에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플로라가 가만 눈을 깜빡이고만 있자, 그가 생긋 웃었다.

“너그럽게 선택지를 두 개나 주었는데.”

돌아가서 자든, 자신의 옆에서 자든.

플로라는 잠시 고민했으나, 생각보다 결론은 쉽게 났다. 살짝 떨어진 거리에서도 그에게선 좋은 향이 났다. 하지만 플로라는 나무를 타고 흙더미에 구르다가 씻을 틈도 없이 이곳으로 근무를 왔다. 그의 옆에 누울 수는 없었다. 절대로.

이성을 단단히 붙잡은 플로라가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을 골리려 하는 얼굴이라, 되려 그를 놀려 주고 싶은 마음도 불쑥 들었으나, 역시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는 영역이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옆 방에 있을 것이니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그래? 알았어.”

내심 그의 눈빛에 서운한 기색이 돌기는 했으나 플로라는 시몬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가 고분고분 자리를 잡고 누웠다.

잘한 선택이겠지. 그리 생각하며 플로라는 방 안을 마지막으로 꼼꼼히 점검하고, 또 방을 밝히는 빛을 거의 차단했다. 그제야 나갈 생각이 조금은 생겼다는 듯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플로라.”

“……네? 폐하.”

순간, 잠든 줄 알았던 시몬의 목소리가 나가려는 플로라를 멈춰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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