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8화 (78/186)

78

‘망했네.’ 

어떡하지. 여유만 있다면 일일이 다 던져서 깨 보겠지만 지금은 사소한 행동조차도 조심해야 하는 처지였다. 아무거나 골라 잘못된 것을 깼다간 그대로 왕에게 발각되고 끝날 것이다. 두 번의 기회가 없었다.

태리는 애초에 이 방 자체가 처음부터 줄곧 수수께끼의 형태로 되어 있었음을 상기해 냈다. 입구에 걸려 있던 기호부터 초침이 들어 있는 석관을 찾는 것까지 모두가 그러하다.

무작위 형태인 것 같지만 퍼즐로 구성된 어이없는 난이도. 빙의되기 이전에는 이런 것들을 세심히 여기지 않고 그냥 몸으로 밀어붙이고 봤다. 죽으면 불러오기로 다시 하면 되니까. 하지만 지금은 목숨이 하나뿐이지 않은가. 살기 위해선 가위로 자르는 한이 있더라고 꼬인 매듭을 풀어야만 했다.

‘라이프 베슬이란 건 영혼의 생명력을 보관한 용기지. 그래, 그러니까 꼭 병의 형태가 아닐 수도 있는 거야. 베슬이라는 단어에 너무 집착할 필요 없어. 애초에 이 게임이 얼마나 어이없는지를 감안해야 된다고.’

죽은 뒤 백성들로부터 용맹한 사자왕이라는 칭호를 얻은 군주. 그가 얼마나 호전적이고 본인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인물인지는 지금 당장 하고 있는 행동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좀 더 보여라. 너희들의 실력을 내보여라!”

수십 명의 용사 지망생들을 상대로도 그는 여전히 손속에 사정을 두며 호탕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잠깐씩 불리한 순간이 오더라도 상대의 전투 능력을 상실하게 하는 방식으로 되갚아 줄 뿐 확실히 목숨을 끊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이 저랬으면 진작에 짜증을 냈을 텐데 까마득한 실력자이니 뭐라고 할 수도 없다.

“음음, 약해. 느려. 그것밖에 안 되는가! 있는 힘껏 더 내보이라니까!”

어휴, 아까부터 보이긴 뭘 자꾸 보여. 정말 지독한 컨셉이다. 태리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다시 제대로 집중하기 위해 고개를 내렸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정말로 뭐가 보였다.

[이 몸, 발데마르의 것.]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