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화 (43/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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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찾으라고?” 

여기에 사다리가 있긴 한 거니? 보이지도 않는데?

남의 걸 가져왔으면 정리라도 해 놓든가 그냥 되는대로 던져서 쌓아 올린 덕분에 안은 쓰레기 더미나 다름이 없다.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꽂은 채로 설렁설렁 뒤적여 보던 이즈는 본인도 못 찾겠던지, 한쪽 다리를 들어 클로드의 허벅지 뒤를 밀듯이 툭 찼다.

“들어가서 좀 꺼내 줘 봐.”

“내가 왜.”

“내가 몸이 안 좋잖아.”

“마찬가지. 어느 놈에게 방금 옆구리를 칼로 긁혔는데.”

“뭘 일방적으로 당한 것처럼 후려치는 거야. 내 어깨는 누가 박살 냈는데.”

“시끄러우니까 둘 다 비켜요. 내가 가서 꺼내 오게.”

“아니, 너 말고!”

“공주님이 왜……!”

먼지가 날리는 창고 안으로 성큼 들어서려는 태리의 앞길을 두 남자의 팔이 크로스하듯 동시에 가로막았다.

“후우, 내가 가지.”

귀쟁이 놈을 위해선 길가의 쓰레기 하나도 줍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결국 클로드는 손수 그 쓰레기 더미를 헤치며 들어가게 됐다.

그사이 엘프는 한가롭게 문턱에 걸터앉아 긴 담뱃대를 물더니 집 수리에 대한 약속이니 뭐니 하면서 태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내 정체가 궁금하다고 했었나? 나야 뭐 별거 없어.”

그러니까 내가 여길 왜 왔냐면 말이야, 하고 그가 한가롭게 운을 뗐다.

“난 탈옥범이야. 한마디로 죄 짓고 도망 온 귀한 몸이시다 이거지.”

탈옥…… 탈옥???

제발 거짓말이라고 해 주겠니. 하지만 표정을 보아 하니 농담 따위는 풀 뜯어 먹는 소에게 먹이로 던져 줬나 싶을 정도로 맑고 깨끗하다.

태리가 믿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이자, 이즈는 상의의 단추를 풀어 옷을 가슴팍까지 내려 보였다. 일전에 우연히 봤다가 담뱃불에 당한 적이 있었던 붉은 낙인이 다시금 보였다.

고대의 문양으로 가득했지만 척 보아도 좋지 못한 뜻을 의미한다는 걸 눈짐작으로 때려 맞힐 수 있었다.

“고향은 자야린 대숲. 여기보다 한참 더 북쪽에 있어. 세상 끝에 닿을 만큼 아주 멀고 추운 곳에.”

“무슨 잘못을 한 거야?”

“졌다는 잘못. 이겼으면 된 건데 졌으니까 갇힌 거지. 갇히면 죄수가 되는 거고, 거기서 탈출하면 탈옥범. 이해가 되지?”

“뭐에 진 건지 물어봐도 돼?”

“어, 왕위 찬탈.”

“엘프가 그런 걸 한다고……?”

평화를 사랑하고 자연을 수호해 정령들의 친구로까지 불리는 종족이 왕위 찬탈? 아니, 물론 그들에게도 세력이란 게 있고 우두머리라는 게 있기야 하겠지만…….

대체 뭐야, 이 괴상한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던 상식들이 어긋나는 느낌이다. 낮에 보았던 드래곤도 그랬고.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내 노동력의 대가를 이런 식으로 퉁치면 다시는 안 도와줄 거야.”

“내가 뭐 하러 말을 지어내? 요즘은 엘프도 많이 야망적이 됐어. 가지려면 투쟁해야 하고 거슬리면 죽여야지. 같은 줄기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말이야. 물론 인간들의 땅따먹기에 비하면 아직도 순한 맛이긴 해. 동족을 차마 죽이진 못 해서 평생을 가둬두지.”

말하면서 그는 즐겁게 코를 울려 웃었다. 그렇게 멍청했으니까 자신을 놓치는 우를 범한 거라고.

“아무튼 그게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야.”

씨족에게 들키지 않으면서도 몸을 숨길 만한 숲을 물색하던 중에 이자리스의 저주받은 숲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 건 행운이었다.

안 그래도 대숲에 있는 그것들한테 어떻게 복수를 해 줄까 머리를 굴리고 있었던 참이라, 그 저주의 비법을 얻어 갈 수만 있다면 그거야말로 최고의 복수가 아니겠는가 싶었다. 대숲이 새까맣게 물들 생각만 하면 그는 미친 듯이 희열이 솟았다.

“듣자마자 내가 가야 할 곳이란 걸 알았지. 저주인지 뭔지를 배워 가서 그대로 따라 해 줄 생각이었거든. 근데 오자마자 망해 버렸잖아, 쯧.”

저주받은 숲이라지만 그래 봤자 본질은 숲. 엘프는 숲에서만큼은 무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였으므로 검은숲에 첫발을 들이면서도 당시의 그는 매우 자신만만한 상태였었다.

그러나 첫발을 들이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 착각은 보기 좋게 깨져 나갔다.

기절했다가 깨어난 건지 몸은 나무 밑에 버려져 있다시피 한 상태로 기상. 머리는 띵했고 어디에도 상흔은 없었지만 그는 즉시 자신이 아주아주 더럽고 불쾌한 마법에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어떤 새끼가 감히 숲에서 엘프를 목표물로 삼을 생각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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