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8화 (48/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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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에서, 이런 처지로 결코 쉽지 않은 삶이었을 것이다. 

마법사들의 옷은 하나같이 다 투박했고, 피부는 거칠었으며, 손등은 부르터 있었다. 그런 것들이 그제야 하나씩 제대로 보인다.

숲 앞의 구시가지가 활기를 띠고 강 건너 신시가지에 새로운 양식의 마을이 들어서는 동안에도 이들은 이 좁은 거리에 웅크리고선 움직이지 않았다.

척박한 하루하루를 일궈 나가면서도 이 거리에서 나가지 않고 폐허를 지켜 온 것.

‘왜.’

아니, 왜겠나.

태리는 따끔거리는 목구멍으로 신음 같은 목소리를 냈다.

“왜 다들…… 아직도 여기에 있어…….”

내가 언제 돌아올 줄 알고. 돌아오기나 할 줄 알고.

다른 곳에 가서 잊어버리고 편히 살지. 공주가 도망갔던 것처럼 당신들도 도망가 버리지. 이렇게 좁고 더러운 거리에 모여서…….

촌장은 주름진 눈가를 펴며 놀란 듯이 눈꺼풀을 들었다가 따뜻하게 내리깔았다. 말끔히 손질되어 먼지 하나 묻어 있지 않은 베레모를 살며시 태리의 무릎 위에 올려놔 주기도 했다.

“터전이 파괴되었다고 해서 그곳에서의 삶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물건은 손때가 묻었다는 것만으로도 평생 동안 간직할 이유가 생기기도 하지요.”

미안한 마음을 알아채고 덜어 주려는 목소리가 소박한 웃음소리와 어울렸다.

그러고 보니 태리는 이들이 한 번도 제게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린 괜찮다고, 네가 올 때까지 여기서 잘 살고 있었다고, 버틸 만했다고 움츠러든 어깨를 두드려 줄 뿐.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물이 팽 고였다. 당황해서 소매로 황급히 눈가를 문지르자 모두가 허둥대며 달래는 듯한 이야기를 쏟아 냈다.

“저희가 원해서 있는 거예요!”

“맞아요. 떠나면 더 후회할 것 같아서요.”

“저희라도 있던 자리에 있어야 돌아오실 때 헷갈리지도 않으실 테고…….”

그리고 또 어떤 말들은 고요히 가슴을 치기도 했다.

“저희는 오히려 공주님을 더 걱정했습니다. 무사히 빠져나가시게 된다면 그 이후에 감당하셔야 할 것들이……. 슬픔은 그때부터 시작일 테니까요.”

그래. 그렇지.

사람은, 혼자 남은 사람은, 홀로 살아남고 나서야 그때부터 슬픔이 시작된다.

매일매일 잊히지도 않고 고통스럽게.

잠깐 잊었다가도 마음이 약해지는 어느 날 밤이면 잊지 않고 찾아와 한 번씩 사람을 주저앉게 하고 가차 없이 밟아 무너트렸다.

― 우리 딸이요! 제발 우리 딸부터 구해 주세요! 저는 괜찮으니까 우리 딸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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