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화 (46/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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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무래도 음…… 마법사가 한 명이라도 동행하면 사냥이 수월해지니까요…….” 

나도 그러려고 온 사람인데 어떡하지…….

아, 진짜 나 어떡하지.

베레모를 벗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어쩌면 이미 벗을 타이밍을 놓쳤을지도 몰랐고.

“누가 그런 걸 모르겠나. 머릿수만 많고 질 떨어지는 놈들과는 다르다고, 우리는.”

까다로운 몬스터를 사냥할 때는 보통 다수가 모여서 팀 형태로 맞서 싸우는 협공을 하게 된다.

그 일원 중에 마법사를 껴 넣으면 효율이 말도 못 하게 좋아지는데 지금처럼 범위 마법 하나만 터트려 줘도 혼자서 여럿을 도맡을 수 있고, 그냥 뒤에 숨어서 팀원들에게 상황에 맞는 버프만 걸어 줘도 팀 전체의 공격력을 멱살 잡고 끌어 올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나와 체력만 무한으로 공급된다면 전투 메이지는 사실상 무적이었다.

하지만 주인은 거리의 마법사들이 그런 자들을 매우 야박하게 대한다고 스스럼없이 밝혔다.

“어째서죠? 몬스터의 숫자를 줄이는 건 이쪽에도 이득이 되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능력을 저놈들의 야욕을 채워 주는 도구로 사용할 수는 없네.”

비장하고도 격노한 눈빛으로 그는 이제까지 이 거리에서 숱하게 벌어져 왔었던 과거의 일례들을 나열했다.

“용사를 자칭하던 놈들은 우리를 끌어들이기 위해 회유를 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빈번히 협박하고 강요해 왔네. 거절하면 보복했고, 마지못해 합류한 이들은 다쳐서 돌아오기가 일쑤였지. 진짜 동료로 여겼다면 그렇게 대할 수 있었을까?”

“…….”

“저들은 그저 검은숲에서 명성을 쌓고 싶은 것뿐이야. 이 땅의 불행에는 관심이 없지. 우리에겐 내 고향을 여흥으로 즐기며 써먹고 내버리는 자들에게 단 한 톨의 힘도 보태지 않을 만한 고결함이 남아 있네.”

그것이 거리의 마법사들이 용사들과 함께하지 않는 이유라고, 단단한 말투가 귀에 박혔다.

“물론 그게 반드시 옳은 일이라곤 말하지 못해. 세상에는 브리지테 같은 녀석도 있거든.”

“아, 브리짓…….”

“젊은이도 아는군. 그래, 그런 방식으로 투쟁하는 녀석도 있지. 하지만 적어도 이 거리에는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없네. 젊은이 또한 마법사이니 이해할 수 있겠지.”

“…….”

태리는 무거워진 표정으로 말없이 실드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빛은 차츰차츰 소멸되어 가더니 얼마 못 가 전소하듯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시전자의 마나가 고갈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단시간 안에 다량의 마나를 퍼 올렸던 마법사가 호흡을 몰아쉬며 과열된 마나 코어를 진정시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공격을 피해 방패 뒤에 붙어 있던 남자들은 그사이에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시키는 데 성공한다. 급히 물약을 들이켠 놈들이 그 틈을 노려 튀어나왔다.

“이 개같은 자식이 감히 우리를 공격해? 숲이 저주를 받았을 때 같이 멸족했어야 할 악마 같은 놈들이! 빌어먹을, 이거나 먹어라!”

마나가 바닥난 마법사쯤은 한칼에도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기습 공격.

날이 시퍼렇게 선 곡도가 하늘 높이 치솟았을 때였다.

“너구리 손!”

별안간 사내의 손이 오동통하고 앙증맞은 털 뭉치로 변하더니 칼을 떨어트리고 만다.

“이 같잖지도 않은 꼬마 녀석들이……!”

“흥! 우리의 마법이 어떠냐!”

“어떠냐!”

‘릴리, 마치?’

태리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사실은 아까부터 아이들이 계속 보이질 않아서 눈으로 찾고 있던 중이었다.

불안했지만 어느 가게 안으로라도 안전히 숨어 있겠거니 했는데, 릴리와 마치는 숨기는커녕 지쳐 있는 마법사의 앞을 지키며 사내들에게 용감하게 대항하고 있었다.

“한주먹거리도 안될 꼬마까지 우릴 우습게 봐?”

무기를 떨군 사내는 변하지 않은 손으로 릴리가 휘두르려는 마법봉의 끝을 우악스럽게 움켜쥐어 더는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았다.

그리고 뒤를 이어 다른 놈이 달아나려는 마치의 뒷덜미를 움켜잡아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내동댕이쳐 주마!”

안 돼, 하지 마. 손대지 마!

그 광경을 목도한 즉시 태리는 번개처럼 실드의 영역을 박차고 튀어 나갔다.

가장 급선무는 목표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놈들의 행동을 저지시키는 것.

그녀는 달리면서 머리 위의 베레모를 부메랑처럼 던져 날렸다. 횡으로 웅웅대며 나아간 모자에 목을 직격당한 놈은 켁 소리를 내며 마치를 떨어트렸다.

그다음으로 던진 것은 아까 전에 미처 제자리에 돌려놓지 못했던 인형.

야구공을 던지는 투수처럼 인형을 단단히 움켜쥐고 릴리를 괴롭히는 남자의 머리통에 정확히 가격시킨다.

정수리에 안착한 인형은 이게 웬 떡이냐 하고 입을 벌리더니, 남자의 두피에 치아를 와작 하고 박으면서 모근을 뜯어 먹었다.

“아아아악!”

그사이에 충분히 거리를 좁힌 태리는 다리에 힘을 주곤 길가의 항아리를 밟아서 1차 도약, 지붕 끝을 밟고 뛰어올라 2차 도약에 성공한 뒤 높은 곳에서부터 남자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떨어지는 순간 문제의 두 놈의 뒤통수를 낚아채서 그대로 빠각하고 강렬하게 서로 이마 박치기를 시켜 버린다.

번개 같은 카운터 공격에 뇌가 얼얼해진 놈들은 눈앞에서 별을 보며 휘청대다가 바닥에 철푸덕 쓰러졌다.

순식간에 두 명 아웃. 그러고도 셋이 더 남았지만 태리는 서둘러 아이들부터 챙겼다.

“괜찮니, 릴리, 마치? 위험한 곳에서 나서면 어떡해…….”

“어어…… 어어…… 흐, 흐, 흐으으으앙 공주니이임―”

다친 곳이 없는지 살펴보는데 마치가 얼른 품에 달싹 안겨 왔다.

사실 마치는 조금의 위협도, 무서운 것도 없었지만 공주님이 챙겨 주고 안아 주는 게 좋아서 안긴 채로 열심히 무서웠던 척을 했다.

안 나오는 울음을 짜내며 연신 매달리자 릴리가 리본을 입에 물고 옆에서 쿵쾅쿵쾅 발을 굴렀다.

“으으, 릴리 샘난다! 샘나 죽겠다! 공주니임! 마치는 소환사예요. 원하면 대왕지렁이나 큰머리 독수리나 메뚜기 떼도 마음대로 불러올 수 있어요. 그 정도로 벌벌 떨지 않아요. 방금 잡힌 건 속임수였어요!”

그랬다. 잡히는 척해 보자는 건 애초부터 두 소녀의 전략.

일부러 시간을 끌면서 방심하게 한 다음 커다랗고 흉포한 곰돌이를 불러내자! ……가 전략이었다.

그러니 순순히 잡혀 준 것은 계획의 일환이었다.

“그랬던 거야?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아, 아, 아니에요. 마치는 너무너무 무서웠어요. 흐으아앙!”

“야잇 뻥쟁이야! 똥꼬에 털 나고 싶어?!”

괜히 나섰나, 생각하며 태리는 아이들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몰아닥치는 것은 어마어마한 시선의 집중.

뒤집어엎어지다시피 어질러진 길거리의 한복판에서 사람들의 눈동자가 한 사람에게로 쏠린다.

턱 아래까지 벌어져 놀란 입들을 하곤 거리의 모두가, 거리의 모든 것들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바닥의 모래 한 줌, 흙 한 톨마저 주목하는 것 같은 초고도의 집중력.

‘아…… 망했다.’

밀집된 시선의 감옥에 갇혀서 태리는 눈 하나도 깜짝일 수가 없었다.

* * *

그렇게 얼마를 버텼을까. 한밤중에 달 아래에 모인 도깨비들의 소곤거림처럼 수많은 속삭임들이 바람결에 섞여 들어오기 시작한다.

진짜 우리 공주님이야?

그래, 애들이 방금 그렇게 불렀잖아.

그러고 보니 저 애들, 호텔 지배인이 데리고 있는 그 애들이지?

틀림없어. 저 외모에 저만한 힘. 세상천지에 우리 공주님 말고 또 누가 있겠냐고!

그래, 오직 우리 공주님뿐이다.

영겁과 같은 찰나가 지나가고 마침내 그 한 문장의 결론이 계시처럼 내려온 순간 아슬아슬하던 거리의 침묵이 깨졌다.

“공주님?”

“공주님이시죠?”

“공주님!”

모든 마법사들이 무릎을 꿇으며, 더러는 감정의 복받침에 흐느껴 주저앉으며 그 하나만을 부르짖었다.

공주님, 공주님, 공주님이라고.

“공주라고?”

“공주가 이런 짓을 해?!”

그리고 그 말은 상대의 주둥아리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선 말썽을 피운 남자들조차도 태리를 가리켜 공주라고 일컫기 시작했다.

마침 잘 만났다는 듯이 그들이 뒷골목의 양아치처럼 껄렁거리는 태도로 태리의 앞에서 어슬렁거렸다.

이 작고 연약해 보이는 여자가 성질머리 더러운 마법사들이 그렇게나 죽고 못 사는 하나뿐인 이 나라의 공주.

그러나 일국의 유일무이한 혈통이라고 하기엔 여자의 복색에는 조금의 화려함조차도 없었다. 기껏해야 깨끗한 원피스에 단정한 코트나 걸쳤을 뿐.

“어떻게 이런 꼴이 공주라고.”

안 그래도 이 공주에게는 불만이 참 많았더랬다.

어디에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와선 그녀는 한순간에 대중들의 인기를 흡수해 갔다.

거기에 몬스터를 격퇴하며 올린 기록적인 전투까지 겹쳐서 공주는 많은 용사들이 탐내 왔던 숱한 업적과 칭호까지 앗아 가 버렸다.

“대담한 숲의 파수꾼을 쓰러트리면 우리가 그 대담한 파수꾼이 되는 건가?”

저급하고도 속 보이는 농담. 그러나 자기들끼리는 재미있다고 웃는다.

태리는 남자들의 태도가 괘씸하고 불쾌했으나 놀랍지는 않았다. 슬프지만 익숙한 취급이라고도 생각했다.

오히려 이제까지 그녀를 사기그릇 다루듯 존중해 주었던 클로드와 그의 기사들이 별난 축이었지. 보잘것없어진 망국의 공주는 아마도 다들 이렇게 대하고 싶을 것이다. 무시하고 깔아뭉개고 싶을 것이다.

지켜보고 있는 마법사들의 분노가 느껴질 정도로 땅이 다르르 울려서 태리는 경멸이 어린 목소리로 입을 뗐다.

“난 공주고.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고. 그렇게 공평한 처지가 아닌 줄 깨달았으면 고개를 숙여야지. 요즘은 주인보다 손님이 더 당당하기도 한 모양인데. 내 면전에서 그런 말을 한다는 건 덤벼들어서 싸우겠다는 뜻인가?”

“하 참, 예민하시긴. 그냥 우리들끼리 뒤에서 한 말입니다.”

“뒤에서 떠들었으면 내 귀에 들려오게 하지 말았어야지.”

당장 눈앞에서 치우고 싶다, 이것들. 쓰레받기 같은 거 없나?

태리는 먹잇감을 찾는 맹수처럼 두리번거리다가 옆 가게에 걸려 있는 얇은 카펫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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