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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담뱃대를 물고 다 썩어 빠진 창가에 다리를 걸치고 있는 엘프의 우아한 미간에 지그시 구김살이 생겼다.
“습관성인가.”
내리 며칠째 이런 식으로 죽치고 있었더니 저 창밖에서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는데도 인상이 펴지지를 않는다.
잘게 썬 약초 잎을 담뱃대에 왕창 구겨 넣으며 이즈는 진료소의 창문 너머, 맞은편에 서 있는 호텔을 바라보았다.
마법사 놈들이 떼거지로 위장 취업해서 운영하던 문제의 저 호텔은 며칠 새에 경계가 말도 못 하게 삼엄해졌다.
건물 외벽이 철판처럼 두꺼워지고, 침입자를 감시하기 위한 새떼들이 지붕 위에 일렬로 앉아서 주변을 전방위로 감시하고 있다.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들은 맹수처럼 거닐다가도 지나가는 행인들을 향해 하악 입을 벌리며 시시때때로 위협을 하곤 했다. 전부 다 저 안에 있는 마법사들이 부리는 그들의 하수인들이었다.
하지만 이즈는 그것들이 전혀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조차도 진료소를 며칠쯤 닫고 저 앞을 지킬까도 고려했었으니까.
그 정도로 한때 어느 곳보다도 안전지대였던 호텔은 현재 신기가지의 반대 세력들이 가장 없애고 싶어 하는 장소가 되어 있었다.
뿐인가. 피신 왔었던 브리짓의 찻집도 영영 복원되지 못했고, 마법사들이 모여 사는 폐허의 거리에선 끊임없이 크고 작은 방화들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마법사들의 땅에서 마법사들이 가장 미움받는 대상으로 전락해 있었다.
이게 다 미리엘인지 뭔지 하는 그 성하의 실종 때문이었다.
진료소에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주워듣길, 그 성하가 제국에서 황제만큼이나 중요한 인물이며 종교적으로는 거의 정신적인 지주에 가깝다고도 했다.
그가 사라진 것만으로도 즉각 십만 군대가 이자리스로 진격해 와 전쟁이 발발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고.
‘가만있자. 하나, 둘, 셋, 넷…… 나흘째인가?’
수색이 시작된 지도 벌써 나흘이 지났다.
하필이면 사라진 장소가 숲속이라 지렁이처럼 기어 나오는 몬스터들을 처치해 가며 한 사람을 찾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날, 그 길로 형의 실종 소식을 듣고 호텔을 나갔던 클로드를 이즈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보질 못했다. 밤낮없이 숲 안에서 헤매고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아무런 소득이 없었던 건 아니다. 클로드는 수색을 나간 그 첫날에 바로 연락이 끊겼던 나머지 부대원들을 찾아냈다.
부서진 마차 지붕, 몬스터에게 잡아먹힌 말들의 시체, 휩쓸린 병장기……. 발견된 그것들을 누군가가 떨어트린 빵 부스러기처럼 찾아 거슬러 올라가서 생존자들을 찾아냈다.
신성 기사단과는 소속만 다를 뿐 그들도 모두 실력 있는 기사들이라고 했다. 그랬으니 물론 반나절이나 몬스터에 대항해서 죽지 않고 버텼을 것이다.
그나마 그들의 목숨을 구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이즈가 보기엔 오히려 그게 제일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정작 찾아야 될 인물은 못 찾고, 상관의 호위 임무에 실패한 입 싼 놈들만이 구출된 것.
살아 돌아온 이들은 증언했다.
갑자기 마차를 세운 성하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다면서 살펴보겠다고 마차에서 내렸고, 그가 내리자마자 주변에 삽시간에 불길이 가득 차면서 그 불길 속으로 그가 사라졌다고 말이다.
하늘에서 장대비가 내리꽂히고 있었는데 불이 사방에서 타오른 것은 정상적인 사고에선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일이니, 그때 그곳에 분명히 마법의 사용이 있었노라고.
마법사의 짓입니다!
그들의 증언을 참고해 수색을 진행하려 했으나 어찌할 새도 없이 사람들은 이미 일률적이고 맹목적인 대답을 정해 놓고 있었다.
―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면서 성하를 공격할 만한 동기를 가진 무리가 누구지?
― 당연히 이자리스의 마법사들이지!
― 아, 그렇다면 범인은 마법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