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의뢰.
밝은 갈색 머리칼, 날씬하지만 빈틈없이 꽉 들어찬 근육, 오뚝한 콧날, 깊은 눈 그늘이 매력적인 눈동자. 누구나 올려볼 만큼 커다란 키. 모든 면에서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남자, 셀로신은 검을 잘 다뤘다. 그는 제 몸에 상당히 자신 있었다. 몸을 단련하는 것을 좋아했고 군살 없이 탄탄한 근육은 그의 자랑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훌륭한 몸을 가지고 있던 건 아니었다.
어린 날의 그는 병약한 소년이었다. 태어나길 어머니의 배 속에서부터 탯줄을 목에 감고 태어났다고 했던가. 살아난 게 기적이라 했었다. 하지만 그 후유증은 꽤 오랜 시간 그를 병약한 소년으로 만들었다.
그런 그가 현재의 건강체가 될 수 있었던 건 어릴 적 큰 사건을 겪은 후였다. 그는 피눈물을 흘리며 갖은 노력을 다해 체력을 키웠다. 스스로 왕국 최고의 검술 선생에게 찾아가 배움을 청했다. 셀로신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그는 지독히도 끈질겼고 성실했으며 생각보다 검에 재능이 있었다.
그렇게 10년을 보내자 얄팍했던 몸을 단단한 근육으로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잘난 몸뚱이는 그의 자신감이었고 자존심이 되었다. 기사들의 부러움과 존경은 덤이었다. 그는 완벽한 기사들의 본보기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어두운 방 안에 괴이한 자세로 덩그러니 묶여있었다.
사락사락―.
빼꼼 열린 창가에 가느다란 달빛과 함께 미약한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흐릿한 달빛만이 들어찬 공간. 적당히 넓은 방 안 한가운데 셀로신이 있었다. 그의 등 위로 가느다란 빛이 움직이며 언뜻언뜻 그의 모습을 비췄다.
‘허억… 정말?’
커다란 남자는 팔다리가 묶인 채 안대가 씌워져 있었다. 포르틸라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코피가 터질 뻔했다. 어둑한 방 안에 촛불이 일렁거렸다. 노란빛이 남자의 몸에 명암을 드리운다.
190센티는 족히 되는 탄탄한 몸에 떡 벌어진 어깨, 제 몸의 두 배는 될 듯한 두툼한 가슴팍과 그 밑으로 이어진 6갈래의 근육들. 그리고 짙은 터럭이 연결된 납작한 아랫배를 타고 쩍 벌어진 사내의 다리 사이에 매달린 커다란 살기둥.
살…기둥?
그녀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세히 보려 애를 썼다. 어둠이 그늘진 사타구니 사이, 힘없이 늘어져 있음에도 커다란 기둥은 시선을 강탈했다. 두툼한 버섯 머리가 둥글게 처져있었다. 그 크기가 어찌나 큰지. 슬며시 제 팔뚝을 들어 올리며 가늠해 보았다.
아무리 말랐다지만 제 팔뚝보다 조금 더 두툼하고 커다란 것이 달려있다니. 저런 걸 바지 속에 넣고 다닐 수 있단 말이야? 놀라움에 심장이 쿵쿵 울려댔다.
‘아가씨, 글쎄, 셀로신 경이 마굴에서 여사제를 따먹었다고 소문이 났어요. 여사제가 말하길 그의 것이 어찌나 커다란지 절굿공이로 찍어대는 줄 알았다고. 아침엔 걷지를 못해 스스로 아랫도리에 치유의 힘을 쓰고 나서야 겨우 움직였다고 그러더라고요.’
얼마 전 셀로신의 찬양자인 유모가 눈물을 찍어대며 말을 했을 때는 그저 허황한 소문이 또 시작이구나 싶었건만. 이제 보니 거짓 소문이 아니었나 보다. 정말 절굿공이만큼 커다란 물건을 보니 여사제의 소문은 진실에 가까웠다.
가슴 한쪽이 아릿하다. 15살 어린 나이서부터 6년 가까이 흠모했던 남자의 진실을 알게 되니 속이 쓰린 건 어쩔 수 없었다. 포르틸라는 진심으로 이걸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얄밉긴 하지만 여전히 첫사랑을 향한 마음은 남아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단단한 근육질의 몸을 결박하고 있는 밧줄, 팔이 뒤로 꺾인 채 손목에서부터 묶여있는 붉은 줄은 그의 두툼한 목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흉근과 허리를 가로지른 두 줄의 끈은 의자와 함께 묶인 터라 꼼짝을 할 수 없는 모양새다. 양 발목 또한 의자 다리에 각각 벌려진 채 묶여있었다.
또르륵―.
긴장으로 인한 땀방울이 탄탄한 피부를 타고 등허리에서부터 엉덩이까지 흘러내린다. 그의 완벽한 알몸이 붉은색 끈으로 결박된 채 눈이 가려져 있었다. 적막함 속에서 그저 더운 숨소리만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는 정신을 잃은 듯 반응이 없었다. 안대를 하고 있음에도 수려한 콧대를 숨길 수 없었다. 꽉 다물린 입술은 섹시하기 짝이 없다. 색색 내뱉는 숨결이 미치도록 황홀했다.
“흐으음….”
드디어 남자가 깨어났다. 포르틸라는 재빨리 목소리를 가다듬고 여왕님의 모습이 되고자 했다. 자신의 첫사랑 셀로신. 그러나 이미 온갖 여자와 더러운 소문이 난 셀로신. 이어질 수 없는 나의 영웅, 셀로신 경. 그가 원한다면 하루쯤은 얼마든지 여왕님이 되어줄 작정이었다.
잠시 후,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셀로신 앞으로 다가왔다.
“당신이 오늘의 돼지 새끼인가요?”
지독한 적막을 깨고 나긋한 여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굉장히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운다. 비단 천으로 시야가 막힌 셀로신은 고개를 들어 올려 소리가 울린 곳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목소리는 제 옆면, 오른쪽 귓가에서 들려왔다. 그가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려 하자, 매우 중요한 걸 알려주듯 상냥한 목소리가 속살거린다.
“원하는 세이프 워드가 특이하시네요. 나는….”
똑 부러진 딕션의 단어와 함께 뜨뜻미지근한 공기가 귓가에 훅― 밀려들어 왔다. 입술이 둥글게 말리며 남은 숨결을 내뱉는다. 달콤한 숨결은 가벼운 웃음소리와 함께 멀어졌다.
“고, 자, 새, 끼, 다.”
순간 셀로신의 멍하게 풀린 눈동자가 돌아왔다. 입술을 꽉 물고 있던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여긴 어디고, 그게 무슨 말이오?”
그가 질문을 내뱉는 순간 여자의 가는 손가락이 입술 위에 닿는다. 꾹 눌린 입술 위에 느껴지는 손끝 피부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그녀는 궂은일을 해본 적 없는 듯 피부가 상당이 부드러웠다.
“아, 질문은 금지에요. 지금부터 질문은 나만 할 수 있답니다.”
“…하?”
“너는 대답만 하면 돼.”
순식간에 고압적으로 바뀐 말투에 당황스러웠다. 그 누가 셀로신에게 저따위 말을 할 수 있을까. 불쾌하긴 했지만, 셀로신은 조용하고도 강하게 대응하기로 했다.
“나를 왜 이런 곳에 가둬두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매듭, 푸는 게 좋을 거요.”
시리도록 위압적인 말투에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자신이 저를 그리 만든 줄 아는가 본데, 그가 조금은 안타까웠다. 대체 왕궁에서나 쓸 편지지의 주인은 그와 무슨 관계길래 셀로신을 저리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굳이 시시콜콜 사정을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셀로신이 관절마다 묶인 지점을 강하게 흔들어댔다. 힘을 강하게 주면 벗어날까 싶었던 걸까. 그의 판단은 평소라면 현명할 터였다. 보통의 밧줄이라면 저 짐승같이 단단한 근육으로 단번에 힘을 주고 뜯어낼 수 있을 테다. 하지만 그를 묶은 끈은 평범한 밧줄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근육 사이로 밧줄이 파고든다. 의자가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삐걱거렸다. 하지만 의자는 무척이나 튼튼한 오동나무로 만들어져있었다. 나무는 그저 삐걱거리기만 할 뿐 부서질 기미는 보이질 않았다.
여자는 그제야 안심했다. 설마 그가 밧줄을 뜯어내 자리에서 벗어난다면 그녀는 꼼짝도 못 하고 의뢰를 종료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가 힘을 뺀 사이 재빨리 제 야욕을 채우기로 했다.
손에 들려있는 가죽 채찍에 힘을 주었다. 휙―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공중을 가른다. 승마용 작은 패들이 달린 채찍 끝이 매끈하게 반짝거렸다. 그녀는 벌어진 허벅지 사이로 가볍게 그것을 휘둘렀다. 채찍이 떨어지자 남자의 거친 움직임이 순식간에 멈췄다.
셀로신은 제 허벅지 안쪽, 중요 부위 위로 느껴지는 화끈한 고통에 수치심을 느꼈다.
“반항하지 마. 간혹 너처럼 제멋대로 구는 새끼들이 있다니까. 잘 들어. 네가 밖에서 무슨 지위를 가졌든, 누구에게 무슨 원한을 샀든 상관 안 해. 그저 날 불러들인 지금부터 넌 돼지 새끼고 난 네 여왕님이야. 알겠어?”
“누가, 누굴 불러들였다는 거지?”
“하, 또 말대답! 시작부터 피곤하게 시리…. 빌어먹을. 너 같은 타입들이 제일 싫다고. 시작은 내가 해. 처음부터 풀발해서 날 휘두르려 하지 말라고! 이제부터 입 다물고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네 좆 대가리를 부숴버릴지도 몰라.”
철썩―.
또다시 고통이 위험한 부위 끝에 느껴졌다. 매우 가벼운 터치였지만 제법 아릿하게 피부가 징징 울렸다.
“허….”
셀로신은 생전 처음 듣는 천박한 단어 나열에 기가 막혔다. 뭐? 여왕님에 풀발? 게다가 좆 대가리를 부숴?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욕설에 숨이 턱 막혔다. 상상을 초월한 끔찍하고도 천박한 언행에 피가 식어내렷다.
그가 당혹스러움에 말문이 막혀버리자 포르틸라는 셀로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개새끼에게 하는 듯한 행동에 셀로신의 관자놀이가 불룩 튀어 올랐다. 하지만 여자는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깔깔 웃는다.
“그래, 그렇게 고분고분하게 있어야지. 좋아. 어디 네놈이 원하는 목록을 좀 살펴볼까.”
종이가 사락사락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탁, 그녀의 손길이 멈추며 종이 한 장이 펄럭거린다. 당혹과 함께 흔들리는 눈동자 위로 떠오른 글씨를 또박또박 붉은 입술로 내뱉었다.
“흐음, 원하는 게 참으로 단순무식, 천박하기 짝이 없군. 털깎기? 대딸, 보빨, 페이스 시팅에 얼굴 분수…. 뭐야. 진짜 하찮은 것들만 가득하네.”
포르틸라는 말하면서도 엄청나게 당황했다. 그전까지 SM플레이에서 직접적으로 제 성기와 닿은 의뢰를 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있다 해도 거절했을 터였다. 하지만 상대는 셀로신이잖아!
“내가… 원했다니? 그대가 말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나는 정녕 모르오.”
고압적인 자세에서 금세 고분고분해진 남자의 모습에 포르틸라는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여전히 셀로신은 그녀가 말하는 것들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나 포르틸라는 조금도 지금의 행위를 멈출 생각 따윈 없었다. 의뢰인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눈앞에 있는 남자는 정말로 셀로신이었다. 마굴의 주인이라 불리는 도도하고도 오만한 남자. 그런 남자를 언제 이리 가까이서 마음껏 볼 수 있겠냔 말이다. 이런 멋진 기회를 날려 먹을 생각 따윈 조금도 없다.
그녀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곤 가느다란 손을 내밀었다.
순간 셀로신은 흠칫하고 놀랐다. 쩍 벌어진 제 고간 사이에 야릇한 감각이 느껴졌다. 여자의 손바닥이 귀두 끝을 동그랗게 감쌌다. 채찍으로 얻어맞은 부위였다. 그녀의 손길이 닿자 제법 얼얼했다. 하지만 점차 손바닥의 차가운 체온이 전해지자 얼얼함이 가라앉는다.
느리게 덧그리던 서늘한 체온이 어느덧 기둥을 타고 올라 터럭 위에 안착했다. 거친 터럭을 간지럽히듯 하는 손가락 장난질에 셀로신은 그녀가 말한 털깎기가 무얼 말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으윽, 그만….”
그의 반항이 듣기 싫다는 듯 와락, 무성한 터럭이 작은 손가락 사이에 우악스럽게 잡혔다.
“정말, 시끄러워. 집중해야 하니까…. 제발, 입 좀 닥쳐.”
철석! 축 늘어진 다리 사이로 또다시 강한 충격이 몰려왔다. 이번에는 인정사정없었다. 귀두 끝에서부터 음낭까지 징징 울리는 충격에 셀로신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셀로신이 지독한 고통에 부들부들 떨어대자 차가운 무언가가 터럭 위에 펴 발라졌다.
그 느낌이란, 아침마다 면도를 위해 제 턱에 올려놓던 거품의 그것과 같았다. 몽글거리고 미끈거리는 그것. 그로서 명확해졌다. 여자가 제게 무슨 짓을 하려 하는지 말이다.
그가 숨을 들이켜자 날카로운 쇠붙이가 피부에 닿았다.
“움직이지 마. 입도 벌리지 말고. 너도 알다시피 난 칼질 같은 건 해본 적 없어. 네 멋대로 날뛰면 네 좆 기둥이 잘려버릴지도 몰라.”
여자의 목소리는 긴장한 듯 떨리고 있었다. 덕분에 셀로신 또한 몸이 흠칫하고 굳었다. 아무리 그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머리가 굳은 건 아니었다. 칼질 한 번 해보지 않은 여자의 어설픈 손짓 한 번에 중요 부위가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가 뻣뻣이 굳어버리자 날카로운 쇠붙이가 셀로신의 단단한 피부 위를 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걱서걱. 털 깎이는 소리가 귓구멍을 파고 들어왔다. 거시기 털이 깎이는 소리는 정말 그를 혼미하게 만들었다. 자존심이 한 올, 한 올 바닥으로 깎여나가는 느낌이었다.
그 와중에 여자는 그의 사타구니 사이에 고개를 처박고 꼼꼼하게도 허벅지 살을 벌려가며 터럭들을 깎아댔다. 부드러운 숨결이 허벅다리를 타고 미끄러진다.
그의 페니스는 저도 모르게 긴장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발기하는 페니스에 지독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자, 잠시만….”
원치 않는 끔찍한 경험에 절로 말투가 공손해졌다. 그러나 칼날이 미끄러지며 의자 다리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셀로신은 안절부절못할 수밖에 없었다.
그 불안에 잠긴 남자의 모습에 제법 희열이 느껴졌다. 그녀는 매끈하게 깎인 기둥뿌리의 위쪽 무성한 둔덕을 노려보았다.
“조용히 해.”
“내, 내가 의뢰를 했다고 하지 않았소. 그, 그만두겠소.”
“안 돼. 이미 시작했어. 네 더러운 좆에 내 손이 닿았다고. 제기랄. 더 기분 더럽게 만들면 잘라버리는 수가 있어.”
예쁜 목소리로 쏟아지는 욕설에 정신이 혼미하다. 게다가 그녀의 손길은 멈추질 않았다. 콱 페니스 끝을 쥐어오는 압력에 기둥이 찌부러졌다가 펴지길 반복했다.
움찔, 움찔. 젠장, 단 한 번도 여성의 손이 닿아본 적 없는 곳이었다.
피가 중심부로 온통 몰려든다. 얼굴 또한 혈액이 몰려드는지 빨개지고 말았다. 온몸에 불이라도 붙은 듯 부끄러움에 타들어 갈 것 같았다. 게다가 점점 아랫도리에 힘은 터무니없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누군지도 모를 여성의 손길에서 벗어나고자 허리를 튕기며 발기가 되는 음경에 힘을 주고 피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이 페니스를 꽉 잡아 눌렀다.
“움직이지 말라고 했잖아. 돼지 새끼가 허리까지 튕기고 토할 거 같네. 네 무식하게 커다란 좆은 나만 움직일 수 있어.”
말은 험하지만, 그녀의 손길은 상냥할 만큼 부드러웠다. 위로 올려 잡은 페니스의 뿌리에 뜨거운 숨결이 훅하고 밀려들었다. 흐윽! 여자의 시선이 지독하게도 느껴졌다. 앞이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처음 느껴보는 오싹거림이 그를 흥분시켰다.
“아아, 이제부터 네 구슬 두 쪽에 난 털을 깎을 거야. 네 좆 대가리 잘 세우고 있어. 뭐, 이미 풀발해서 내리지도 못할 거 같지만.”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맞다. 그녀의 말 그대로 흥분할 대로 흥분한 페니스는 배꼽 위로 바짝 올라 붙어버렸다. 억지로 잡아 내리려 해도 내릴 수 없을 터였다.
시원한 손바닥이 음경 아래쪽을 감싸왔다. 둥글게 감싸진 손바닥이 느껴졌다. 왼쪽 알이 아래로 잡아당겨졌다. 거품이 주르륵 흘렀다. 미묘한 소름이 등허리를 타고 올랐다. 차가운 칼날이 고환 위를 부드럽게 타고 지나갔다. 서걱서걱. 지독한 불안함과 쾌감이 범벅되어 느껴졌다.
…쾌감? 미친! 쾌감이라니. 돌지 않고서야 여자의 손길에 중요 부위를 붙잡힌 채 칼질을 당하고 있음에도 쾌감을 느끼다니. 말도 되지 않았다.
셀로신은 활짝 벌어진 허벅지를 부르르 떨었다. 이번엔 오른쪽 알이 아래로 쭈욱 잡아당겨졌다. 서걱거리며 피부 위를 두어 번 반복하며 털이 밀려 나갔다.
고환이 그녀의 손에서 자유를 찾자 위로 슬그머니 올라붙었다. 그러나 평온도 잠시. 철컥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포박당한 자세 그대로 몸이 앞으로 숙였다. 얼굴이 고꾸라질 듯 숙인 상태로 엉덩이가 들려 올라갔다. 음경이 자연스레 아래로 쏟아지듯 미끄러졌다.
의자 아래에 구멍이 뚫려있었다. 여자의 손이 엉덩이 사이로 밀려 들어왔다. 엉덩이 골짜기 사이로 거품이 발라졌다. 항문 사이와 회음부를 덮는 거품의 느낌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엉덩이 한쪽이 활짝 벌어지고 날카로운 칼날이 둥근 골짜기를 따라 좌우로 스르륵 움직였다. 생전 누군가에게 보여준 적 없던 부위를 면도 당한다는 생각에 미쳐버릴 거 같았다.
차가운 손가락이 주름진 곳을 꼼꼼히 돌아가며 쓰다듬어왔다.
“으윽!”
아슬아슬하고도 묘한 감각에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 누가 항문을 이리 부드럽게 비벼준단 말인가. 그만두라고 고함치고 싶었지만, 회음부와 고환 밑 부분을 타고 움직이는 칼날에 행여 잘못될까 봐 말도 못 하고 숨만 꼴깍꼴깍 넘겼다. 얼굴이 달아오르다 못해 숨이 씩씩 넘어왔다. 칼날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화가 치밀어 고함을 지르려 할 찰나.
철썩! 여자가 엉덩이 사이로 젖은 수건을 내리쳤다.
“악, 윽! 무슨 짓입니까!”
욕을 해도 부족할 판에 나오는 말이 존댓말이다. 셀로신은 절로 당황했다. 왜, 어째서 저를 괴롭히는 여자에게 자신은 공손히 존대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여자는 당연하다는 듯 웃으며 그의 성기와 엉덩이를 꼼꼼히 닦아냈다. 시원한 쾌감이 아랫도리에서 밀려온다. 곧 철컥 소리와 함께 몸이 돌려졌다.
헉헉거리며 고개를 젓자 여자의 손길이 페니스 아래서 느껴졌다. 이제는 말도 못 하게 묵직해진 페니스를 받치고 있는 손가락이 꽤 야하게 그의 것을 위아래로 문질렀다.
“하, 꼴에 깎아놓으니 꽤나 예쁘게 생겼네. 핑크색이라니.”
핑크색. 그녀의 말에 또다시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셀로신은 마굴의 주인이라 불리며 지하 마굴의 최고의 기사였다. 그런 그의 콤플렉스라 하면 아무리 해도 짙어지지 않는 피부색이었다. 지나치게 하얀 피부에 핑크색 성기, 그리고 젖꼭지까지…. 무슨 고귀한 성녀도 아니고 어려서부터 앓아왔던 나약함의 잔재를 보는 것 같아 그는 지독히도 하얀 그 피부색을 싫어했다.
그런데 여자는 제 부끄러운 치부를 바라보며 예쁘다고 한다.
“제기랄. 이거 풀… 크윽!”
분노로 욕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채찍이 날아왔다. 엉덩이를 치고 지나가는 짜릿함에 이가 으득 갈린다.
엉덩이를 맞아? 어린애도 아니고 장신의 사내가 엉덩이를 맞다니. 수치심에 머릿속이 이글이글 타들어 갈 거 같았다. 그 와중에 장대히 솟아오른 제 페니스는 질금질금 액까지 흘려댄다.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의문이 머릿속에 가득 들어찼다. 그런 셀로신의 뺨에 여자의 손길이 지나갔다. 매끄러운 손바닥이 부드럽게 스치자 소름이 돋았다.
“버릇이 없는 돼지 새끼네. 네가 아직도 광전사 셀로신이라고 생각되는가 본데. 틀렸어. 넌 지금 내 노예가 되겠다고 스스로 기어들어 온 돼지 새끼라고.”
셀로신은 깜짝 놀랐다. 이 여자는 자신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게다가 뭐? 내가 스스로 이 변태 짓을 하겠다고 기어들어 왔다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차분히 머리를 굴렸다.
분명 자신은 어젯밤 마굴에서의 사냥에 만족하며 지하 마굴 입구에 있는 여관에서 술을 마셨다. 평소에 마시던 그대로 압생트를 마셨더랬지. 알싸한 혀끝에 기분이 좋았던 것 같은데. 그 이후의 기억이 최면이라도 걸린 듯 통째로 사라졌다.
“생각 그만! 넌 돼지 새끼고 노예다. 노예는 주인이 시키는 것만 하는 거야.”
여자는 날카롭게 외치며 그의 페니스를 툭툭 건드렸다. 가느다란 손끝이 둥글게 기둥을 말아 쥐곤 위아래로 쓱쓱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오일이라도 바른 것인지 매끈매끈한 손바닥에서 뜨뜻미지근한 열기가 올라왔다.
마찰이 점점 강해져 온다. 뿌리에서부터 선단까지 단박에 올려붙인 손바닥이 또다시 바닥으로 하강하듯 거세게 떨어져 내렸다. 귀두 껍질이 위아래로 제멋대로 덮였다, 밀려나길 반복하자 단전이 미칠 것 같이 짜릿해져 갔다.
“으윽!”
단단하게 솟아오른 페니스가 제법 아파졌다. 활짝 벌려있는 허벅지를 오므리고 싶었지만, 단단히 묶여있는 다리는 벌려진 채 한껏 발기한 페니스만 미친 듯 꿈틀거렸다. 핏줄이 두툼하게 솟아올랐다.
셀로신은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다. 타인의 손으로 강제 발기되어 이제 곧 사정이라도 할 것 같은 감각에 지독한 치욕을 느꼈다.
“줄줄 흐르고 난리가 났네.”
여자는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기둥을 쓸고 선단에서 절로 흐르는 쿠퍼액을 손바닥에 오목하게 모아 귀두를 비벼댔다. 여자의 서늘한 손가락은 연주라도 하듯 제 고환을 주무르고 회음부를 비벼대며 기둥을 리드미컬하게 쥐었다 풀어댔다.
미칠 것 같았다. 온몸이 저릿저릿하며 쾌감이 점점 고지를 향해 달려갔다. 분홍색 귀두 아래 표피가 당겨졌다 벗겨지길 반복해댔다. 저릿저릿한 감각이 몰려들며 하반신이 바르르 떨려온다.
“엉큼하긴. 돼지 새끼가 발정하고 난리가 났군. 좋아, 어서 내 손으로 가버리라고.”
꿈틀대는 페니스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혈관이 튀어 오르고 쿠퍼액이 홍수라도 난 듯 흘러내렸다.
발정이라니! 누가 발정을 했단 말인가. 이건 강제적으로 세워진 거나 다름없지 않던가. 그는 필사적으로 토정을 참았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내보낼 수 없었다. 누군지도 모를 여자의 손길에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것도 죽을 것 같은데, 사정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
하지만 순간 귀두 끝에서 느껴지는 촉촉함에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 으읏… 그만!”
할짝, 여자가 혀라도 내밀었는지 촉촉하고 따듯한 숨결이 선단을 휘감아왔다. 그녀는 곧 표피를 제 입술에 가볍게 문지르며 빨아올렸다. 처음 겪는 행위에 배 속이 요동쳤다. 어깨를 비틀이며 부르르 떨었다. 완강하게 버티던 가랑이 사이가 순식간에 긴장이 풀리곤 원치 않던 해방감이 터져 나왔다.
푸슛! 풋풋! 진한 정액이 허공을 향해 뿜어졌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곧 깨달은 셀로신은 창백한 낯으로 제 아랫입술을 악물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마굴의 주인으로서의 자존심이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그는 짙은 패배감에 온몸의 피가 식는 진귀한 경험을 느끼고 있었다. 존엄성이 시궁창에 처박힌 감정은 그를 분노케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느껴버린 지독한 해방감과 흥분은 그를 충격으로 밀어 넣기 충분했다.
미쳤다고 생각했다. 이런 꼴을 당하면서 흥분한 자신이 추잡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빨을 으드득 갈아붙이며 결심했다. 죽여버린다. 네년이 누군지 몰라도 꼭 찾아내서 죽여버리고 말 것이다.
“털깎기, 대딸. 이제 뭐가 남았더라. 너무 하찮은 것들뿐이라 기억이 나질 않네.”
여자는 중얼거리더니 지극히 사무적인 목소리로 서류를 툭툭 쳤다. 그러곤 아! 하고 웃더니 옷을 벗어 던지고 마지막으론 달칵하며 구두를 벗어버렸다. 작은 발바닥이 셀로신의 가슴팍에 닿았다.
“…무슨 짓을 하려 하는 거지.”
그가 짐승같이 으르렁거리자 여자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곤 정말 손이 많이 간다며 발로 그를 밀었다.
“입 닥쳐.”
그녀의 말 한마디와 함께 단단한 가슴팍에 충격이 밀려왔다. 순간 셀로신의 몸이 의자째 뒤로 쾅 하고 넘어갔다. 살짝 머리를 부딪친 그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살짝 느슨해진 안대 사이로 흐릿한 형상이 보였다. 그는 신음을 흘리며 희미한 형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 눈을 껌벅였다. 하지만 곧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믿기지 않은 것이었다.
살덩이였다. 좌우로 갈라진 살덩이.
“흐읍…!”
얼굴 위로 후덥지근한 무언가가 내려앉았다. 촉촉한 살덩이가 입가를 짓누르며 비벼졌다. 그는 순간 숨을 쉴 수 없어 고개를 돌리려 했다. 하지만 얼굴 양쪽을 눌러오는 허벅지살에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셀로신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코끝에서 느껴지는 향기는 새콤하면서도 오묘한 향이었다.
“읍! 으읍!”
저항하듯 그가 고개를 마구 흔들자 여자가 허리를 비틀었다.
“하읏, 제대로 빨지 못해?”
빠, 빨라니? 뭘?
셀로신은 당황했지만, 곧 제 입술을 덮고 있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야한 내를 풀풀 풍기는 여성기. 너무 놀라 입을 딱 다물자 여자는 귀찮은 듯 그의 머리통을 쥐어 잡더니 허리를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갈라진 살덩이 사이 선단에 볼록 튀어나온 음핵이 그의 코끝에 비벼지기 시작했다. 둥글고 매끈한 콩알이 왔다 갔다 하더니 구멍 속에서 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입술이 질척거리는 액으로 젖어가자 셀로신은 더는 숨을 참을 수가 없었다.
“푸앗!”
그가 입을 벌리고 참아왔던 숨을 내뿜자 여자의 허리 짓이 잠시 멈추더니 또다시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질척거리는 액이 입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여린 살덩이가 입술에 비벼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코끝에서 느껴지는 지독히 야한 향과 여자의 부드러운 터럭이 그를 자극해 온다.
“성의를 보여야 할 거 아니야. 이따위로 해서 어디 젖기라도 하겠어?”
입술 주변을 비벼대던 여자가 얼굴을 잡아당기며 괘씸하다는 듯 내뱉는다. 입 안으로 조금씩 흘러들어오는 액은 대체 뭐길래 젖는다는 소리를 하는 것일까. 셀로신은 혼란에 빠진 채 입술을 간지럽히는 터럭에 대항하기 위해 고개를 저어댔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여자를 자극했는지 아랫구멍이 벌름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이 상황이 기가 막혔지만, 입 안으로 들어오는 액을 삼키지도 내뱉지도 못하다간 이대로 질식할 거라 생각이 들었다. 결국, 셀로신은 입 안에 들어찬 여자의 새콤한 액을 삼켜버리곤 입술을 벌렸다. 질척거리는 작은 살덩이가 좌우로 벌어져 입 안을 침범했다. 필시 소음순이라는 것이겠지.
그가 조심스레 혀를 내밀었다. 수욱― 혀가 살 틈을 가르고 깊은 곳까지 밀려들어갔다. 그는 화들짝 놀랐다. 그저 제 입을 막아대는 살덩이를 치워버리려 한 것일 뿐인데 혀뿌리가 기약 없이 밀려들어갔다. 그러더니 그 혀를 주름진 살 벽이 냉큼 잡아채는 게 아닌가.
“으읍!?”
혀를 잡아빼려 했지만 살 주름들이 그의 것을 꽉꽉 잡아대는 통에 그는 당황하고 말았다. 혀를 뒤로 뺐다 다시 쑤셔 넣었다. 제멋대로 물어대는 살덩이가 통통하게 부풀기 시작했다. 매끈하게 달아오른 살이 그의 혀를 원한다는 듯 연신 비벼지고 빨아대고 씹어댔다.
이상했다. 불쾌해야 마땅한데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여자의 콧소리가 제법 가슴을 간질간질하게 했다.
“하으응… 아.”
가늘게 떨리는 신음이 뭐라고 가슴이 들먹거렸다. 아닌 듯 저를 설레게 하는 여자의 신음이 계속 듣고 싶었다. 신기하게도 미친년이라 생각하며 죽여버리겠다고 타오르던 지독한 제 마음도 한풀 꺾여버렸다. 지금은 제 혓바닥으로 더욱 여자가 소리를 내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결국, 그는 혀를 날름거리기 시작했다.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최대한 혓바닥의 감각을 열고 입술을 누르고 달라붙어 있는 부드러운 살덩이의 모양새를 느끼려 애를 썼다. 좌우로 벌려진 작은 살점을 혀로 스륵스륵― 펼쳐 덧그렸다. 작은 살점이 벌려지자 새콤한 살점을 따라 혀를 움직였다.
살점의 끝, 얇은 포피에 싸여 있던 올라붙은 동그란 알갱이가 뾰족한 혀끝에 걸렸다. 그는 혀끝을 움직여 표피를 벗겨내고 알갱이를 쪼옥 빨아올렸다. 순간 여자가 허벅지를 꽉 조여왔다.
“흐으으! 하아앙… 하읏!”
젠장. 이게 무슨 일인지. 가슴이 미친 듯이 술렁거렸다. 기분이 붕 떠올랐다. 여자의 신음이 뭐라고 이리 좋은지. 순식간에 관용이 솟아올랐다. 자신을 이리 묶어두고 미친 짓을 해대는 여자에게 설레기 시작했다.
파르르 떨어대는 여자의 음부가 얼굴 전체에서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즐거움이 피어오른다. 이제는 이 달콤한 여자의 신음을 듣기 위해선 거리낌 없이 그녀의 성기를 빨아줄 자신이 있었다.
혀를 넓게 펴고 물이 줄줄 흐르는 구멍 주변을 쭙쭙 빨아대다 혀끝을 뾰족이 세워 음핵을 빙글빙글 돌리고 톡톡 건드리다 쭈웁하고 빨아올렸다. 여자는 참지 못하겠는지 엉덩이를 흠칫거리며 허벅지 근육을 달달 떨어댔다.
“흐읏, 초보 주제에 취향이 고약하다고 생각했는데… 제, 제법이 잖… 하읏!”
턱을 들고 회음부를 비벼대다 코끝으로 그녀의 갈라진 틈을 길게 밀어 올리다 쿡쿡 찌르길 반복했다. 그는 혀를 길게 빼 올려 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순식간에 뿌리까지 밀려들어간 채 주름진 살점에 먹혀버렸다. 콱콱 물려오는 살점의 내벽을 느끼며 혓바닥을 천천히 돌렸다.
들썩들썩.
여자의 허리가 얼굴 위를 비비고 둥글게 흔들린다. 새콤한 액이 줄줄 흐르며 얼굴을 적셔갔다. 코에도, 날카로운 턱에도 진득하니 젖어간다. 그 속도가 제법 빨라졌다.
셀로신은 더운 숨을 구멍 속에 내뱉으며 혀를 밀어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한껏 비벼지는 살덩이에 마찰된 애액이 입술 위로 하얀 포말을 만들며 뚝뚝 떨어져 내렸다.
좆이 터질 듯 솟아올라 꺼떡거렸다.
이런 게 뭐라고 흥분을 하게 될 줄이야. 여자의 사타구니를 빨아대는 행위에 자신이 이토록 흥분할 줄 몰랐다. 숨이 급해진다. 좁은 통로에 막혀버린 입술과 혓바닥이 아려왔다. 그러나 멈출 생각은 없었다.
헉헉대는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마구 위아래로 비벼대고 동그란 살점을 빨아올리다 앞니로 살금살금 짓씹었다. 순간 여자의 온몸이 경직되며 파르르 떨려왔다.
“흐으응! 하응!”
주르륵―.
뜨뜻미지근한 액이 얼굴 위로 쏟아져 내렸다.
가냘픈 손가락이 머리통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두피가 확 당겨지고 얼굴이 엉덩이 살에 파묻히는 순간 얼굴 위로 물이 뿜어졌다. 여자는 전력 질주라도 한 사람처럼 숨을 토해 내며 한동안 머리통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거친 숨소리. 쿵쿵 울리는 심장 소리와 머리 위에 얹힌 풍만한 가슴, 얼굴 위로 뭉근히 비벼지는 젖은 살결. 그 모든 게 현실 같지 않았다.
“나… 잘한 겁니까.”
셀로신은 여자에게 답을 갈구하듯 물었다. 하, 기가 막히게도 여자의 칭찬이 듣고 싶었다.
답이라도 하듯 여자의 손길이 머리통에서부터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젖어버린 머리꼭지에서 아래로 살살 쓰다듬는 손길에 그녀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분명 칭찬이었다. 거부할 수 없는 손길은 머리통을 타고 내려와 귓불을 살살 비벼댔다.
팽팽하게 솟아있던 페니스에서 정액이 쏘아졌다. 더운 정액이 여자의 엉덩이에라도 묻었는지 피식 숨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 미치겠다. 셀로신은 고작 여자의 칭찬 한 번에 사정하고 말았다.
얼굴 위를 뜨겁게 짓누르고 있던 살덩이가 떨어져 나갔다. 자그마한 손바닥이 얼굴을 쓱 닦아준다. 그게 또 얼마나 상냥하던지 아쉬웠다. 아쉬워서 그녀가 더 앉아있어 주었으면 싶었다. 하지만 여자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또각또각하고 구두를 챙겨 신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원하셨던 털깎기, 대딸, 보빨, 페이스 시팅에 얼굴 분수 모두 완료했습니다.”
절정의 여운을 뒤로 한 채 그녀는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이상했다. 처음엔 저를 감금한 여자의 행동에 극심한 분노가 치밀었건만. 지금은 저 딱딱한 말투가 아닌 신음을 흘리던 야릇한 그 목소리로 저를 불러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그의 소망과는 다르게 서걱거리고 무언가를 잘라내는 소리가 들렸다.
“손발은 풀었으니 제가 나간 뒤 샤워하시고 돌아가시면 됩니다.”
여자의 말에 그는 재빨리 얼굴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잡아당겼다. 그 달콤한 신음의 주인공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눈썹 위에 맺힌 물방울도 물방울이지만 방 안 자체가 어둑했다. 일렁거리는 촛불만이 테이블 위에서 빛을 내뿜을 뿐이었다.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여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 * *
“늦으셨습니다.”
집사 에스텅이 재킷을 받아 들고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셀로신은 그의 말에 답 없이 끄덕였다. 그는 옷을 벗어 던지곤 젖은 머리칼을 털었다. 샤워를 하고 왔지만 흐릿하게 남은 여자의 향기에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간다.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평소대로.”
에스텅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물러났다. 평소대로라 함은 이제부터 쉴 테니 일절 방해하지 말라는 소리였다. 그는 뒤로 물러나면서 테이블을 체크했다. 왕성에서 온 중요한 편지는 주인에게 전달해야 했다.
“국왕 폐하께서 보내신 서신은 서랍에 넣어 두었습니다. 기다리시던 서신이실 텐데 지금 바로 답변하시게 준비해 드릴까요?”
“아니, 조금 있다가 알아서 하도록 하지. 그나저나 에스텅, 털깎기, 페이스 시팅이 무엇인지 아나?”
“털깎기요? 양털이라도 깎으시려고 물으시는 겁니까.”
“아니… 됐어.”
셀로신은 물러나라 손짓을 했다. 에스텅이 나간 후 그는 소파에 털썩 앉아 머리를 싸맸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겪은 일은 정상적인 생각을 하는 이에겐 낯선 것들이었다.
털깎기, 대딸, 보빨, 페이스 시팅에 얼굴 분수? 내가 그런 걸 원했다고? 누구의 사주인지 모르겠지만 꽤나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게다가 그 여자. 입이 험한 듯했지만, 억양이나 발음을 생각해보면 예의가 있는 사람이었다. 거친 듯하면서도 부드러운 손짓의 여운이 아직도 가시질 않았다.
입술을 비벼대던 여린 살점과 제 혀를 물어대던 주름진 좁은 구멍이 떠올랐다. 동시에 아랫도리가 불끈하고 힘이 들어갔다.
“미쳤군.”
셀로신은 마른세수를 하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덩굴무늬는 평소와 같았다. 달라진 건 저 하나였다. 여자의 얼굴도 아니고 음부만 떠오르다니. 미친놈이 따로 없다. 안대 사이로 보이던 작은 구멍이 어른거린다. 혀로 덧그리던 젖은 살이 아직도 입속에서 굴러다니는 것 같다.
“하아….”
벌떡 솟아오른 페니스가 바지 속에서 아우성을 쳐댔다. 그는 겹단추를 풀어내곤 바지를 내렸다. 팽팽히 접혀있던 기둥이 단박에 머리를 들어 올렸다.
핑크빛 소시지가 반짝거린다. 터럭 한 점 없는 매끈한 모습이라니…. 기억도 못 할 아기였을 때 이후로 이토록 반들반들한 적은 없을 터다. 여자가 깎아 놓은 흠결 하나 없는 피부를 바라보자니 헛웃음만 나왔다.
칼질이 처음이라 했던가. 그녀는 재능이 있는 게 분명했다. 소드 마스터가 깎아 놓은 것처럼 털 한 올 남아 있지 않았다. 상처 또한 없었다. 얼마나 그녀가 조심스레 작업한 건지 알 수 있었다.
‘움직이지 마. 너도 알다시피 나 칼질 같은 건 해본 적 없어.’
그나저나 너도… 알다시피 난… 칼질을 해본 적이 없다고? 그렇다면 내가 아는 사람이란 뜻인데. 대체 누구인지 떠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은연중에 들리던 그녀의 특이한 딕션을 생각해보면 알 것 같기도 하지만 묘하게 기억이 흐릿했다. 게다가 여자는 정확히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셀로신. 비록 지하 마굴에서만 사용하는 가명이었지만 여자는 그의 이름을 정확히 지칭하고 있지 않았던가.
“읏…!”
그는 문득 정신없이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손가락에 엉겨 붙는 진득한 액에 불쾌해졌다. 발정기를 맞은 짐승 새끼처럼 흥분에 도취하여 어느새 제 것을 쥐고 흔들고 있었다.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허?”
기가 막힘과 동시에 입 안에서 짜릿한 새콤함이 떠올랐다. 처음 느껴본 여자 음부의 맛이 입 안에서 맴돈다. 목이 탔다. 셀로신은 목을 옥죄고 있던 목 프릴을 잡아당겼다.
하아. 입 안이 뜨겁게 끓어오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뻐근하게 조여왔다. 여자의 달콤했던 살결의 향이 당장이라도 코끝에서 느껴지는 듯했다. 도톰했던 두 덩이 살을 게걸스레 빨아댔던 게 꿈만 같다. 흥분을 북돋아 올렸던 가는 신음이 귓가에서 웅웅 맴돈다.
젠장!
그 자그마한 보지살에 제 것을 박아 넣고 쑤셔주고 싶었다. 혓바닥이 아니라 손가락을, 손가락이 아니라 아직도 질질 정액을 흘려대는 제 좆 대가리를 그곳에 밀어 넣고 싶었다.
분명 그 여린 목소리로 음탕하게 신음을 흘려대겠지. 자지러지며 발발 떨어댈 그 허벅지는 또 어떻고.
거친 욕설을 내뱉는 주제에 가냘프기 짝이 없었다. 양쪽 볼에서 느껴지던 도톰한 허벅지살에 얼굴을 좀 더 비벼볼걸. 아쉬움이 밀려온다. 보지살을 제 얼굴에 박아대고 비벼대던 그녀의 몸짓을 눈앞에서 볼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도 치를 수 있을 것 같았다.
혀로 나른하게 입술을 핥았다. 아릿했던 감각은 이제 기억 속에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지를 정리하고 테이블 위에 있던 서신들을 읽기 시작했다. 이렇게라도 머리를 식히지 않는다면 여자의 음부나 생각하는 변태 새끼가 될 것 같다.
봉투에 붙은 실링을 뜯어내 한 장, 한 장 꼼꼼히 읽었다.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서류를 마무리할 때쯤 에스텅이 말한 중요한 서류가 떠올랐다. 국왕 폐하가 보낸 것이라 했던 그것이 이제야 떠오르다니.
그는 서랍을 열어 밀랍으로 봉인된 편지지를 꺼냈다. 우아하게 찍혀있는 독수리 모양 실링을 보니 왕실에서 공식적으로 보낸 서신이었다.
봉투를 열자 정갈한 글씨로 다정한 형님의 간곡한 부탁의 글이 적혀있었다.
[나의 사랑하는 아우, 엘런트 듣거라.]
로 시작하는 글귀는 혼기가 찬 동생에 대한 걱정이 한가득 담겨있었다. 셀로신은 평소와 같은 지루한 걱정에 대충대충 글을 사선으로 읽다 순간 한 대목에서 멈춰 서고 말았다.
결혼을 명령하는 문장과 그 혼인 대상자의 이름에서 그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네 혼약 상대는 6서클 마법사 포르틸라 경이다. 그녀는 곧 7서클을 눈앞에 두고 있는 대마법사의 자질이 있는 인재로 꼭 네가 그녀와 혼약을 치러 나라에 큰 힘이 될 수 있게 도와주길 바란다.]
왕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그가 결혼을 명하면 목에 칼이 들어오는 한이 있더라고 해야 하는 것이 왕의 명령이었다. 모든 귀족은 왕의 승낙이 없으면 결혼을 할 수 없었다. 귀족의 결혼이란 정치의 하나였다. 남자와 여자의 가문은 서로 결혼이라는 장치로 결합하여 세력을 키워갔다.
혹자들은 그것을 ‘결혼 장사’라고 낮잡아 불렀지만, 그것은 현실이었다. 힘 있는 가문과 가문이 합작하여 영광을 오랫동안 누려왔다.
셀로신은 뒷목을 잡았다. 그의 나이 29살, 결혼 시장에서 늦었다면 상당히 늦은 나이었지만 늘 태평했었다. 현 국왕이자 자신의 형님은 그의 비혼 선언을 받아들여 셀로신의 선택을 존중했었다.
그런데 엄청난 조건의 여자가 나타나니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하긴, 6서클 마법사라니. 어느 나라에서라도 탐낼 인재였다. 그녀 한 명으로 국운이 좌지우지될 수준일 걸 고려하면 그녀가 본국에서 태어난 걸 감사해야 할 지경이었다. 혹여나 그녀가 타국의 남자와 결혼이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좌불안석이 될 것이 뻔한 일.
6서클 마법사라 함은 왕국을 떠나 전 대륙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만큼의 희귀한 천재였다. 그녀는 12살에 이미 5서클을 달성하고 평생을 공부해도 쉽지 않을 거라 했던 6서클을 넘어선 건 18살 때였다. 그 뒤로 3년. 마법사들의 말을 들어보자면 그녀는 곧 7서클에 도달할 거라 했다. 그렇다면 정말 대륙 최고의 유일무이한 무력을 지닌 괴물이 된다는 뜻이었다.
1, 2서클은 가벼운 물체에 마나를 느끼는 정도로 마법의 첫걸음을 시작하는 단계였다. 그 후 3서클이 돼서야 겨우 공중에서 물 화살을 만든다던가, 불덩이를 구현해낼 수 있었다.
4서클부터 진정한 마법사로 인정해 주며 그들은 주문 영창으로 한꺼번에 수십 발의 화살을 쏘아 올렸고 사람 머리통만 한 불덩이를 날려 적군의 진지를 아비규환으로 만들 수 있었다.
5서클. 그야말로 나라에서 모셔가려고 난리가 나는 단계인데, 그들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나라의 국력은 하늘을 치솟았다. 그들은 군대의 절반을 박살낼 만큼의 힘을 가졌고 텔레포트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어 타국의 왕실까지 순식간에 숨어들어 중요한 인물들의 목을 잘라오는 것 정도는 숨 쉬듯 해낼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랬기에 5서클 마법사의 존재는 그야말로 두려움의 상징이었다.
그런 5서클을 15살에 이미 달성한 여자였다. 6서클은 대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런 판에 곧 7서클이 될 것 같다니. 형님이 눈에 불을 켜고 제게 결혼을 밀어붙이려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꿀걱―. 셀로신은 마른침을 삼켰다. 방금만 해도 머릿속을 헤집던 여자의 음부는 저 멀리 날아간 지 오래다.
그는 포르틸라를 알고 있었다. 마굴에서 만난 건방진 꼬맹이.
* * *
셀로신은 과거를 떠올렸다. 이난 포르틸라 드 가브리엘. 그녀와 비공식으로 만나 트러블이 생긴 건 6년 전이었다. 지하 마굴이 발견되고 탐험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마굴에서 쏟아지는 마물들은 놀랍게도 나라를 풍요롭게 해주었다. 풍부한 마정석의 질 높은 마나의 양은 감히 상상도 못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몬스터가 레벨이 높을수록 그 심장에서 쏟아지는 마정석은 엄청난 돈벌이가 되어 소문에 소문을 달고 온 대륙으로 퍼져 나갔다.
사냥으로 시끄럽던 마굴은 늘 돈벌이에 혈안이 된 용병들과 기사들로 정신이 없었고 대형 몬스터를 잡기 위한 위치 선정으로 피를 부르는 다툼이 끊이질 않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소녀 한 명이 마굴을 평정한 사건이 벌어졌었다.
키는 제 가슴팍에나 올까. 셀로신의 덩치가 크다지만 소녀는 정말 자그마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가 5서클이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땅꼬마라 불러도 할 말이 없을 만큼 작은 소녀가 얼마나 성깔이 대단하던지. 셀로신이 무려 두 달을 죽치고 있던 사냥터에 쳐들어온 꼬맹이가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했다.
‘여기가 왕도마뱀이 나온다면서요? 아저씨, 그만 올라갈 때 되지 않았어요?’
그의 곁에 수북이 쌓인 마정석을 가리키며 23살 앞날 창창한 청년에게 아저씨라고 칭하던 꼬마. 게다가 당당하게 이만 꺼지라고 말하던 소녀.
셀로신은 그녀를 익히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큰 사건이 있던 그 날 만났던 소녀. 그는 그 소녀를 생생히 기억했건만 그 꼬맹이는 저를 조금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 번 보고 들은 건 잊지 않는 천재라더니….
게다가 아저씨라니? 꼬맹이의 말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그는 흘긋 소녀를 바라보았다.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소녀는 여전히 말괄량이였고 자그마했다. 그는 소녀가 위험해질까 봐 신경이 쓰였다.
‘꼬마야.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온 거냐. 위험하니 어서 집으로 가서 우유라도 한 잔 더 마시고 따듯한 곳에서 잠이나 자렴.’
‘누, 누구보고 꼬마래. 싫으면 싫다고 해요! 헛소리하지 말고.’
꼬마라고 불린 소녀는 무척이나 화를 냈다. 아니, 저도 나한테 아저씨라고 해놓곤…. 결국 셀로신과 소녀는 왕관 도마뱀의 둥지 곁에서 함께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왕도마뱀이라 불리는 거대한 왕관 도마뱀은 마굴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자랑하는 대형 몬스터였다.
셀로신은 소녀의 사냥을 지켜보기로 했었다. 소녀는 당당하게 셀로신의 사냥터 옆에 자리를 잡았다. 소녀는 그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은 채 땅바닥에서 몇 날 며칠을 노숙했다. 그러면서 조용히 앉아 영창을 미리 준비했다.
마법 주문을 영창하는 속도는 그야말로 마법사의 소양이자 기본기. 마법 주문은 무척이나 까다롭고 복잡했기에 수학자들 중에서도 마법사들과 자연의 구조에 관해 설전이 붙으면 한 수 접고 들어간다고 했다. 15살 정도 된 소녀는 마법 계산이 무슨 소꿉장난인 양 땅바닥에 나뭇가지로 죽죽 도형을 그려가며 왕도마뱀을 기다렸다.
‘네 실력은 모르겠다만, 위험하니 이만 돌아가는 게 어때?’
셀로신이 검을 점검하며 묻자 소녀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기가 아저씨 땅이에요? 아니잖아요. 신경 꺼요.’
저를 걱정해서 한 말이었건만, 그사이 어떻게 자란 것인지 정말 되바라지기가 끝장을 달리던 소녀였다. 셀로신은 더는 그 소녀에게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어색함이 가득한 일주일이 흐른 후. 왕관 도마뱀이 나타나자 소녀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무형의 고리를 만들어 도마뱀을 묶어버리더니 단박에 바람의 칼날로 다리를 잘라버렸다.
셀로신은 실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가 여태 봐온 5서클 마법사들도 저리 마법 주문을 순식간에 내뱉지 못했다. 포르틸라는 그냥 숨을 쉬듯 주문을 내뱉고 산책을 하듯 마법을 구현해냈다. 그녀의 실력에 진심으로 감탄을 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왕관 도마뱀은 무리 지어 나타나 순식간에 꼬맹이를 반쯤 죽을 만큼 몰아붙였다. 소녀는 마나가 부족한 듯 몸을 제대로 가누질 못했다.
셀로신은 재빨리 위험에 빠진 아이를 위해 검을 휘둘렀다. 번쩍이는 검광에 순식간에 목숨을 잃은 왕관 도마뱀은 바닥에 널브러졌고 그는 자그마한 꼬맹이를 시체 더미에서 끄집어냈다.
‘살아있냐? 꼬맹아?’
‘흐으… 손, 치워요.’
소녀가 그의 도움을 거부하는 그때,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무리가 그에게 아는 척을 했다.
‘오, 그대가 셀로신 경! 역시 소문으로 듣던 대로군요. 벌써 왕관 도마뱀을 이리 난도질하셨다니. 실력이 출중하십니다.”
셀로신은 저 혼자 잡은 게 아니라고 말을 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순식간에 다가와 왕관 도마뱀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으며 헛소리를 했다.
‘나머지 뒤처리는 저희가 하겠습니다.’
셀로신은 제 사냥터에 들어와 도적놈처럼 개소리하는 예의 없는 놈들의 차림새를 훑어보았다. 제국에서 온 기사들인지 몰라도 번쩍거리는 갑옷과 날카로운 검을 보아하니 제법 실력이 있는 자들이었나 보다. 도마뱀의 심장을 갈라 마정석을 끄집어내는 것도 상당히 매끄러웠다.
하지만 소녀는 마정석이 간절했는지 다친 와중에도 소리를 질렀다.
‘이봐요! 거기 한 마리는 내가 잡은 거예요!’
‘뭐라? 이 꼬맹이가 어디라고 함부로 입을 놀리고 거짓말을 해.’
기사들은 화를 내며 포르틸라를 쫓아냈다. 소녀는 무척이나 억울한 듯 셀로신을 바라보았다. 아저씨도 봤지 않냐는 눈망울이었다. 셀로신은 그녀를 옹호하기 위해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틈을 기사들은 주지 않았다.
‘요즘 개나 소나 다 기어들어 와서 마법사 흉내를 낸다더니 저런 하찮은 계집애도 제가 대마법사라도 되는 줄 아나 보군. 너 같은 어린애가 들어와서 놀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어서 저리 꺼져라!’
셀로신은 순간 고민했다. 그들의 말이 맞기도 했다. 한 번 정도야 운이 좋아 왕관 도마뱀을 잡았다지만 마굴은 위험천만한 괴수들의 서식지이다. 거대한 놈이 또다시 무리를 지어 나타나면 아무리 마법사라 해도 저 꼬맹이는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심장이 쿵 하고 떨려왔다. 소녀가 위험천만해진다는 생각에 피가 식어내렸다. 하지만 소녀가 잡은 건 잡은 것. 그는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가 다시 진실을 말하려는 찰나 소녀는 눈을 부릅뜨곤 셀로신에게 원망의 눈길을 보냈다.
‘누가 개고 소인지 알려줄게요.’
순식간에 소녀는 기사들에게 불기둥을 선사했다. 2미터는 됨직한 커다란 화염 덩어리가 기사들을 발밑에서 솟아올랐다. 그들은 미친 듯이 열기에 반쯤 녹아내린 갑옷을 벗어 던지며 단박에 무릎을 꿇었다.
셀로신은 그 모습에 속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그녀가 영창을 하는 걸 보지 못했는데. 언제 주문을 외웠는지 화염 덩어리는 눈앞에서 빙글빙글 춤을 춘다.
‘빌어먹을, 아저씨도 불로 구워줘?’
무척이나 실망한 소녀의 말투는 무척이나 거칠고 짧아졌다. 셀로신은 미간을 찡그렸다. 이제 와 변명을 하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차라리 두 번 다시 못 오게 만들어서 꼬맹이의 안전을 확보하는 게 나았다.
‘꼬맹아, 위험하니 두 번 다시 들어오지 말거라.’
결국, 셀로신은 무력행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꼬맹이를 들어 마굴 입구까지 안전하게 데려가 집으로 돌려보냈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어리석은 짓이었지만 당시에는 화가 난 고양이 같은 아이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 수 없던 시절이었다.
아마 그때였을 거다. 꼬맹이가 원망하듯 저를 쫓아다니기 시작한 시기가. 제 것을 빼앗으려 했던 기사들과 자신을 한 묶음으로 생각한 게 분명했다. 그 뒤 소녀는 마굴에서 마주칠 때마다 셀로신을 바라봤다. 그럴 때마다 차가운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심지어 꼬맹이는 저를 보고 악담을 퍼부었다.
‘퉤, 도둑놈.’
제대로 오해를 샀다. 불쾌하지만 어린애를 상대할 생각은 없어 넘겼건만. 이렇게 꼬일 줄이야.
그런 꼬맹이와 결혼을 하라고? 골치가 아파졌다. 그녀가 경멸하는 사내가 자신이었을 터다. 어느 순간부터 포르틸라는 더는 마굴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덕분에 오해를 풀 만남은 가져보지도 못한 채였다. 덕분에 완전히 포르틸라의 눈 밖에 나버렸다.
그 꼬맹이. 분명 저를 죽도록 싫어했다. 과거의 인연을 생각하면 더는 그녀에게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거절을… 당장이라도 이 혼약을 시작도 하지 말아야 했다.
그는 급히 에스텅을 부른 뒤 말을 꺼내오라 했다.
“어디 가시려고 그러십니까.”
“왕궁. 가서 형님께 이 결혼 못 한다고 말씀드려야겠다.”
“결혼이요? 아,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결혼 때문에 곧 손님이 오실 거라 서신이 왔습니다.”
“손님?”
“이난 포르틸라 드 가브리엘 경이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네 지금이요.”
젠장. 셀로신은 다시 방으로 뛰어 올라갔다. 이렇게 된 거 차라리 공작의 모습으로 그녀의 눈 밖에 나는 게 나을 터였다.
디프런스트 공작령의 주인.
현재 그의 공식적인 모습은 국왕의 둘째 남동생이자 공작위를 가지고 있는 병약한 사내였다. 이름 또한 엘런트 S. 디프런스트. 어려서 목에 탯줄을 감고 나와 죽을 뻔한 남자. 성격 또한 소심하고 몸이 약하다 보니 정계에는 관심이 없는 병약한 사내.
그것이 엘런트 공작의 공식적인 모습이었다.
그는 재빨리 몸의 기운을 역으로 돌렸다. 그의 몸이 뿌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서서히 줄어들었다. 떡 벌어진 어깨는 좁아졌고 탄탄한 근육은 모조리 빠져버렸다. 두꺼웠던 가슴팍이 줄어들고 온몸이 날씬해졌다.
그 모든 건 그가 극의에 달하는 소드 마스터였기 때문에 체형을 변형시키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전투에 특화되었던 가죽옷들을 훌렁 벗어버리고 프릴이 하늘거리는 셔츠를 챙겨 입었다. 푸른색 조끼를 입고 최대한 어깨를 둥글게 말았다. 등을 숙이고 도수 높은 안경을 콧등에 올려놓았다. 머리칼을 풀어헤쳐 이마를 가리고 흐릿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거울을 들여다보니 빈약한 사내의 표본인 양 연약한 사내가 서 있었다.
“공작 각하. 가브리엘 경이 도착하셨습니다.”
그는 심호흡했다. 누가 뭐라 해도 이난 포르틸라는 똑똑한 여자였다. 그녀를 속이기 위해서는 최대한 능력 없고, 빈약하고, 어리숙해 보여야 했다. 그는 걸음걸이마저 힘을 쭉 빼곤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갔다.
“어서 오십…시오.”
셀로신은 저택의 입구에 서 있는 여자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저게 이난 포르틸라라고? 제 기억 속의 건방진 꼬마가 아니었다.
완연한 여성의 모습을 한 우아한 여자가 서 있었다. 붉은 셔츠와 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감색 로브를 걸치고 연한 핑크색의 물결치는 머리칼을 양쪽으로 곱게 내리고 있었다.
“급하게 찾아와 죄송합니다.”
여자는 살짝 무릎을 굽히며 인사했다. 부드러운 억양이 음악 소리처럼 들려온다. 셀로신은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다 다시 정신을 차리곤 인사를 받았다.
“저야말로 무례를 저질렀군요. 응접실로 모시겠습니다.”
“아니요. 저는 공작님과의 결혼을 거절하러 왔습니다. 서신으로 청하려 했지만, 국왕 폐하의 명령이라 직접 찾아뵙고 당사자 간의 합의를 이끌면 취소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오게 된 겁니다.”
셀로신은 순간 그녀의 말에 당황했다. 그녀가 먼저 파혼을 요청해올 줄이야. 두 손 들고 환영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이게 무슨 일인지.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묘하게 익숙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익숙한 정도가 아니다. 억양이나 말투, 숨 쉬는 타이밍까지. 바로 오늘 아침에도 들어봤던 그 목소리였다.
그는 잠시 침묵을 하다 고개를 저었다.
“그런 중요한 건 차를 마시면서 충분히 상의를 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도 형님의 명령을 쉽게 거부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라서요.”
“하아… 그러시겠죠. 제가 무례했습니다.”
여자는 그가 내민 손 위에 제 손을 겹치며 자연스레 응접실로 향했다. 셀로신은 제 손바닥 위에 올려진 작은 손바닥을 가늠했다. 제 머리통을 쓸어주던 그 상냥한 손길.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이난 포르틸라는 사내를 경멸하는 여자였는데. 그런 여자가 제게 미친 짓을 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 특유의 딕션을 생각하면 의심이 밀려왔다.
그는 눈을 딱 감고 그녀의 드레스 자락을 뒤에서 밟았다.
“으응!”
갑작스러운 사고에 작은 비음과 함께 포르틸라는 넘어지려 했다. 그는 재빨리 그녀의 허리를 감아올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셀로신은 귀가 유난히 좋았다. 바닥에 떨어지는 깃털 소리도 분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여자… 제 얼굴에 보지를 들이밀고 비벼대던 여자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