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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겉면이 깨끗한 편지 봉투가 책상다리 밑에 엎어져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어쩌면 저것이라면? 머릿속이 확 트인다. 그가 잽싸게 그것을 주워 들고 일어나 클로드의 가슴팍에 충격이 갈 정도로 팍 갖다 안겼다.
“대장, 가서 예쁜 옷 입고 세수하고 오십시오. 공주님 보러 가게. 아, 제발 그런 부모 잃은 표정 좀 짓지 마요! 사람이 그래도 숨은 쉬고 살아야 할 거 아닙니까? 가서 공주님 얼굴도 좀 보고 목소리도 좀 듣고 그러고 와요. 만나서 못 헤어지겠다고 드러누울 수 있으면 더 좋고.”
“네가 뭘 알아, 네가……. 난 이제 보고 싶어도 못 만난다고. 내가 내 입으로…….”
“융통성 없습니까? 아, 핑계는 만들면 되잖습니까!”
만나려고 작정하면 꾸밀 수 있는 계획이야 무한대 아니겠는가. 그가 책상 밑에서 주운 깨끗한 편지 봉투를 다시 한번 눈앞에서 흔들었다.
“이 편지, 수신인은 공주님으로 되어 있는데 발신인 자리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누가 보낸 건지 직접 만나서 전달하고 알아내 오십시오.”
자기가 이렇게까지 꼬치꼬치 다 알려 줘야 하는 거냐면서 제드는 억지로 클로드의 손에 편지를 쥐여 준다. 실감이 안 나는 건지 얼떨떨한 얼굴로 그것을 꼭 감싸 쥐는 기사의 눈에 실낱같은 희망이 보였다.
* * *
실연당한 남자가 된 뒤로, 확연하게 분위기가 거칠어진 총독이 한낮부터 거리를 마구 누비는 모습에 사람들은 모두 그의 눈치를 보며 살금살금 옆으로 피했다.
클로드는 처음에는 무작정 호텔로 들어가서 샅샅이 내부를 뒤지고, 그다음에는 태리가 잘 가는 상점들을 차례차례 둘러보았다.
하지만 어디로 숨어 버린 건지 그녀의 모습은 그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심지어 행방조차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언제나 훤하게 소식을 꿰고 있었는데 이제는 어디에 있는지조차도 알아낼 수 없다는 사실에 이별의 무게가 짙어져 기분이 처참해졌다.
하지만 클로드는 포기하지 않았다. 급기야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일일이 다 물어보고 다니기에 이르렀고, 심지어는 목숨 아까운 줄도 모르고 폐허에 혈혈단신으로 들어가 마법사들에게까지 캐묻고 다녔다.
“공주님을 찾고 있다. 별일은 아닌데 나는 꼭 찾아야 돼. 내가 꼭…… 꼭 그 사람을 봐야 돼. 그러니까 누구라도 아는 사실이 있다면 숨김없이 전부 고해라. 거짓말을 치면 가만두지 않겠다.”
별일은 아닌데 반드시 공주를 찾아야 하고, 못 찾으면 이자리스 전체를 털어서도 만날 거라고 그들을 닦달했다.
대체 뭔 소리여, 이게.
마법사들은 중요하다는 건지 안 중요하다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에게 어깨를 잡혀 뼛속까지 털렸다. 다행히 그 안에서 눈치가 빠른 한 마법사에 의해 태리는 아니지만 브리짓에 관한 간접적인 제보를 얻어 내는 데 성공했다.
― 흐음, 브리짓이 며칠 전에 여길 와서 잔뜩 뭘 사 가긴 했어. 요즘 걔 찻집은 문도 안 열고 장사도 안 하던데 그런 재료들이 뭐 하러 필요하겠어? 공주님을 몰래 만나서 뭔가를 주고 있는 거지. 아, 근데 마법사가 기사한테 이런 정보를 막 제공해도 되는 건가? 어이, 취소! 취소다, 취소! 이 개독 녀석이 아군인지 적군이지 헷갈리게 행동해서 내게 이런 실수를 하게 만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