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안-3화 (3/10)

三章

밤은 길 테니

두 번째의 부름이다. 수선은 두 배로 더 커졌다. 함지에 물을 채우는 수사는 팔꿈치를 넣어 온도를 몇 번이고 재어 다시 데운 물을 들고 왔다. 시중을 드는 나인들은 반어가 아닌 반쯤 높인 경어를 썼다. 세자가 처음으로 두 번째로 찾은 궁녀, 그것도 바로 다음 날 해가 떨어지기도 전에 침소에 들 것을 명한 궁녀였다. 이번에는 모든 것이 달랐다. 은우 역시 긴장으로 바싹바싹 입이 말랐지만, 처음과 다른 이유로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세자 저하를, 한 번 더.

열리는 장지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세자는 곤룡포 차림으로 보료에 앉아 있었다. 서안을 사이에 두고서 절을 올리는 은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서 상궁 들라.”

큰 목소리로 세자가 문 밖을 향해 외쳤다. 서둘러 들어선 동궁전의 최고 지위 지밀상궁이 상체를 숙이고 하명을 기다렸다.

“처소 주위를 모두 물려라.”

“저하. 무슨 말씀이시온지…….”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상궁이 되물었다.

“이 밤, 지키고 듣는 눈과 귀가 없이 오로지 둘만 보내고 싶다는 말이다.”

“저하, 아니되옵니다. 그럴 수는 없사옵니다.”

서 상궁이 곤혹스러운 목소리로 간곡히 아뢰었다.

“저하, 부디 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내관 강선까지 거들며 명을 거두라 청하였다. 세자가 그들을 향해 차갑게 물었다.

“왜, 이 아이가 나를 독살이라도 할 것 같으냐.”

망극한 말씀에 한바탕 수선이 일었다. 은우는 새하얗게 질렸다. 독살, 독살이라니. 이미 은우는 산목숨이 아니었다. 이 밤이 지나면 형틀에 매이겠지. 형문을 치르고 압슬을 당하고, 피부가 터지고 뼈가 드러나고 벌겋게 달군 인두가 몸을 지져 대겠지. 세자는 손을 들어 내관과 상궁의 호소를 일시에 중지시켰다.

“주변을 물리라 했다.”

“저하.”

“서 상궁, 내 두 번째 하는 같은 명이오.”

세자의 손끝, 한 자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인검四寅劍이 놓여 있었다. 세자의 시선을 읽고 상궁이 파랗게 질리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너는, 고개를 들라는 명을 기억하는군.”

몹시 불쾌한 듯 내뱉는 말에 은우는 잠시 답을 잊었다.

“답하라.”

“네, 그러하옵니다.”

세자가 손을 뻗어 사인검을 집어 들었다.

“무엇인 줄 아느냐.”

“사인검이옵니다.”

“설명해 보라.”

“호랑이 네 마리를 품은 검으로, 호랑이를 뜻하는 인이 네 자입니다. 호랑이 해, 호랑이 달, 호랑이 날, 호랑이 시에 만든 십이 년마다 오직 하나만 생산할 수 있는 검이라 들었습니다.”

“무엇에 쓰이는 줄도 알겠구나.”

“호랑이를 품어, 사귀邪鬼와 재앙을 물리치고 존체를 지키는 검이옵니다.”

은우가 머리를 숙여 답했다. 사귀를 물리친다는 말이란, 은우 제 자신을 겨누는 검이란 뜻이다. 저 검으로 베어 버린다 해도 이미 세자의 독살 의혹을 받은 궁녀의 죽음은 마땅한 일이다. 왜 그런 누명을 의심받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알 길이 없으면 모르는 채로 죽는 것도 궁녀의 삶이다.

“고개.”

어느새 철갑어피로 만든 검집이 턱으로 다가왔다.

“내가 검을 뽑게 하지 말라.”

부르르 떨리는 입술을 바라보며 광안이 차갑게 웃었다.

“오늘 밤, 한시도 내게서 눈을 떼지 마라. 눈을 감지도 말 것이며 시선을 돌리지도 말 것이며 다른 생각을 하지도 말 것이며……. 이 모든 것을 어기는 순간 너는 죽는다.”

쇠망치에 맞은 듯 머리가 울렸다. 두려움으로 귀에서 윙윙 매미 울음소리가 났다.

“옷을 벗어라.”

은우가 떨리는 몸을 간신히 가누며 일어섰다.

“눈.”

검을 쥔 광안의 눈이 붉었다. 광안, 조정에서는 그의 군호를 감히 욕되이 칭하며 미친 눈이라 불렀다. 붉고 검은 눈을 보며 은우는 고름을 풀고 저고리를 벗었다. 치마를 내리고 속적삼을 벗었다. 동여맨 속치마 끈 매듭에 손을 올렸다. 묻는 눈을 보며 광안이 비웃듯 말하였다.

“모조리. 한 조각도 남기지 말라.”

밤은 보냈지만 나신은 처음이었다. 버선을 마지막으로 벗어 두고 은우는 서안 앞에 꿇어앉았다.

눈, 눈, 눈.

눈을 떼지 말라는 명이 이토록 어려운 것임을 처음 깨닫는다. 단 한 번도 떨어지지 않는 눈길을 받는 일도.

검 끝이 가리키는 곳이 새앙머리 댕기임을 깨닫고 손을 들어 머리를 풀어 내렸다. 검고 긴 머리칼이 출렁 아래로 떨어졌다. 가슴을 가린 머리칼이 맘에 들지 않는 듯 광안이 검집으로 머리칼을 걷어 올렸다.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한쪽씩 가슴이 차례로 완전히 드러났다. 오직 머리카락만 건드리며 움직이는 검집이 숨이 막히도록 두려웠다. 세자와 눈이 마주쳤다. 희롱하듯이 검집이 목덜미를 건드리고 지나갔다. 욱. 저도 모르게 치미는 신음을 삼켰다.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광안이 한 번 더 노골적인 희롱을 하였다. 혀를 깨무는 은우에게 말했다.

“소리를 내지 않겠다?”

“네, 저하.”

죽는 순간까지, 제대로 된 궁녀로 죽고 싶었다.

“내기를 해 볼까.”

“저하?”

“열을 셀 동안, 네 입에서 교성이 나오게 해 주마.”

“저하. 부디.”

부디 미천한 소인을 가엾게 여기시어.

“세어라. 교성을 참으면 너를 곱게 보내 주마.”

보내 준다는 말에, 희망이 솟았다. 살아 나갈 수 있다. 은우는 깨물었던 입술을 열었다.

“……하나.”

검집이 목덜미를 스치며 남은 머리칼을 걷어 냈다. 은우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빼었다.

“내가 건너가길 원하느냐.”

서안 너머 광안이 물었다. 어떻든 지금은 손이 닿지 않는 거리이다. 은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옵니다.”

“뒤로 물러서면 내기는 끝난다. 계속 세어라.”

두울.

가슴을 둥글게 그리며 광안이 웃었다. 눈은 가쁜 숨에 맞춰 오르내리는 둥그런 가슴과 곤두선 가슴 끝에 머무른다. 세엣, 조금 더 좁혀진 원에 가슴이 울렁였다. 아무리 호흡을 가다듬으려 해도 소용없었다. 숨이 빠르게 토해졌다. 거리를 좁히며 그리는 원에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숫자를 더하여도 유륜을 스칠 듯 닿으며 검은 움직이지 않았다.

“숫자를 세어라.”

“여……섯.”

“다섯이다.”

아니라는 말을 하려 입을 벌리는 순간이었다. 검집이 퉁기듯이 정점을 건드렸다.

“우욱.”

한 번 더 검집이 아프도록 바짝 선 몽우리를 긁어 내렸다. 하악, 한 번 터진 교성은 멈추지 않았다. 숫자는 이미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렸다. 유륜을 훑을 때도 은우는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었다.

“다섯이든, 여섯이든.”

검을 서안에 올리며 광안이 말했다.

“네가 졌구나.”

할딱이는 은우에게 손짓했다.

“이리로. 가까이.”

광안의 손이 두드리는 자리, 서안을 보며 은우는 몸이 굳었다. 어찌 벗은 몸으로 세자의 서안에 앉으라 명하시는 건가.

“나는 본디 방탕하고, 군왕이 되기엔 잔혹한 성정이라고 하더군.”

“그, 그렇지 않사옵니다, 저하.”

은우는 진심을 다해 말했다. 그렇지 않다. 광안은 미친 눈이 아니다. 본디 부드럽고 고운 성정이었다. 바르고 곧은 왕자군이었다.

“그리하여, 나를 죽이는 일이 제 목숨을 걸 만큼 가치로운 소명이라 믿는 자들이 많더군.”

검푸른 분노를 담고 눈이 물었다. 너도 그러하냐.

“몸에 독침을 품고 기어들어 온 궁녀도 있었고, 독약을 물고 들어온 궁녀도 있었다. 너는 어디에 무엇을 감추었느냐.”

어떤 말을 해도 주군의 의심을 사그라들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죽을 목숨이었다. 세자의 궁녀로 세자의 말을 따르며 죽는 일밖에 남은 것이 없다. 오늘 오전이 까마득히 먼 시간처럼 느껴진다. 한가하게 동다회를 꼬며, 저하께 매듭을 지어 드릴까 잠시 허망 된 생각을 했었다.

은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벗어 둔 푸른색 궁녀 치마를 서안 위로 넓게 펼쳤다. 익선관만 벗고서 곤룡포 차림으로 앉아 있는 세자 옆으로 곡좌曲坐하였다. 꿇어앉은 무릎 위에 손을 모으고서 몸을 똑바르게 폈다. 이곳에서, 혹은 형장에서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쓰레기 같은 죽음을 맞고 싶지 않았다. 은우는 눈을 맞추며 물었다.

“어찌하면…… 살 수 있습니까, 저하.”

“글쎄다. 어찌할 수 있겠느냐, 네가.”

은우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오늘 밤 저하를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

세자의 입술이 비웃음으로 열렸다. 은우는 사뿐히 걸어 푸른 치마 위에 앉았다. 광안은 서안 위에 둔 사인검에 손을 올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은우의 무릎이 곤룡포의 사조룡 발톱에 닿을 듯이 붙었다. 은우는 덤덤하게 말하였다.

“검시하십시오.”

그것이 무엇이든……. 은우가 알 수 없는 그것이 무엇이든.

“옷은 모조리 벗었습니다. 머리도 풀어 내렸습니다. 이제 제 몸 어딘가에 품었을 독약을, 독침을 검시하십시오.”

광안이 일어서나 싶더니, 갑자기 훅 머리채가 잡혔다.

“죽고 싶더냐.”

목이 꺾인 채로 은우는 광안을 올려다보았다.

“죽이신다면, 죽겠나이다…….”

말을 마치기 전 광안의 손가락이 입속으로 들어왔다. 입천장을 주르륵 훑고 양옆의 살을 헤집었다. 목구멍을 휘젓는 손가락 때문에 입가로 침이 흘러내렸다. 여전히 머리채는 잡혀 고개는 위로 향해 들려 있었다.

“잘도 떠드는구나.”

침에 젖은 손가락을 빼내어 광안이 눈앞에 들이대었다.

“입속은 확인하셨습니까.”

옥대를 떨어뜨리고 용포를 벗으며 광안이 싸늘하게 웃었다.

“아직.”

속고의를 내리자 은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리채가 다시 아프게 잡혔다.

“눈.”

눈을 뜨자, 머리를 놓아주었다. 은우는 가슴을 들썩이며 숨을 골랐다. 광안이 볼을 검지로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입을 열어.”

은우의 떨리는 턱을 잡으며 세자가 다시 말했다.

“입을, 열어.”

의도적으로 똑같이 반복한 두 번째의 명에 여자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차라리, 아까처럼 머리채를 잡아 억지로 열게 하였으면……. 그리 원하는 눈빛이다. 그래 줄 마음이 없다. 어젯밤 무명 수건을 뽀얀 제 젖가슴에 품었다가 양물에 대었다. 수건이 차가워서 지른 신음이 아니었다. 뜨거워진 몸 때문이었다. 제대로 맛보지 못한 과실이 눈앞에서 흔들렸다. 솟아오른 살덩이를 손으로 비틀고 입술로 빨아 맛보고 싶었다. 움찔거리는 손을 통제하려 주먹을 쥐었는데, 여자는 명주 수건을 받쳐 들고 호호 입술을 동그랗게 모아 불었다. 내장에 붙어 있는 인내심까지 박박 끌어 올려야 했다. 그대로 동그랗게 벌어진 그 입술에 제 것을 물리고 싶은 날것의 욕망을 주저앉혀야 했다.

바르르 떨리는 턱을 엄지와 검지로 붙잡자 도톰한 입술이 열렸다.

“눈.”

올려다보는 눈에 두려움만 가득했다.

“검시를 하라며.”

입으로 받아 내며 은우는 눈을 한 번도 감지 않았다.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고 눈앞이 붉어졌지만, 광안에게서 결코 눈을 떼지 않았다. 입을 크게 벌려 제 것을 물고 있는 은우가 만족스럽다는 것인지 못마땅하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뒤통수를 잡힌 채로 흔들리며 목구멍 깊은 곳까지 마구 박히는 그의 것을 받아 내며 눈을 뜬 채로 눈물을 흘렸다.

“천치같이 굴지 마라.”

우욱, 욱. 은우는 소리를 삼키며 그저 받아들이는 일이 전부였다. 어떻게 해야 사내를 파정시키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못마땅한 신음성이 귀로 들렸다. 머리를 거칠게 흔들어 대던 동작이 멈추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고 느꼈을 때 입으로 공기가 들어왔다. 어떻든 파정까지 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광안은 그대로 물러서더니 손을 뻗어 엄지로 은우의 입술을 닦았다. 늪처럼 검은 눈에 스치는 빛이 미친 눈이라 부르는 광안의 눈빛이 아니었다. 곱고 아름답고, 부드럽고 마음이 여렸던 광안군마마였다. 그랬기 때문이었다. 은우는 드러내서는 안 되는 설움을 입에 올렸다.

“이제, 끝나셨습니까.”

광안의 눈에 불이 튀었다. 억울함을 호소하기 전에 갑자기 양발이 동시에 위로 들려 올라갔다.

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기우뚱 균형을 잃은 몸이 넘어지지 않도록 은우는 팔을 뒤로 뻗어 서안을 짚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은우는 무릎을 접은 채로 양발을 벌려 서안 위에 놓고 있었다. 그대로 뒤로 몸이 넘어갈 것만 같아 짚고 있는 손을 뗄 수가 없었다. 뒤꿈치만 서안에 아슬아슬하게 닿은 채로 양 발목은 단단한 손에 잡혀 있어 내릴 수도 없었다. 훤하게 밀부를 드러내고서 은우는 광안을 바라보았다. 광안이 은우의 벌린 다리 사이로 무릎을 세워 앉은 터라 은우는 그를 비스듬히 올려다봐야 했다.

“명심하라. 네 발이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네 목을 비틀 것이다.”

굳은살이 박인 검지로 쭉 그어 내리며 광안이 명했다. 절로 발끝이 오그라들었다. 한 번 더 무감하게 그어 내리는 손길에 교성이 터졌다.

“기쁘게 해 준다고 했나.”

“저……하.”

“대체 어떤 걸로, 나를 기쁘게 할 텐가.”

손가락이 아직 부어오른 질구로 쿡 들어왔다.

“무엇을 넣었느냐.”

“아무것도, 아무것도.”

“다시 묻는다. 무엇을 발랐느냐.”

“아. 아.”

숨이 넘어가게 비명을 지르며 은우가 기억을 더듬었다. 목욕을 마치고 단장을 하던 중, 상궁이 상태를 물었다. 은우는 답을 하지 못하고 목까지 붉히며 서 있었다. 지밀상궁이 쯧, 낮게 혀를 차고는 자그마한 향유 병을 건네주었다. 어젯밤 첫 경험을, 그것도 두 번이나 큰 사내를 받아 낸 아래가 상하지 않았을 리 없다. 상처를 가라앉히고 통증을 둔하게 해 주는 것이라 하였다. 밀착될 때 매끄러이 한다고도.

“동궁전 지밀상궁마마님이, 향유를…….”

계속 휘젓는 손가락 때문에 은우는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관절이 불거지도록 발가락을 오므리고 견딜 뿐이었다.

“상처 때문에…… 통증을 줄이는……. 그리하여, 기쁘게 모시라고.”

엄지손가락이 갈라진 살을 헤집어 솟아오른 정점을 꾹 눌렀다. 은우가 펄쩍 뛸 듯이 몸을 퉁겼다. 아무렇지도 않게 함부로 문지르며 동시에 검지는 여전히 속살을 헤집었다. 손가락 하나를 더하자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다. 광안은 냉정하게 은우를 내려다보았다.

“제발, 제발……. 잠시만. 저하.”

애원에도 손을 멈추지 않으며 물었다.

“혼분을 쓰느냐.”

“아니요. 아니요.”

은우는 세차게 도리질 쳤다.

“제가 왜. 왜…….”

움직임을 갑자기 멈추자 하악 숨을 몰아쉬었다. 이미 여자는 기진하여 늘어진 몸을 간신히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갈라진 살을 다시 벌리고 좀 전의 손놀림으로 부어오른 가장 예민한 덩어리를 긁었다. 가느다랗고 긴 교성이 흘렀다. 교성이 듣기 좋아 한 번 더 긁어 내렸다. 이번에는 혀를 깨물었는지 참고 있다. 원껏 소리를 내어 주지 않는 여자가 괘씸하여 관절이 선명히 드러난 주먹으로 아랫도리를 훑어 내렸다. 더 예쁜 교성이다. 이제 그만하시겠지, 이제는, 이제는……. 광안은 가엾은 여자의 바람을 깡그리 무시한다. 멈춰 주지 않는다. 움찔거리며, 끝없이 울음을 터뜨리며 엉덩이를 들썩이면서도 여자는 발은 내리지 않는다. 눈물 젖은 눈은 오직, 줄곧 광안만 바라본다.

그토록,

“살고 싶으냐.”

이 궐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수모를 당하고, 몸과 마음을 짓밟히면서도.

“살고…… 싶습니다, 저하.”

고작 나이 마흔이 되어 상궁이 되는 꿈을 이루려고.

“증명하라. 네가 나를 위험에 빠뜨리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비틀거리며 여자가 기울어진 상체를 일으켰다. 다리를 내릴 수 없기에 제 팔은 여전히 서안을 짚은 채였다.

“손, 손을.”

여자가 입을 벌렸다.

“저하, 제발…… 손을.”

방금 전까지 저를 희롱하고 유린했던 손을 향해 여자가 입을 벌렸다.

“넣어, 주세요.”

몸이 떨릴 만큼 자극적인 말을 뱉으며, 필사적으로 입을 벌렸다. 혀를 내밀며 애액으로 젖어 번들거리는 광안의 손가락을, 손등을 핥았다. 손가락을 하나씩 입으로 물고 쪽쪽 빨아들였다.

“어제, 제 몸 어디에도 입술을 대지 않으셨습니다. 닿은 부분은 오로지, 한 군데. 그곳뿐입니다. 제가, 무언가를 꾸몄다면 제 입술로 모조리 받았습니다. 혼분을 은밀하게 묻히고 들어왔다면, 밀부이거나 가슴이겠지요. 저하가 쓸 만하다고 하신……. 저하, 다른 손으로 제 가슴을. 그리하여 다시 제 입으로 주십시오.”

여인이 진달래 빛 꽃잎 같은 유륜이 박힌 뽀얀 가슴을 내밀었다.

“제발, 저하…….”

밀부를 훤히 드러내고 입술은 애액과 타액으로 젖어, 젖가슴을 내미는 여자가 조금도 외설스럽지 않았다. 광안이 팔을 둘러 등을 받쳤다. 무너지듯 여자가 기대어 왔다. 축 처지는 몸을 바싹 끌어안으며 말했다.

“이만 발을 내려도 좋다.”

여자의 입에서 울음이 터진다. 아이처럼 엉엉 울며 애원했다.

“살려 주십시오. 저하.”

아기처럼 보송거리는 잔머리가 예뻐 쳐다봤던 이마가 슬픔으로 찡그려졌다.

“부디 가슴을……. 누군가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미약을 발랐다 해도, 독약을 묻혔다 해도 제가 받겠습니다. 제가 모조리 먹어 대신 죽겠습니다. 그러니 저하, 저를 살려…….”

광안이 불쑥 여자의 가슴을 베어 물었다. 여자가 필사적으로 광안을 밀어냈다.

“아니 되옵니다. 아니 되옵……. 제가 모르는 독약이 발렸을 수도. 저하! 저하!”

기진한 몸에서 어떻게 이런 힘이 남았을까 싶을 만큼 여자는 발버둥을 치며 제 가슴에 붙은 광안의 얼굴을 떼어 내려 하였다. 동그랗게 솟은 살덩이가 얼마나 예뻤는지 모른다. 내내 입에 넣고 굴리고 자근자근 씹고 싶었다. 새하얀 가슴을 온통 붉은 자국으로 더럽히고 싶었다. 발버둥을 치던 여자가 어느새 광안의 머리를 끌어안고 있다. 혀를 굴릴 때마다 짓씹을 때마다 여자가 울었다.

제가 대신 죽겠습니다. 그러니 살려 주십시오.

여자의 말이 얼음처럼 딱딱하게 굳어, 켜켜이 쌓인 빙산이 되었다고 믿은 광안의 가슴을 쨍하게 파고들었다. 쨍하게 파고든 말이 마음에 틈을 만들었다. 세자가 된 이후 광안에게 늘 틈은 방심이고 방심은 곧 죽음이었다.

고개를 들자 온통 눈물로 범벅이 된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아직 이 여자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아기처럼 순박한 얼굴로 독침을 머리 장식에 감추어 들어왔던 궁녀가 떠오른다. 스물도 안 된 아이였다. 여자에게 흔들리는 자신이 두려워 광안은 다시 물었다.

“너를 살려 줄 것 같으냐.”

“저하.”

여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광안을 불렀다. 잠시 말없이, 광안의 눈만 보며 여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이 밤이…… 남았사옵니다.”

광안의 눈이 뜨겁게 타올랐다. 가슴을 으깨어지도록 쥐자 여자가 도리질을 쳤다. 함부로 흔들고 비틀며 물었다.

“네가, 비천한 몸뚱이로 감히 나를 움직이겠다?”

“아니옵니다, 아닙니다. 저하.”

비명에 가까운 교성을 내지르면서도 여자의 말투는 단정하다. 끝까지 궁녀로 살아남으려는, 혹은 궁녀로 죽으려는 결연한 마음이었다. 승은 따위 없이 삼십 년을 열심히 궁녀 일만 하며 상궁이 되는 게 인생의 목표였던 여자다. 교합을 알지도 못하고 스스로 몸을 만들었을 리도 없는 백지 같은 여자임을 어젯밤에 확인했다.

“그런 뜻이 아니오라…….”

무방비로 희롱당하며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숨을 내쉬는 것밖에 없을 터. 알면서도 광안은 여자의 답을 독촉하였다. 언제까지 네 입에서 단정한 답이 나올까.

“뜻을 말해 보거라.”

여자는 숨을 몰아 쉴 뿐 답을 하지 못한다. 정점을 비틀자 아악 비명을 지르며 몸을 떨었다.

“말하라.”

고통과 수치에 동반하는 이율배반적인 열감이 여자의 눈에 어른거렸다. 잠시뿐이었다. 감았다 뜨는 눈은 하늘처럼 맑았다.

“저하…… 부디, 취하소서.”

광안이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소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눈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여자의 몸이 보료 위로 떨어졌다. 광안은 무릎을 꿇어앉은 채로 여자의 하체를 제 몸 쪽으로 잡아 당겼다. 힘없이 달려오며 여자의 검고 숱 많은 머리칼이 부채처럼 보료에 펼쳐졌다. 이미 터질듯이 부풀어 오른 지 오래였다. 취하라 말하던 여자의 눈에 유혹은 없었다. 벌어진 다리를 광안의 하체에 올리고서, 여자는 간신히 등 위쪽만 보료에 댄 채로 광안을 바라보았다. 그 눈은 이 밤 한시도 광안에게서 떨어진 적이 없다. 호흡을 정리하기도 전에 광안은 깊이 찔러 들어갔다. 여자의 허리가 뒤틀리고 어깨가 뒤틀렸다. 아픔 때문에 뒤채는 여체의 움직임이 자극을 더했다. 지난밤 내부로 밀어 넣는 한 번의 교합만으로도 귀 끝까지 잘근잘근 씹히는 듯했다.

“가만히.”

가만히. 미치겠으니, 제발.

광안의 다하지 못한 말을 읽을 리가 없는 여자는 무서운 명이라도 받은 듯 몸을 반듯하게 폈다. 광안의 머리를 부둥켜안고 울며 독약이 묻었을지 모른다고 발버둥 치던 여자는 저를 걱정함이 아니었다. 그저 세자의 안위에 달린 제 명줄을 챙겼을 뿐. 내장까지 뒤흔들던 교성도 이성을 잃게 만들만큼 자극적인 몸짓도 광안의 마음을 얻기 위함은 아니었다. 언제나처럼 소임만을 다할 뿐. 세차게 박힐 때마다 몸이 흔들리면서도 여자는 주먹 한 번 쥐지 않았다. 허리를 뒤틀지도 더 이상 교성을 지르지도 않았다. 터지도록 입술을 깨물고 눈은 오직 광안만을 바라보며 견디고 견디었다. 여자에 빠져 미쳐 날뛰는 것은 광안 자신이었다.

한 번의 방사가 끝난 후, 여자가 몸을 움직였다. 기진한 몸을 추스르며 여자가 찾는 것은 무명 수건일 테다. 광안이 여자의 허리를 붙잡았다. 덜렁 몸이 들리자 눈이 둥그레해졌다. 여자에게 휘둘려, 홀로 미친 정사에 스스로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다.

“저하……!”

“이 밤이 끝났더냐.”

“아니, 옵니다.”

금침에 누이자 여자가 새삼스레 손으로 가슴을 가리며 옆으로 돌아누웠다. 손을 떼어 귀 옆 바닥에 고정시키고 물었다.

“어느 쪽을 빨았더라.”

여자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어졌다. 이미 거칠게 다루어 온통 붉어지고 부어오른 곳은 내려다보는 시선만으로도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

“네 입은 답을 하지 않는데 네 젖가슴은 답을 하는구나.”

뾰족이 솟아 오른 지점으로 광안이 입술을 내리자 흐느끼는 교성이 반쯤 흘러나오다 멈췄다. 다시 내내 참을 모양이다. 광안이 입술을 닿은 채로 웃었다. 이로 가볍게 물어 끌어 올리자 자지러지는 소리가 났다. 물었던 것을 곱게 놓아주자 여자가 안도의 숨을 내어쉰다.

끝까지, 네가 내 맘에 들고픈 생각이 없구나.

입을 가까이 가져가자 여자가 깨물릴까 두려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긴장된 숨을 쉴 때마다 봉긋한 가슴이 입에 닿을 듯 부풀었다. 한참을 내버려 두다가 여자가 방심하는 사이 머금었다. 이 사이에 넣어 끝까지 물어 올리던 유두가 툭하고 빠져나가자 여자가 날카로이 소리를 질렀다. 다른 쪽도 물어 올리자 아앙 아앙 울어 댔다.

“다시는 소리를 먹지 마라.”

하체를 밀어 넣으며 광안이 명했다.

“기어이 뱉어 내게 만들 테니.”

발목을 잡아 높이 허공으로 올렸다. 몇 번의 움직임 전에 다리가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광안이 다시 발목을 잡아 올렸다. 원망스러운 눈빛이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여자의 입이 우물거린다. 기력이 다한 몸으로 버틸 수 없음을 안다. 하지만, 이 여자는 다리가 부서지면 부서졌지 감히 그 다리로 세자의 허리를 감을 생각은 하지 못할 터이니.

네가 언제까지 버틸까.

움직임의 속도가 빨라지자 흐느낌이 잦아졌다. 일부러 교합 중에는 손끝 하나 대지 않는다. 바닥에만 고집스레 붙박고 있는 여자의 손은 금침을 움켜쥘 뿐 광안의 목을 껴안지도 손을 잡지도 않는다.

“괜찮다. 밤은, 길 테니.”

광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여자가 답을 하였다. 의도적으로 느리게 움직이자 여자의 눈이 찡그려진다. 원한다면 허리를 흔들어 보라, 여자는 광안의 뜻을 읽지 않는다. 올린 다리가 스르륵 떨어졌다 다시 올라간다. 두어 번 반복하던 여자가 그제야 불렀다.

“……저하.”

쿡 깊이 찔러 대자 가슴을 휘며 우웅 울음처럼 소리를 냈다.

“다리……가, 더는, 더는. 저하…….”

시원찮은 요구다. 더 벌을 세우고 싶지만, 정확히 말하라 몰아붙이려 했지만, 광안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손바닥으로 무릎 뒤를 쓰다듬자 가르릉 여자의 성대가 울렸다. 더 아래로 내려가는 손가락이 맘에 드는지 몸이 움찔거렸다.

“내 허리를 감아라.”

여자가 황급히 도리질을 쳤다.

“밤새 벌을 세울까.”

“하오나, 저하.”

광안은 발목을 거칠게 잡아 허리를 감게 하였다. 그제야 광안이 몸 전체를 여인에게 기울였다. 조금씩 여인의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바르르 경련처럼 떨며 몸이 무섭도록 조여들었다. 흰 목이 휘어졌다. 그 밤, 두 번째였다. 그리고 여인의 몸에 한 광안의 첫 번째 파정이었다.

까무룩 혼절하듯 눈을 감았던 은우가 눈을 떴다. 다시 스르륵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면서 제 등 아래 손을 넣어 상체를 비스듬히 일으키는 광안을 바라보았다.

“한 번 더 취할까.”

비웃는 말임을 안다. 두 번을 취하고서 반 시진 전에 같은 물음을 던졌다. 뜻을 따른다는 은우의 말에 세자는 광포하게 움직였다. 붉어진 눈을 보며 제 답이 틀렸음을 알았다. 열기로 바싹 마른 입술을 열어 은우가 말했다.

“부디, 다음 날에. 저하. 부디…….”

가슴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광안이 말했다.

“질리도록 취하려면, 너를 살려 둬야겠구나.”

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목소리도 낼 기운이 없었다. 그럼에도 광안의 손길에는 몸이 움찔거렸다. 눈을 뜨려 해도 떠지지 않았다. 힘겹게 밀어 올리는 눈꺼풀이 다시 스르륵 아래로 떨어지고, 눈썹을 찡그리며 애써 다시 올린 눈꺼풀이 다시 떨어졌다. 졸음을 이기지 못해 저절로 입에서 앓는 소리가 났다. 반쯤 뜬 눈으로 세자의 눈이 보였다. 무서워 해야 하는데 무섭지 않다. 그 눈을 조금 더 보고 싶어 감겼던 눈을 다시 떴다. 광안이 손을 들어 은우의 눈을 덮었다. 이제 감아도 된다는 말씀인가.

저하, 하오면 이제 소인 눈을 감아도 되겠습니까.

문장이 되지 않아, 입만 벌렸다. 눈을 덮은 손은 움직임이 없었다. 겨울에 솜이불을 두른 것처럼 안심이 되었다. 일시에 몸이 녹아내리듯 풀어졌다. 깜박깜박 잠이 들었다. 깊이 잠이 든 아이처럼 숨이 색색 뿜어 나왔다. 문득 벌어진 입술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따스함이 좋아 은우는 혀를 내밀었다. 갑자기 사라진 온기가 아쉬워 으응, 저도 모르게 칭얼거리며 입술을 움직였다. 한 번 더 촉촉한 뜨거움이 입술을 가볍게 덮는다. 놓치기 싫어 은우는 벌린 입술로 따스함을 물었다.

따스해, 달콤해.

본능처럼 움직이는 아기의 입술처럼 오랫동안 따스함을 놓아주지 않았다.

광안의 품속에서 은우의 고개가 툭 떨어진다. 그제야 광안은 고개를 들고 눈을 덮은 손을 조심스레 열었다. 부신 듯 은우의 감은 눈이 찡그려졌다. 다시 덮으려 할 때, 마지막 남은 촛불이 꺼졌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천천히 움직이자 작은 손이 남자의 속적삼을 꼭 쥐었다. 잠시 망설이던 남자가 여자를 안은 채로 가만가만 자리에 누웠다. 어둠이 몸을 완벽하게 감싸고 코끝에는 은은한 향기가 스쳤다. 여자의 머리칼에 얼굴을 묻고, 달디 단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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