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화 (45/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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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했던 옛 도시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폐허.

지금은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생활권이 분리되었지만 본래 이자리스의 중심지는 숲의 동쪽에 위치한 폐허로, 천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마법사들의 터전이 되어 왔던 곳이다.

여기가 한때 대륙에서 가장 영화로웠던 마법 도시라니.

태리는 재앙 후의 초토화된 풍경을 씁쓸한 시선으로 훑어보았다.

두 동강 난 마탑과 기둥만 남은 기념관의 동상들, 그리고 뭔가에 짓눌려 반파된 마법 훈련소. 마지막까지 많은 이들의 대피를 도왔던 경계의 종…….

눈으로 목격한 폐허란 건 생생한 만큼 처참함의 강도도 컸다.

조금 더 일찍 올걸. 울적해진 그녀를 의식했는지 릴리와 마치가 양쪽 팔에 하나씩 매달려선 밝은 분위기로 그녀를 이끌었다.

“아무리 둘러보셔도 여기에는 사람이 없어요, 공주님. 다들 약재상의 거리에 모여 살거든요. 보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맞아요, 거기서 재밌는 걸 얼마나 많이 파는지 몰라요. 릴리랑 저도 지배인님 몰래 자주자주 놀러 왔어요. 관광객이랑 구경꾼도 무지 많아요!”

그러면서 몸을 세워 지나가야 할 만한 좁다란 틈으로 그녀를 먼저 쑥 밀어 넣었다.

영문도 모르고 통과한 순간 몸이 얇은 막 하나를 뚫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곧이어 열기로 가득 찬 뜨거운 공기가 얼굴로 훅 끼친다.

빠져나온 순간에는 어느새 탁 트인 거리의 시작점에 서 있게 되었다.

입구는 터무니없이 좁았지만 거리의 실제 내부는 밖에서 보이던 것과는 전혀 달라서 태리는 선 채로 어안이 벙벙해졌다.

거리는 커다란 아케이드를 연상케 할 만큼 길고 널찍했으며 좌우로 2, 3층씩 되는 건물들이 서로 다닥다닥 밀착되어서 일사량이 적었음에도 유리온실 속에 등불을 밝혀 놓은 것처럼 환하기만 했다.

재기를 꿈꾸는 피난민들의 정착촌…… 같은 어두운 분위기를 예상했던 태리는 정신없이 눈이 돌아갔다.

‘여기 완전 마법사 천지잖아.’

공중에 현수막처럼 떠 있는 광고판에는 ‘지금 레브의 강화점에서 장비를 강화하면 2+1 행사! 아따, 싸다 싸!’ 와 같은 호객 행위의 문구로 가득했고, 가판대 위에서 파리채를 탁탁 튀기며 손님에게 떨이 스크롤을 강권하는 주인도 고깔모자를 쓴 마법사였다.

“만들어 둔 스크롤은 얼음 계열밖에 안 남았어. 신비로운 안개랑 고드름 화살 두 종류지. 지속 시간도 괜찮은데 대충 사 가지 그래? 뭐, 하자 있으면 환불되냐고? 이런 염치도 없는 녀석들이 기껏 떨이로 팔아 줬더니만. 되겠니? 어?”

지팡이를 뒤집어서 간지러운 등을 긁기도 하고, 에누리를 시도하는 손님에게 역으로 바가지를 씌워 버리고 있기도 하다.

‘아, 이 사람들을 설득해서 같이 언데드 사냥을 하러 가야 하는데…….’

이거 가능한 일인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의 일이었나? 아니, 일단 말을 붙여 볼 수는 있나?

차마 베레모를 벗지도 못하고, 아니 오히려 날아가 버려서 행여나 벗겨질까 양손으로 꾹 잡고 태리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어떡하지? 뭐부터 하지? 어디로 가지?

머릿속의 회로가 배배 꼬여서 넋을 놓고 있다가 그만 지나가던 사람과 부딪혔다. 중심이 흐트러지기 전에 얼른 어느 상점의 가판대 모서리를 잡았는데 바로 쓴소리가 날아왔다.

“어허, 안 살 거면 만지지 말라고!”

놀라서 얼른 손을 떼니 허름한 가판에는 번쩍이는 보석들이 천지였다.

와, 이게 뭐야. 혼낼 만했네. 태리는 상점의 간판을 훔쳐보곤 놀라움에 작은 탄성을 냈다.

‘인챈트 잡화점이잖아?’

보석이나 금속에 어떠한 능력을 입혀 그걸 부착하는 물건의 성능을 영구히 업그레이드 시키는 걸 인챈트라고 한다.

매력을 증가시키는 사파이어 목걸이라거나 근력을 배가시키는 백금 허리띠 같은 경우는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인챈터는 마법사 중에서도 매우 드문 존재였다.

‘우와, 신기해.’

번쩍이는 것들은 너무 비싸서 부담스럽고 그나마 저렴해 보이는 작은 천 인형을 조심스럽게 손에 잡아 보았다.

심장에 콩알만 한 생명력이 깃든 인형. 쥐고 있으면 온기가 느껴진다. 성능이 궁금하다면 침대맡에 놓아두고 수면을 취해 보라. 깜짝 놀랄 일을 경험하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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