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이 길들이는 법-6화 (6/7)

6. 폭풍우.

“꺄악! 도, 도와주세요.”

“으억, 사람 살려.”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셀로신이 발을 들인 동굴은 어마어마하게 큰 규모를 자랑했다. 거대한 콜로세움 경기장 두 개는 합쳐놓은 듯한 크기에 돌벽 곳곳에 사람 머리통만 한 구멍이 뻥뻥 뚫려있었다. 그 커다란 동굴 안쪽에서 사람들이 비명이 연이어 들려왔다.

마굴의 상위 부분은 대부분이 고대의 지하 도시였던 듯 돌벽과 거대한 문이 공간을 나누고 있어 사람이 살던 흔적이 남은 모습이었지만 지하 중반부는 완벽한 자연 동굴이었다. 몬스터나 마물이 땅굴을 파고 들어가 제멋대로 만들어놓은 구덩이들은 사람들의 모험심을 자극했다.

그런 곳에 간혹 마법사를 끼고 들어오는 자들이 있었으니. 제 주제를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 귀족가의 자식들이 용병이나 가문의 기사들을 데리고 들어오는 일이 종종 있었다. 아마도 그런 이들일 테지.

“…도와줄 거예요?”

포르틸라가 등 뒤에서 고개를 쭉 내밀며 물었다. 셀로신은 모르겠지만 엘런트 공작으로서의 이미지는 학자 타입이라 그의 진짜 성격을 알아보기 위한 질문이었다.

“우리 신혼여행 중입니다.”

“그래도 위험한 거 같은 목소린데요.”

“…난 그런 거 신경 안 씁니다.”

포르틸라는 그를 가늘게 뜬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그의 마음을 가늠하고 싶었다. 정말 셀로신은 눈 하나 깜짝 않고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괜한 질문이었다 싶다. 마굴의 주인라는 별명이 붙은 게 아니었었다.

‘인간미가 없네, 인간미가. 그런데도 이런 남자가 좋다고 달려드는 여자들은 뭐람.’

그리 속으로 중얼거리던 포르틸라는 피식 웃었다. 이런 남자 좋다고 6년간 짝사랑한 여자가 자신이지 않던가. 익히 알고 있었다. 이 남자가 뻔뻔할 만큼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걸. 포르틸라가 그의 성격을 나름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이난, 당신이 위험해지는 상황은 원치 않아.”

포르틸라는 순간 그의 말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저야말로 움직이지도 못하게 짓궂은 짓은 신나게 해놓고 다정하게 구는 모습에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솔직히 6서클 마법사인 포르틸라를 걱정해 주는 남자는 없을 거라 믿었다. 손짓 한 번에, 영창 두어 번에 왕국의 작은 섬 한두 개는 날려버릴 수 있는 게 그녀가 아니던가. 해서 어릴 적부터 두려운 존재로 그녀는 낙인찍혀 있었다. 권력자들조차 그녀에게 설설 기었다.

그런 저를 위험할까 걱정된다고? 놀리는 건가 아니면 진심인가. 혼란스러웠지만 썩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신혼여행 중이라고 딱 잘라 제게 집중하는 그 모습이 꽤 매력적이라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어느새 아랫도리가 또 젖어 들었다.

“뭐야, 또 하고 싶은 거야?”

셀로신도 그녀의 아랫도리가 젖은 걸 느꼈는지 실실 웃으며 물었다. 그 목소리가 얼마나 능글거리는지 저를 놀리는 게 분명했다.

아프다고 걷지도 못하면서 그를 원하는 제 모습이 심각하게 변태같이 느껴졌다. 그가 알면 얼마나 저를 우습게 볼까 싶었다. 애 취급당하고 싶지 않았다. 21살, 성숙한 여성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가, 가서 도와줘요. 몬스터 한두 마리는 제가 가볍게 처리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의 신혼여행에 크게 방해되진 않을 거예요.”

포르틸라는 바로 몇 분 전의 자신을 죽여버리고 싶었다. 성숙한 여성은 개뿔! 그 무리 중에 ‘소문의 힐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모른 척하고 지나갔을 터인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셀로신은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해줬다. 그것도 아주 완벽히 멋지게 말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사람 중 한 여자가 셀로신에게 와락 안겨들었다.

“흐윽, 셀로신 경. 보고 싶었어요!”

두 사람은 이미 아는 사이였는지, 여자는 매우 야리야리한 몸매에 허리까지 내린 금발 머리를 휘날리며 제 남편에게 엉겨 붙었다. 날카로운 시선이 셀로신의 등에 업혀있던 포르틸라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재빨리 훑어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셀로신에게 쓰러지듯 몸을 기댔다.

“매번 에로이카가 어려움에 빠지면 이렇게 나타나 주시는군요.”

“….”

“저는 그런 셀로신 경을 너무나 사랑한답니다.”

여자는 물기 어린 목소리로 셀로신의 가슴팍에 고개를 파묻으며 녹을 듯한 몸짓으로 고백을 했다. 그녀의 고백에 포르틸라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역시 서로 사랑했던 사이라 그런 건가. 저리 당당히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수 있다니.

에로이카는 포르틸라를 바라보며 빙긋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셀로신의 상처를 바라보곤 세상이 멸망할 듯 굴었다.

“아아, 상처가! 에로이카 때문에 다치시다니…. 다친 곳은 제가 고쳐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순식간에 영창을 시도하더니 셀로신의 몸에 손을 댔다. 환한 빛이 뿜어지자 자잘하게 상처가 난 몸이 순식간에 치유가 되었다.

그 순간 포르틸라는 완벽히 깨달았다. 이 여자가 누구인지. 그 ‘소문의 힐러’였다.

힐러 에로이카,

그녀는 꽤나 높은 신성력을 가지고 수많은 이들의 찬양을 받는 사제였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순수해 보이는 외모. 파란 눈동자에 금발의 나풀거리는 긴 웨이브 진 머리칼. 그야말로 벽화에서나 볼만한 천사가 아닌가 싶은 외모에 여리여리한 몸매까지. 성녀의 표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녀가 마굴에 나타났다 하면 제1 순위로 모든 이들이 그녀와 파티를 맺길 원했다. 많은 모험가가 에로이카와 함께라면 몇 층이든 단 한 명의 부상도 없이 다녀올 수 있다며 단언했다. 그렇게 수많은 남자가 그녀를 여신처럼 모셔댔다.

하지만 그녀가 특별히 여기는 남자는 따로 있었으니, 바로 셀로신이었다. 마굴의 주인이자 마굴의 사냥꾼인 남자. 에로이카는 늘 셀로신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소문이 빠른 마굴에서는 두 사람이 꽤 잘 어울리는 ‘연인’ 사이로 소문이 났었다.

그 소문은 거짓이 아닌 듯 에로이카는 셀로신을 무척이나 사랑했고 셀로신과 파티를 맺고 싶어 했다. 그러나 셀로신은 좀처럼 제 곁에 사람을 두려 하지 않았다. 그건 에로이카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랬던 남자가 파트너를 데리고 마굴에 등장했단다.

에로이카는 궁금해서 죽을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이 그의 파트너 자리를 차지했는지 말이다. 그녀는 셀로신을 만나기 위해 마법사를 고용했고 그렇게 마굴을 헤매고 다닌 지 일주일째, 슬슬 짜증이 날 때쯤 드디어 그를 만난 것이었다.

에로이카는 최대한 안타까운 모습으로 그에게 안겨들었다.

“에로이카를 도우러 와주실 줄 알았어요.”

그녀는 최대한 몸을 붙이며 그의 품에 몸을 던졌다.

셀로신은 그녀의 행동을 몹시 불편해했다. 에로이카는 셀로신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는 듯 연신 친한 척을 했다. 셀로신을 바라보는 에로이카의 눈빛은 꿀이 뚝뚝 떨어졌다. 그녀는 자연스레 셀로신의 팔뚝을 쓸어내렸고 가슴팍에 얼굴을 묻어왔다.

포르틸라는 그 모습에 입술을 깨물었다. 두 사람의 소문은 제가 어릴 적부터 들어왔었다. ‘마굴의 주인과 성녀’, ‘미녀와 야수’ 수도 없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넘쳐났었다. 그 야하기 짝이 없는 소문은 최근 들어서 흘러나왔지만 믿지 못할 것도 없었다. 소문의 주인공이 눈앞에 존재하지 않았던가. 역시 15살 마굴에 들어갔을 때 역시 두 사람은 연인 사이였을지도 몰랐다.

에로이카는 연신 등 뒤에 업혀있던 포르틸라를 바라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저건 먼저 가진 여자의 여유인 것일까? 그녀는 무척이나 성숙해 보이고 아름다웠다. 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자신만만한 행동에 포르틸라는 자꾸만 마음이 조급해져만 갔다.

“셀로신, 등 뒤에 여성분은 누구죠?”

그녀는 본격적으로 포르틸라의 신상에 대해 캐묻기 시작했다. 포르틸라는 기대의 눈빛으로 셀로신의 대답을 기다렸다. 부인이라고 말해 주길 원했다. 이 여자가 자신이 선택한 여자라고 말이다. 그러나.

“….”

셀로신은 입을 꾹 다물고 시선을 피했다. 포르틸라는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아아, 아직은 부인이라고 말하기 힘든 걸까? 포르틸라는 가슴이 욱신거렸다. 워낙 사제와 셀로신의 소문이 대단해서 마치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 제가 끼어든 것만 같았다. 포르틸라는 눈물이 나려 했다.

“흐응?”

에로이카가 콧소리를 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녀는 무언가 즐거운지 소곤거렸다.

“에로이카가 아닌 다른 아가씨를 파트너로 선택했군요. 오밀조밀 조그마한 게… 꽤 귀여운 분이시군요.”

키가 꽤 크고 날씬한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포르틸라를 쓰다듬었다. 포르틸라는 순간 그녀의 손길이 불쾌해서 죽을 것 같았다. 우위에 선 여성의 손짓은 마치 어린아이를 다루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녀의 손을 쳐내고 싶은 충동에 몸이 떨렸다.

셀로신이 포르틸라를 쓸어내리는 에로이카의 손목을 잡아챘다.

“그만하십시오.”

그의 목소리가 과히 좋지 않았다. 과거의 연인에게 하는 행동은 무척이나 거칠었다. 두 사람의 사이는 익히 알고 있었는데 계약상의 부인 앞에 보이기 싫었던 걸까. 아니면 둘 사이에 남은 들키기 싫은 무언가가 더 있던 것일까. 포르틸라는 셀로신의 행동에 속이 답답해져 갔다.

그때였다. 에로이카와 같은 파티를 이루고 있던 사내 중 한 사람이 그 모습을 보더니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 사내는 에로이카를 짝사랑하던 남자였다. 몇 번이나 그녀에게 고백 후 차였던 남자는 에로이카가 셀로신을 향해 애정을 과시하자 폭발한 것이었다. 보답받지 못한 사랑은 악의가 되어 곧 셀로신에게 향했다.

“그녀는 나의 파트너야! 갑자기 나타난 당신이 데려가는 건 안 돼!”

그는 가슴팍에서 구슬을 하나 꺼내더니 바닥에 던졌다. 순간 팍하고 구슬이 깨지자 바닥에서 보글보글 거품이 끓어올랐다. 거품에선 묘한 향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곧 달콤한 향은 동굴 안을 가득 채웠다. 순간 동굴 안에 있던 남자들의 눈이 번뜩이며 안개가 스며들었다.

셀로신은 재빨리 입과 코를 막으며 미간을 찡그렸다.

미친놈들! 남자가 터트린 구슬은 터마이터의 알이었다. 아마도 암컷의 알이었나 보다.

터마이터는 마굴의 괴물 중 하나였다. 그것들은 암컷이 무척이나 귀한 종으로 수컷들은 암컷의 알을 보호하기 위해 애를 썼다. 또한, 암컷들은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해 진화했는데, 오랜 기간 마굴에 적응하여 사냥하러 들어오는 인간들을 영양분으로 사용하는 법을 터득했다.

터마이터의 암컷은 지독한 페로몬을 뿜어댔다. 그걸 맡은 수컷들은 환락에 빠져 정액을 내뿜다 스스로 암컷의 먹이가 되었다.

여성이 맡게 되면 원초적 본능을 일깨우는 고약한 미약이었다.

사내는 이판사판이었다. 셀로신만을 바라보는 에로이카조차 거들떠보지 않는 남자는 전투 중에도 제 여자를 등 뒤에서 내려놓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 여유 있는 꼴을 보니 마음에 무척이나 거슬렸다.

뭔데, 몬스터들과 싸우면서도 여자를 업고 있을 수 있지? 그렇게 한시도 놓지 못할 만큼 사랑스럽단 말인가!

“큭큭, 어디까지 네놈의 사랑이 무너지는 꼴을 보자고!”

사내의 고약한 심보는 모두 다 파멸로 가자는 것과 같았다. 지독한 안개에 중독된 이들이 괴로움에 비명을 질렀다.

“으으윽! 크으으!”

에로이카의 동료였던 사내들이 하나둘 착란 상태에 빠져 몸부림을 쳤다.

그들은 거품을 물고 눈이 뒤집혀 포르틸라와 에로이카에게 다가왔다. 그 모습이 가히 짐승과 같았다. 눈이 반쯤 뒤집힌 사내들이 하나같이 아랫도리를 세우며 다가섰다. 남자들의 손이 하나둘 여자들의 몸을 더듬고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에로이카는 당황하며 제 몸을 체크했다. 다행히 신성력으로 인해 중독은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독된 이들에겐 소용이 없었다. 결국, 그녀는 셀로신의 팔뚝이 제 생명줄인 양 붙들고 매달렸다.

“셀로신 경, 에로이카를 버리지 않을 거죠? 제발 도와주세요!”

사내들은 두 여자를 차지하고 있는 셀로신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검이 날아와 포르틸라와 에로이카를 감싸고 있던 셀로신의 팔뚝을 내리그었다.

셀로신의 시선은 다급하게 사내들을 바라보다 그 너머 들려오는 소음에 귀를 기울였다. 바닥을 긁는 소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미간을 찡그렸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수십, 수백 마리는 될 듯했다. 분명 화가 난 거대 곤충의 발소리였다.

그극 그극― 사사삭―. 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암컷의 알이 깨지자 터마이터들이 화가 난 게 분명했다.

그는 울컥울컥 짜증이 밀려왔다.

신혼여행이 이렇게 엉망이 될 줄이야. 게다가 몰려오는 괴물들의 소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게 검을 휘두르는 이 등신 같은 무리도 그의 짜증을 키우는데 한몫했다.

그때 셀로신의 등에 닿는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 포르틸라. 그녀의 체온이 평소와는 달랐다. 열기가 차오르며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길, 터마이트의 안개에 당한 모양이었다.

셀로신은 재빨리 그녀를 단단히 등에 업었다. 순식간에 포르틸라를 업어 든 그가 동굴의 반대편으로 달리려 하자 에로이카가 덥석 셀로신의 목덜미를 끌어안으며 안겨 왔다. 셀로신은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에로이카 또한 비어있는 손으로 안아 들었다.

“하으…. 아.”

숨을 몰아쉬던 포르틸라는 괴로웠다. 그녀의 눈동자에 에로이카의 육감적인 몸매가 어른거렸다. 가느다란 허리가 그의 팔뚝에 단단히 감겨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포르틸라는 머리가 멍했다. 아무리 커다란 눈을 깜빡여도 눈앞이 흐렸다.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울렁거렸다.

두 사람이 뭐라 말하는 것 같은데 머리가 웅웅거려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런 증상은 생전 처음이었다. 눈앞이 빙빙 돌고 흐릿했다. 몸이 달아오르고 뜨거워지다 못해 숨을 쉴 수가 없어 헐떡거렸다. 아랫도리가 말도 안 되게 점점 간질거렸다.

눈앞에서 셀로신에게 친한 듯 안겨드는 여자를 불태워버리고 셀로신의 시선을 제게 돌리고 싶었다.

“하으… 하악….”

이상해. 정말… 이상해. 감정이 요동을 쳐댔다. 감정이 도저히 조절되질 않았다. 쿵―쿵― 그녀의 몸에서 마력이 파도치듯 쏟아졌다. 그 강력한 웨이브에 반응한 마굴이 함께 울려댔다.

“이난? @[email protected]%#!”

“@#$%#^%$.”

두 사람은 무슨 말을 주고받는 걸까. 눈앞의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뇌에 구멍이 뚫린 기분이었다. 멋들어지게 그려 놓은 그림 위에 고의로 물감을 쏟아버린 느낌이었다. 그 쏟아진 끈적한 물감은 바로 자신인 듯했다. 더러운 기분 나쁜 경험. 모든 상황을 사진 찍듯 기억하는 그녀에겐 너무나 낯선 경험이었다.

셀로신에게 맞닿은 몸은 식은땀으로 푹 젖어버렸다. 오한이 들어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런 거 정말 싫은데….’

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알고 싶었다. 저를 업고 있는 그의 등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셀로신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가 저 여자의 얼굴을 보고 어떤 반응을 하는지 알고 싶었다. 눈꼬리가 올라갔는지 내려갔는지. 반갑게 접혔는지 놀라서 커다랗게 떠졌는지. 입술은 일자로 굳었는지 입꼬리가 올라갔는지. 그 모든 게 궁금했다.

하지만 그녀는 셀로신의 등 뒤에서 제 남자의 잘난 동그란 뒤통수밖에 볼 수 없었다.

“하아…. 저는… 어린아이가 아니에요. …내려…줘요.”

“안 돼!”

그녀가 힘없는 몸을 바스락거리며 땅에 발을 딛는 순간 타이밍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솨솨솨솨― 그그그극―. 동굴을 가득 채우고 있던 구멍들에서 수백 마리의 터마이트들이 쏟아져 머리 위로 떨어졌다.

“젠장! 이난!”

셀로신이 그녀를 와락 끌어안고 제 몸으로 터마이트들을 막았다. 그의 다급한 표정이 포르틸라의 눈동자 안에 가득 들어찬다. 그러나 그의 품엔 에로이카도 함께였다. 어질거리는 정신에도 눈물이 왈칵 올라왔다.

‘….’

역시 이런 위험한 상황에선 사랑하는 진짜 연인을 챙기게 되겠지. 서류상 부인일 뿐인 자신을 챙겨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해야 하나…. 무척이나 입 안이 씁쓸했다. 그녀는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손가락을 튕겼다.

“텔레포트.”

갑자기 눈앞이 번쩍이곤 세상이 뒤집혔다.

* * *

그렇게 모두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처음 보는 공간에 서 있었다. 에로이카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셀로신의 목덜미를 고개를 파묻었다.

“무, 무서웠는데… 에로이카를 구해주셨군요!”

“이제…, 그만하십시오!”

셀로신은 자꾸 제게 엉겨드는 에로이카를 밀어내며 화를 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정말 성격 나쁜 여자다. 무섭게 화를 내는 셀로신의 모습에 에로이카는 깔깔 웃으며 손가락을 입술 위에 올렸다.

“꺄악― 무서워라.”

놀리는 듯한 행동에 셀로신은 이를 으득―하고 갈아붙였다.

“이모님은 언제까지 저를 놀려야 직성이 풀리시는 겁니까. 이런 장난 재미없습니다.”

“어머나, 재미없긴. 너야말로 너무 한 거 아니니? 온 마굴에 네가 여자를 데리고 왔다고 손문이 났더구나. 어쩌겠어, 사랑하는 조카 놈이 보여주지 않으니 스스로 구경하는 수밖에. 그래, 그 아가씨는 어디로 숨겨 버린 거니?”

20대 중반으로만 보였던 그녀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긴 머리칼을 뒤로 넘겼다. 육감적인 몸매가 훤히 드러났다.

“그녀는 구경거리가 아닙니다.”

셀로신이 이를 갈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제 곁에 있어야 할 그녀가 보이질 않았다. 이 고약한 여왕님은 저와 에로이카를 텔레포트 시켜놓고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이난?’

그가 아무리 둘러보아도 포르틸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제길, 이난이 오해를 한 게 분명했다. 그전부터 계속 물어보지 않았던가. 더럽기 짝이 없는 소문의 힐러를 에로이카로 착각한 게 분명하다.

결국, 에로이카와 단둘이 남은 셀로신은 미간을 찡그린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처음 보는 공간. 마굴임은 분명한데 굉장히 커다란 공간이었다. 수년을 마굴을 돌아다니며 몬스터며 괴수들을 사냥했지만 이런 거대한 공간은 정녕 처음이었다.

사각사각― 스스스스―.

어디선가 긁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미간이 점점 구겨져 갔다. 이 공간은 보통의 공간이 아니었다. 잠시 둘러본 바, 동굴 벽면 구멍 곳곳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긁어댄 흔적이 보였다. 게다가 먹다 버린 듯한 살점과 뼈도 굴러다닌다. 그 뼈는 분명 인간을 이루던 뼈의 한 부분이었다.

“꺄아! 위험한 곳이네. 이러면 할 수 없잖아? 이 에로이카와 함께 파트너를 해볼까.”

언제 두려웠냐는 듯 에로이카가 눈을 빛내며 전투 의지를 보이자 셀로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로이카는 어머니의 여동생이었다. 한마디로 자신과 피가 섞인 혈육이란 뜻. 그녀는 어려서부터 신성력이 대단해 성전의 성녀로 들어가 살아왔다. 그런 그녀에게 젊음을 유지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보라, 지금도 40대의 나이가 무색하게 터무니없이 젊어 보이지 않던가.

에로이카는 셀로신이 태어나고 유독 몸이 약했던 그를 어려서부터 무척이나 챙기던 사람이었다. 그 점에 대해선 셀로신 또한 깊이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장난기가 많고 제멋대로 사람을 휘두르는 성격 덕에 셀로신은 철이든 날부터 그녀를 멀리했다.

그걸 익히 알던 에로이카가 입술을 쭉 내밀며 투덜거린다.

“왜? 또 거부하려고? 빨리 벗어나서 네 연인을 찾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조용.”

그녀를 잡아당겨 입을 막아버렸다. 에로이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올려보았다. 셀로신은 시선은 동굴의 거대한 구멍을 너머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에로이카를 뒤로 잡아당겨 안전을 확보하곤 조용히 검을 꺼내 들었다.

이제야 눈치를 챈 에로이카는 셀로신의 후방에서 신성력을 준비했다.

그녀는 흥분했다. 함께 싸우는 건 그가 마음을 열었다는 무언의 행동이나 다름없지 않든가. 제 조카는 차갑기 그지없는 데다 홀로 움직이는 것밖에 모르는 놈이었는데 파트너의 자리를 승낙하다니. 뭔가 셀로신의 마음속에 제대로 자리한 게 분명했다.

에로이카는 곧 신의 방패를 펼치며 웃었다. 곧 두 사람 위로 수천 마리의 터마이트가 쏟아져 내렸다.

* * *

포르틸라는 그 모습을 동굴의 위에 뚫려있는 수많은 구멍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여있었다. 저 여자였나? 셀로신의 잠자리 상대였다고 한 여자가. 여사제라고 했던….

과연 그녀는 여자가 보아도 꽤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금발에 파란 눈동자, 육감적인 몸매에 제 이름을 삼인칭으로 말하는 조금은 이상해 보이는 여자였다. 그녀는 자신과는 다르게 살랑살랑 좋은 냄새를 풍기며 녹아내릴 것 같이 행동했다. 포르틸라와 완전히 다른 타입이었다.

‘셀로신 경을 너무나 사랑한답니다? 나는 …그런 소리 못 해.’

단 한 번도 그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한 적 없었다. 결혼 전에도, 후에도 말이다. 그런데 에로이카라는 여자는 너무도 쉽게 사랑이란 단어를 입에 올렸다. 부럽기도 했고 짜증이 나기도 했다. 제가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의 시간이 분명 있었겠지.

불쾌감은 곧 셀로신에 대한 불신으로 번져갔다.

화가 났다. 이건 기만이었다. 에로이카는 분명 셀로신에 대한 마음을 접지 못했다. 그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애정이 뚝뚝 떨어졌다. 셀로신 또한 미련이 남았는지 그녀를 보호하려 애를 쓰지 않던가. 옛 애인과 깔끔한 정리도 못 한 남자가 얄미웠다.

이럴 거면 결혼은 왜 하자고 한 거지?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 아까부터 이성이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식은땀이 흘렀다. 게다가 눈이 고장이라도 났는지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설마 국왕의 명령이라 억지로 한 것일까. 그렇다면 처음부터 그리 말하지. 흔쾌히 가짜 부부가 되어준다고 했을 텐데. 처음부터 자신은 마정석이 목적이었지 결혼이 목적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마정석만 지원해 준다면야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그래, 상관없어.’

그리 생각하면서도 왜 이리 속이 쓰린 것인지. 스스로 자기 합리화를 하다 보니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 결국, 눈물범벅이 된 그녀는 쓸개라도 핥은 기분이다.

포르틸라는 울컥거리는 마음을 짓누르며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머리가 사람의 머리통 크기만 한 터마이트는 개미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 크기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그는 열심히 에로이카를 보호하며 몸을 움직였다.

바람둥이. 결혼 서약서의 잉크가 마르지도 않았는데…. 그의 단단한 품에 안겼던 게 꿈만 같이 느껴졌다. 저 두툼한 팔뚝으로 터마이트를 부수는 악력이 이제는 자신을 향해 있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에로이카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두 사람은 오랜 연인답게 합이 잘 맞았다. 셀로신이 검을 휘두르고 터마이트를 해치우면 뒤에서 에로이카는 치유의 힘을 쏟아부어 그를 도왔다.

사실 두 사람의 특성은 무척이나 찰떡이었다. 에로이카가 셀로신의 체력 훈련 시절 내내 대련 선생을 자청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던 포르틸라는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속이 상했다.

‘그래서, 나는 왜 어린애 취급했는데? 누가 업어 달라고 했나?’

이글거리는 질투심을 꿀꺽 삼키며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저 여자는 한 명의 파트너로서 등을 맡기고 있었다. 저건 서로의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 않던가.

지독한 두통이 밀려왔다. 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르고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이런 거 정말 싫어. 괴로워. 심장이 아파져서….

포르틸라는 도저히 둘을 계속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자리를 뜨려 했다. 그를 향한 마음이 어찌나 아픈지.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본 그녀는 제 눈을 의심했다.

페로몬에 홀린 모험가 무리가 동굴 뒤에서 튀어나와 에로이카를 서로 차지하려 들었다. 그들은 마지막 발악을 하듯 괴력을 보였다.

그녀는 연신 셀로신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무리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들은 눈앞의 괴수들보다 더 끔찍하게 달려들었다.

포르틸라의 손바닥에 땀이 차올랐다. 얄미웠다.

‘그녀가 없다면 셀로신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을 텐데.’

순간적으로 밀려온 생각에 그녀는 흠칫하고 놀랐다. 고작 사랑에 눈이 멀어 타인을 해하는 상상을 하다니. 스스로에게 소름이 끼쳤다.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사랑에 눈이 멀어 이런 끔찍한 생각을 하게 되다니.

약한 자를 돕는 어른이… 되고 싶어 했으면서.

‘최악이다.’

포르틸라는 식은땀이 나는 등허리를 느끼며 손을 휘저었다. 바람의 칼날이 에로이카와 남자들 사이를 파고들서 그 무리를 갈라냈다.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에로이카가 사라졌다.

에로이카는 놀랐다. 머저리 무리에게 꼼짝없이 당하는 줄 알았건만. 생각지도 못한 여자의 곁에 서 있었다. 셀로신의 연인이라고 했던가. 그녀는 저를 구해준 포르틸라를 바라보았다.

이제 20살이나 됐을까. 키도 작고 몸집도 작고 전체적으로 자그마한 여자였다. 이제 막 소녀에서 벗어난 외향. 에로이카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를 바라보던 포르틸라는 퉁명스레 제 옆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여기 있어요.”

“…왜 에로이카를 도왔죠?”

“자신을 삼인칭으로 말하는 그 재수 없는 말투가 맘에 안 들어서요.”

“…훗.”

에로이카는 툴툴거리는 포르틸라를 보며 웃었다. 에로이카도 알고 있었다. 그녀의 행동을 대부분 여자가 싫어한다는 걸. 하지만 보통 뒤에서 욕을 해댈 뿐이었다. 이렇게 앞에 대고 제 말투를 싫다고 지적하는 건 처음이었다. 이 건방진 꼬마 계집이 맘에 든다.

“셀로신 경은요? 그는 구해 주지 않을 건가요?”

에로이카는 셀로신이 무척이나 걱정되는 듯 물었다. 그러자 포르틸라는 동굴 아래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셀로신은… 저 정도로 위험해질 사람이 아니에요.”

포르틸라는 계속되는 이상한 열기를 내리누르며 그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말이 맞는다는 걸 보여주듯 에로이카가 사라진 자리에서 그의 검은빛을 발했다. 무지막지한 무력에 터마이드는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페로몬에 홀린 인간들도 허수아비처럼 바닥에 뒹굴었다.

그 모습을 내려보던 에로이카가 조심스레 포르틸라의 곁에 앉았다. 그녀가 보아선 포르틸라는 터마이터의 알에 중독이 되어있었다.

“당신은 왜 셀로신 경에게 업혀있었죠? 다리에 상처라도 입었나요? 이리 봐선 딱히 상처 같은 건 보이지 않는데.”

“….”

에로이카의 질문에 포르틸라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솔직히 지금도 여전히 아팠다. 게다가 아까부터 이상할 만큼 아래가 축축하게 젖어 들었고 그의 것을 원하고 있었다. 셀로신의 것은 짐승의 것과 같았다. 핑크 좆은 생긴 것과 다르게 너무나 포악했으니까.

포르틸라의 눈길이 야릇할 만큼 셀로신의 중심부로 향하자 에로이카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섹스하고 못 움직이는 건 아니겠지.”

“그, 그럴 리가요! 제가 고작 그와의 섹스 한두 번으로 못 움직일 리 없어요! 그냥 거기가 뻐근할 뿐….”

포르틸라가 정색하며 말을 내뱉다 움찔 놀랬다. 그녀는 또래 친구를 만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저도 모르게 또래로 보이는 에로이카에게 제 비밀을 줄줄 쏟아냈다. 뒤늦게 깨달은 포르틸라가 입을 틀어막았다.

“…당신이 셀로신의 섹스 파트너라고 말하는 거야?”

“섹스 파트너라니요?! 우린 그런 게 아니에요.”

포르틸라가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아니…라고요.”

괜한 소리에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섹스 파트너라니…. 에로이카가 제 남자라고 너와의 결혼은 계약 결혼일 뿐이라고 말한다면 자신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그와 자신은 부부였건만. 괴로운 표정을 짓는 포르틸라의 모습에 에로이카가 버럭 화를 냈다.

“저 빌어먹을 자식! 마음에 든 여성이 생기거든 소중히 여기라고 수백 번 말했건만. 믿음도 주지도 못한 주제에 거기를 망가트릴 만큼 해대면 어쩌자는 거야! 등신 새끼.”

과격한 에로이카의 말투에 포르틸라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두 사람… 연인이 아니었어?

“하아, 미안해요. 제가 사과를 할게요. 저 망할 놈이 이렇게까지 여성에게 면역이 없을 줄 몰랐네요. 게다가 좆을 마구 휘두르고 다닌 줄이야. 다 셀로신을 잘못 가르친 잘못입니다.”

“…네?”

“우선 당신을 치료부터 해야겠군요.”

정신없이 쏟아지는 에로이카의 말에 포르틸라는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에로이카는 포르틸라를 향해 치유의 빛을 뿜어댔다. 따듯한 신성력이 포르틸라의 몸을 감쌌다. 그러다 서서히 줄어들며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맴돌다 스며들 듯 사라졌다.

포르틸라는 순식간에 좋아져 버린 컨디션에 놀랐다. 에로이카가 덥석 포르틸라의 손을 잡아 왔다.

“제 풀 네임은, 에로이카 요하나 드 레오니랍니다. 오해가 있었다면 용서해 주세요.”

“…네에에?”

포르틸라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드 레오니.’ 현 왕비님의 처녀 때 성이었다. 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여자는…?

“저는 셀로신의 ‘이모’예요.”

혈육이라니…. 포르틸라는 혼란에 빠져버렸다. 그렇다면 셀로신과 밤일을 하고 거기가 헐어서 못 움직였다던 지독한 소문의 여사제는 대체… 뭐였단 말이지?

‘마굴에서의 소문은 90%는 거르는 게 좋아요.’

마굴에 들어섰을 때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자 셀로신이 강조하듯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제야 자신이 완벽한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부 사이에 믿음이 없던 건 셀로신이 아니라 포르틸라 자신이었다. 그녀는 이번에야말로 땅을 파고 숨어버리고 싶어졌다.

* * *

어느덧 정리되자 셀로신은 동굴의 위를 올려보며 소리쳤다.

“이만 내 곁으로 와요. 이난.”

이미 눈치채고 있던 모양이었다. 하긴 에로이카가 순간이동을 할 줄 아는 것도 아닌데 순식간에 사라졌고 그녀의 신성력이 저 높은 동굴 구멍에서 뿜어지는 걸 보았으니 충분히 유추할만했다.

순식간에 허공에서 바닥으로 내려온 포르틸라는 쭈뼛거리며 땅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셀로신의 얼굴을 바로 볼 수가 없었다. 제 남편을 믿지 못하고 이모님과의 관계를 의심했다고 죽어도 말할 수 없었다. 천륜을 의심했다니…. 어색함이 감돌았다.

그사이 에로이카는 동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던 사내들에게 다가가 힐링을 퍼붓더니 남자들을 발로 차며 깨우고 다녔다. 정신을 차린 사내들은 에로이카에게 죽을죄를 지었다며 넙죽 엎드렸다.

“호호호, 에로이카는 이만 이 머저리들을 데리고 갈 테니까. 두 사람 사이좋게 지내요.”

에로이카는 빙긋 웃으며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이모님이 치유해 주셨나 보군요.”

“아…. 네.”

멀쩡히 움직이는 포르틸라의 모습을 바라보던 셀로신은 한숨을 쉬었다. 포르틸라의 시선은 여전히 그를 피하고 있었다. 셀로신은 답답한 듯 순식간에 그녀를 완벽한 공주님 안기 자세로 안아 들었다. 이렇게 되니 절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자세가 되어버린다.

그제야 시선이 마주치자 셀로신은 포르틸라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하아, 이제는 그대를 업어주겠다고 핑계도 못 대겠군요.”

“핑계라니요?”

“그대는 늘 부끄러워하잖습니까. 고개를 숙이고 땅이 꺼져라 바라보고 말이에요. 당신이 저를 좀 바라봐주면 좋겠는데. 섹스할 때가 아니면 늘 저를 어려워하니 말입니다.”

그의 예상치 못한 고백에 포르틸라는 깜짝 놀랐다. 괜히 눈물이 고인다. 드센 성격을 연기하던 걸 결국 알아챈 모양이었다. 소심하고 수줍은 성격에 여태 버텨온 게 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는 후회하려나? 그가 먼저 이혼을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하는 게 나을까? 어른스럽게 말이다. 그를 여태 믿어주지도 못했으니 마지막만큼은 내가 나서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여행이 끝나면…. 이혼해요. 우리.”

* * *

셀로신과 포르틸라의 신혼여행에 지독한 먹구름이 끼어버렸다. 포르틸라가 내뱉은 이혼이란 단어에 셀로신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무엇이 문제냐며 물어왔다. 하지만 포르틸라는 입을 닫았다.

포르틸라는 생각했다. 그를 믿지도 못하고 의심만 해놓고 무슨 뻔뻔함으로 그의 사랑을 갈구할까.

또한, 셀로신의 말대로 섹스할 때가 아니면 딱히 대화를 주고받는 방법을 몰랐다. 오랜 세월 그를 뒤에서 짝사랑하며 바라만 봤지, 상호관계에 대해 무지해도 너무 무지했다.

숨이 막히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매일같이 하던 잠자리도 멈춰버렸다. 오래간만에 이모님 덕분으로 컨디션이 무척이나 좋았지만, 셀로신은 다가오지 않았다. 말 그대로 그녀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정말 이대로 이혼하게 되는 걸까.’

거친 섹스를 좋아하는 그가 금욕을 약속한 사제처럼 굴었다. 심지어 포르틸라를 바라보지도 않는다. 늘 웃는 얼굴로 이것저것 말을 걸어주던 남자는 언어를 잃은 듯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여태 셀로신이 먼저 그녀에게 다가왔다는 사실을. 그가 멈추자 세상이 멈춰버렸다.

‘답답한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난 셀로신에게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불안하고 답답했다.

7서클이 기대되는 마법사? 기대만 될 뿐이지 언제 7서클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천문학적인 마정석만 가져다 쓰고 평생 불가능할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내 가치는 대체 뭐지? SM 놀이 상대로 시작된 인연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자신감이 바닥난 포르틸라는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셀로신은 말없이 마물 사냥에 집중했다. 신혼여행 초기 마정석을 잔뜩 구해서 가자고 했던 약속을 지키겠다는 듯이 말이다.

그는 여전히 친절했다. 식사를 준비할 때도 사냥을 할 때도 심지어 잠자리에 들 때까지 그녀에게 손끝 하나 힘들게 하지 않았다. 결혼 서약서에 쓰여 있는 그대로였다.

포트틸라는 점점 묵직해지는 마정석 주머니를 바라보면 씁쓸함을 느꼈다.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그녀는 울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셀로신은 제 곁에서 잠든 포르틸라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에로이카는 떠나기 전에 그에게 욕을 퍼부었다. 사랑하는 여자라면 소중히 대하라고. 그리고 그녀는 조용히 속삭였다. 중독 증세는 잠깐만 막아두겠다고.

무슨 의도로 한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포르틸라가 저 때문에 심적으로 몰렸다는 사실이다. 셀로신은 죄책감에 포르틸라에게 손끝 하나 댈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그녀가 이혼을 포기할지 그 생각만 가득했다.

마굴의 끝. 그곳에 다다르면 두 사람의 신혼여행은 끝이 난다. 그리고 그날은 돌아왔다. 마굴에 끝에 선 두 사람은 가득한 주머니에 마지막 마정석을 던져 넣고 물끄러미 서로를 바라보았다.

포르틸라는 입만 벙긋거렸다. 아직 그를 충분히 알지 못하는데 이대로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어두운 얼굴로 죄인인 양 고백을 하기 시작했다.

“…저, 이모님이랑 당신의 관계 의심했어요.”

“…?”

“소문의 그 여사제인 줄 알고…. 두 사람이 오랜 연인 사이로 착각을….”

포르틸라가 어두운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셀로신은 할 말을 잃었다.

역시 그게 문제였군.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돌고 돌아 결국 세심한 그녀의 가슴에 틀어박힌 것이었다. 진작에 설명을 해둘걸. 뭐가 마굴의 소문을 믿지 말라는 거냐. 그녀에게 믿음조차 주질 못해 놓고선.

작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입술을 깨물고 있는 여자가 안쓰럽기 짝이 없다.

“그리고, 저…. 드센 성격 아니에요.”

셀로신은 침묵했다. 갑작스레 제 성향을 고백하는 모습에 SM 여왕님 역할을 하는 그녀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에게 요구했던 행위가 이렇게 되돌아올 줄이야.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듯했다.

“7서클에 평생 못 닿을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정말 당신의 부인이 될 자격이… 없는 것 같아서….”

“….”

그녀가 소심하고 내향적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늘 손톱을 짧고 반듯하게 깎는다. 혹시나 섹스 중 치밀어오르는 열기에 그의 등에 상처를 낼까 노심초사했다. 혹여나 거친 플레이를 하겠다고 힘껏 괴롭힌다 해도 자그마한 손발은 고양이의 그것과도 비슷해 빙충맞았다.

또, 욕설을 내뱉을 때는 어떠했던가.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려 억양에 묘한 강세를 준다. 그 귀여운 발음에 홀랑 넘어가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 어수룩함이 사랑스럽다. 그녀를 업고 다니면서 자그마한 몸이 제게 의지해오는 게 기분 좋았건만 제 욕심이었나 보다.

이혼을 생각할 정도로 힘들어할 줄이야.

“그리고…. 아아, 오해 말고 들어주세요. 저는 오랜 기간 홀로 마법만 공부해 와서…. 타인을 어떻게 사, 사랑해야 할지도 몰라요. 아, 그러니까 제가 당신을 싫어한다는 말이 아니고. 그러니까 매번 혼자만 좋아라 해서 직접 얼굴을 마주 보니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고…. 심장이 정신없이 뛰고, 불편하고, 신경 쓰이고. 제대로 하는 것 하나 없고. 그러면 당신은 저랑 결혼한 메리트가 조금도 없을 테니까.”

“아니, 잠깐, 이해를 못하겠는데. 난 다 괜찮은데, 도대체 우리 결혼에 무슨 메리트가 있어야 하는 겁니까? 서로 좋아서 결혼하면 된 거지.”

셀로신은 그녀의 말에 당황스러웠다. 내가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안 했던가? 우리가 언제 조건을 따지고 결혼을 했…구나.

결혼 명령서. 처음부터 신경 쓰지 않았더니 그게 부담이 되었나 보다. 정말 첩첩산중이었다. 그녀에게 얼마나 많은 짐을 지워줬던 건지 셀로신은 가슴을 치고 싶었다.

“전 당신의 성격이 뭐가 되었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편한 대로 행동해요. 사람이 어떻게 매번 거칠게 행동할 수 있겠어요. 소심해도 되고, 내성적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다 맞춰줄 테니 말이에요.”

셀로신은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7서클 마법사가 되지 않아도 됩니다. 그건 우리 형님의 바람일 뿐이지 우리 사이에 중요한 요소는 아니니까요.”

포르틸라를 걱정시킨 걸 깨달은 셀로신은 그녀에게 믿음을 주고 싶었다.

“우리 한 번만 더 합시다.”

“네? 뭘요?”

“섹스요. 당신이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제가 강압적인 섹스를 해달라고 강요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요…. 그럼 이번엔 바꿔서 합시다. 이난, 여왕님 같은 거 안 하셔도 됩니다. 마법 같은 것도 쓰지 마십시오. 그저 제가 알아서 그대를 안을 테니까.”

그가 부드럽게 키스를 해오며 가슴을 쓸어 올린다.

“메리트 같은 거 일절 생각도 하지 말아요. 당신 자체가 제가 원하던 거니까.”

일렁이는 눈동자에 포르틸라의 얼굴이 가득 담겨있다. 뜨거운 시선은 떨어질 줄 몰랐다. 그가 입술을 부드럽게 빨아왔다. 촉촉한 혀가 여린 살을 살살 간질이고 입술 사이를 느리게 파고들었다.

간질거리는 숨결에 진득하게 오가는 키스에 온몸이 녹아내렸다. 발끝에 힘이 풀리고 온몸에서 심장 소리가 진동했다. 목덜미를 어루만지고 가슴을 주물러왔다.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피부가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이렇게 부드러운 행위는 처음이었다. 포르틸라는 바들바들 떨리는 와중에도 그의 숨결을 받아 마셨다.

그와 맞닿은 아랫도리에 단단한 기둥이 느껴졌다. 오랜 시간 금욕을 해오던 페니스는 이미 터질 것 같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삽입을 서두르지 않았다.

“우리 늦었지만,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도록 해요.”

입술을 붙이고 곳곳에 키스 자국을 남기던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 보조개가 패었다. 포르틸라의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왜 여태 몰랐을까. 매번 제 역할에 집중하느라 상대방의 모습을 눈에 담지 못했던 거였다. 단 한 번도 그의 얼굴에 보조개가 있는지 몰랐다. 상큼하고도 부드러운 미소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순간 그녀의 몸에서 열기가 팡하고 터져 올랐다. 에로이카가 막아둔 터마이트 알의 열기가 비로소 열려버렸다. 온몸이 그의 손길을 원했다.

“젖꼭지 만지면 기분이 어때요?”

옷 속으로 파고든 커다란 손가락이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주물거렸다. 둥글게 굴려대는 손길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가슴을 받치듯 비벼대던 그는 볼록 솟은 유륜을 감싸곤 유두를 엄지와 검지로 꼭 잡더니 한입에 삼켜버렸다. 오돌토돌한 혓바닥이 젖꼭지를 자극해대자 뜨거운 열이 번져갔다. 촙촙 빨아대는 압력에 볼록 솟아오른 젖꼭지는 짜릿함을 전신에 퍼트렸다.

예민하게 달아오른 감각이 평소와 너무도 다르게 느껴졌다. 세포 하나하나가 폭죽을 터트리듯 유두 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소름이 타고 올랐다.

“흐읏, 조… 좋아요.”

“츄읍, 하아…. 저도 달고 맛 좋습니다.”

어느새 게걸스레 빨아대던 정점을 입 안에서 뱉어낸 그가 흥분을 감추지 않고 웃었다. 그는 바지의 버클을 풀어 버리고 그녀의 옷을 벗겨버렸다. 순식간에 공기가 후끈하게 달아오른다. 두 사람의 엉켜버린 입술 틈새로 거친 숨이 토해졌다.

한동안 참아온 열기를 단박에 터트리듯 팽창한 성기를 그녀의 음부 사이에 뭉근하게 문질렀다. 다리와 다리가 얽힌다.

그의 말대로 마법도 거친 욕설도 필요 없었다. 셀로신이 주는 자극을 그대로 느끼기만 하면 됐다.

매섭게 빛나는 시선이 그녀의 젖꼭지에 들러붙었다. 허겁지겁 입에 물고 혀를 굴리는 그의 행위에 온몸이 짜릿해졌다.

“하으…. 아.”

허벅지를 주물거리던 그가 매끈한 다리를 양쪽으로 넓게 벌리곤 위로 들어 올렸다. 어느새 축축하게 젖은 다리 사이 클리토리스를 살살 비벼대기 시작했다. 클리토리스에서 번져가기 시작한 쾌락이 아찔하기만 했다.

그는 정말 그녀의 몸 곳곳을 탐험하듯 서두르지 않고 느리게 온몸을 만져댔다. 부드럽게 손가락을 들어 그녀의 음부를 위아래로 훑어댔다. 촉촉이 젖어버린 손가락은 양쪽으로 벌려진 음순 위에 볼록 솟은 진주를 짓눌렀다 흔들어댔다 콕콕 찔러대기를 반복했다. 음핵이 자극된 덕에 눈앞이 하얗게 번뜩거렸다.

“아, 으! 거기…. 이상해.”

“여기, 이상할 리가요. 기분 좋다고 하는 겁니다. 말해 봐요. 기분 좋다고.”

“흐읏, 기…. 기분 좋아요.”

착실한 대답에 셀로신은 혀끝을 내밀어 클리토리스를 핥아 올렸다. 넓게 펴 통통한 음부를 핥고 둥글게 모아 갈라진 틈을 벌렸다. 부드럽게 할짝거리는 움직임에 붉게 달아오른 속살이 물을 줄줄 흘려댔다. 움찔거리며 내벽이 떨려온다.

그는 웃음을 흘리며 혀를 길게 빼어 작은 구멍에 밀어 넣었다. 주름진 내벽이 혀끝에 달라 붙어왔다. 손가락도 쉬지 않고 살뜰히 클리토리스를 문질러댔다. 얼굴을 묻은 남자의 뜨거운 숨결이 음순 사이에 박혀 퍼져 나갔다. 뜨겁게 달아오른 성기가 녹아버리고 발갛게 익은 속살이 정신없이 움찔거렸다.

셀로신은 상체를 일으키곤 다시 한번 포르틸라에게 키스를 해왔다.

“이제부터 넣을 겁니다. 기분이 좋은 곳은 꼭 알려줘요.”

상냥하기 짝이 없는 말투지만 그의 눈동자는 지독한 독점욕만이 가득했다. 여왕님이 싫다면 제 암컷이 되면 되었다. 물론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감옥을 선사할 터였다.

그의 탄력 있는 성기가 배꼽 위로 바짝 솟아있었다. 장대한 그것을 잡아당겨 위아래로 쓸어 올렸다. 아까부터 흐르고 있던 쿠퍼액을 문지르자 선단이 음험하게 번들거린다.

“스스로 벌려봐요.”

“네?”

“보지 벌려보라고.”

포르틸라는 그의 명령에 얼굴을 붉혔다. 제가 여태 그에게 강요하고 내뱉었던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오자 등허리가 오싹거린다. 이런 거였나? 이런 긴장감을 즐긴 거였나? 커다란 짐승이 눈앞에서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잡아먹힐 것 같은 흥분감에 아랫배가 와락 조여왔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양손을 내려 음부를 활짝 벌렸다. 심장이 쿵쾅쿵쾅 떨어댔다. 질구에서 주르륵 애액이 흐르는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는 포르틸라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으며 몸을 밀착해 왔다. 묵직한 질량감이 몸을 꿰뚫고 진입해 온다. 오래간만에 느끼는 압박에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짐승에게 생식기를 단박에 뚫려버린 느낌이었다.

팔다리를 어찌할 줄 모르게 그에게 억압당했다. 하지만 그가 주는 자극은 그녀를 하늘로 둥둥 떠오르게 했다.

“아, 으! 아아. 흐읏!”

허리를 이용해 쳐올리는 그의 억센 힘에 온몸이 흔들거렸다. 눈앞이 하얗게 반짝거린다. 깊고도 깊은 곳. 자궁 입구까지 쑤셔대던 두툼한 귀두가 어느 순간 덜컥하고 묘한 곳을 건드렸다.

포르틸라는 처음으로 자지러지듯 비명을 질렀다. 견딜 수 없는 선득함에 바르작대자 셀로신은 멈추지 않고 클리토리스를 비벼댔다.

“히잇, 아아앙!”

그녀가 발버둥을 치자 셀로신은 지독히도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좋은 겁니까, 싫은 겁니까? 확실히 대답해.”

“흐읏…. 조, 좋아요.”

눈물을 글썽거리며 좋다고 대답하는 그녀의 말에 또다시 밑이 뚫리기 시작했다. 꽉 닫혀 있던 여린 살점이 짐승의 진입에 힘없이 속살을 열어주었다. 주름진 내벽이 벌벌 떨리고 엉켜온다. 무자비한 짐승은 그녀의 내부를 침입하고 위력을 뽐냈다.

지독한 작열감에 포르틸라는 그의 목을 껴안고 신음을 내질렀다. 꿈틀거리는 내벽이 분홍빛 기둥을 사정없이 집어삼켰다.

절퍽절퍽―.

난잡하게 끈적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거친 숨소리가 공중을 떠다닌다. 벅차오르는 허리는 제멋대로 흔들거렸다. 강렬한 허리 짓은 여전히 그녀를 부숴버릴 듯 신랄하게 움직여댔다. 본성을 드러낸 짐승은 자궁경부까지 치밀고 올라가 허리를 비비며 느른하게 웃었다. 쫄깃한 질이 발작을 해댔다.

“하으응, 아읏, 아, 아으흥!”

탄탄한 근육으로 둘러싸인 허벅지가 궤도에 오르듯 허리를 힘껏 쳐올렸다. 황홀경에 빠진 포르틸라가 가느다란 다리를 그의 허리에 휘어 감자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이난, 이난!”

“흐윽…. 셀로신. 하읏, 저를, 흐윽! 욕하고 혼내주세요.”

“하, 시팔, 아직도 그 소리야?”

“하으…. 제발.”

“빌어먹을! 네 보지가 얼마나 사람 미치게 씹어대는 줄 알고 하는 말이야?”

그가 이를 갈며 발목을 쥐어 올렸다. 몸이 둥글게 말려버리자 그녀의 음부가 훤히 드러났다. 퍽! 퍽! 흘레붙은 짐승이 게거품을 일으키며 내벽을 찍어 내린다.

발갛게 눈물 고인 얼굴이 미친 것처럼 귀엽다. 헐떡거리느라 타액을 흘리는 입술도 빨아먹고 싶을 만큼 앙증맞다. 코도, 눈도 모든 게 돌아버리게 만든다. 게다가 저 목소리도!

“으아, 아, 아, 아아앙! 죄송, 죄송해요…. 씹어대서…. 흐윽!”

미친, 울어대는 모습이 예뻐서 소름이 끼친다.

“천박하게 좋아죽기는. 넌 원래 나만 좋아했어? 알아?”

이를 악물고 충혈된 시선으로 포르틸라를 내려다보았다. 흔들거리는 가슴이며 제 것을 좋아죽게 씹어 먹는 보지 구멍이며 어느 하나 안 예쁜 게 없다. 하나하나 물고 빨아서 삼켜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젠장! 사과해야 할 사람은 그녀가 아니고 저였건만. 그녀를 제 곁에 두기 위해 조금도 진실을 말할 생각이 없다.

“아흣. 알아요. 천박한 전…. 당신만을 좋아했어요.”

“그럼 사랑한다고 말해.”

“흐응, 아읏! 사랑해요. 사랑해요. 셀로신.”

“하, 시발.”

지독한 파정감이 몰려온다. 잘게 떠는 포르틸라의 사지를 온몸으로 얽고 허리를 흔들어댔다. 짐승의 허리 짓은 자그마한 여자를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제 것을 낱낱이 새겨 넣었다.

“흐으윽, 사랑해요, 셀로신… 어려서부터 사랑…. 흣, 으앗! 사랑, 읏! 했…어요. 하으응!”

한번 터진 봇물이 쏟아지듯 포르틸라는 사랑한다는 단어를 수도 없이 내뱉었다. 그녀의 흐느끼는 목소리가 사람 미치게 만든다. 페니스가 위아래로 처박힐 때마다 제 것으로 꽉 들어찬 구멍에서 맑은 물이 풋풋 튀어 오르다 못해, 줄줄 흘러 그녀의 얼굴을 적셔갔다.

그 모습이 또 미치게 꼴리는지 허벅지에 힘이 콱 들어간다. 이러다 자그마한 포르틸라를 제 페니스로 반쯤 쪼개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 읍!”

정신없이 고백을 멈추지 못하는 여자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충분했다. 이 몸이 증명해주지 않던가. 입술 틈 사이로 쏟아지는 호흡마저 셀로신은 날름날름 잘도 삼켰다.

그에게 짓눌려있던 포르틸라는 범람하는 쾌락에 부표처럼 덧없이 흔들리며 신음을 흘렸다. 작렬하는 열기에 머릿속이 타들어 갔다. 눈앞이 번쩍거리며 섬광이 쳐댄다. 생식기와 생식기가 마주치는 마찰 소리가 질퍽거리며 귓속을 채운다. 지독한 밤꽃 냄새가 그녀의 몸 안에서 퍼져 나갔다.

* * *

지독한 교합에 까무룩 정신을 놓았던 포르틸라는 상냥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정신 차리셨습니까.”

온몸이 아팠다. 게다가 어제 제가 저지른 행동이 떠올랐다. 대체 난 무슨 짓을 한 거야? 사랑한다고 얼마나 고백을 해댔던지. 눈물을 흘리고 침도 흘리고, 심지어 음부에서 애액인지 뭔지 모를 것을 줄줄 흘리며 고백을 했다.

그것도 어려서부터 좋아했다고 고백을 낱낱이 하지 않았던가. 순간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부끄러움에 그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어젯밤 일 기억하십니까?”

“아…. 아니…. 네에에.”

겨우 대답은 했지만, 포르틸라는 제가 엄청난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죽고 싶었다. 셀로신이 자신을 어찌 볼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하지만 그는 더 무서운 걸 질문했다.

“아직도 이혼하고 싶으신 겁니까?”

“아…. 아니요.”

“흐음…. 그렇게 쉽게 마음을 바꾸다니. 역시 저를 사랑하는 게 아니고 몸을 좋아하신 모양입니다.”

그의 말에 얼굴이 터질 것같이 뜨거워졌다. 거의 그에게 매달리다시피 사랑을 내뱉지 않았던가. 게다가 어제의 셀로신은 완벽한 자신의 주인님이었다. 그게 또 얼마나 설레던지 그의 얼굴을 흘긋 올려볼 때마다 심장이 쿵쿵 날뛰어댔다.

“뭘 그리 흘긋거리며 바라봐요. 또 제 좆이 먹고 싶은 겁니까? 먹고 싶다고 얼마나 보채시던지. 스스로 보지도 벌리시고. 이러다간 제가 주인인 줄 착각하겠습니다.”

그가 짓궂게 속삭였다. 이미 관계의 위아래는 없어졌다. SM플레이로 여왕님 놀이를 시작한 관계지만 두 사람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포르틸라는 있는 모습 그대로 봐주는 그가 좋았다. 그리고 주인인 셀로신의 모습 또한 섹시하고 멋져서 그가 자신을 다뤄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됐다.

“괘… 괜찮아요…. 주인님 해도.”

포르틸라는 그의 아랫도리에 손을 올리며 수줍게 웃었다. 꿀꺽, 셀로신은 그 깜찍한 도발에 숨이 넘어갈 듯했다. 하지만 그건 셀로신의 완벽한 실책이었다.

포르틸라는 과한 자세로 박음질을 당한 덕에 아랫도리가 아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름의 표현으로 그의 성기를 때리며 항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자그마한 손바닥으로 때려봤자 그에겐 고양이의 꾹꾹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셀로신은 그녀의 입술에 쪽쪽 키스해댔다.

“다시 주인님, 해봐.”

“흐으으응, 주인님.”

셀로신은 불끈 솟아오른 아랫도리에 미간을 찡그렸다. 미칠 것만 같다. 이 좋은 걸 왜 여태 모르고 살았는지. 그녀를 여왕님이라 칭하며 밟힐 때도 좋았지만 이건 또 색다른 맛이었다. 당장이라도 그녀의 아래를 뚫고 제 것을 밀어 넣고 싶어졌다.

“이제 그만 돌아갈까. 가서 푹신한 방에서 이 주인님의 자지를 먹여주지.”

과했다. 멍청하게도.

“…자지를 먹여준다고요?”

“응, 당신 보지에 먹여준다고.”

포르틸라의 표정을 살폈어야 했다.

“흐흥…. 넘칠 때까지 싸주시려고요? 주, 인, 님?”

“그래!”

너무 의기양양했다. 주인님이란 단어가 듣기 좋아서.

“정말… 짐승 새끼 같긴. 전 어제 일로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한다고요!”

포르틸라는 페니스에 지배된 남자에게 재수 없다는 듯 차가운 시선을 흩뿌리곤 한순간 팟! 하고 사라졌다.

덩그러니 홀로 남은 셀로신은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트렸다. 주인님이라고 알랑거리더니 결국은 여왕님으로 돌아가 버렸다. 제가 아무리 수줍은 척해도 저놈의 성질머리는 버리지 못한다는 걸 모르는 걸까.

포르틸라는 어려서부터 한 성질머리를 했었지 않던가. 저보고 보자마자 대뜸 꺼지라고 했었으면서. 기억도 못 하는가 보다. 게다가 밤새 섹스 중에 그녀에게 잘근잘근 물렸다.

“하하하, 정말 미치겠군!”

있는 힘껏 기대를 끌어 올리던 남자는 홀로 마굴 끝에 덩그러니 버려졌다. 그는 뻣뻣하게 솟아오른 페니스를 꺼내 들고 홀로 흔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잠시. 번쩍하더니 에스텅이 회복 물약을 잔뜩 들고 나타났다. 포르틸라가 보낸 게 분명한 그는 제 주인의 꼬락서니에 고개를 저었다.

온통 물린 이빨 자국에 벌떡 솟은 페니스는 살갗이 벗겨져 쳐다만 봐도 쓰라려 보였다.

“그렇게 좋으십니까.”

“좋다마다. 내 여왕님의 영역표시인걸.”

“정말 미치셨네요.”

제 주인의 어처구니없는 모습에 그는 약을 꺼내 들었다.

“주인마님께서 치유 마법 배울 때까진 잠자리 안 하신답니다.”

“뭐? …설마 농담이지?”

“진심이시던데요?”

“아, 안 돼 포르틸라! 날 더 괴롭혀달라고!”

그가 울상을 지으며 소리를 질러댔다.

“고함 좀 그만 지르시고 페니스부터 대십시오.”

무슨 짓을 했길래 저리 페니스가 엉망이 된 건지…. 하고 싶은 말은 무척이나 많았고 묻고 싶은 말도 산더미이지만 그는 착실하게 마님의 명령에 따랐다. 아무리 봐도 공작가의 실세는 완벽히 공작 마님인 듯했으니까. 변태로 눈을 뜬 제 주인은 이미 그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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