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이난 포르틸라는 대마법사였다. 마도 시대 이후 그 누구도 닿지 못했다는 6서클 마스터였다.
마법에는 여러 단계가 있었다. 인간이 닿은 최고의 서클은 7서클. 그것도 마도 시대에 단 한 명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칠십 평생에 걸쳐 10년에 한 레벨씩 7서클에 도달했다고 했었다.
하지만 포르틸라는 달랐다. 그녀는 초반 2년간 1, 2서클 레벨은 단박에 깨우쳐버리고 그 뒤론 죽 3년 주기로 레벨을 올려 갔다. 그런 엄청난 속도로 포르틸라는 고작 18살에 6서클에 이르렀으니, 21살 성인이 된 지금 1~2년 내로 그녀는 7서클에 다다를 거라는 말이 돌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포르틸라를 보고 사람들은 도도하고 건방진 마법사라고 불렀다. 그녀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포르틸라를 잘 모르는 말이었다.
그녀는 무척이나 소심했다. 어려서부터 마법에 재능이 넘쳐 마법 연구만 하다 보니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잊어버렸다. 게다가 그 어렵다는 마법 수식을 아기 때부터 이해하는 천재다 보니 일반 사람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도 이해나 했을까. 그러다 보니 오해만 쌓여간 것이었다.
포르틸라는 늘 자신의 연구실에서 틀어박혀 있었다. 마법을 연구하는 데는 마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필요했기에 그녀에겐 막대한 마정석이 필요했다.
보통 마법사들은 자연에서 마나라는 에너지를 구해 마나홀이라는 몸의 중심에 쌓아둔다고 한다는데, 포르틸라의 몸은 무척이나 작았기에 마나를 쌓아두기에 부족했다. 해서 그녀는 외부에서 마나를 끌어모아 마법을 펼칠 수 있었다.
사실 알고 보면 반쪽짜리 마법사라는 게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워낙 머리가 비상하다 보니 그 단점을 덮고 마나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줄 알았다. 물론 피나는 노력이 필요했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그걸 보지 못하고 그저 6서클 마스터라는 그녀의 능력에 시기와 질투로 인한 나쁜 말을 내뱉기 일쑤였다.
“하아…. 마정석이 더 필요한데.”
핑크빛 웨이브 진 머리칼이 어깨 위로 흘러내렸다. 조막만 한 얼굴에 자그마한 키. 오밀조밀한 코와 입술. 그나마 큰 거라곤 예쁜 루비색의 커다란 눈동자였다. 무척이나 귀여운 외모의 포르틸라는 몇 개 남지 않은 마정석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나라에서 지급해주는 마정석이 요즘 따라 매우 많이 줄었기 때문이었다. 대륙 정세가 불안하다는 게 이유였다. 전쟁이 일어날지도 몰라 마나를 이용한 전쟁 물자에 마정석이 최우선이 되었다고 했다.
게다가 최근 마정석을 채굴하는 마굴 안에도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와 함께 마굴의 지배자 셀로신이라는 남자가 마정석을 싹쓸이해 버렸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었다.
“이러다간 7서클의 경지는 구경도 못 해보겠네.”
7서클이 되려면 정말 상상도 못할 막대한 양의 마나가 필요했다. 그동안 국왕 폐하가 대귀족도 아닌 평귀족인 그녀에게 천문학적인 금액의 마정석을 지원해준 게 다 이유가 있던 거다.
그녀를 전쟁이 터지면 가장 믿을 수 있는 전쟁 병기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건 그녀도 알고 있었다. 뭐, 6서클 정도의 마법사는 대륙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귀한 마법사이기도 하지만 그녀는 전쟁에 나가 손짓 한 번이면 헬파이어라는 불덩이를 하늘에서 쏟아낼 수 있었다. 그랬기에 그녀의 고향에선 아직까지 전쟁의 기운이 돌지 않고 있었기도 하고.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아니었나 보다. 마정석이 씨가 마른 걸 보니….
포르틸라는 불안했다. 국왕 폐하는 그녀가 어서 7서클이 되길 바라고 있었다. 무소불위에 무서운 마법인 메테오 스톤이라고, 하늘에서 운성을 불러와 지정한 위치에 떨어뜨리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길 바랐다. 정말 그건 마도 시대의 유물에서나 찾을 수 있는 마법이건만. 그걸 그녀에게 해내라고 부담을 주었다.
한 나라를 지키는 국왕의 입장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메테오 스톤이라면 어느 곳도 이 나라를 감히 넘볼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정말 무서웠다. 포르틸라는 마법 학문에 목이 마른 마법사였지만 사람을 다량 살상하는 마법 서클에 다다르라는 게 두려웠다. 그건 정말 스트레스였다.
해서, 포르틸라는 그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찾았다. 참 우습게도 SM플레이, 즉 여왕님 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무척이나 소심한 성격이었기에 타인에게 험한 말을 할 줄 모르는 여자였다. 그런 여자가 여왕님 놀이라니.
그런데 신기하기도 하지. 평소에 기를 펴고 살지 못한 사람이 누군가를 지배하는 느낌을 알게 되니 그 희열은 말도 못하게 커다랬다. 게다가 이 여왕님 놀이는 그녀의 성격 개선에 도움도 되었다. 딱히 몸을 파는 것도 아니고 남자들을 때려주고 욕을 좀 뱉어주면 되는 일이었다. 덕분이 이런 놀라운 일거리도 들어오고 말이다.
‘의뢰서….’
그녀는 제 손에 쥐어진 비단에 싸여있는 서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글귀에 손끝이 덜덜 떨렸다. 보고 또 보아도 편지의 발신인은 적혀있지 않았다. 그저 이런 최상급의 고급스러운 재질의 종이는 쉽게 구할 수 없다는 것과 왕성에서 사용한다는 정도만 알 뿐이었다.
붉은색 커다란 눈동자가 가느다랗게 변했다. 발신인도, 의뢰인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서신. 그러나 결코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종이의 재질이라니. 대체 무슨 의도로 제게 전해진 서신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다만 확신할 수 있는 건, 의뢰인은 셀로신과 아는 사이라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이런 부탁을 할 리가 없다.
셀로신, 그가 누구던가. 마굴 최고의 사냥꾼이며 지독하리만큼 도도하고 오만한 남자였다. 커다란 덩치는 맹수와 같았고 온갖 더러운 소문이 따라다녔다.
그런 남자를 묶어둘 터이니 그가 소원하는 SM플레이를 시켜주라고? 그녀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소원하는?’ 나 참네, 어처구니가 없었다. 본인이 의뢰하는 것도 아닌 타인의 의뢰라니. 그것도 무척이나 비밀스럽지 않은가. 그가 얼마나 많은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발신인을 알 수 없는 편지는 신뢰할 수 없었다. 그저 그렇게 무시하면 그만이건만 단 하나가 매우 거슬렸다.
‘셀로신이라니!’
어릴 적, 그러니까 15살 때쯤이었나? 아직 나라에서 마정석의 지원을 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마정석을 구하려면 막대한 돈이 들기에 하위 귀족이었던 그녀의 부모님은 전 재산을 긁어모아 지원을 해주었지만, 그 재산조차 거덜이 나버린 시기였다. 결국, 부모님께 더는 손을 벌릴 수 없었던 포르틸라는 마굴에 입성하게 됐다.
마굴에는 수많은 마물들이 우글거렸다. 그 마물들을 죽이고 심장을 열어보면 그 안에 둥근 돌멩이가 박혀있는데 그게 마정석이라 불리는 에너지 덩어리였다. 그걸 사람들은 채굴이라 불렀다.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긴 했지만, 당시 포르틸라는 5서클 마법을 막 깨우쳤을 때였다. 정말 자신만만할 때이기도 하고 혈기 왕성할 때이기도 해서 그 위험한 곳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러나 마굴을 정말 무서운 곳이었다. 마법 하나만 믿고 가기엔 그곳은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했었다. 하긴,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일이었다. 전 대륙에서 사용하는 마정석이 이곳에서 나온다. 그 많은 마정석은 괴물들의 심장을 도려내서 파낸 결과물이고.
그럼 얼마나 많은 괴수가 이곳에서 살고 있단 말일까. 보통 마굴 사냥을 가는 사람들은 홀로 다니지 않았다. 대규모의 인원이 ‘전쟁’을 치르듯 몰려 들어가 괴수 사냥을 하는 것이었다.
어리석었다. 그녀는 반쯤 죽을 뻔했었다. 그리고 그 죽을 뻔한 소녀를 구해준 것이 마굴의 주인인 셀로신이었고.
그는 정말 무서운 남자였다. 150센티밖에 되지 않던 꼬맹이 포르틸라에 비해 그는 190센티가 넘는 장신의 남자였다. 나이도 출신지도 모르는 남자. 소드 마스터라고 소문이 난 그는 정말 대단한 검사였다. 하지만 그도 5서클 마법을 사용하는 꼬맹이가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구해 주다니.
‘꼬맹아, 위험하니 두 번 다시 들어오지 말거라.’
쌍꺼풀 없는 눈매의 커다란 남자가 저를 덜렁 들어 올리고는 마굴 밖으로 던지며 매몰차게 말했다.
그때부터였나 보다. 그에게 지독한 호기심이 생긴 게.
포르틸라는 셀로신에게 궁금증이 생겼다. 그에 대해 알아보고 그를 만나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마굴의 주인. 그를 찾아 마굴 주변을 알짱거릴 때마다 남자는 그녀를 어린아이 취급했다. 수줍어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숨어서 보곤 했건만 그조차 그는 허용하지 않았다.
6서클이 되는 날 그의 앞에서 항의도 해보았지만, 그는 여전히 포르틸라를 아이 취급할 뿐이었다. 가질 수 없는 걸 가지고 싶은 마음이란. 시도 때도 없이 그가 생각이 났다. 아마도 어린 날의 짝사랑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그녀는 목구멍이 타는 느낌에 재빨리 곁에 있던 포도주 한 잔으로 입술을 축였다. 알싸한 알코올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자 화끈함이 번져간다. 붉은 시선은 서신의 한쪽 구석으로 향했다. 그를 묶어둔 장소.
[마르띠 살롱 303호실]
마르띠 살롱 303호. 그곳은 그녀가 은밀하게 남자들과 SM플레이를 위해 연간 계약을 맺어놓은 고급 룸이었다. 그곳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의뢰인은 뻔뻔할 정도로 당당하게 셀로신을 방에 감금해 두었단다. 숨이 턱 하니 막혔다.
대체 누구길래 은밀한 취미를 알고 연락을 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심각한 건 그게 아니었다. 마르띠 살롱의 방을 제멋대로 침입하다니…. 303호실엔 강력한 마법 결계까지 쳐두었건만 어떻게 파훼를 하고 들어갔다는 거지? 뒷골이 싸했다.
그동안 숨겨온 은밀한 취미생활을 어떻게 안 것이며, 방의 정확한 호수는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골치가 아파진다. 상대에 대한 배려 따윈 없는 제멋대로인 행동이며, 왕궁에서나 구할 수 있는 고급스러운 종이를 사용하는 의뢰인이라니.
왕족인가 싶지만, 그녀가 아는 왕족은 국왕밖에 없다. 국왕 폐하가 굳이 이런 귀찮은 일을 할 리가 없다. 혹여나 그녀와 플레이를 했던 남자 중 한 명일까 싶었다. 하지만 도통 떠오르는 자가 없다.
머리를 굴리던 그녀는 결국 편지를 쓰레기통에 집어던졌다. 위험한 냄새가 풀풀 나는 서신에 동조해 움직일 필요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술잔에 포도주를 연신 따라 마시며 침대에 털썩 누웠다. 모르는 척하고 잠들면 될 일.
그러나… 서신의 끝머리가 자꾸 그녀의 머릿속에 가서 달라붙는다.
「오늘 밤입니다.」
오늘 밤…이라고?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수평선 위로 넘어가는 태양에 금방이라도 어둠이 내려앉을 기세였다.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가락을 튕겼다. 쓰레기통에 처박혔던 편지가 손아귀에 빨려 들어왔다. 그녀는 거칠게 편지를 제 핑크색 머리칼에 마구 비벼댔다.
“흐으, 뭔가 말리는 느낌인데….”
하지만 셀로신이다. 그녀가 오랜 시간 짝사랑했던 남자가 아닌가. 정말 셀로신이 그 방에 있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만약에라도 그것이 거짓이라면 집으로 돌아오면 그만일 뿐.
가죽옷을 챙겨 입었다. 무척이나 남사스러워서 평소에는 절대 입을 수 없는 그런 옷이었다. 가슴만 겨우 가릴까, 손바닥만 한 가죽에 끈으로 이루어진 코르셋과 일체형으로 된 하이레그 가죽 팬티. 그리고 15센티는 될 듯한 킬힐을 신었다.
그녀는 핑크빛 머리칼을 뒤로 흔들어서 털었다. 거울에 비친 굽이굽이 흘러내린 머리칼과 검은색 코르셋의 여자는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였다.
“나는 여왕님이야.”
마법을 걸듯 중얼거렸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무척이나 소심한 성격이라는 사실. 게다가 여왕님 놀이를 시작한 건 정말 얼마 되지 않아 ‘여왕님인 척’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고안해낸 방법이 의상부터 여왕님처럼 차려입는 것이었다. 좀 과격한 옷을 입으면 제2의 인격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시작했는데 이게 또 은근 도움이 되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 붉은 립스틱을 들었다. 새빨간 입술이 반달을 그린다. 303호실에 있는 남자가 정말로 셀로신이라면 그를 위해 얼마든지 여왕님이 돼줄 생각이다.
포르틸라는 서랍을 열었다. 그곳에는 말을 탈 때 사용하는 패들이 달린 채찍이 들어있었다. 그걸 작은 손에 꼭 쥐곤 그녀는 순식간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