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5화 (125/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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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대충 그 정도? 하는 가벼운 말투는 질문한 사람마저 당황스럽게 하는 태연함이 있었다. 거기에 은근슬쩍 끼워 넣는 무능함까지 더해 그녀는 질문자가 더욱 민망함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나머지 넷은 소식을 알리러 간 기사를 뒤쫓았으니 죽지 않고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예요. 그 부분은 경비대에 진작에 얘기를 했는데 아직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잡지 못한 거겠죠.”

이후에는 그날 있었던 사건의 전말에 대한 상세한 진술이 이어졌다. 공주의 기억력은 자세하고 세밀했으며 사건 직후 현장 조사를 나갔던 경비대원들의 보고와도 일치했다.

“그들은 저를 납치해서 감금한 뒤, 모욕을 주고, 기둥에 묶었습니다. 그리고 기름을 뿌렸죠. 마녀를 화형시키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현장 조사만으로는 알 수 없는 피해자의 경험적인 진술은 지금 이 자리에서 처음 밝혀지는 것이다. 정확히 그날 그 장소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오직 태리만이 알고 있던 것들이었다.

“마, 마녀 화형이라니……!”

과격한 표현이 등장하자 객석은 다시 탄식과 놀람으로 크게 웅성거렸다.

마녀 화형은 애석하게도 제국에서 낯선 단어는 아니었다. 마법에 대한 경계심이 비정상적으로 높았던 시절에는 빈번히 행해진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공주의 입을 통해 나와야 할 말은 아니었다. 현재로선 제국의 외교적 상황에 불리한 증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공주는 그 점을 놓지 않고 물며 제국의 위엄에 맹렬한 비난을 가했다.

“행동이 아주 능숙해 보였습니다. 마녀 몰이가 처음인 솜씨가 아니더군요. 마녀라면 죽어 마땅하다니. 제국에서 마법사의 이름을 그런 더러운 일 처리에 써먹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헛소문도 반복되면 진실로 둔갑하는 법인데 수천 년간 제국인들이 마법사에 대해 배운 것이라곤 공포감을 조성하는 내용들 뿐이었을 것이다.

아기를 잡아먹는다는 둥, 악마를 숭배한다는 둥.

마법이란 게 무엇인지 전혀 몰랐으니 모르는 힘을 다루고 쓰는 자들은 당연히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어찌 보면 다 몰랐기에 벌어진 일들이다.

그런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자기들이 때리긴 했는데 무식해서 그런 거니까 봐줘야 된다는 건가?

한층 더 또렷해진 태리의 음성이 천장을 경건하게 울리며 파고들었다.

“두려움이 우리를 궁지로 내몰지라도 스스로 사고하는 힘과 판단마저 앗아 가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나지막하면서도 힘 있는 음성을 타고 흘러나온 것은 놀랍게도 성서의 문장이었다. 여신의 가르침이 담겨 있는 복음 성서의 구절이다.

모두가 허를 찔린 표정이었다.“저는 신의 말씀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제게 휘두른 폭력이 신의 가르침으로부터 나왔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그건 본인들이 갖고 있던 두려움으로부터 나왔겠죠. 무지에서 생긴 두려움이요.”

상대의 칼을 뺏어서 그들의 폐부를 찔러 놓고선 태리는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

“마법사를 그렇게 대단한 존재로 평가하면서 겁내지 마세요.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인데 잘 몰라서 두려워하며 산다는 건 너무 웃긴 말이잖아요.”

시종일관 그녀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귀족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친절하게 이야기했지만, 그건 누가 들어도 ‘무서우면 배워 가면 될 일’ 혹은 ‘겁쟁이처럼 비겁하게 굴지 말고 모르면 재깍재깍 배웠어야지?’라는 식으로 들렸다.

그리고 상냥함 속에서 드문드문 비치는 콧잔등의 귀여운 찡긋거림이라든지, 깊게 파이는 사랑스러운 볼우물의 깊이로 보건대 그건 결코 착각이 아닐 수도 있었다.

요컨대 그건 ‘무식해서 범죄나 저지르지 말고 좀 배우고 살지 그래요?’라는 뜻이었다.

연타로 구박을 먹은 귀족들은 예상대로 들썩이기 시작했다. 아가사 여신이 강림한 땅에 나라를 건국했다고 믿는 그들에게 종교는 자존심이고 근간이었다. 그런데 종교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나라에서 온 마법사가 그 신의 말을 인용하여 자신들을 가르치는 형국이라니.

좌측과 우측 구분 없이 당황하고 흥분한 음성들이 태리에게로 쏟아져 나왔다.

“그게 이렇게까지 요란하게 들먹일 일입니까? 이건 단순한 마법사 혐오 범죄일 뿐입니다. 그것 외엔 다른 문제는 없잖습니까? 사소한 것을 부풀려 전체를 훈계하려 드는 것은 과한 행동입니다.”

이런. 태리는 눈을 감으며 스며드는 비웃음을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마법사 혐오 범죄지, 다른 문제는 없잖아?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바로 그 마법사를 혐오하는 게 문제라니까 그러네. 이것 참.

바보인가? 하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오려 했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교양 있는 말솜씨로 가꾸어서 전달했다.

“작은 혐오면 덮어 두어도 된다는 여러분의 안일함이 여러분께서 가지신 신에 대한 믿음보다 더 위험한 것 같네요.”

그랬더니 귀족들은 ‘허, 허!’ 하면서 말문이 막혀서 어쩔 줄 몰라 하더니 잘못의 화살을 마법사들의 쪽으로 되돌렸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혐오받을 만한 짓을 자처한 마법사들에게 먼저 책임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마법사들과 이자리스를 꺼림칙하게 여겼던 게 우리 발로란뿐이 아니었죠. 대다수의 나라가 그러했습니다. 이자리스는 타국과 교류하지 않았고, 신을 섬기지도 않았으며, 마도학이라는 이상한 학문을 연구해 알 수 없는 주술과 물건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럼 이상하게 취급받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

“모든 것이 우리와는 다른 자들을 우리와 같은 인간의 무리에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맨 앞줄에서 격분하여 소리친 나이 지긋한 귀족의 호통을 태리는 잠자코 서서 들었다. 진짜 가발이네? 하는 생각과 함께. 또 자신이 공주가 아니었더라면 그가 능히 자신에게 돌이라도 던질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났을 때 그녀도 천천히 작은 돌을 주워 들었다. 저렇게까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앞통수만은 반드시 깨 주는 것이 도리였다.

“오해가 깊군요. 마법사는 원래 그렇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삽니다. 이유가 없어요, 그냥 그렇게 살아가도록 태어났거든요.”

“그것이 이상하다는 겁니다!”

“이상한 게 아니라, 이해가 되지 않는 거겠죠. 그리고 그건 마법사들이 어찌해 줄 수 없는 영역입니다. 스스로 사고의 폭을 넓혀야 하죠. 저한테 찡찡거리시면 안 됩니다.”

아, 당신이 무식해서 그런다니까 왜 자꾸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나. 무지함을 손수 증명하고 있는 자를 애처럼 다루며 태리는 그의 앞통수를 깼다.

“누군가가 경에게 와서 당신은 이른 나이부터 머리가 까지는 체질이니, 나와 똑같은 사람으로 취급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기분 나빠하실 거잖아요.”

“무, 무, 무슨 모함을 하십니까!”

“이제 아시겠죠? 그냥 태어나길 조금 다르게 태어난 것뿐입니다. 그런 걸 가지고 이해 못 한다고 하면 안 될 일이죠. 머리가 조금 이르게 빠지는 게 죄인가요?”

“허 참! 그런, 그런 유언비어를!”

앞줄에 앉아서 다 함께 가발을 잡는 격분한 이들에 비해 공주의 화법은 시종일관 의연했기 때문에 언쟁의 불균형은 이야기가 지속될수록 더욱 두드러졌다. 어느 쪽으로 승기가 기울었는지.

황제는 끼어들지 않고 그 장면을 웃음을 꾹 참고 지켜봤다. 가발은 어디서 들은 정보인지 그녀도 오늘 처음 알았다.

어떻게든 제 쪽의 잘못을 줄이고 피해를 최소한으로 보상하려는 이기적인 정치인들 앞에, 청초한 꽃 한 송이의 자태로 선 공주는 감탄할 정도로 훌륭한 수비를 보여 주고 있었다.

여기서 한 발만 잘못 디뎌도 낭떠러지일 텐데, 그 중압감이 만만치 않을 것임에도 어린 공주가 저만큼이나 앞서서 제압을 하고 있다는 게 새삼 기특하기도 했다.

언제쯤 자신이 들어가서 마무리를 해야 양측의 모양새가 다 괜찮을지 가늠할 즈음, 본인은 이쯤에서 적당히 끝낼 계획이 없다는 듯 공주가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마법사의 힘은 마법사가 가장 잘 압니다. 우린 그 힘을 누군가를 해치는 데에 쓴 적이 없어요. 여러분이 가진 건 편견입니다.”

“그걸 무슨 수로―”

“증명하냐고요? 피해자에게 증명하라. 황당한 요구가 아닐 수 없지만, 좋아요. 이해가 부족한 여러분들을 상대하려면 증명해야겠죠.”

태리는 음, 하고 시간을 끌었다. 여기서 어떤 걸 예시로 들어 줄까. 오기 전까지 참 많은 고민을 했었던 부분이다.

하지만 역시 선입견을 깨는 데 제일 잘 듣는 특효약은 반전을 주는 게 아닐까 싶었다. 힘을 가졌다면 반드시 쓸 것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습격을 당했던 날 저는 단 하나의 마법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

얼음이 쨍하고 깨진 것처럼 모두가 차게 굳었다.

순간적으로 생각하는 사고가 엉켰기 때문이었다. 마치 아침에는 달이 뜨고 저녁에는 해가 떴어, 라는 말이 안 되는 얘기를 들은 것처럼.

어떤 근거를 댈지 벼르고 있던 이들의 머릿속에 방금 공주의 내뱉은 이야기는 3순위, 4순위 후보에조차 없었던 근거였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십니까?”

“왜 그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시죠? 제 힘이니까 제가 조절할 수 있어요. 조절한다는 것은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고요. 그날 저는 마법을 쓸 수 있었음에도 쓰지 않았습니다. 썼다면 쉽게 회피할 수 있었는데도 말이죠.”

“저희더러 그걸 믿으라는 겁니까?”

“사건 현장 그 어디에도 마법의 흔적 같은 건 없었을 텐데요. 저를 구하러 온 건 아시다시피 성기사들이었죠. 서로 반대되는 힘을 가졌기에 마법에 예민한 자들입니다. 만일 제가 그곳에서 힘을 썼다면 도착한 성기사들이 제일 먼저 알아차렸겠죠.”

공주가 그렇게 말을 끝맺으니, 이제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날 현장에 첫 번째로 달려갔던 성기사 클로드에게로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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