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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거기엔 귀족들이 득실득실해서 정보도 많이 모여. 네가 원하는 게 뭐든 쓸 만한 걸 주워듣게 될 수도 있지 않겠어?”
“그건 좀 구미가 당기네.”
“주로 명성 있는 사람들이 오지만 넌 괜찮을 거야. 넌 악명이 아주 높으니까.”
그 말에 살짝 욱해서 노려봤지만 호텔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악랄하고 험난한 인간들을 떠올리니 또 딱히 반박할 수 있는 점이 없긴 했다.
악명도 명성으로 쳐준다면 주목받기로는 결코 뒤지지 않겠지.
“잘 생각해 봐.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니까?”
“왜 그런 짓을 하고 싶은지 솔직하게 말해 주면 고민을 좀 해 보고.”
“허? 이건 거래잖아!”
“아니지, 이건 거래가 아니라 너의 일방적인 부탁이지. 난 그냥 안시한테 가서 물어보면 되거든. 상냥하고 다정한 안시는 자기가 모르는 것도 알아 와서 알려 주겠지.”
“으으……!”
“선택해, 빨리.”
그제야 본인의 불리함을 느꼈는지 브리짓은 손톱을 깨물며 재빠르게 창밖을 곁눈질했다.
마차는 꾸준한 속도로 길을 주파해 벌써 강가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여기서 갈림길을 지나면 다리는 건너지 못하고 약재상의 거리로 직행이다.
물론 태리는 어느 쪽도 나쁘지 않았다. 다리를 건너 브리짓이 원하는 와인 바에 가든 그대로 직진해 원래 목적지였던 폐허에 가든.
그녀가 다시 한번 시간 없어, 라고 말하자 브리짓은 우물쭈물하며 결국 속내를 털어놓았다.
“난 그냥……”
“그래.”
“정말 그냥……”
“그래.”
“……우리한테도 공주가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어.”
……어?
여유롭게 듣고 있던 태리는 순간 대꾸할 말을 잃었다.
“그것들은 입만 열면 자기들이 누리는 건 상류 귀족 문화고 여긴 그런 것도 없는 야만인의 땅이라고 흉보지. 찻집을 차렸을 때 무시받은 이유도 그거였어. 귀족도 없는 이런 곳엘 누가 오냐고.”
“…….”
“그런 게 아니라고 해명을 해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전부 무너져 버렸잖아. 내세울 만한 뭔가가 남은 것도 아니니까.”
말하면서 또 어떤 분한 일들이 떠오른 건지 브리짓이 이를 꽉 악물었다.
“비웃고 무시하고. 짜증 나……. 자존심 상해서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난다고. 그거 때문에 열받아서 깬 찻잔이 몇 갠지는 셀 수도 없어.”
그러더니 또 슬금슬금 분노 게이지가 차는 게 보인다.
불꽃이 타오르는 눈길로 브리짓은 태리의 양팔을 강하게 부여잡았다. 복수라도 다짐하듯이.
“그래서 난 평화로운 방법 같은 건 때려치우고 가서 개지랄을 떨어 주기로 결심했어. 순순히 당해 주지는 않을 거라고.”
팔에 전해지는 통증보다 더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브리짓이 원하는 건 어린애와도 같은 발상이다. 한쪽이 엄마한테 이를 거라고 소리치면 ‘나도 엄마 있거든?’ 하고 똑같이 받아치는 것과도 같다.
그런데도 그 유치함을 가볍게 여기고 싶지 않았던 건 거기에서 안쓰러움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자랑을 하거나 허세를 떨려는 게 아니라, 그렇게라도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대단한 무언가를 내세워 자존감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란 걸 알았으니까.
― 우리한테도 공주가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